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개는 헤엄을 잘 치고, 원숭이는 나무에 잘 오른다. 아이들도 저마다 수십만 가지의 천부적 잠재력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의 입시제도는 아이들의 다양성은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정한 평가라는 이름으로 동일한 시험을 강요하며 경쟁을 부추긴다. 이는 물개가 나무에 오르는 연습을 해야 하는 것과 같다. 이러한 획일화된 평가를 기초로 한 대학입시제도에서 학생들은 불안해하며 병들어간다. 사제이자 심리학자인 헨리 나우웬은 그의 저서에서 “무한경쟁을 시키면 불안, 긴장하게 되고 친구를 경쟁자로 인식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 고립된다.”고 했다. 어린 시절부터 경쟁으로 내몰린 아이들은 정상적인 생각을 하기 어렵다. 어린 학생들에게 우울증이 늘어나는 데에는 이러한 입시제도의 탓도 있다. 무한경쟁이 인간의 본능인 상호의존적인 욕구와 좋은 관계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큰 상처를 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서로를 경쟁자로만 인식하는 순간 존중하고 협력하는 공동체성이 파괴된다. 이는 고립과 단절의 고통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중요한 원인이다. 이러한 비교와 경쟁에서 승자는 없다. 줄 세우기에서 1등을 하면 성공한 것인가? 우월감과 특권의식을 부추기는 교육은 위험하다.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해치는 교육은 해로운 교육이다. 한편 경쟁에서 뒤처진 아이들의 ‘자기비하’도 큰 문제다. 안타깝게도 무한경쟁은 아직 어린 나이에 자기 스스로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어.”라는 생각을 지속적으로 심어 주어 결국 무기력한 아이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자기비하 하는 아이들은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서지 못하고 위축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 스스로를 괴롭히고 결국 건강한 성장을 방해받는다.
마음껏 자신을 펼칠 기회를 주어야
지금 대한민국의 학교에서는 단절의 고통을 치유하고 공동체성을 회복하는 관계중심의 교육과정을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시급하다. 답은 있다. 예술을 만나면 아이들이 살아난다. 물개에게 물에서 놀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면 자연스럽게 물개만의 춤이 나오고 노래가 나온다. 아이들이 예술을 만나면 그들 안에 내재되어 있던 재능이 발휘되고, 그동안 눌려있던 마음의 상처가 밖으로 터져 나와 치유된다.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싶고 친구들과 좋은 관계 맺기를 갈구하는 인간의 본능이 충족되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학교에서 입시 준비를 위한 예술교육이 아닌 삶으로 경험하는 예술교육의 실제에는 이런 것들이 있다. 학년말 시험이 끝나고 자신들의 끼를 마음껏 펼쳐볼 기회를 주는 ‘몸짓 프로젝트’, 학생들 스스로 자신들의 무대를 만들고 예술 활동을 만들어 가는 ‘축제’, 학급별 ‘연극 및 뮤지컬 공연’, ‘문집 만들기’, ‘1박 2일 평화기행’, ‘생생감동 예술체험’ 등 얼마든지 아이들의 생명력이 꿈틀대며 살아 움직일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교육과정 안에 펼쳐 놓을 수 있다.* 다만 이러한 무대를 많이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획일적인 입시 준비를 위한 교육과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그들만의 예술을 표현해 볼 기회와 무대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이것이 학교 교육과정 안에 실질적으로 편성되어야 한다.
획일적 교육과정에서 벗어나면 가능하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학교 교육과정은 비슷하다. 국가 교육과정과 시도 교육과정을 그대로 학교에 가져와 몇몇 교사가 여러 가지 교육프로그램을 나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서로 다른 그 학교만의 독특한 문화가 있다. 교실 모양이 비슷하고 교과서가 같다고 모든 학교의 교육과정이 같을 수는 없다. 각각의 학교는 너무나 다른 환경과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간직한 다양한 마을 안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도심에 있는 학교와 농촌 마을에 있는 학교의 환경은 너무나 다르다. 그렇다면 교육과정도 달라야 한다. 그 학교만의 독특한 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것은 도심에 있는 학교와 농촌에 있는 학교의 교육프로그램이 달라야 한다는 차원을 넘어선다. 그 마을의 문화와 예술이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학교가 속해 있는 마을이 가진 소중한 역사나 문화, 그리고 인프라를 학교 교육과정에 녹여 내려면 그 학교만의 ‘주제통합 교육과정’이 만들어져야 한다.
문화예술교육을 단일(예술)과목 수업만으로 담아내기에는 어려운 문제들이 많다. 도덕 시험점수가 높은 사람이 곧 도덕적인 사람이고 말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역사 점수를 만점 맞은 사람이 반드시 역사의식이 뚜렷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것은 지식전달식 수업이나 기술 습득을 위한 수업의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문화예술교육도 마찬가지다. 융합 수업을 통해 아이들의 삶 속에서 경험하도록 해야 한다. 음악, 미술 교과만이 아니라 체육, 기술·가정, 과학, 국어, 사회, 영어, 수학 등 전 교과에 예술적 요소가 담겨있다. 이처럼 학생들이 접하는 모든 교과목 안에 들어있는 예술적 요소를 융합하면 훌륭한 문화예술 융합 수업이 된다.
교과와 장르를 넘어, 삶이 숨 쉬는 교육
덕양중학교에서는 해마다 학생들이 직접 여행지를 선택하고 숙식 및 교통편까지 모두 스스로 기획하고 실행하는 ‘1박 2일 평화기행’ 프로젝트를 운영한다. 13명 이하의 소그룹으로 전국에 흩어져 여행하는 것이다. 단순히 여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을 떠나기 전과 다녀온 후에 평화기행 관련 교과별 수업을 진행한다. 학생들이 선택한 여행지에 대하여 사회 시간에는 여행 지도를 만들고 기술·가정 시간에는 픽토그램을 제작하고 소개하는 활동을, 미술 시간에는 팸플릿표지를 제작하고 사회 시간에 제작한 지도에 캐릭터를 넣어서 여행지를 설명하는 활동을 한다. 국어 시간에는 현지 주민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소감문이나 기행문을 쓰기도 하며, 역사 시간에는 그 지역에 얽힌 역사 유적지를 탐방하고 정리한다. 이러한 수업을 통해 여행지에서 직접 보고 느낀 문화와 시각적 이미지를 다양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이 삶이 살아 숨 쉬는 문화예술교육이 아닌가? 이러한 경험과 활동을 통해 아이들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가 무엇인지 몸으로 느끼고 세상과 교류하며 의사소통하는 방법과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게 된다. 교육과정을 통합하여 운영하는 교사들의 수고로움이 있지만, 버스 한 대에 한 학급씩 타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안내하는 대로 따라다니기만 하던 기존의 수학여행에서 경험할 수 없는 살아있는 문화예술 및 인성교육이 실현되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변화하는 미래에 꼭 필요한 역량으로 ‘창의력’과 ‘협업능력’을 공통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획일적인 교육과정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무대를 만들어 주고 삶을 배울 수 있는 주제통합수업이 잘 이루어진다면 소통하고 협력하며 친구들과 함께 창의적인 생각을 모아가는 건강한 공동체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 공동체 안에서 아이들은 존재를 인정받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생명을 불어넣는 문화예술교육으로 건강하게 성장할 것이다.
* 『평화의 교육과정 섬김의 리더십』(이준원·이형빈, 살림터, 2020)
사진 _ 필자 제공
- 이준원
- 2012년 경기도 덕양중학교 공모교장으로 부임하여 8년 동안 혁신학교를 가꾸어 왔다. ‘부모/교사 내면 아이(Inner child) 돌보기’, ‘학교혁신’, ‘부모역할’ 등의 주제로 전국의 교사와 학부모를 만나고 있으며 그 경험을 바탕으로 『내면 아이』 『평화의 교육과정 섬김의 리더십』 등을 저술하였다. 이화여대 교육학과에 출강했으며 2020년 2월 정년퇴임하였고 현재는 좋은교사운동 ‘교사마음지원센터’ 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
junwon120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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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찌기 꿈꾸었던 학점제 교육과정입니다. 이준원 소장님의 혜안과 대안에 적극 공감합니다
김대유 교수님, 공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한민국 학교현장에서 건강한 성장과 생명을 불어넣는 교육이 실천 되도록 힘을 보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