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한 성과보다 사람을, 현학적 수사보다 삶을

맞서는 인터뷰① 탈락하고 있는 현장의 말·가성비로 호출되는 예술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나’라는 독자 설문에 참여한 여섯 명과의 서면 인터뷰를 통해, 짧은 키워드에 다 담지 못한 각자의 경험과 고민을 더 깊숙이 들여다보았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오늘의 문화예술교육이 마주한 현실과 흔들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를 살펴본다.
Q.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문화예술교육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와 현재 하는 활동도 함께 소개해 달라.

A.

2009년 무렵 사진 작업을 하기 위해 읍면 단위의 지방 중소 도시를 촬영하던 중, 우연히 2010년 학교 예술강사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해 시골 분교 아이들을 만나게 된 것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들어오게 된 계기였다. 아이들과 같이 호흡하면서, 내가 해온 사진 작업을 미술관에 옮겨놓는 행위보다 현장에서 사람들과 관계 맺고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일이 더 의미 있는 예술 행위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쭉 현장에 남아 있다.
어쩌다 보니 탈북청년, 장애인, 노인, 시골 분교 아이들, 학교 밖 청소년 등 문화 다양성이 공존하는 참여자 위주 예술교육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다. 전공이 사진학과 예술학이다 보니, 주로 사진 매체에 글, 책, 영상, 소리 등을 더해 예술교육을 하고 있고, 삼천포예술학교를 운영하면서 참여예술교육 리서치와 지역 기반 기획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Q.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일이 어느덧 17년째 이어지고 있다. 그것을 가능하게 만든 사건이나 이유가 있다면 들려달라.

A.

현장에서 만나는 사람들과 현장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의식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한다. 참여자를 자기 작업의 재료처럼 여긴다든가, 현장의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려 없이 대학식 창작 수업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지역민의 삶에 도움이 안 되는, 이른바 참여자와 예술 사이 시차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예술교육을 하는 분들을 보면 내가 이 일을 계속하고 있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한다.

  • (소망재활원)
  • 노인복지관 참여자 작품 〈Ai에 담은 행복한 순간〉(유연호)
Q.

그런 문제의식을 마주할 때, 생각을 정리하거나 답을 찾는 과정은 어떻게 이어지나.

A.

예술교육자들은 잘 안 만나는 편이고, 간간이 교육에 참여했던 참여자들과 연락하며 소통하곤 한다. 그 외엔 AI와 묻고 대답하며 내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AI가 내놓는 괴상하거나 턱도 없는 이야기 혹은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 환각)이 굉장한 도움이 된다. 현학적인 수사를 늘어놓는 멀쩡한 사람보다 내 생각의 지평을 확장하는데 이 방식이 훨씬 나한테는 맞는 거 같다.

Q.

지금 맞서고 있는 키워드로 ‘탈락하고 있는 현장의 말’ ‘가성비로 호출되는 예술’ ‘낮은 의자와 높은 시선’을 꼽았다. 어떤 맥락에서 이러한 키워드를 꼽았는지 이유와 경험을 들려달라.

A.

내가 맞서고 있는 건 좋은 의미를 짜내느라 삶보다 미학이 앞서버린 순간들이다. 예술교육 현장에서 참여자의 실제 경험보다 발표 자료나 보고서의 한 문장, 결과공유회의 모양새가 더 중요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 예술교육은 삶에 달라붙어 있는 실천이 아니라, 삶을 보기 좋게 포장하는 포장지가 된다. 최근 현장에서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럴듯한 개념과 현학적인 말, 유미적 표현들이 쉽게 쓰이는 듯하다. 사람보다 말이, 현장보다 개념이, 삶보다 미학이 앞서는 상황 같아 보인다. 나는 이런 방식의 예술교육을 경계하는 편이다.
한편, 요즘 어디에나 문화예술교육이 붙는다. 일단 뭔가 있어 보이나 보다. 환경, 지역, 복지, 도시재생, 공동체, 인문, 기술 융합, 세대 통합 같은 영역에서 자주 불리는 것 같다. 물론 예술이 여러 영역과 만나는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현장에서 보면 예술교육이 정말 필요해서인지, 아니면 적은 돈으로 여러 효과를 낼 수 있어서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전시, 공연, 작품집, 결과 발표회, 사진기록은 남기기에 탁월하지만, 그 과정에서 떠나간 것이 참여자의 얼굴과 현장의 필요가 아닌지 반문해 본다. 예술교육이 어느 순간 만능 양념 조미료처럼 쓰이는 건 아닌지 이제 의심이 필요하다.
이 틀에서 예술교육가는 적은 예산으로 기획, 모집, 교육, 기록, 결과공유, 행정, 정산까지 도맡고 공모와 심사에서는 완성도, 성과, 파급효과, 지속 가능성까지 요구받는 상황에 내몰린다. 결과적으론 현장의 필요보다 공모 요강의 말에 맞춰 나를 다시 포장하고, 좋은 일을 하고 있다며 그걸 또 해낸다. 그래서 묻게 된다. 지금 예술교육은 필요한 곳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싸게 쓰기 좋고, 보기 좋은 사업이라 계속 불려 나오는 것인가.

Q.

여러 고민 속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의 ‘재미’는 10점이라고 답했다. 무엇이 지금도 이 일을 즐겁게 만드는가.

A.

이제는 내 나름대로 즐겁게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예전에는 사진 작업과 전시가 중심 활동이어서 항상 작품 활동에 대한 압박감이 따라다녔다, 어느 순간 예술교육도 하나의 예술적 실천이며 예술 작품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부터는 마음이 편해졌다. 흰 벽에 작품이 걸린 풍경도 좋지만, 현장에서 사람들 목소리와 장면이 걸린 풍경도 꽤 재미있다.
그 점수, 재미를 만든 건 ‘내려놓음’인 것 같다. 사실 내 상황은 현생을 묵묵히 잘 살아가는 내 또래 직장인들이나 예술 하지 않는 일반인과 비교해 보면 명징해지는데, 일단 내가 형편없어 보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러고 나서부터는 별 대단한 예술을 하지 않고도 사람들이랑 유연하게 섞여 재미를 찾게 되더라.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내가 할 수 있는 매체, 그리고 내가 감당해 낼 수 있는 현장 안에서 내 방식의 예술교육을 하게 되었다. 최근에 어떤 계기로 이 세상 모든 게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변화하는 상태와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지금 내가 어디론가 가는, 끝나지 않은 어느 경로쯤 있다고 생각하니 현 상황을 즐기게 되고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것도 많아졌다. 부족한 지금 이대로가 좋다.

  • 탈북청년 작품
Q.

설문조사 결과가 담긴 기사를 봤나. 그 속에서 자신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거나 새롭게 다가온 부분이 있다면 들려달라.

A.

그 기사에 실린 글들을 읽으면서 반가웠다. 한 문장 한 문장 현장에서 버틴 사람만 쓸 수 있는 고민이 있었다. 건방진 말일 수 있겠지만, 적어도 이런 분들이 아직 문화예술교육 현장에 있다면, 이 판에는 희망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다만, AI와 도파민에 관한 대목에서 내 생각과 달라 고민을 좀 했다. 대체로 나는 참여자를 너무 빨리 판단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아이들의 피드백과 결과물이 내 선입견을 부술 때가 많아서 좀 유심히 두고 보는 편이다. 내 수업은 내가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 참여자가 계속 흔들어 주고 수정하게 만들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아이들이 지루해하면 아이들에게 내 수업을 견디라고 할 일이 아니라 내가 수업 방식을 바꿔야 한다. AI도 마찬가지다. “AI가 더 잘 그리는데 제가 왜 그려야 해요?”라는 질문은 분명 당혹스럽다. 하지만 그 질문을 게으름이나 손의 감각 상실로만 볼 수 없다. 나는 오히려 그 안에 지금 세대가 이미 살고 있는 감각의 환경과 조건이 반영되었다고 본다. 쭈뼛쭈뼛 자기 생각을 꺼내지 못하던 아이도 AI에 먼저 한 줄을 던져서 나온 이미지를 보고 “이건 아닌데요”라며 다시 고친다. 지운다. 다른 말을 넣는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어떤 아이에게 그 한 줄은 자기 안의 이미지를 밖으로 꺼내는 첫 번째 문장일 수 있다. 장애인 예술교육에서 AI로 예술의 기술적 허들을 해결하는 사례도 많다. AI에 질문하고, 나온 결과를 보고,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을 버리고, 다시 요청하는 과정은 단순한 버튼 누르기가 아니다. 그 안에는 자기 생각을 다듬고, 고르고, 의심하고, 조정하는 일이 다 들어 있다. 어쩌면 그것은 새로운 방식의 대화적 수행에 가깝다. 왜 이 이미지는 마음에 들고, 왜 저 이미지는 낯선지 말하게 하는 순간부터 교육은 시작될 수 있다. 숏폼, SNS, 알고리즘, 빠른 피드백 등 도파민적 감각도 지금 세대의 결함이라기보다는 이 세계에 참여한 참여자들이 살아가는 감각 환경에 가깝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은 그것을 밀어내기보다 수업 안에서 어떻게 다룰지 고민해야 한다.
AI와 숏폼 환경으로 너무 많은 이미지와 정보 속에서 스스로 쓸 만한 것들을 고르고 버리고 다시 물으면서 자기만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가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문화예술교육은 원래 그런 일을 해왔다. 각자의 삶 속 익숙한 재료를 다르게 보게 만들고, 자기 안에 있던 생각을 밖으로 꺼내게 만들며, 그 생각들이 각자의 삶을 개선할 수 있게 생각 조각을 덧붙여 나가는 일 말이다.

Q.

그런 고민이 결국 작가님의 활동 방식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 같다. 지금의 작업과 삶에서 가장 중요하게 붙들고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A.

수년 전부터 ‘삼천포예술학교’라는 단체를 만들고, 여러 지역을 오가며 예술교육 활동을 기획하고 실행해 왔다. 한때는 고향 전통시장 안에서 작은 갤러리를 운영하기도 했다. 지금 그 공간은 사라졌지만, 그때의 경험으로 지역에서 예술이 거창할 필요도 없고 생활과 멀어지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나는 애초에 이 일이 돈이 잘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머리로 아는 것과 삶으로 인정하는 것은 달랐다. 한동안은 어떻게든 돈이 되는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고, 그래야만 내가 하는 일이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억지로 돈이 되는 모양을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오히려 마음이 불편해졌다. 사업의 말과 보기 좋은 언어가 앞에 놓이면서 정작 내가 왜 이 일을 시작했는지 생각하기 일쑤였다.
2010년 이후, 10여 년쯤 지났을 때(대략 코로나 시기였던 것 같다) 조금씩 인정하게 되었다. 이 일은 적어도 내게는 당장 돈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돈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이 아니라, 돈이 되는 모양을 억지로 흉내 내지 않아도 된다는 쪽에 가까웠다. 나는 대단한 예술가도 아니고, 특별한 사명감이 있는 사람도 아니며, 말이 앞서거나 그럴듯한 문장으로 삶을 포장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다. 그냥 나도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의 모양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2020년 이후부터 그냥저냥 여기저기 커뮤니티에 맞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되고 있다.

  • (충남 안흥초등학교 신진도분교 학생들)
Q.

‘커뮤니티에 맞는 이 사람 저 사람’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다. 요즘 그 생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 달라.

A.

요즘은 내 고향 삼천포를 배경으로 영화 시나리오를 쓰고, 틈틈이 독립영화를 촬영하고 있다. 삼천포에 살며 조선소에서 용접하는 내 친구와 외국인 노동자들이 주인공이다. 고향을 떠나 살고 있지만, 내가 지역에 어떤 방식으로 다시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다가 시작한 일이다. 내 돈으로 하다 보니 예산이 넉넉한 것도 아니고, 정해진 제작 시스템이 있는 것도 아니다. 고향에 갈 때마다 조금씩 찍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이어간다. 그래서 아주아주 오래 걸리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과정이 좋다. 친구도 좋아하고, 친구의 아들도 좋아하고, 외국인도 좋아하고, 부모님도 좋아하고, 나도 좋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성과라기보다, 서로의 삶이 잠깐씩 화면 안에 들어오는 시간이 괜찮은 모습이라서 그런 것 같다. 거기 안에는 소리도 있고, 땀도 있고, 냄새도 있다. 거창한 지역문화 프로젝트나 예술적 성취라고 말하기보다는, 내가 아는 사람과 내가 아는 장소를 함께 다시 그리는 일에 가까워서 기분이 좋다.
요즘은 그런 방식이 더 편하다. 내가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숨기지 않고, 그 삶의 자리에서 프로그램을 짜보는 것. 내 주변에 있는 사람, 내가 아는 동네, 내가 겪은 감정,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시간과 돈을 기준으로 작게 시작하는 것. 그러다 보면 억지로 멋진 말을 만들지 않아도, 그 안에서 자연스럽게 예술교육의 장면이 생긴다.

Q.

지금 이야기한 것처럼 거창한 프로젝트나 예술적 성취보다 삶의 자리에서 시작하는 변화가 더 중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먼저 해볼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거창한 제도 이전에, 먼저 내가 하는 일이 내 삶을 조금은 덜 괴롭게, 조금은 더 행복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행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사람의 삶을 바꾸겠다고 말하는 것은 어쩐지 이상하다. 내가 무리하지 않는 방식으로 즐겁고, 곁에 있는 사람도 함께 웃고, 그 과정에서 관계가 조금 달라진다면 그것도 문화예술교육이 시작되는 하나의 방식이자 시도라고 본다.
예술을 작품이라는 미명하에 너무 특별한 형식으로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는 미술관이나 공연장에서 하는 예술보다, 각자 삶 속에서 일어나는 하찮아 보이는 작은 변화와 관계를 더 중요하게 볼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에 예술을 자꾸만 있어 보이게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생각을 나무라기보다 함께 다른 방향을 이야기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술은 대단한 결과물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을 개선해 나가려는 생각을 촉진하는 그 자체라고 말이다. 그 안에 즐거움, 행복, 예술교육의 실천이 있을 거라 믿는다.

박호상
박호상

2010년 이후 현재까지도 현장에서 예술교육을 하고 있다. 지역사회와 커뮤니티의 현안을 발견하고 문제해결 관점의 예술교육을 지향한다. 주로 참여자가 주체가 되는 책, 미술, 디자인, 영상, 음악을 연결한 사진 매체 중심의 참여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실행한다.
bodenlos@hanmail.net

사진 제공_박호상 작가·예술교육가·삼천포예술학교 대표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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