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교육과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계기를 들려달라.
2004년 복권기금 사업으로 전국 문화예술 단체의 교육 프로그램을 모집해서 서울 이외 지역 문화예술회관에 보급하는 사업 담당자로 문화예술교육에 입문했다. 교육공학 전공자이면서, 대안 교육의 학교 밖 아이들과 보낸 시간, 예술경영 아카데미를 수료한 경험 때문에 그 사업을 맡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때가 복권기금 사업 첫해였고, 문화예술교육이라는 걸 전국에 보급하는 첫해이기도 했다. 지원사업 양식부터 예산 기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문화예술교육으로 봐야 하는지, 문예회관에서 왜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하는지 등 모든 것을 여러 이해관계자와 논의하고, 설득하고, 설득당하며 만들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모든 이해관계자가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열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모두가 좌충우돌하며, 상처받고, 위로받고, 울고, 웃고, 서로 팽팽하게 맞서다가 느슨하게 풀어지기를 반복하며 피, 땀, 눈물, 온기로 얼룩진 애증을 나눴다.
초창기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산증인이다. (웃음) 지금은 어떤 활동을 이어가고 있나.
2007년 이후 성남 사랑방문화클럽 연구, 지역재단 문화예술 기초 연구 등을 하다가 2012년부터 안양문화예술재단에서 예술인 지원, 문화예술교육과 문화다양성 사업 기획, 예술인 조사 및 네트워크 구성, 담론화 작업 등 주로 정책사업에 관여했고, 경영평가를 담당하기도 했다. 다시 프리랜서가 된 지는 3년 차에 접어든다. 지금은 (유)별일사무소 위촉연구원이자, 프리랜서 기획자로 문화기획자 양성 과정 기획이나 멘토, 예술로 멘토, 기관 사업 평가, 사업 발전 계획 연구, 문화다양성 관련 기획 등을 하고 있다.
다양한 정책과 현장을 경험하면서 자연스럽게 관심의 방향도 넓어졌을 것 같다. 그 과정에서 특별히 오래 붙들고 있는 주제나 가치가 있다면 무엇인가.
2014년에 ‘노년문화 담론화와 세대문화 교류’를 주제로 문화다양성 사업을 시작하면서 ‘문화다양성’과 ‘나이 듦’이 내 인생에 아주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특히, ‘문화다양성’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가치가 되었고, 문화예술교육 기획에도 영향을 미쳤다. 몇 년간 예술가 창작을 기반으로 공연‧전시와 참여자 체험‧학습이 연결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때로 프로듀싱에 참여했다. 매해 새로운 레퍼토리와 매체를 개발하는 예술가와의 협업은 “늘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존중, 내 일의 가치를 일깨워주었다.
다양한 시각과 입장을 아우르는 위치에서 활동해 왔는데, 그러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살피는 것은 무엇인가. 어떤 보람이나 재미를 느끼는지도 궁금하다.
광역 재단에서 대체인력으로도 짧게 일해봤고, 기초 재단에 오래 있으면서 여러 입장에 서보고, 다양한 예술가와 기획자, 시민, 행정가와 함께한 것이 내 안에 모두 뒤섞여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 새로 하게 되는 일에 맞는 감각을 조합해내는데, ‘이것이 시대 감각과 맞을까? 현장과 괴리는 없나?’ 점검하고 꺼내 보지만, 역시 여전히 정답은 없고, 늘 어렵다. 종종 자문해 본다. ‘왜 계속 이 일을 하는 거야? 지치고, 지겹고, 힘든데.’ 그런데 마음에 남는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다. 나는 좋은 예술가, 기획자가 정기적이고 지속적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매해 새로운 시도, 창작,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에 큰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기획자 뒤의 기획자’라고 생각해왔다. 물론 문화재단이라는 매개 기관의 기획자였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밖에서도 그 역할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며 길을 찾고 있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의 에너지도 힘이 되지만, 함께 하는 예술가들이 새로운 걸 만들고 나누는 즐거움으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볼 때 가장 힘이 나고, 내 일의 ‘사명’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프리랜서가 되고 난 이후에는 기획자 양성 과정의 멘토 역할을 하거나, 예술과 기업 협업 과정의 멘토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청년 기획자,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기업의 열정을 만나는 것도 큰 자극과 보람을 준다. 그들 사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다는 것이 좋다.
[출처] 유튜브 ‘안양문화예술재단’
반짝이는 순간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겠지만, 그만큼 흔들리고 멈추고 싶었던 순간도 있었을 것 같다. 그 시간을 어떻게 건너왔나.
20년을 요요처럼 마음속으로 수백 번 그만뒀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다 보니, 애초에 나란 사람이 문화예술 기획과 공공 가치를 지향한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마음을 내려놓고 ‘내가 좋아하는 것, 마음과 애정이 가는 것’에만 집중해서 살자고 생각했다. 어쨌든 무수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눈물을 닦고 보면, 첫 마음이었던 “예술의 힘”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예술가, 기획자, 시민이 세잎클로버처럼 지천에 있었다. 어쩌면 강렬했던 시련은 네잎클로버처럼 인생에 의미를 되살려 주려는 것일지도 모른다며 내 가까이 있는 든든한 지지자와 동료들만 보고 가기로 했다. 함께 기뻐하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들에게 집중하려고 애썼고, 앞으로도 그렇게 파고를 넘어가려 한다.
정답이 없는 만큼, 혼자 답을 찾기 어려울 때도 많을 것 같다. 그럴 때는 누구와 어떤 방식으로 질문과 고민을 나누나.
함께하는 예술가·기획자와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토론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리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기획자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관련 레퍼런스를 찾아보기도 하고, 직접적인 관련은 없어도 뭔가 나의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는 것 같은 사회학이나 인문학 책을 참고하기도 한다. 하지만 역시 같이하는 예술가·기획자와 논의하고 토론하는 비중이 가장 크다. 현장에서 발생하는, 언어로는 표현되지 않는 분위기와 상호작용을 바탕으로 미세조정이 필요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겪어내는 사람들과 질문을 공유하고, 거기서 협업의 답을 찾아 나가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지금 맞서고 있는 키워드로 ‘변화, 성찰, 쓸모없음’을 꼽았다. 그중 ‘변화’를 가장 먼저 꼽았는데, 20여 년 동안 현장을 지켜보며 가장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것은 무엇인가.
20년이 지나고 보니 ‘그때는 맞았는데, 지금은 틀린’ 것들이 있더라. 20여 년 전은 문화예술정책과 실행이 샘물처럼 솟아나던 시절이었다. 당시 많은 문화예술 기관이 생겨났다. 부처 간 협업도 활발해서 사업의 확장성도 컸고, 실험적인 것을 많이 해 볼 수 있는 풍요로운 시기였다. ‘처음’도 많았다. 문화예술교육도 법이 만들어지고 사회와 학교로 확산할 때 다양한 사람들이 토론하는 자리가 공식·비공식적으로 계속 있었다. 지금은 많은 것이 달라졌다. ‘예산의 효율성을 높인다’는 맥락에서 다시 부처별 사업들이 서로의 정책 대상과 범위를 침범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조정되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이 왜,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언제, 어디서, 누가 (같이) 주체가 되어 이루어져야 하는지’ 통합적으로 생각할 틈이 없이 현장에 ‘사업’으로 몰아쳤다. 문화예술정책 전반에서 현장과 이론, 정책이 만날 기회나 각자의 문제의식을 나눌 공론장 혹은 담론장이 점점 줄어든다는 아쉬움과 문제의식이 있다.
그러는 사이 실무자 세대가 바뀌었다. 그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은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매우 밀착되어 구체적이지만, 때때로 사업과 연결된 정책 논의의 흐름을 다 파악할 수는 없는 현실에 둘러싸여 있다. 반면 중간관리자 이상이 된 세대는 사회·기술적 변화로 인한 세대·이주·성별·지역 등 참여자의 변화를 구체적으로 ‘느끼기’ 어려운 상태에서 기존 관련 정책 논의의 흐름 안에서 현재를 파악하고, 대안을 제시해야 하므로 어쩔 수 없는 간극이 발생한다.
변화를 통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을 다시 돌아보게 된 것 같다. 지금 가장 먼저 다시 질문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초창기 예술교육가는 이상적인 예술가와 교육가의 장점을 합쳐서 새로운 ‘인물상’을 상정하며 접근해왔다고 생각되는데 지금 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예술가, 예술교육자, 기획자는 어떤 사람이기를 원하는지.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했던 건 ‘교육’이 아닌 ‘학습’이었는데, 우리가 ‘교육’이라는 언어에 갇혀 있었던 건 아닌지. 지원사업의 틀에서 예술가의 활동을 ‘교육’ 활동으로 설득하도록 제공되었던 교안, 커리큘럼이라는 틀에 대해서도 재점검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가의 역할이 ‘강사’가 아니라 ‘퍼실리테이터’ 내지는 ‘멘토’ 차원이라면 그들의 인건비도 다른 측면에서 검토해봐야 한다.
문화와 예술은 어떻게 구분되고, 결합하고, 가로지르며 이 사회의 구성원, 시민, 인간에게 어떤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다시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개별화되고 방어적인 개개인이 모여 사는 지금, 고립과 외로움으로 또 다른 낙인이 발생하고, 수많은 혐오와 증오가 넘쳐나는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내가 나여도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데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 사회의 많은 층위의 다양한 목소리로 지금의 변화를 파악하고 나누는 자리가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을 재미있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10점 만점에 7점이라고 했다. 3점이 빠진 이유는 무엇이며, 그 점수를 채우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점수를 꽤 높게 줬다고 생각한다. 독자 설문조사 평균값보다는 낮지만. 나머지 3점은 앞의 고민이 밀어낸 ‘재미’의 반감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의 힘’에 대한 신뢰와 그 힘을 믿고 뚝심 있게 나아가는 ‘사람’이 7점의 전부다. 어떤 환경과 구조 속에서도 새로운 시도를 고민하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있어서 계속 애정의 군불을 지피며 해나갈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만나서 토로하고, 위로하고, 활로를 찾는 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현장의 구체적인 이야기부터 인간, 문화, 예술, 사회, 정책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나눌 수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20년 동안 정착해온 현장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여기는 어디인지에 대해 진득하게 이야기하는 많은 자리 말이다.
설문조사 결과에는 현장의 여러 목소리가 담겼다. 그 가운데 자신의 고민과 맞닿아 있거나, 새롭게 보게 된 부분이 있다면?
경력이 10년 이상은 되어야 가치 증명을 내려놓고, 관계에 집중하며 ‘살아남기’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충분히 납득되면서도 한편으로는 7년으로, 5년으로 낮출 수는 없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성과에 대한 압박과 AI, 도파민 그득한 환경에서 어떻게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갈지 고민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를 포함해 답변한 모두에게 애잔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답변 하나하나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큰 고민으로 다가왔다. 제도와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전반적인 포지셔닝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맥락으로 읽었다.
현장에서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뭔가 직접 시도했던 경험이 있나?
재단에서 일할 당시 중학교 자유학기제 정규수업에 예술가와 교사 협업 교육이 들어갈 수 있도록 연구와 워크숍을 진행했다. 교육청, 학교, 기획자와 제도·예산을 만들기 위해서 2년을 투자했다. 실현은 혁신교육지구 사업으로 이루어졌다. 초반 2~3년의 운영을 거쳐, 연간 8천만 원의 예산으로 예술가 창작 작품과 워크숍이 관내 초등학교의 ‘창의적 체험 수업’ 3차시로 들어가 안착했다. 이 사업은 내가 재단을 나온 지금까지도 11년째 중단 없이 진행 중이다. 난관도 많고, 재단에서 계속할 사업이 맞느냐는 반대 의견도 있었지만, 여전히 안양의 여덟 살 아이들이 익숙한 교실을 낯설게 하는 예술가 그룹을 온몸으로 만나고 있다.
한 사업이 1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그러한 경험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성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이 사업만이 아니라, 내가 기획한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매해 새로운 작품을 창·제작했다. 고정된 사업의 틀이나, 코로나 같은 전대미문의 환경, 행정의 어려움이 있어도 예술가들은 새로운 시도를 원했고, 기획자로서 나도 그랬다. 공공 영역에서 예술가들이 새로운 레퍼토리를 안정적으로 만들고, 참여자는 매번 새로운 작품을 접하며 반복적인 참여가 이루어지기를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 변화에 민감해야 했다. 그 변화는 어디서 출발하고,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근원에는 무엇이 있는지 예술가들과 계속 탐구해야 했다. 무엇보다 서로를 신뢰하는 소통, 반복되는 지지와 응원의 행동을 주고받는 가운데 ‘동료’가 되었다. 지금 함께하는 사람과 새로운 시도·실험 과정에 필요한 친절과 배려는 때로 처절한 토론과 갑론을박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안전한 관계’를 만드는 노력을 지치지 않고 해나가야 한다.

jooheejoohee.k@gmail.com
- 사진 제공_강주희 문화예술기획자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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