아이디어

요즘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시나요? 우리 일상과 현장에 영감을 주는사례와 시도를 소개합니다.

연극을 배우는 교실? 연극을 하는 교실!

모두의 예술교육⑫ 연극의 신비로움을 경험하기

나는 1998년쯤 처음으로 연극을 보았고, 2004년에 배우로 무대에 올랐다. 그때 나는 내가 ‘연기를 못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지금까지 종종 대본을 쓰고, 가끔 연출을 하고, 하는 수 없을 때 배우를 하면서 연극을 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연극을 전공하지 않았다. 연극을 보고, 공연을 만드는 경험을 쌓아 왔지만 나는 연극에 대해서 잘 모르는, 연극 하는 사람이다. 오래 하다 보니 종종 지역 거점의 복지관이나 센터에서 연극 수업과 작은 발표, 촬영을 함께 하자는 제안이 오곤 한다. 대부분 지역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연극

말똥을 치우다가 시작된 이야기

오늘부터 그린㊼ 손끝으로 감각하는 생명의 흔적

나는 말똥으로 그림을 그린다. 그것으로 말똥탄을 빚고, 아이들과 함께 말똥에 색을 입혀 그림을 그리고 말똥종이를 만든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나를 생태적 환경을 생각하는 예술가로, 자원순환을 실천하는 사람으로 바라본다.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지구를 지켜야 한다거나 무엇을 하지 말자는 말을, 좀처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사람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환경의 가치를 절대적으로 실천할 수 없는 경험을 때때로 하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 여기, 살아 숨 쉬는 것들과 그것들의 유기적 흐름을 항상 눈치채고자 하는 사람일 뿐이다. 우연히 시작된 딴짓 전남 고흥의 농촌 시골살이에서 시작된 말똥 이야기는

돌과 물길 따라 도란도란 피어나는 이야기

예술로 365길㉙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 충남 보령시 성주면 먹방계곡길 72 월~금 10:00~17:00 (사전 연락 필수) 041-934-8872 블로그 이제는 폐광되어 사라진 산속의 탄광촌, 계곡물이 흐르는 한 작은 마을에 보령공예문화예술연구소가 자리하고 있다. 산골짜기 사이사이로 슬레이트 지붕과 함석 벽으로 만들어진 허름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던 탄광촌은 시간이 흐르며 점차 집다운 집들이 들어서고 30세대 남짓 거주하는 작은 마을이 되었다. 광부의 하숙집에서 공예의 공간으로 옛날 성주사지에서 공부하는 승려들을 위한 먹을 만들었다는 설이 내려져 오는 충남 보령의 먹방계곡길. 먹을 만들 때 사용했던 한국 토종 적송은 몇 년 전만 해도 산에 가득했으나

빈 종이라는 난감함과 막막함 앞에서

예술교육가가 ○○과 맞서는 방법①

예술교육가마다 현장에서 반복해서 마주치는 난감한 상대가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침묵일 수도, “발표하기 싫어요”라는 한마디일 수도, 좀처럼 움직이지 않는 몸일 수도 있다. 나에게는 ‘빈 종이’가 그렇다. 나는 ‘술래’라는 이름으로 랩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청소년과 만나지만 어린이부터 성인까지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과 함께한다. 학교 안 교실부터 도서관, 문화공간, 동네 구석구석까지 다양한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 랩을 만든다. 참여자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가사로 만들고 비트 위에서 랩으로 표현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랩을 얼마나 잘하는가보다 자기 이야기를 발견하고 자기 목소리로 표현하는 과정이다. ‘가사는

한 땀 한 땀, 이어가는 바다

오늘부터 그린㊻ 함께하는 바다 만들기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늘 곁에 있는 바다의 소중함을 몰랐다. 그 소중함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외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힘들게 생활하던 중, 부산 광안대교 2층 교각을 지나며 우연히 본 바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그 순간 저 바다가 내 맘의 안식처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바다 수영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매일 새벽 해운대 바다에 입수할 때마다 내 맘은 점점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바다 수영에 몰입하던 3년 차 어느 날, 검정 비닐봉지가

서로의 집에 손을 넣으면

모두의 예술교육⑪ 감각의 경계를 확장하기

어릴 때 두꺼비 집을 만들어본 적 있는가. 손등 위에 흙을 올리고 조심조심 두드려 집을 짓고, 완성되면 손을 빼내어 작은 구멍을 남긴다. 그 구멍 속으로 누군가의 손가락이 들어올 때의 감각. 서로의 세계가 처음으로 맞닿는 그 순간. 나는 감각을 나누는 일이 꼭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흙집은 모양이 다 다르고, 들여다봐도 잘 모르고, 손을 직접 넣어봐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 된다. 나는 보청기 없이 일상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 눈에는 멍때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에 관찰하고 있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거리를 두고 한발 가까워지기

오늘부터 그린㊺ 공존을 위한 접근법

유인원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인원은 동물·환경 과학소통 단체다. 김예나와 안재하,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11살 반려견 구르미가 코어 멤버로 활동한다. 우리의 시작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동물권이나 환경에는 별로 관심 없었던 2009년 김예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물원에서 사육 보조를 하다가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석사과정에 지원했던 그 시절 김예나는 동기였던 안재하를 만나게 된다. 안재하는 어느 날 공장식 축산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책을 덮자마자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동기들이나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으레 육류나 어류를 소비하곤 했는데 안재하는 그

가랑비에 옷 젖듯, 달라진 연동의 골목

예술로 365길㉘ 연동문화발전소

연동문화발전소 세종특별자치시 연동면 내송길 20 월~금 10:00~17:00 (전시 관람: 월~토 10:00~17:00, 일요일·공휴일 휴관) 044-868-5316 블로그 인스타그램 연동문화발전소는 구 연동면사무소를 재생하여 장욱진 화백 콘텐츠와 연계한 예술 창작·교육·교류 공간으로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다. 도농복합도시인 세종특별자치시 읍면 지역에는 주로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연동면은 그중에서도 도시와 매우 밀접한 동네다. 지금은 신호장(열차의 교행과 대피만을 위해 설치되는 철도역)으로만 운영하는 내판역 앞 골목으로 들어오면 연동문화발전소가 있다. 한적해진 골목에 스며든 예술 “옛날에는 여기가 명동 같었어. 사람이 얼매나 많았다고!”연동면사무소가 이사 간 동네는 너무도 한적하다. 사실 몇 발짝 안 되는 거리로 이전했지만

차별하지 않는 법보다 함께 웃는 법을

모두의 예술교육⑩ 서로의 다름을 배우는 교실

최근 서울연극협회 정회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예술을 향한 차별을 야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연극·예술·장애·인권 연대가 형성되었고 차별 발언을 한 당사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사실 차별적인 발언과 행위는 자주 일어난다. 다만 특정 인물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날 때 비로소 사건이 된다. 지금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카페에서도 나는 차별을 겪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점프하며 음료를 고르는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커플의 웃음을 들었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해프닝일지 모르나 당사자에겐 일상에 늘 존재하는 혐오의 한 장면이다. 4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며 내린 결론은 그

함께 서는 예술가들

모두의 예술교육⑨ 같이 만들어가는 무대

예술가란 무엇일까? 예술을 하는 사람을 예술가라고 하지. 예술의 정의가 있던가 그렇다면 정의된 예술이란 무엇인가? 아니 그보다 예술을 정의할 필요가 있던가? “그저 예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예술가로서 전하면 그것이 예술가고 예술이 아니던가.” 2025 프로젝트 예술단 옴니버스의 ‘?공연’ <다다다닷>(읽다 추다 그리다 노래하닷)은 이런 생각에서 시작한다. 세상은 수많은 예술가가 살아가고 있고 대중은 그들의 예술을 보며 살아간다. 그리고 예술가와 예술을 보는 대중들 속에는 장애인도 있다. 2023년 발달장애청년허브 사부작에서 진행한 미디어 오페라 <메마른 땅 위의 동물왕국>을 진행할 당시, 비장애인 배우로 참여했던 나는

결국 우리는 만나야 한다

동료 상담실⑦ 급변하는 시대 속 변하지 않는 것

하다 네트워크는 음성생활문화예술공간 ‘소극장 하다’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충북 음성과 그 인근 지역의 문화예술 활동가들이 모인 소규모 네트워크이다. 아직도 기능 위주의 예술교육이 주를 이루는 지역에서 새로운 문화적 접근을 위한 움직임을 꾸준히 만들어 가고 있다. 내가 사는 지역에서 나의 예술로 사람들과 함께 뭔가를 하고 싶다는 개인의 욕구가 있다면 누구든 자유롭게 함께 할 수 있는 네트워크다. • 상담 일시 : 2026.2.11.(수) • 동료 상담가 : 윤종식 소극장 하다 공동대표, 황금미영 소극장 하다 공동대표·문화예술교육 기획자, 허윤희 창작극단 하다 대표 변하지 않는 관계의 가치 급변하는

동네의 시간을 품은 예술정거장

예술로 365길㉗ 놀라운 예술터·뜻밖의 미술관

놀라운 예술터·뜻밖의 미술관 놀라운 예술터 | 전북 전주시 완산구 권삼득로 63-1뜻밖의 미술관 | 전북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3-6 놀라운 예술터 | 월~금 09:00~18:00 (토, 일 휴관)뜻밖의 미술관 | 화~토 10:00~17:00 (일, 월 휴관) 063-287-1300 홈페이지 누군가에게는 지워야 했던 과거였고,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견뎌야 했던 일상의 시간들. 전주 노송동의 한 동네는 오랫동안 ‘밖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기록돼 왔다. 그러나 그 공간을 하루하루 지나온 사람들의 목소리는, 늘 조금 늦게 도착하곤 했다. 그래서 ‘놀라운 예술터’와 ‘뜻밖의 미술관’에서의 문화예술교육은 단순한 프로그램 운영을 넘어, 기억의 주도권을

나의 삶과 공동체가 자라는 씨앗

오늘부터 그린㊹ 관계망으로 잇는 농생태적 생활

제주에서 나는 ‘씨앗매개자’로 살아간다. 씨앗매개자란 생태적인 삶을 위해 지금 함께 지켜가야 할 유무형의 씨앗들을 여러 영역으로 연결하며, 각자 가능한 일과 삶의 방식으로 그것을 가꾸어 가는 사람들, 그 모두라고 생각한다. 씨앗이 품은 이야기, 그 기억을 이어온 사람들과 공동체적 관계망을 다음 세대에게 건네는 일. 그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계속 해 보려는 사람이다. 그 바람을 업으로 짓기에는 녹록지 않았지만 분명했던 건 세상의 기준보다는 내가 살고자 하는 방향으로 삶을 지어가겠단 결심이었다. 그 마음이 내 삶을 밀고 당기는 과정에서 ‘씨앗매개자’라는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표현의 길 위에 경사로 놓기

모두의 예술교육⑧ 예술교육에서의 접근성

발달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 신경다양인으로 불리는 아동, 청소년들과 경기도 북쪽 연천군에 창작공간을 마련해 함께 시각예술 작업을 하고 있다. 2025년에는 경기문화재단 지역문화 활성화 사업으로 다양성을 담는 넉넉한 예술이라는 의미의 시각예술 교육 프로그램 <넉넉>을 진행했다. <넉넉>에는 이미 자신의 그림 언어를 가지고 있는, 시각예술 분야에서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바가 분명한 사람과 아직 그렇지 않은, 자신만의 무엇을 발견하지 못한 또는 크게 흥미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같이 지원했다. 후자의 그룹을 관찰하게 된 이야기다. 창작공간ㄴㄴ(니은니은) 외부 우재만의 가을 감각하기 우재(가명)는 초등학교 5학년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첫날, 부모님과

함께 작당하며 뿌리내리기

예술로 365길㉖ 브로컬리연구소

브로컬리연구소 제주특별자치도 belocally.lab@gmail.com 홈페이지 “제주에 와서, 함께할 사람이 없다.” 귀향하거나 이주한 청년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이다. 제주 안에서 각자의 일은 어떻게든 꾸려가지만, 고민을 나누고 문화를 즐기며 관계를 쌓을 연결망은 부족하다. 지역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자산을 기반으로 삶이 지속되도록 특화된 공간이지만, 현실에서는 각자도생의 방식이 반복되고, 많은 청년이 고립과 외로움 속에서 방향을 잃거나 다시 도시로 돌아간다. 혼자가 아닌 함께, 지역적으로 살자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브로컬리연구소를 만들었다.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과 이 지역에서 계속 함께 살아갈 동료를 만날 수 없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나란히 자라는 농사

오늘부터 그린㊸ 농사로 배우는 공존의 감각

지난여름이 무색한 까까머리 밭에는, 그곳의 생명들과 어린 농부들이 나란히 성장했던 시간이 촘촘히 박혀있다. 지난봄, 아이들과 이 밭에 마주 섰을 때 우리의 첫 질문은 ‘무엇을 얼마나 심을까?’가 아니었다. 우리는 맨발로 흙 온도를 재며 물었다. “지금 땅은 우리를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우리의 농사는 밭의 생산성이 아니라, 그곳에 깃든 수만 가지의 관계성을 향해 있었다. 관찰자를 넘어, 머무는 주체로 ‘초록놀이터’라는 이름을 달고부터, 우리는 줄곧 ‘자연을 어떻게 예술교육 안으로 가져올 것인가’를 연구해왔다. 그러나 자연에 시선을 멈추게 하고 숲을 일상에 들이는 다디단 작업은 씁쓸한 뒷맛을 남기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