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였을까? 내가 노년 세대에게 관심을 두게 된 것이. 친정아버지께서는 직장 은퇴 후 나의 출산과 동시에 ‘할아버지’가 되었고 사회가 정의하는 노년층이 되면서부터인 것 같다. 가족과 사회에 헌신하듯 살아온 아버지의 삶이 직장 밖으로 나와서는 어떤 인정을 받지 못하고 쏟아지는 여가 시간에 같이 흘러 버려지는 것처럼 보였을 때, 노년의 문화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의 부모가 자연스럽게 나이 듦을 받아들이고 건강하고 유쾌한 노년의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최근 문화예술 현장에서 노년 세대와 만나는 작업이 많아졌다. 여전히 부족하긴 하지만. 성별에 따라서, 농촌과 도시지역에 따라서, 60대‧70대‧80대 이상 등 더 세분된 연령에 따라서 다층적인 활동이 펼쳐지고 있다. 김제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광활면 용평마을로 향하는 길. 평생 붓 한번 잡아보지 않은 마을 어르신들과 그림 수업 이야기를 나누러 가는 발걸음이 매우 가볍다. 오늘은 또 어떤 인생을 마주하게 될까?
김제에서 고군분투하며 엄마 제비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를 만나기 전에, 90세 박점순 어르신을 먼저 만났다. 어르신은 지팡이 없이 보행이 어려울 만큼 허리가 절반으로 굽어버렸으면서도 이랑고랑에서 즐겁게 활동하고 있다. 어르신의 제땅말을 지면에 그대로 옮겨본다.
  • 박점순 어르신
어머님, 반갑습니다. 마을 어르신들 그림 그리시는 거, 그 이야기 나누러 왔어요. 이쪽에서 보니까 들판이 멀리까지 아주 잘 보이는데, 그림을 안 그릴 수 없는 풍경이네요. 마을회관에서 하는 그림 수업에 참여하시죠?
박점순 어르신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하라고 한 게 했지. 중간에 병원에 입원하느라고 몇 달씩 쉬기도 했어. 우리 선생님들이 딸 같고, 아들 같고, 손주 같고 이런 선생님들이 마을에 와서 얼마나 감사한가 몰라. 우리가 뭣을 알아, 아무것도 모르고 밥이나 먹고 일이나 하고 그렇게 살았지. 이제는 나이 먹어서 일도 못 하고 그러는데 고맙지. 선생님들이 고생한 덕분에 지금껏 하고 있지. 햇수로 4년째 하고 있어.
마을회관에서 다른 거 안 배우시고, 그림 수업만 하시나요?
박점순  암, 그러제. 나는 세 살에 아버지를 잃고 초등학교도 어릴 때 중퇴했어. 아무것도 할지를 몰라. 회관에서 뭐 노래도 하고 화투도 치고 그런다는데 나는 그림 그리는 것만 허지. 신앙을 가져서 그런지 화투치고 그런 것은 취미가 없고 집에 오믄 맨 뉴스 틀어놓고 그러제. 일주일에 한 번씩 그림만 그려.
댁에서는 어떻게 그림 그리시나요?
박점순  (뒷방에서 스케치북 여러 개를 꺼내 보여주시며) 어쩌다 한 번씩 그리는데, 저녁에 아들도 없고 적적할 때 그리지. 1월에 아들 내외랑 해남 땅끝마을에 다녀왔는데, 이렇게 여행 가서 찍은 사진을 직접 보고 그리기도 하고 선생님들이 주신 것 보고서 따라 그리고 그러제. 인자 다음번에 내가 뭣을 그리려고 하냐면, 저기 저 바깥에 꽃, 화분 갖다 놓고 그려볼라고 해. (이 그림은 무얼 그린 걸까요?) 아니 며칠 전에 TV 뉴스에 나오더라고. 이름이 ‘푸바우’라고 하던디? 저것이 뭣이길래 떠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울고 그런 거여? 그래서 그려봤어.
박점순 어르신은 이제 작은 화폭에 ‘푸바오’를 그려 넣으며 세상사를 담아내고 있다. 이랑고랑이 내어준 붓이 아니었다면 어쩌면 평생을 몰랐을 할머니의 경험치라 생각하니 마음이 절절했다. 최근 전주에서 할머니 역할을 맡아 배우로 활약하셨다. 인터뷰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어르신, 목소리가 까랑까랑하고 크고 좋으니 다음에 또 선생님들이 무언가 하자고 하면 절대 마다하지 마셔요. 또 가서 하고 오세요.”라고 신신당부했다.
2년 전 이맘때 접했던 농촌사회학자 정은정의 <콩과들깨>(광주폴리×로컬식경 강의, 2022)강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들의 허리를 베어먹고 살았네.”라는 문장과 함께 강의 화면 속에는 허리가 90도로 꺾인 채 밭일을 하는 할머니 사진이 띄워졌었다. 우리네 할머니들이 밭일하실 때 지금껏 호미에만 의존해 오고 있단다. 남성들이 주로 맡아 하는 벼농사는 기계농으로 거의 대체되었지만 밭농사는 여전히 기계화율이 낮고 그마저도 대부분 여성의 몫인지라 몸이 성할 날이 없는 것이다. 오늘도 우리는 할머니들의 허리를 베어 먹고 있다. 평생을, 자신을 내려놓은 채 밭을 일구고 가족과 주변을 돌보는 일이 전부였던 삶. 그 틈바구니에 할머니들의 여가나 취향이 어떻게 비집고 들어갈 수 있었을까?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를 만나 더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먼저 박점순 어르신을 만나러 마을에 다녀왔다. 이랑고랑 선생님들이 마을에 오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다는 이야기를 연거푸 하시더라. 김제에 발을 딛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황유진 대표  예전부터 예술이 사회 어떤 분야에서 필요로 하는지 찾으려는 내면의 욕구가 있었다. 인근 도시인 전주에는 많은 기획자와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지만, 그 외 지역은 상대적으로 문화 격차가 크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김제를 시골로 생각했지만, 아파트가 들어서기도 하고, 인근에 초중고가 밀집되어 있어 문화예술교육 활동을 하기에 어렵지는 않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도리어 이제는 도시와 크게 다를 바 없이 보이기도 한다. 2020년에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을 하려고 용평마을에 방문했을 때 코로나19와 시기가 겹쳐 진행이 더뎠다. 그 이후 ‘마을가꾸기’ 사업을 도와달라는 이장님의 연락에 다시 마을과 만날 수 있었다. 마을 벽화 그리기를 원하셨는데, 예술가들이 아닌 주민이 중심이 되어 작업한다는 조건으로 함께 하게 되었다. 대다수가 70~80대 어르신이어서 작업이 잘 진행될지 걱정했는데 그들의 ‘일머리’는 달랐다. 하루 정도 계획했던 작업량을 두 시간 만에 끝내시더라. 어르신들이 가진 세월의 힘을 고스란히 느꼈고 앞으로도 배울 것이 많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게 마을회관으로 찾아가 매주 그림 수업을 시작했고 첫해에는 스무 명 가까운 어르신들을 만날 수 있었다.
  • 마을회관 그림수업
마을 어르신들과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 것 같다. 어르신들에게 그림 수업이 익숙지 않았을 듯한데 반응은 어땠나?
황유진  어르신들 대부분이 평생 붓 한번 들지 않았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루는 어르신들께 일상에서 늘 마주하는 사물을 표현해 보게 했다. 사물의 특징만 잡아서 그리시기 때문에 디자인적인 요소를 발견할 수 있었고 이때 어르신들의 예술적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첫해에 어르신들의 글과 그림으로 동화책 만들기를 기획했는데, 글을 읽고 쓰는 것이 어렵거나 혹은 글을 모른다는 것이 알려지기 꺼리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음을 알았다. 일반적으로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하는 결과물만을 생각한 것이다. 이때 기획을 완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즉 ‘기획을 위한 기획’은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어르신들과 함께하기 어려웠을 것 같다. 2년 차에도 글을 쓰는 부분에서 어려움이 이어졌고, 의도하지 않았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몇몇 어르신들께 칭찬을 더 건네게 되면서 그때부터 수업을 꺼리는 일명 ‘반대파’ 어르신들이 조금 생기기도 했다. 그것을 풀기 위해 연극인들을 포섭하게 되었다.
연극 수업으로는 어르신들의 어떤 부분을 끌어내고자 했나?
황유진  연극은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를 마주하는 작업이었다. 어르신들께 종종 옛날이야기들을 듣다 보니 TV도 없고 가설극장도 가기 어려운 사람들이 직접 이야기를 만들고 역할을 나누어 마을 안에서 연극을 했다는 것을 알았다. 미군 부대가 보내준 물건 중에 사이즈가 맞지도 않는 ‘또각 구두’를 신고 군산까지 놀러 가려다 뒤꿈치 까지도록 걷기만 하고 돌아온 이야기부터 시작해 재미난 이야기들이 꽤 있었다. 어르신들의 삶을 대화와 연기로 담아내고 싶었다. 물론 자신에게 흠이 잡힐 것 같은 이야기는 꺼리기도 하고, 이야기 구성이 잘 안될 때도 있었지만 내밀한 이야기를 꺼낼 수 있는 여러 장치를 동원해 극본을 완성할 수 있었다. 막상 대본을 받아 들고서는 도리어 대사가 적다며 탓하기도 하셨다. 그래서 노년 세대와 문화예술교육을 할 때 현장을 더 세밀하게 읽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겉으로는 힘들거나 어려운 내색을 하시지만, 내면에는 굉장한 의지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마치 어르신들이 매일 입버릇처럼 ‘내일 죽어야지’, ‘나는 이제 다 살았어.’ 말씀하시면서도 겨울철 빙판길은 절대 나가지 않으려는 것처럼 말이다.
  • 연극수업〈광활한 사랑〉
    (2023년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꿈다락 문화예술학교)
노년 세대와 만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황유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기획을 위한 기획, 기획을 위한 운영을 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한다. 기획 초반에 거창한 성과나 목표를 잡기보다 다양한 예술 장르를 통해서 어르신들이 ‘잘 놀다 갈 수 있게 하는 것’, 그것만 마련해 두면 되는 것 같다. 예전에는 기획의 성과가 대상자를 통해서 나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어르신들은 그냥 즐기면 되고 그 과정과 결과물을 다른 차원에서 성과로 풀어내는, 그것을 엮고 확장하는 것이 저의 또 다른 역할인 것 같다. 아! 그리고 어르신들과 작업할 때는 자녀분들께도 활동 과정과 결과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더라. 자녀분들과 통화하는 과정에 인정욕구가 채워지는 걸 여러 번 봤다.
노년을 일방적으로 돌봐야 하는 대상이 아닌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하고 내재된 욕구를 잘 읽어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용평마을을 찾아갈 것이라고 하셨는데, 노년 세대를 계속 만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
황유진  내가 나이 들었을 때 화투를 치는 것이 유일한 여가나 문화가 되지 않는 것을 희망한다고나 할까. 젊은 세대가 나이 듦을 싫어하는 이유 중 하나가 현재 노년의 모습에서 관찰할 수 있는 것들 때문일 수 있다. 나이 듦은 자연스러운 것, 또 다른 멋있음을 발견하는 것인데 말이다. 이런 작은 활동을 통해 앞으로도 계속해서 노년 문화를 만들어가려고 한다.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면 좋겠다.
  • 이랑고랑 아트굿즈
용평마을 어르신들의 작업물을 상품 디자인으로 연결하는 일도 하고 있다. 학습지 회사 월간지 표지 작업, 의류회사 팝업스토어 협업 등을 추진 중이라고 들었다. 앞서 말씀하신 대표님의 또 다른 역할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하다.
황유진  장난처럼 10년을 하면 좋겠다고 이야기했었는데 벌써 올해 5년 차가 되었다. 어르신들을 만나는 작업이 재밌어서 마을로 향했는데, 어르신들이 반대 입장을 보일 때 솔직히 인제 그만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런데 답이 안 나올 것 같았던 어려운 갈등을 풀게 되면서, 그것이 기획을 뒷받침해 주는 드라마가 되는 것 같다. 처음에 예술이 사회에 필요한 부분에 대해 고민했다면, 사회가 우리를 필요로 할 때 잠깐 쓰다 버리는 상황을 막으려면 한 곳에서 지속해서 성과를 발전시켜서 좋은 사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다. 당분간은 용평마을로 계속 향할 생각이다.
일을 벌이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며, 할머니들의 그림으로 여러 기업과 협업하는 프로젝트 이야기를 할 때 그의 얼굴에 한층 더 생기가 도는 것을 엿봤다. 지금껏 그 내면의 에너지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나왔을 것이다. 용평마을 어르신들을 계속 만날 생각이라는 황유진 대표의 심지 있는 계획을 듣고 노년의 삶, 특히 농촌의 노년 문화를 위해 이처럼 좁고 깊게 우물 파기를 시도하는 예술가, 기획자들이 이어지길 소망했다. 논밭 사이로 부는 바람이 정말 좋았던 김제의 봄날, 용평마을 할머니들의 그림이 콕 박힌 커피믹스 한 잔 마시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황유진
황유진

설치미술가이자 유한회사 이랑고랑의 대표. 김제시 광활면 용평마을이라는 삶의 장소 안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예술공동체로서의 미술을 5년차 실천하고 있다. 문화향유에도 양성단계가 필요함을 깨닫고 그림, 연극과 같은 장르로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있으며 마을 어르신들의 삶이 작품과 창작과정에 드러나도록 이끌어가고 있다. 대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는〈오늘은 그림 안그릴려고〉(2021)〈우리가 아주 멋진분들을 만났어〉(2023)가 있다.
인스타그램 @irang.gorang
유투브 @iranggorang
박점순
박점순

1935년생으로 2021년 사촌동생 박안나의 권유로 미술수업에 참여하였다. 초등학교 때 수학을 잘해서 월반한 것이 두고두고 자랑할 일이였는데 이제는 여든 다섯을 넘겨 시작한 예술활동이 새로운 자랑거리가 되었다. 〈성모상〉〈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하여〉라는 종교화로 그림을 개시하였고 마을에서 진행한 연극수업에서는 그 연기력을 인정받아 ‘제17회 전북청소년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영화 〈보트리티스 Botrytis〉에 건물주 할머니역으로 참여하셨다.
박우주
박우주
익산문화재단, 광주 대인예술시장 별장프로젝트 사업단을 거쳐 북구문화의집에 오래 몸담았다. 2024년 봄, 새로운 인생을 꿈꾸는 문화기획자가 되었다.
space0901@hanmail.net
www.facebook.com/wooju.park.3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이랑고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