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궤변은 폭포처럼 쏟아지며 이 세계를 한도 끝도 없이 교란하고, 당신의 노래는 이 어둠과 혼돈 속에서 한 가닥 질서를 부여한다. 불안함을 견디는 유일한 전략은 유머를 잃지 않는 것뿐이라며, 전 지구의 위기를 우주의 마인드로 대면하고 있는 두 행성을 만나본다. 김승언, 신문영 – 두 분이 당도한 곳은 그 이름도 딱 들어맞는, 술술센터(문래동 소재)다.
각자의 우주를 가진 사람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이하 우주마인드) – 지구에 대한, 우주에 대한, 행성에 대한 생각을 필요로 하는 지금, 매우 동시대적인 단체 이름이다. 미래를 예견하신 듯하다.
김승언 우리는 부부고, 워낙 말장난을 좋아하는 편인데, 영어에서 ‘우주 마인드’(Would you mind~?)로 시작되는 문장이 항상 웃겼다. 실제로 그리 딱딱하게 번역되는 건 아니라는데 “혹시 뭔가 꺼려지십니까?”가 되지 않나. 이건 “내가 이렇게 하는 게 싫으니?”라는 뜻도 되고. 한국어로 쓰면 우주와 마인드가 붙어 있는 것도 신기하다. 우리가 뭐 대단한 우주인가 싶지만, 지구상 존재하는 모든 존재에겐 각자의 우주가 다 있는 거니까, 어둡지 않고 거창하게 우주라는 단어를 쓰고 싶었다. 소재나 내용들이 자본주의 문제, 경제 문제 같은 세상을 향한 투덜거림이 많아서, “왜? 이런 이야기 하면 싫으니?” 이런 뉘앙스도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우주적인 마인드와 “그래서 싫으니?”라는 두 의미가 합쳐진 중의적인 뜻으로 결정된 팀 이름이다.
신문영 최근 공연한 <여기에서 저기로 이동하는 11가지 방법>(아시테지 K-PANY 창작꿈밭 돋움단계 쇼케이스)에는 양자 역학이나 신유물론 같은 내용들이 많았다. 나는 수학과다 보니 이런 개념들이 늘 흥미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이 작품이 정말 우주와 마인드를 다 다루고 있네!’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작은 곳에 있는 우주들과 우리 마음속에 일어나는 일들까지 모두 연결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페이스북에서 흥미로운 관극평을 발견했다. 2025년 공연한 <난독극>에 관한 것이다. “저는 10년째 우주마인드를 사랑하고 있어요. 아무리 어려운 주제도 우주마인드의 입을 거치면 다 이해할 수 있어요. 나의 EBS, 나의 TED, 나의 인터넷 강의. 사랑해요. 우주마인드프로젝트.”
신문영 우리는 교육이라기보다 그저 삶을 먼저 경험한 사람으로서, 아이들과 ‘우리 이제 같은 시간을 보내 볼까?’라는 마음으로 만나고 있을 뿐이다.
EBS, TED, 인터넷 강의를 언급하고는 있지만, 오히려 일종의 교육 체계라 연상되는 시스템을 풍자하고 있는 관람평이라 생각한다. 두 분의 말과 행위와 토론이 제도 안에 포함된 척하면서도, 제도 안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거나 지식과 정보를 전해 주는 행위 자체가 가진 한계나 시스템을 벗어나는 이야기를 하시기 때문에 관객들이 좋아한다고 본다.
김승언 사실 궤변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훨씬 컸다. 예술 작품 혹은 예술가가 관객을 대상으로 굉장한 사실, 그동안 몰랐던 사실을 알려주고, 뭔가 센세이셔널한 충격을 불러일으키는 일이, 이토록 매체가 많은 지금 세상에서는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 민주주의, 사회가 당면한 온갖 문제들이 있는데, ‘세상이 이래야 하지 않아?’라는 당위에 대해서는 누구나 얘기를 할 수 있지만, 특히나 예술 작품이 당위를 당위로 얘기하는 것만큼 재미없는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당위라고 보여지는 것이 정말 당위일까?’라고, 이상하게 비틀어 보면 좀 다른 관점들이 생기는 것 같다.
궤변과 유머의 생존 기술
세상을 향해서 궤변을 늘어놓고 싶을 때, 우주마인드 작업에는 유머가 동행한다. 그 이유는 뭘까?
신문영 뭔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근거한 김승언 님의 취향. 웃겨야 한다는 강박과 본능?
김승언 나만 그런가? (좌중 웃음) 나는 성격적으로 누군가를 웃겼을 때 성취감이 있는 편이다. 말은 우리 공연에 사용되는 일종의 도구 중 하나다. 그런데 의미 없는 말을 그냥 던지고 웃기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이 말들에 다른 의미가 생성되면 좋겠다는 거대한 희망 사항이 있었다. 세상에 대한 불만 사항을 말도 안 되는 말로 마구 던져 놨을 때, 다음은 또 뭐가 될까, 일종의 변증법적인 접근으로 뭔가 다른 게 또 생겨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런 바람이 계속 있었고 이 방향을 탐구하고 있다.
신문영 시작은 개인적인 기호였는데, 이제는 거의 생존 기술에 가깝게 궤변과 유머를 사용하고 있다. 거리 공연은 모두가 와서 보는 공연이다. 축제에는 가족 단위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어려운 주제를 말놀이로 하니 아이들도 즐겁게 보더라. 아이들도 이런 연극을 볼 수 있고, 어려운 주제이더라도 소통할 수 있고, 생각할 거리를 같이 나눌 수 있으니, 이것을 좀 더 발전시켜 보려 한 것이 ‘궤변’이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옳은 소리보다는 ‘조금’ 옳은 소리를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말은 중요한 도구고 기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말은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까지 가는 것 같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우리가 쓰는 말이 옳은 말 같은데, 궤변인 것 같은데, 결국 말은 속임수일 뿐이야, 중요한 건 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몰라’ 이런 아이러니들을 우리는 같이 경험하고 나누고 싶다. 결국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게 뭘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던져서는 안 되고 말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 방법으로 궤변이 편하더라.
그런데 생각해 보면 우리는 ‘너무’ 옳은 소리보다는 ‘조금’ 옳은 소리를 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말은 중요한 도구고 기술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결국 말은 중요하지 않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결론까지 가는 것 같다. 설명하기는 어려운데 ‘우리가 쓰는 말이 옳은 말 같은데, 궤변인 것 같은데, 결국 말은 속임수일 뿐이야, 중요한 건 더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몰라’ 이런 아이러니들을 우리는 같이 경험하고 나누고 싶다. 결국 말이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게 뭘까?’라는 질문에 도달하기 위해서, 아무 말이나 던져서는 안 되고 말을 잘 쓰는 것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 방법으로 궤변이 편하더라.
거리 예술은 예술가가 관객을 제한하거나 특수한 관객층 대상으로만 작업할 수 없으니, 말의 기술에 대해 특히 더 고민하게 된 것 같다.
김승언 처음 <잡온론(Job On Loan)>이라는 거리 공연을 할 때, 왜 관객들이 재미있게 보는지 오히려 궁금해졌고 그 후 여러 시도를 하다 보니 밑바닥에서부터 발견되는 것들이 있었다. 말은 내용도 있지만 형식도 있어서 말의 음가나 음악성도 조금 더 탐구해 보려고 시도하게 되었다. <잡온론>은 말도 많고 말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들도 무거워서 아이들이 내용상으로는 다 따라올 수는 없는데, 표현을 가볍게 하니까 그들도 이 작품을 너무 재미있게 보기도 했다.
실상 현대 사회에서는 말을 다 빼앗기지 않았나. 자유, 힘, 생태…. 본연의 의미와 달리 끊임없이 과장, 오도, 전유되다 보니 ‘말’이라는 주제가 더욱 중요해진다. 예술 작업 안에서 말은 대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매우 중요한 고민이다.
김승언 말이 원래 가지고 있었던 본질이 있는데 다른 방식으로 쓰이고 희석되고 오염되고 있다. ‘이 말은 이렇게 쓰이면 안 되는 거 아닐까?’ 이런 문제의식으로, 원래 말이 있고, 변질된 어떤 말이 있고, 또 다른 말이 있는데, 이 말을 뒤집는 방식으로 우리가 또 다르게 발화해 보고 언어 자체를 다르게 시도해 보게 된 것 같다.
깜깜한 미래 외에는 상상이 안 될 만큼 앞날이 막막할 때, 유머가 삶을 지켜주는 것일까?
김승언 우리 작품은 대체로 투덜이 스머프 같은데, 다들 사는 게 힘드실 테니 함께 공감할 부분이 많을 거로 생각했다. 그래서 내용은 무겁지만, 이 무거움을 무겁게 전달하기보다 가벼워져야 다 같이 뭔가 다른 상상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이 있었다. 결국 더 무거운 이야기를 더 가볍게 해보고자 하는 것이 최근 우리가 탐구하고 있는 방향이다.
이미 온 미래, 맞이할 미래
관객 참여형 전시·공연 〈미래, 도시〉는 미래에 관한 질문으로 구성되었다. 2019년 문화비축기지부터 여러 장소를 거쳐 2025년 경기상상캠퍼스까지 왔다. 첫 공연 후 7년이 지난 작년 공연은 당시의 미래다. 매번 공연할 때마다 예견했던 미래를 만나고 있는 셈이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예측대로 ‘없어진 것들은 무엇인가?’ ‘빗나간 예측은 무엇인가?’ ‘여전히 미래에 없어질 것들은 무엇인가?’ ‘여전히 우리는 우리의 미래를 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오늘 창작자인 두 분께 그대로 돌려드린다. (웃음)
신문영 미래에 무엇이 남고, 무엇이 없어질지 초연에는 장난처럼 시작되었지만, 계속 바뀌더라. 초연은 코로나 전이었고 코로나 이후는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우리가 아이들의 미래에 대해서 얼토당토않게, 터무니없이 상상해 보자고 시작했는데 일반적인 상상을 벗어나기가 쉽지는 않다. 지금도 계속 미완인 상태인데, 숙제가 많은 작업이다.
예견 같은 대사들이 있다. ‘책임지는 사람이 없어질 거다.’ ‘아무 상관도 없어질 거고, 어처구니가 없어질 거고, 할 말도 없어질 거고, 관심도 없어질 거고’ 이 부분도 너무 두렵다. 관료주의 사회가 점점 공고화되면서 앞으로 미래 사회는 이렇게 될 거라고, 지금을 예견하는 대사를 쓰셨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도 이미 그랬지만 지금은 진정 ‘레알’이다.
김승언 2019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서 초연했는데 이 질문과 대사 중 이미 벌써 없어졌다고 느껴지는 것들도 포함돼 버렸다. 그러니 미래에 대해서 우리가 떠들고 있는 것 같지만, 지금도 그렇다고 관객들은 보고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미래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현재를 돌아보게 되는 것, 이렇게 시각을 비틀어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오래된 미래, 이미 와 있는 미래. 그러면 마지막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두 분의 재치와 상상을 담아 이야기해 주길 바란다.
신문영 생존하려면, 먹을 건 남아 있으면 좋겠… (좌중 웃음) 그러니까 이게 참 어렵더라. 계속 숙제인 것 같다. 작품을 통해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은 무엇이 없어질 것인지, 혹은 무엇이 남을 것인지를 리스트 업 하는 공연이 아니다. 결국 미래는 없고, 미래가 현재가 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가 이미 미래를 알고 있지 않나?’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공공공간 아츠페스티벌에서 공연했을 때 “이미 알고 있는 미래를 기억해 봅시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말을 했었다. 우리는 이미 미래를 알고 있으면서도,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열심히 준비하고, 기대하고, 혹은 두려워하지 않나? 그러면 지금 어떤 행동을 선택할 수 있는지, 혹은 조금 더 나아가서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 남는다. 그러니까 우리한테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이 없어졌는지 생각한 다음에 이 질문을 배치하면, 사실 정해진 답이 나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제는 이 질문을 넘어서는 질문을 더 찾아야 하지 않을까 고민 중이고, 아직은 공사 중인 작품이다. 왜냐하면 미래는 계속 오고 있고, 그 미래에도 이 공연을 하게 될지 모르고, 그때는 그때의 어떤 고민과 또 맞닥뜨리게 될 테니까. 그래도 이런 희망사항은 있다.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이들한테 미래에 무엇이 되고 싶은가를 묻는 것은 아니기를, 그냥 흔히 생각하는 ‘미래 로봇’을 넘어서는 틈새의 이야기들을 더 해보고 싶다는 바람.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굉장히 치밀하고 재미있게 짚어내면 좋겠다는 것. 아주 이상적이지만 그런 욕심은 있다. 미래에 대해 다른 상상을 해야 다른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좋아하는 고(故) 김종철 선생님이 말씀하신 미래에 대한 상상력에 다가가는 일이라 생각한다.
<미래, 도시>는 전시, 공연, 워크숍으로 이루어진 복합적인 작업이다. 참여자들이 미래에 대한 질문과 답들을 하루하루 쌓아가면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데, 이렇게 우리가 함께 미래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김승언 미래는 나 혼자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생각과 내 옆 사람의 생각, 여러 생각들이 모여 있는 것이 결국 이 세상이고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미래이지 않겠는가, 의미적으로는 이렇게 상상해 봤다. 4주간 전시, 중간에 2회 워크숍, 마지막 날 공연 발표가 있었다. 빈 종이상자를 쌓고 “당신은 지금 미래에 도착했습니다.”라는 가이드 문구들을 적어놓고,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당신의 무언가 소중한 것을 여기에 남겨두고 가세요.”라고 해 두었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간단한 가이드만 있었는데 며칠 지나니 아이들이 이상한 그림을 그리고 제 맘대로 전시해 두었더라. 내용과 상관없이, 미래는 모르겠고, 애들은 그냥 “우와! 그림이다!” 막 그리기도 하는데, 그것도 재밌었다. 간혹 정말 깊은 철학이 담겨 있는 어마어마한 그림도 하나씩 발견되기도 했다. 일주일 지나 보면 이만큼 쌓여 있고 또 일주일 지나면 이만큼 쌓여 있고. 그래서 우리도 사실 놀랐다. 마지막에 들어가 보니 어마어마한 미래가 형성되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내가 참여해서 뭔가를 했는데 나중에 보니 우리 미래가 이렇게도 그려지는구나, 그러면 정말 미래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건가? 라는 질문까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미래를 구축하는 재료가 쌓기도 쉽고 무너지기도 쉬운 종이상자였다는 것은 중요한 포인트다. 미래가 우리가 다 같이 구축할 수도 있고, 이렇게 한순간에 우르르 무너질 수도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인가? 상투적인 미래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미래는 구축하기도 어렵고, 무너지기도 쉽다는 사실, 막상 열심히 쌓아왔는데 무너지는 것도 일순간이라는 이야기를 어린이들과도 나눌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김승언 일단은 관객들이 다루기 쉬운 재료여야 참여가 쉬울 것 같았다. 크레파스나 사인펜같은 걸로 그림 그리고 글자도 써야 하니까. 그래서 조심해 달라는 주의는 해 놨었다. “무너지기 쉬운 미래다.” 관리자가 아이들이 상자를 던지고 여기저기서 난리를 칠 것을 우려해서 긴장되기도 했다. 너무 난장판이 되면 안 되겠지만 아이들은 뛰어다니고 조금 건드려도 되지 않나 싶었고, 너무 괴팍하게 일부러 무너뜨리는 친구가 나타난다면, 그건 또 다른 사람의 작품을 무너뜨리는 셈이 되니까 어떻게 기분 나쁘지 않게 주의를 줄 수 있을지 생각했다.
2025 공공공간 아츠페스티벌 〈미래, 도시〉 [영상 출처] 유튜브 경기상상캠퍼스
도솔도솔, 공존하기 위해
이 공연에서 상자가 밟히기도 하고 쌓였다가 무너졌다 하는 과정을 같이 경험하는데, 내 미래가 고귀하게 전시되는 것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와 같이 살아가려면 내가 어쩌다 밟히기도 하고, 나 또한 다른 이들에게 의도치 않게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함께 알게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신문영 ‘함께’라는 말. 결국 공존 감각이었던 것 같다. 한정된 면적 안에 많은 사람이 있어야 할 때 누군가 너는 여기 있을 자격이 없다고 내치는 것이 아니라, 불편함을 나눠 가지면서 우리가 여기 같이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라는 고민을 함께하는 것. 혹은 이미 누군가 왔다 간 다음에 늦게 와서 그림을 그릴지라도, 그림 그리고 간 흔적들을 보면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간 사람이 있음을 감각한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끈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위로 같은 것. 나만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 누군가가 또 있다는 흔적들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들이 결국은 지금 함께 해결해 가야 할 이민자의 문제, 난민 문제 등 여러 존재에 대한 차별의 문제 같은 것으로 우리의 공존 감각이 확장되는 것이겠지.
『천 개의 고원』에 나오는 이야기를 떠올려 본다. “어둠 속에 한 아이가 있다. 무섭기는 하지만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흥얼거리며 마음을 달래보려 한다. 아이는 노랫소리에 이끌려서 걷다가 서기를 반복한다. 길을 잃고 헤매고는 있지만 어떻게든 몸을 숨길 곳을 찾거나 막연히 나지막한 노래를 의지 삼아 겨우겨우 앞으로 나아간다. 노래는 카오스 속에서 날아올라 다시 카오스 한가운데서 질서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노래는 언제 흩어져 버릴지 모르는 위험에 처해 있기도 하다.”(『천 개의 고원』 11장, 리토르넬로에 관하여)
카오스 속에서 노래가 질서를 부여한다는 이야기다. 이 작품의 제목은 〈미래, 도시〉. 첫 장면부터 서양 8음계(도레미파솔라시도) 중 네 개의 음을 불러내어 노래를 부른다. 미-레-도-시-도-시-미-레. 과연 노래는 우주마인드의 작품에서 어떤 역할인가? 이 작품에서도 늘 그렇듯 많은 말들이 쏟아지는데, 그 쏟아지는 말들 사이에서 노래는 어떤 질서를 부여하는가?
신문영 우리는 거리에서 관객의 귀를 붙들어야 하니 일종의 생존 기술에 가까운 절박함 속에 찾은 기술 같다. 말은 글이기도 하지만 소리이기도 해서 관객이 귀를 열고 관람하게 하기 위한 여러 시도 중 하나로 노래와 연주가 결합된 것 같다.
김승언 사실 간단하지만 대단하더라. 거대한 악기가 필요한 게 아니라 그냥 단순한 ‘도솔도솔’ 이것만 해도 공간을 확 변화시키는 음악의 매직이 있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가 다음 세대와 함께 공유하고자 하는 미래에 대한 상상은 이미 알고 있는 미래다. 부서지기 쉬운 미래다. 불편한 미래다. 그 미래를 함께 살아갈 생존 전략으로 우주의 마인드를 가진 두 행성은 제안한다. 이 세계를 향한 궤변과 유머, 노래가 부여하는 질서로 함께 살아 보자고.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김승언·신문영
우주마인드프로젝트는 극장 밖 공간에서의 장소 맞춤형 퍼포먼스를 지향하는 토커티브 비주얼 씨어터다. 두 배우 신문영, 김승언이 ‘사회’와 ‘개인’ 사이의 문제를 자기 경험과 서사를 바탕으로 다큐멘터리 연극 형태로 풀어내며, 유머와 언어유희로 무거운 주제를 관객에게 가깝게 전달한다. 2016년 서울프린지페스티벌에 창단 공연 〈잡온론〉으로 참여하며 본격적으로 ‘탈극장’ 형식의 작업을 선보였고, 이후 서울거리예술축제, 안산국제거리극축제 등에서 지속적으로 작품을 올리고 있다. 서민경제 3부작 <잡온론> <스피드잡스> <아담스미스> 외에 <반도챗> <난독극> <수상한 나라의 엘니뇨> <미래, 도시> 등 여러 작품이 있다.
· 페이스북 @wouldyoumindproject
· 페이스북 @wouldyoumindproject

- 우연
- 서울문화재단 예술교육본부장, 남산예술센터 극장장, LIG문화재단 기획실장,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장 등으로 일해왔고, 현재는 독립기획자, 드라마터그(〈묵티〉, 〈제비심장〉)로 활동 중이다.
yeoniris@gmail.com - 전시 사진 제공_우주마인드프로젝트
인터뷰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7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혼돈 속에 노래하며, 우주 마인드로 살아남기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김승언·신문영
잘 보고 가네요
혼돈 속에 노래하며, 우주 마인드로 살아남기
우주마인드프로젝트 김승언·신문영
기대만점입니다
– 인터뷰를 보고 궁금해져서 코로나19 전후의 [미래, 도시] 공연 관련영상을 찾아봤습니다. 이제는 서로의 존재를 느끼고 함께 미래를 생각해 보는 경험이 더욱 소중해진 것 같습니다. 참여했던 사람들이 부러웠습니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도 자신만의 시선과 감각으로 삶을 바라보는 태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낄 수 있었어요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김승언, 신문영 작가가 전하는 메시지는 혼돈 속에서도 예술과 사유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는 희망처럼 다가왔습니다.
두분의 진실된 인터뷰 잘 들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활동 기대하고 응원합니다.
“궤변 속의 진심, 유머 속의 철학”
이 인터뷰를 읽으면서 ‘궤변’이 이렇게 감동적일 수 있구나 싶었어요. 😌
세상을 너무 진지하게만 보려다 지칠 때, 우주마인드의 말과 유머는
마치 작은 우주선처럼 마음 속 혼돈의 궤도를 벗어나게 해 주네요🌌
“도솔도솔” 몇 음만으로도 공간을 바꾸는 힘, 그리고 말로 세상을 뒤집는 용기.
결국 예술이란 이런 것 아닐까요? 무너지기 쉬운 미래 속에서도
함께 노래하고 웃으며 또 다른 질서를 만들어가는 것.
오늘도 궤변 한 줄기에 위로와 희망을 얻고 갑니다. 🌿✨
말이 오염되고 본질을 잃어가는 시대에, 오히려 ‘궤변’과 ‘유머’로 진실을 꿰뚫어 보는 두 분의 태도가 신선한 충격을 주네요. 무거운 담론을 가볍게 띄워 올려 모두가 즐길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예술의 역할이 아닐까 싶습니다. 우주마인드프로젝트의 넓은 세계관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