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 개요
일 시 : 2024. 6. 17(금) 오전 11시
장 소 : 따스한햇살 스튜디오
참석자 : 임재춘 커뮤니티스튜디오 104 대표,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본지 편집위원)
서지혜  문화예술교육 사업이 지역으로 이양되기 시작할 무렵 지역(센터)에서는 예산 확보의 불확실성, 매개자 역할을 할 지역 예술가의 부재, 이주 예술가들의 지역 안착과 지속성 등에 대한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간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벌어지는 곳, 즉 주민들이 예술과 닿고 관계 맺는 현장에서는 매개자와 문화예술단체, 매개 기관의 고민과 실천이 가능성과 한계를 넘나들며 여러 맥락에서 지역 중심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전개해 왔다. 그리고 ‘지역 중심’이라는 키워드도 생기고 지역사회와 예술교육을 잇는 여러 관점이 생겼다. 먼저 지역 문화예술교육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말씀해 주시면 이야기를 풀어가는 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임재춘  문화예술교육에서 ‘지역’과 ‘문화예술교육’을 따로 말하거나 문화예술교육의 일부 영역으로 지역을 사고해서는 안 된다. 문화예술교육 자체가 기본적으로 지역성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책적 방향이나 체계를 만드는 ‘정책적 관점’에서의 지역과, ‘실행의 관점’에서 주제나 소재, 또는 맥락으로 다루는 지역은 다르다. 그동안 지역을 반영하는 사업이라고 하더라도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시민 문화예술교육’ 같이 다르게 표현해왔다. 현장도, 지원기관도 앞서 구분했던 관점을 혼재해서 사용했던 것 같다. 두 가지가 관련이 많지만, 지역이라는 언어를 의미상으로 또는 행위로 연결하는 방식이 다르다. 예를 들어 행정구역이나 주소지로 경계를 나누거나, 지역이 수치화되고 성과가 측정되는 정책적 특성이 있다. 특성이기 때문에 인정해야 하지만 동시에 한계도 있다. 정책적 관점과 실행적 관점에서의 지역은 대립적인 의미라기보다 역할이나 구현하는 메커니즘이 다르다고 봐야 한다. 그동안 이것이 혼재되면서 특히 현장에서는 밀어붙이는 느낌이 드니까 갈등적이고 불편한 요소로 지역이 언급되어 왔던 것 같다. 그래서 이것을 구분하되 어떻게 의미의 완충지대, 결합지대 같은 것을 만드느냐 하는 게 ‘매개’의 영역인 것 같다.
서지혜  정책 체계로서의 지역과 실행 차원에서의 지역을 구분하고 교차시켜서 본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뜻일까?
임재춘  예술의 관점에서 지역은 매우 넓은 의미이다. 예를 들면 저는 경기도 수원시에 살지만 그게 내 지역적 정체성은 아니다. 그냥 행정적 거주일 뿐이다. 삶이라는 것은 늘 장소성을 갖기 마련이잖나. 집이나 작업실 등 여러 공간이 있을 수도 있는데 ‘실체적으로 발 딛고 서 있는’ 곳이 지역이라고 본다. 정책은 현장의 그런 관점을 이해하고 따라가야 한다. 물론 정책 고유의 체계나 행정적인 부분은 함께 가야 한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은 국가 예산이 거의 전부이고 많은 부분을 정책이 끌어가고 있고 그렇게 가는 게 맞는다고 본다. 그러나 정책도 단박에 이해되지는 않더라도 현장에서 삶의 실체로서의 지역이 어떻게 고려되고 소환되고 드러나는지 따라가고 배울 필요는 있다. 그런 측면에서 구분해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서지혜  지역을 중심으로 가는 것이 의미 있고 중요한 이유와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 특성을 연결해서 설명하면 장소성에 담긴 여러 맥락의 얘기가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중앙에서 지역으로 사업이 이관·이양됐을 때 어떤 가능성을 상상하셨는지 궁금하다. 근접거리 정책의 새로운 가능성과 교차의 시도랄까.
임재춘  2000년대 초반의 일인데 광역문화재단에서 6년여 정도 일하는 동안 순환보직 없이 계속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했다. 그 시기가 공교롭게도 문화예술교육 정책 초기 단계였다. 그래서 왕성하게 양적 성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정책적 의도와 현장의 부응, 기대감, 활력이 교차하던 그때 느꼈던 갈증, 문제의식 중에는 지역의 정책적 고민과 결정 권한이 광역문화재단에 있어야 한다는 게 제일 컸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실행’의 개념은 더 미시적인 기획의 어떤 측면까지 나아가는 것 같다. 예를 들면 광역 단위도 넓은데, 시민을 만나는 실행은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 경험을 나누는 굉장히 구체적인 일이다. 이러한 지역 중심, 지역에 기반한 시각이 생겨나야 하고, 그것을 들여다보고 다시 정책에 반영하는 것이 필요하다.
지역이란 말을 ‘모든 사람이 누려야 하는’ 보편성의 개념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일면 맞기도 하고 앞서 얘기한 정책적 관점의 가장 대표적인 입장인 것 같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에서 지역이 중요한 이유는 소수성 때문이다.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은 고갱이 같은 것이라고 본다. 예술을 접한다는 개념도 있지만, 한정된 재원과 상식, 보편적 개념에서 잘 건드려지지 않는 부분을 들여다보고 건드리는 게 예술의 중요한 역할이자 존재 이유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은 살면서 잘 보이지 않고, 애쓰거나 누군가 제안하지 않으면 경험할 기회가 없는, 하지만 사회가 건강하게 나아가는 데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경험하는 것이다. 지역에서 ‘삶의 개별성’을 유심히 섬세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다. 실제적인 관계 안에서 삶의 개별성을 들여다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지역의 의미는 바로 이 모든 것이 다 들어 있는 문화적 장이자 삶의 장이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역을 보편적인 기회 창출보다는 그 지역이 품고 있는, 지역이어야만 가능한 미시성으로 접근해야 한다. 바로 그 미시적이고 개별적인 접근이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이다.
서지혜 대표, 임재춘 대표
서지혜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 예술가가 시민을 만나는 일의 구체성과 예술교육은 본질적으로 지역성을 갖고 있다는 말씀에 공감한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을 거론하기 시작하면서 정책적으로는 모든 지역에 도달하겠다는 전략인데, 도달해야 하는 곳은 사실 개인이다. 개인이 움직여서 지역에서 구체적인 변화를 형성하는 것은 효과성이나 영향의 측면인데, 종종 그것이 구체적인 목표치가 되기도 한다. 특히 정책 사업에서 예술교육을 통해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나타나면서 사람들의 활동의 무게 중심을 의도적으로 옮겨가는 것에 대한 불편함이 조금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틀리거나 부인할 수 있는 요구도 아니다. 현장의 관점에서 정책적 목표나 효과, 영향이 다뤄지는 방식, 소통되는 방식에서 전환할 필요가 있다면 무엇인가?
임재춘  예술의 쓸모가 과연 사회 문제를 해결하고 공동체를 만드는 것인가 하는 근원적인 문제, 논쟁적 요소가 있다. 예술의 효과로는 치유의 기능도 있고, 문제 해결의 장치가 되어 주기도 한다. 한국 사회에서 공동체를 개념적으로 넓게 정의할 수 있겠지만, 지금 시대, 어떤 지역 또는 내 상황 안에서 공동체가 무엇인지 사유가 필요하다. 그런데 최근 문화예술교육에서 그런 사유가 있기 전에 함께 모여서, 아름답게, 몇 개를 만들고, 그것이 지속 가능해야 한다고 독촉한다. 모임이나 동아리, 공간도 마찬가지다. 공동체는 우리가 어떤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하는 중요한 질문이다. 지역이라는 개념에서 공동체가 여전히 모임이나 동아리 형식이고 뭔가 유의미한 성과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에 갇혀 있다.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지역 단위 현장, 특히 동시대 예술에 대한 경험이 적은 지역에서 이 관성이 여전히 반복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서지혜  동시대적 예술에 대한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은 동시대 예술가가 먼저 사유하고 고민하는 역할자로서의 존재와 접근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또, 이러한 존재의 동행이나 매개적 활동이 ‘교육’이라는 계기를 통해 사람들의 능동적 움직임을 만들기 위한 지역 리서치 과정이 전제되어 있다고 보인다. 최근 문화예술교육 정책 사업에서도 리서치가 지원신청서에 한 파트를 차지하며 친절한 가이드와 함께 들어가기도 한다. 어떻게 보면 그 중요성을 정책 단위에서도 인지하고 현장에 뭔가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건데, 이에 반응하는 현장의 변화가 궁금하다. 지역으로 사업이 이양되면서 정책 단위에서 노력이 이뤄지고 있는데, 아직은 취약하더라도 그것을 포착하고 반응하고 학습이 일어나는 현상도 있을 것 같다.
임재춘  이 부분은 현장에서 굉장히 어려워하는 지점인 것 같다. 예를 들면 인천문화재단에서 문화예술교육 거점 구축을 위한 사업을 하면서 리서치를 강조하는데, 이게 잘 안된다.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예술 또는 기획 영역에서 리서치의 레퍼런스는 학술 연구나 시청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는 통계조사 결과 같은 차원에 머물러 있다. 소위 문화적인 시선이나 예술가의 리서치는 다를 수 있다. 그런데 막상 직접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거다. 또 하나는 주관성이 중요하다. 리서처가 주관적 관점과 감각으로 포착한 요소들을 인정해야 하는데 ‘이래도 되나?’ 하는 자기 검열이 계속 작동하는 것도 있다. 이 동네가 어떤 곳인지 내 감각을 따라가며 냄새, 풍경 등을 관찰하면 같은 시공간에 있어도 포착되는 요소가 다르다. 그 다름이 실행을 위한 영감의 원천이 되는 것이 리서치의 핵심이다.
서지혜  혹시 그 과정을 구체적 사례로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
임재춘  인천문화재단 거점 지원사업 참여 단체 중 공간 없이 참여한 팀이 있었다. 시작할 때 3개월이든 6개월이든 리서치만 해도 좋다고 했는데도 단체에서는 공간이 없다고 위축된 것처럼 보였다. 그래서 일단 만나고 싶었던 동료들을 만나러 다니라고 했다. 이 거점 지원사업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헐렁함(?)이 있어서 뭐가 남지 않아도 되니 해보자고 했다. 이것이 큰 차이였던 것 같다. 다 아는 사람, 아는 공간이었는데 리서치를 계기로 만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그럼에도 무엇 때문에 애쓰고 있는지, 유지하는 동력은 어디서 나오는지 등 내밀하게 접하게 됐다. 그렇게 예술교육의 주체가 될 수 있는 동료들을 만난 것이 한 축이었고, 그러면서 자신들의 활동 방향과 범주를 구체적으로 고민하는 계기가 됐다. 또 한편으로는 동료, 후배 예술가와 함께 해보자고 제안했다. 이것이 중요한 지점이다. 거점적 특성인 활동 주체의 확장성을 고민했고 단체에서도 흔쾌히 받았다.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서 회의가 필요해졌고, 회의지만 워크숍이 되는 거다. 한 번에 안 되니 두 번, 세 번 하면서 이 자체로 ‘과정’이 생긴 거다. 그 옆에서 집요하게 기록해서 공유했고, 대화다운 대화를 나누는 경험을 했다. 작업할 때와 달리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던 과정이었던 것 같았다. 이는 이들이 꼭 매끈한 강사로 증명되지 않아도 된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의미 있는 과정이었다.
서지혜  몇 년 전에 어느 극단이 ‘신나는 예술여행’ 사업의 일환으로 외딴섬에서 공연하는 프로젝트를 했다. 사전 답사로 그 섬을 둘러보러 갔는데, 가가호호 방문해 보니 노인 인구가 대부분이었다. 집 주변 외에는, 심지어 섬 반대편에도 못 가본 할머니들도 많았다. 우리는 이 섬 하나를 지역이라고 생각하는데 개인에게는 사실 매일매일 생활하는 이 터가 다였다. 극단에서는 공연도 중요하지만, 할머니들에게 이야기 동무가 필요하고 섬을 한 번 둘러볼 기회가 더 필요하겠다고 생각해서 극단 단원과 어르신들이 짝을 지어서 같이 섬을 순회하면서 대화하고 함께 만들 연극 소재도 찾아 공연했다. 이 극단의 여정을 들으면서 예술로서의 공연이 어떻게 예술교육이 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느꼈다.
임재춘  그런 방법론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서지혜  맞다. 감각적으로 했고, 그 결과에서 자신들의 앎이, ‘아! 이게 정말 사람을 중심에 놓는 거구나’를 깨닫고 나니 그다음부터는 달라진 거다. 어떻게 보면 공연 단체는 이런 기회가 많지 않고 이미 완성된 작품을 공연한다. 앞서 말한 동시대 예술가, 특히 시각 예술은 기본적으로 리서치로 작업을 시작한다. 그래서 사실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등장이 본격화될 때 동시대 예술가들이 문화예술교육 신(scene)에 많이 모여들 거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 리서치 경험이나 과정적 작업에 대한 앎이 있는 예술가들은 문화예술교육과 작업을 어떻게 교차하고 결합해가는지 궁금하다.
임재춘  지역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다양한 역할의 매개자가 필요한데, 매개자는 직업군으로 보기보다 역할의 개념이고, 사람, 제안, 사업 형식 등 다양할 수 있다. 가장 절실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의 질문과 태도가 문화예술교육을 기획하는 행위와 만나는 매개적 장이다. 이것이 이루어져야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철학적 관점과 관련한 질문이 같이 나올 것이다. 그런데 수치화된 것은 아니지만, 제가 경험한 바로는 문화예술교육 신에서 예술가들이 많이 떠났다고 느껴진다. 주변에 그 이유를 물어보면 행정적 지침이나 형식 등 외형에서 제한적이라서 결과적으로 일단 재미없다는 거다. 사실 너무 단순한 얘기인데 결국은 예술가를 등 돌리게 하거나 아르바이트로 문화예술교육을 소비하게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인일 수 있겠다.
작년과 올해 아르코 공공예술 사업에서 문화예술교육에 관한 흥미로운 생각을 하게 됐다. 두 가지 사례가 있는데 부천의 ‘아트포럼리’가 지역의 문제를 풀어가는 프로젝트를 곁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작가의 고향 같은 동네인데 농사짓던 들녘이 재개발로 파헤쳐질 운명에 처한 거다. 경작하면 안 되는 그곳에서 작가는 사람들과 농사를 짓고 수확물로 밥도 해 먹고 술도 빚었다. 일종의 노작교육이다. 그리고 불온한 어떤 이야기들을 한다. 시위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앉아서 계속 그 들녘의 추억을 이야기하는 거다. ‘자기 지역’이라는 기반에서 가능했다고 보고 로컬리티가 의미 있게 작동되었던 중요한 사례이자 교육에서 예술가의 존재, 예술가로서의 질문과 풀어내는 방식, 속도와 관련해서 중요한 인사이트가 있었다.
또 하나는 완주에 ‘예술인 한 달 살기’ 사업인데 완주문화재단이 사업을 처음 시행했던 7년 전에는 예술가들이 내려와서 주민 대상 프로그램의 운영을 통해 문화적 경험을 만들어주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예술가들이 지역의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칠지 방식의 권한을 주는 시도를 했다. 교육 프로그램 몇 회 운영 같은 의무사항이 없었는데, 흥미로웠던 것은 그럼에도 다 예술교육을 한 거다. 가이드라인을 주지 않았지만, 주민과 의미 있는 활동을 해낸 거다. 이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했다. 예술가로서의 자기 삶을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가운데서 배움이 일어나고 그것을 포착하는 안목이 있을 때 조금 더 예술가다움으로, 또 꽤 괜찮은 사람으로 환류되는 일종의 자기 경신이 되는 거다. 그렇게 피드백될 때 다음 예술이 이전과 같을 수 없을 것이다.
서지혜  예술가의 시민성이 움직여내는 예술(가)의 힘에 관한 말씀에 동의한다. 예술교육이 차시가 아닌 다른 것일 수 있을 때, 거기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고민되는 부분인데 예술가의 존재 그리고 시간과 속도를 말씀하셨다. 예술가의 존재와 시간이 중요한 것처럼, 프로그램보다는 참여하는 시민의 존재와 시간, 속도가 존중되면서 상호작용을 할 여지를 만들어주고, 좋은 촉매가 이루어질 때 좋은 예술교육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예술가가 예술교육적 행위를 한다는 것은 나만이 아닌 타인의 존재와 더불어 시간을 계속 인지하고 만나보려는 시도가 있어야 한다. 지역 문화예술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자원인 예술가들에게 타인과 환경에 대한 지각과 어떤 움직임, 행동으로의 전환을 마련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이 필요하다. 여기서 매개 얘기를 좀 더 해보자. 앞서 매개가 사람은 물론 여러 형태로 존재할 수 있다고 하셨다. 정책에서 심지어 사업계획서의 내용도 매개적 역할을 한다. 사업을 만들고, 운영 과정에서도 다양한 매개가 일어난다. 총괄하는 기획자나 상주인력 같은 타이틀이 붙은 사람들에게서 매개가 일어나기도 한다. 예술가, 예술교육가가 매개하기도 한다. 매개자의 다양성이나 역할을 폭넓게 이해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임재춘  사실 저는 ‘매개자’라는 표현을 잘 안 쓴다. 앞서 역할이라고 말했던 이유는 매개의 역할이 고정돼 있지 않다는 거다. 예술가, 기획자처럼 고유의 역할로 호명하는 게 더 적절하다. ‘매개자’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처음에 만들어질 때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을 이해하는데 유용한 의미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전에 예술은 예술가와 관객만 있었다. 그런데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어떤 통로를 만드는 것이고, (예술공간이 아닌) 어디든 될 수 있는 걸 ‘매개적 경험’이라고 한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초기부터 지역 문화예술교육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발전 방안의 요소 중 하나가 ‘인력’이었다. 그 인력을 설명하고 호명하기 위해서 ‘매개자’라는 표현이 등장했다고 이해했다. 교사, 사회복지사, 청소년 지도사나 다양한 활동가들이 자기 활동을 좀 더 스며들게 하는 여러 장치를 만드는 역할로 매개자가 등장했다. 그런 스며들게 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맥락화한 것도 있었다. 그런 경험을 하면서 예술가들이 스스로 매개자가 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매개자로 호명된 예술가가 창작 작업보다는 계속 어떤 활동만 할 때, 그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방식이라고 했지만 결국에는 뭔가 모순되는 순간을 보게 됐던 것 같다. 꼭 ‘매개’라는 표현 때문은 아니겠지만, 명료하지 않고, 다양한 구성원 각각이 가진 고유함을 희석할 수 있다.
서지혜  매개자라는 용어를 피하는 이유도, 그럼에도 예술 경험의 어떤 통로를 만드는 ‘매개적 경험’을 문화예술교육으로 잇게 된 경위에서 등장한 인력들을 설명하고 호명하는 쓰임과 그로 인한 부작용도 공감한다. 지역 문화정책으로 인력 양성이 대두되면서 ‘문화 매개자’라는 정책 용어로 등장했던 것 같다. 정책에서의 매개자 정의와 우리가 생각하는 폭넓은 ‘매개적 역할’을 통칭하고자 하는 매개자 정의 사이에서의 왜곡과 격차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예술가, 기획자, 활동가 등이 매개적 역할은 계속되어 왔고, 그 스펙트럼도 넓어진 것 같다. 정책 초기부터 지금까지 지역 또는 문화예술교육에서 매개적 역할이 더 다채로워지고, 진화했을 것 같다. 어떻게 보시나?
임재춘  매개자가 시민을 만나기 위한 어떤 역량을 갖추기 위해 교육 등 다양한 자리에서 각자의 경험을 리뷰하고 궁금한 주제를 같이 공부하는 건 중요했던 것 같다. 최근에 그런 시간이 다채로워지지는 않은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 초반에는 인력 양성 교육 등을 광역에서 잘, 많이 만들고 시도했다. 그 안에서의 예술교육가들이 연대 의식, 연결감 같은 걸 가졌던 것 같다. 지역에서 관계나 신뢰를 바탕으로 한 생태계가 있어야 함께 성장할 수 있는데, 개인이나 각 단체의 문제로 치환되면 소극적이거나 쉽게 지쳐버린다. 그래서 지속적으로 채우고 경험과 학습이 필요하다. 이것이 잘 순환하기 위해서는 스스럼없이 질문할 수 있는 안전한 관계와 신뢰를 만드는 장치가 있어야 한다. 그 장치가 ‘지역’이 되어야 하고, 지역이라는 동료가 있어야 하는 거다.
서지혜  매우 다채로울 수 있어야 하고 복합적인 매개적 역할이 결합되어야 하는 것을 그간 예술교육실천가들에게 집중적으로 요구해 온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지역에서 구성되었을 다채로운 매개적 역할들이 어떻게 포착되는지 궁금하다.
임재춘  그런 사례가 조직화되어 있지는 않지만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지역에 그런 움직임이 있지만, 느슨하다 못해 너무 헐거워서 잘 모일 계기가 없는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 초창기 주체들은 이미 지역의 기반이나 문화를 경험했고 그 문화에 속해 있어서 연결고리가 있지만 새롭게 등장한 사람들은 기반이 없으니 약간 힐끔거리는 상황인 것 같다. 앞으로 문화재단이 지역사회 안에서 동료를 만들 계기를 만들어주는 역할이 중요한 것 같다. 근원적으로는 어떤 프로그램에서 예술가의 역할은 가시적이고 단편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지역 문화예술교육의 장기적인 의제가 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삶의 자리로서 계기나 경험을 만들어주어야 한다. 프로그램의 안과 밖에서 이 사람이 어떻게 위치하는지를 함께 살펴주는 게 지역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서지혜  제가 보는 선생님의 존재는 늘 다채로웠다. 예술교육적 실천을 하는 예술가의 조력자로서 기획자이고, 외부 조력자로서 질문을 해주는 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실천가들에게 사유의 장을 만들어주는, 문화예술교육을 하는 데 필요한 틈과 같은 공간을 만드는 매개자이기도 한 것 같다. 이러한 역할, 활동이 사실 지역 기반의 문화예술교육을 풍요롭게 해줄 수 있다고 본다. 그런데 말씀하신 것처럼 잘 드러나지 않고 포착돼도 인식해 주지 않기 때문에 사라지기도 한다.
임재춘  문화재단이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를 계속 생각해 왔다. 사람과 관련된 이야기나 작은 자리를 좋아하고 그런 자리의 중요성을 설파하기 위해 마다하지 않고 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제가 했던 발효랩에서도 공간을 통해서 남기고자 했던 것은 사실 수원 언저리에 있는 후배 기획자들이었다. 저는 상당히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 처음부터 사람을 남기겠다는 목표가 명확했고, 그래서 프로세스가 완전히 달랐다. 주목받지 않은 사람들을 계속 불러들이고 경험하는 장을 만들기 위해서 기획자, 협력기획자, 창작자로 주체가 되는 역할을 언어로 규정해 주고 수평적 관계를 계속 고민했다. 번거롭게 일을 하는 게 목표다. 번거롭게 시간이 걸리고 질척대는 과정으로 세팅하는 것이 제가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는 지점인 것 같다. 그렇게 해야 내 경험과 삶, 세계관이 갱신되고, 그렇지 않으면 일이 재미없더라. 그런 방식은 나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이기도 하다. 최근에 사람들이 나를 어려워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동료 대 동료로 만나기가 어렵잖나.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다른 방식을 몸소 보여야 한다. 나의 역할이나 내 의중을 어떻게 덜어내느냐가 협업의 결정적 요소라고 생각한다.
서지혜  선생님처럼 인간 플랫폼으로서의 매개자가 지역에 있다. 문화재단이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겠지만, 순환보직으로 사람이 계속 바뀌는 가운데 각 지역의 인간 플랫폼 역할이 지속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겠다. 그런데 정책적으로 볼 때는 어떤 특정 인물이 계속 거론되고 존재하는 것에 형평성 문제 등으로 회피하면서 자산화되지 못한다. 이런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 어떤 조력이 필요할지를 고민하지 않고 계속 다음을 찾아간다. 지역에서 인간 플랫폼의 행위성이 건강한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이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상호적 역할, 대응적 역할을 하는 게 좋을까?
임재춘  당연히 왜 그런지 이해하고 어떤 이들은 그래야만 한다고 믿는다. 일의 연속성이나 질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그것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명확히 보이는데, 행정적인 여건은 그렇지 못하다. 기관의 문제는 안타깝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지만, 새로운 주체가 등장했으면 좋겠다는 열망으로도 느껴진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한 사람의 단일한 생각으로 갇혀 있는 것이 사실 생산적이지 않을 수 있으니 동의하지만, 지역의 문화를 이해하고 자원화하는 문화적 경험이나 안목은 여전히 취약하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주체로 바뀐다 해도 계속 외부 전문가가 돌려받는 상황이 되면서 사람을 키우지도, 다양함을 만들고자 하는 목표도 달성하지 못한다. 이 지점은 소위 전향적으로 사고하지 않으면 계속 반복될 거다. 공정함과는 좀 다른 문제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뭔지 질문해 봐야 한다. 그런데 이 질문에 다다르지 못한 것 같다.
서지혜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은 틀에서 조금 더 자유롭게, 경계를 허물 수 있는 유연한 환경인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이 공교육의 대안적인 틈을 만들어주는 역할뿐만 아니라 복지, 사회적 이슈, 환경 등 다양한 영역과 맞닿고 교차하는 것 같다. 이것은 비예술 영역의 매개자가 필요하고, 이미 등장하고 있고, 어떤 면에서는 예술교육가들에게 좋은 영감이 되기도 하고 좋은 매개자가 되는 경우도 많이 보게 된다. 우리와 비예술 분야의 매개자들이 신뢰를 쌓고 동료로서 확장해 가는 데 어떤 것이 필요할까? 문화예술교육이 다음으로 가는 데 있어서 이들이 우리에게 중요한 동료가 될 것 같다. 지역에서 시민들과 뭔가 했는데 행정 영역에 있는 분들이 참여해서 문화예술교육을 경험하고 자기 직무와 매개하는 경우도 생기는 것 같다. 이런 가능성을 우연으로 치부하기보다는 지역에서 이렇게 발굴되고 드러났을 때 우리는 어떤 역할을 해줄 수 있을지, 어떤 노력을 좀 더 해야 하는 건 아닐지 고민이 있었다.
임재춘  저도 그런 사례를 보게 된다. 우연히 알게 됐는데 뭔가 일이 성사되는 거다. 기관 대 기관의 협력이 아니라 사람 대 사람의 협력인 거다. 그것을 가능성으로 보면 더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지역사회 안에서 그런 만남의 장면이 필요하다.
서지혜  지역에서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을 주도하는 초기 과정에서 그다음 단계로의 전환을 모색하는 시기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한 변화나 환경은 개인 몇몇이 정책 사업으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 과정에 함께 놓인 한 일원으로서 동료들과 함께해 보고 싶은 어떤 가능성과 시도와 상상이 있다면 무엇일까.
임재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강사 수당 받으려고 문화예술교육 한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시작을 그렇게 했더라도 막상 사람을 만나면 그런 생각을 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 정말 많았다고 고백하는 예술교육가를 만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그 마음을 계속 떠올리는 건 중요할 것 같다. 서로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이야기해야 내 문제가 되는 거다. 나의 문제임을 인정하는 시간이 필요하고 인정과 이해가 토대가 되어야 다음 해법이 생긴다. 그런 과정을 스스로 만들어내면 좋겠다. 문화재단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기초든 광역이든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중요성을 이해받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을 함께 느끼면서 스스로 목격자이자 증언자가 되어야 한다. 일단 남기고 함께 나눌 수 있는 자리가 있으면 좋겠다. 꼭 제도나 정책의 문제가 아닌 예술교육가로서 매개자로서 느끼는 고민, 질문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시간을 스스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서지혜  긴 시간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하다.
임재춘

임재춘

‘생활적정랩 빼꼼’이라는 편협한 공간이 서식처였을 때는 그곳의 운영자나 대표라고 불렸는데, 2020년 공간을 정리한 후부터는 행정적인 필요로 만든 단체 ‘커뮤니티 스튜디오104’의 대표로 호명한다. 경기문화재단에서 6년여를 보내며 문화와 예술, 배움, 삶의 가치에 관해 공부하며 일을 하고, 조금 더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어 ‘바깥’의 삶을 산 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연구, 컨설팅, 문화기획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사람들을 호명하고, 질문이 이어질 수 있는 장소, 틈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지혜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 SEM네트워크 설립자 및 前 대표.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에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며 예술과 예술가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넓혀가기 위해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기획, 문화정책 분야를 넘나들며 조력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 연세대학교에서 후배를 양성하고 있다. 본지 편집위원.
프로젝트 궁리
정리_프로젝트 궁리 주소진 기획팀장
인터뷰 사진_이재범 POV스튜디오 andy45a@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