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삶과 문화예술교육

2020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을 맞으며

하늘이 놀랄 만큼 맑다. 항상 눈앞을 가리고 있던 뿌연 막이 사라졌다. 코로나19 감염증의 장기화로 인해 미세먼지가 확연히 줄어든 것이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나서야 뭔가 달라졌음을 알아차리지만, 다른 생명체들은 온몸의 감각으로 훨씬 빠르게 변화를 직감한다. 공기 중의 분진뿐 아니라 땅의 울림과 소음이 감소하면서 동물들이 활동영역을 넓히고 있다. 사람들의 움직임이 제한되자 지구 생태계에 바람직한 변화의 징후들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인간의 삶이 단지 인간들끼리 만의 삶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비대면 실기교육을 영 불편해하며 등교 수업할 날만 고대하고 있던 내 타성적 태도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자동차를 운행함으로써 발생할 분진과 진동, 소음을 감수하면서까지 꼭 만나서 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자문하게 된다. 교육과 예술에 국한돼 있던 사유 범주에 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고민이 추가된 셈이다.

  • 2015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행사 ‘천천히 걷는 온천천’
변화가 일깨운 것들
매년 5월 넷째 주는 2011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한국이 제안하여 세계에 선포된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이다. 세계문화예술교육 주간의 실천은 모든 이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하려는 전 세계 문화예술계 공동의 노력이다. 더 나은 삶, 더 행복한 삶은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의 삶은 장소와 사람이 얽혀 구성되는 사건의 연속으로 채워진다. 그런 점에서 ‘나는 어디에서 살고 있고, 누구와 이웃해 살고 있는지’에 대한 구체적이고 체험적인 인식을 돕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할 수 있다. ‘삶과 함께 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비전으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5년의 실행 전략이 지역 기반, 지역 중심인 점을 보더라도 삶의 실질적 장소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인터넷기술이 전 지구화의 흐름을 이끌게 되면서 우리가 머무는 장소는 시시각각 바뀌고, 만난 적 한번 없이 친근한 이웃이 되는 경우가 빈번해지고 있다. 몸이 속한 장소에서보다 더 많은 관계와 사건들이 네트워크 접속을 통해 벌어진다. 실제 환경보다 정보기술 환경에서의 삶의 문제를 다루는 디지털 리터러시가 문화예술교육의 중요한 부분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더라도 의식주를 기반으로 하는 생명체의 삶은 몸의 위치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따라서 삶의 실질적 변화는 내 몸이 있는 곳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몸이 관계 맺는 곳(것)과 마음이 교류하는 곳(것) 사이의 분리의 가속화. 바로 여기에 세상의 변화를 눈여겨보는 문화예술교육 주체들의 딜레마가 있다.
다행히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선물한 생태계의 긍정적 신호는 이러한 고민으로부터 탈출할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것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사유를 인간끼리의 삶이 아니라 생태계 모두와 관계 맺는 삶으로 바꿔보는 것이다. 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삶은 몸이 한곳에서 한동안 지속적으로 살 때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한곳의 땅과 물, 태양과 공기가 꾸준히 가하는 자극에 사람의 몸은 적응하고 반응하며 살게 된다. 지형적 특성, 기후적 특성, 토양의 특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삶, 그리고 그런 특성 속에서 오랜 시간 쌓아온 선대들의 경험을 이어가는 삶을 토착적 삶이라고 한다. 토착이라는 말이 드러내듯 한 장소에 뿌리내리고 살 때 인간은 비로소 다른 생명체들처럼 땅과 결속되어 생태계에 속한 존재로서 살게 된다. 몸이 점유하고 있는 장소가 생명의 토대인 것을 알고 살아야 생태계의 다른 존재들을 이해하고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다. 지구상의 어떤 생명체도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체화된 인식을 바탕으로 인간 행동의 절제와 다른 종에 대한 배려를 실천하는 것이 생태계 내적 존재로서의 삶이다.
지구에 뿌리내린 한 생명으로서
생태적 삶의 관점에서 볼 때 디지털 기술은 장소성을 무력화하는 역기능과 몸의 불필요한 이동을 억제하여 한곳에 머물게 하는 순기능을 동시에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됐다. 코로나19 이후 몸의 이동을 자발적으로 제한함으로써 몸이 머무는 삶, ‘몸의 정주’를 위해 애써보면 어떨까. 디지털 유목민으로서 테크놀로지의 세상을 맘껏 떠돌되 몸이 뿌리내리고 있는 지구 생태의 지속에 방해가 되는 활동을 자제하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힘을 인간이 생태계 맨 꼭대기에서 지배하거나, 생태계와 무관하게 분절된 삶을 살아가는 데 잘못 사용해 온 점을 반성해야 할 때다.
문화예술교육은 테크놀로지의 적극적인 도입을 통해 새로운 차원의 창의와 상상을 개발해내는 데에만 주력할 것이 아니라 기술과 인간, 기술과 생태, 인간과 생태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테크놀로지는 단지 돈이 되는 것을 설계하고 개발하는 활동이 아니라 한 공동체의 생존과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마련하는 행위”(『사람의 자리, 과학의 마음에 닿다』)라고 한 카이스트 전치형 교수의 견해는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 방향을 가리키는 지침처럼 읽힌다. 공동체의 생존과 유지와 발전을 위해 마련된 테크놀로지를 제대로 활용하여 더 큰 생태계의 생존과 유지와 발전을 위해 필요한 것을 지키고 알리고 실천하는 문화예술교육.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이 지구 생태에 겸손한 창의와 상상을 펼치는 인간을 교육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길 기대하며, 사회적 거리두기의 경험이 생태적 거리두기로 일상화되기를 희망해 본다.
정원철
정원철
웹진 [아르떼365] 편집위원. 홍익대학교와 독일 카셀종합대학교에서 조형예술을 전공했다. 문화연대 시각문화분과에 소속되어 시각문화교육 대안교과서 연구에 참여한 이후 문화예술교육에 관심을 쏟는 작가로 살고 있다. 1993년부터 양평에 살고 있으며, 동네 세월초등학교 선생님들과 13년째 여러가지 방식으로 문화예술교육 대화를 이어오고 있다. 추계예술대학교 판화과에서 미술의 공공성을 강조하는 수업을 하고 있다.
wachjung@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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