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움트고 피어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장면들을 포착합니다.

두 도시에서 마주한 중장년의 감각

중장년 여가 예술감상교육 프로그램 ‘예술에 빠질 예.감.’

오랫동안 나는 미술의 현장 안에 있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 앞에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보다 사람들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림 앞에 선 몸의 각도, 시선이 머무는 시간, 그리고 그 시선이 이내 어디론가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순간들. 미술관은 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 있었다. 작품은 충분히 존재했고, 정보 역시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감각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공기 중에서 흩어지는 장면을 나는 반복해서 목격했다. 본다는 것의 감각 그 공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내 모든 시절이 제철이었다

‘할매발전소’가 옮기는 삶의 기억

“나 사는 이야기가 무슨 쓸모가 있어.” 할머니들을 만나며 자주 듣던 말이다. 처음에는 겸손이라 생각했다. 오래 듣다 보니 그 말은 체념에 가까웠다. ‘내 이야기는 중요하지 않다. 내 이름은 기록될 일이 없다. 내 삶은 누군가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여겨온 시간이 그 말 속에 들어 있었다. 이야기는 늘 그다음에야 시작되었다. 밥을 먹으며 옥수수 이야기를 하다가, 어린 시절 못 간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밭에서 일하던 손 이야기를 하다가, 이름을 쓰지 못한 세월 이야기가 이어졌다. 꽃을 심던 기억에서, 오래 버틴 마음이 나왔다. 할머니들의

닫힌 몸에서 피어난 순간

‘피어나다 프로젝트’가 드러낸 몸의 감각

인간은 누구나 후련해지길 원하며 발버둥 친다. 그러나 쉰일곱의 안무가 김남식은 ‘무엇도 후련한 게 없는 것이 이 나이대’라고 덤덤히 고백하며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을 거창한 ‘예술가’라는 수식어 대신, 그저 ‘춤추는 남자’라고 소개한다. 안무가도, 예술감독도, 교육자도 아닌 말. 명함 위에 올려두기엔 다소 단순하고, 그래서 오히려 정확하다. 춤을 통해 세상과 관계 맺어 온 그와 ‘2025 피어나다 프로젝트: 너의 손을 잡고 피어나다!’를 중심으로 대화를 나눴다. 78점의 예술,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 그는 자신의 작품을 ‘78점짜리’라고 말한다. 관객이 지불한 관람료가 아깝지 않을 정도, 그들의 일상에 예상치

양육자의 삶을 ‘예술’로 켜다

급변하는 시대, ‘활활살롱’이 선택한 속도

“하루를 다 마치고 나면 엄청나게 많은 일이 분명히 일어났는데, 지나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거예요. 말 한마디조차도요. 그래서 기록을 해야만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 박초연 활활살롱 대표 제주 ‘활활살롱(VivaBookSalon)’은 글쓰기와 명상, 예술을 매개로 양육자의 삶을 다시 바라보는 공동체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과 사회 속에서, 이곳은 느리게 기록하고 천천히 연결하는 방식을 선택한다. 사라지기 쉬운 하루와 감정을 붙잡아 두는 일, 그 자체가 이 공동체가 수행하는 예술이다. 마음오름-제주명상 1분 1초가 전쟁 같은 시간 속에서 2026년 1월 24일 토요일 오전, 제주시 아라동의 한

청년답게 풀어가는 반짝이는 성장 스토리

극단 청년극장 <연극몬 GO!>를 바라보는 두 시선

예술교육가의 냉철한 자기 비평과 외부 전문가 또는 동료의 깊이 있는 비평과 해석을 나란히 싣는다. 문화예술교육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교육 실천을 성찰하는 것과 타인의 예술교육 활동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다양한 활동이 지닌 철학적 의미와 예술교육적 가치를 함께 탐색해 보고자 한다. 꾸준하게, 언젠가는, 빛을 볼 지니 문의영 극단 청년극장 대표 “선생님, 저 꿈다락 강사가 되었어요.” “그때 연극동아리 했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어요.” 7~8년 전에 우리 극단에서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수업을 들었던 고등학생 제자가

존재의 차이를 마주하며 보살피는

‘꿈더랜드-피터팬클럽’ 예술활동을 바라보는 두 시선

예술교육가의 냉철한 자기 비평과 외부 전문가 또는 동료의 깊이 있는 비평과 해석을 나란히 싣는다. 문화예술교육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교육 실천을 성찰하는 것과 타인의 예술교육 활동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다양한 활동이 지닌 철학적 의미와 예술교육적 가치를 함께 탐색해 보고자 한다. 한 사람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작품 문해주(월광) 설치예술가·문화예술교육가 “안녕하세요. ‘월광’입니다. 제 이름 ‘문해주’에는 ‘해’도 있고 ‘달’도 있어요.” (손으로 하늘의 ‘해’를 손짓하며, 두 발과 손 모두 활짝 벌린 몸 동작을 취하며 ‘달’을

엔딩을 바꾸는 기획된 의도

<블루아저씨의 명랑느와르 필름로그>를 바라보는 두 시선

예술교육가의 냉철한 자기 비평과 외부 전문가 또는 동료의 깊이 있는 비평과 해석을 나란히 싣는다. 문화예술교육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교육 실천을 성찰하는 것과 타인의 예술교육 활동에서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해석하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서로의 시선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다양한 활동이 지닌 철학적 의미와 예술교육적 가치를 함께 탐색해 보고자 한다. ‘명랑한 둥지’에 살고 있는 나의 블루아저씨 임보현 협동조합 어감 대표 “세상 뭐 있냐?” 술에 취해 꼬부랑 발음으로 공중에 던진 질문에 내 고개는 저절로 그들을 향했다. 허구한 날 슈퍼 앞 차가운 바닥에서

안전하고 느슨한 연결, 함께 펼치는 꿈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 만드는 사회적 상상력

경기도 원당의 오래된 주택가에 노란 벽화가 그려져 있다. 2층으로 올라가면 꽤 넓고 따뜻하고 유쾌한 공간이 나온다. 18년간 사립 어린이 작은도서관 ‘책놀이터’가 있었고, 2018년부터 ‘상상공간 별-짓-’이라는 이름으로 문화기획협동조합 별책부록(이하 별책부록)이 운영하는 곳이다. 기획자 박미숙이 마련하여 운영하고, 여러 사람의 힘이 모여 20년 넘게 한 공간을 꾸리고 있다. 다양한 ‘별짓’이 지어지는 곳, ‘별책부록’의 이야기가 끝이 없다. 함께 애쓰는 사람들의 힘 재일조선학교와 함께 하는 시민모임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이 협동조합을 꾸렸다. 음악가, 사진가, 그래픽디자이너, 공예가, 도서관 관장, 연구자 6명이 “나이 들어서 하고 싶은 일이 있을

삶의 중심에 예술을 두고 서로를 부추기는

극단현장과 극단이중생활의 공진화

단원 1  “우리가 누고? 이래 봬도 우리가 마 세계적인 한량묵객 아니겠나?” (“그렇지~!”) 단원 2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화알짝 펴고!” (“화알짝 펴고!”) 연   출  “자, 자, 잠시만요. 더 재빨리 대사를 붙여줘야죠! 입장부터 다시 해봅시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삼일절 오후, 극단이중생활 단원 10여 명은 만세운동 재현극 〈걸인이 일어났소, 기생이 일어났소〉 연습이 한창이다. 흩어졌다 모이고 노래하다 춤추며 사방팔방 무대를 휘젓는 단원들, 아니, 자칭 “세계적인 한량묵객”인 ‘걸뱅이’들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저 무리 속에서 어깨를 활짝 펴고 한판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는 나를 발견한다. 2017년 함양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이던 극단현장으로부터 받은

제각기 동등하게 서로를 지탱하기

‘사월의 들판’이 질문하는 관계와 공동체

“대학원을 졸업함과 동시에 결혼했는데 결혼과 함께 맞이한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인 태도는 여성을 바로 하위 위치로 강등시키더군요. 뭐든지 최초의 경험은 강렬하지만 그 현상에 대한 스스로의 대처는 참 미숙합니다. 이 경험은 새로운 환경에서 겪게 되는 여러 부류의 사람들의 현실을 바라보게 했어요.” – 이선민 사월의 들판 대표·사진작가 예술단체 ‘사월의 들판’ 대표 이선민 작가는 자신의 작업 방향성이 생산되던 시기를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이라는 사회에서 결혼은 여성에게 있어 자신이 익숙했던 가족 공동체와 떨어져 타자의 새로운 공동체로 편입됨을 뜻한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공동체가 지닌 구조나 가치,

재밌게 놀다 보니 서로를 배우는, 진귀한 광경

‘분더캄머’가 추구하는 보편적 예술 활동

“사람도 성격이 다른 사람이 있듯이 꽃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어서 어우러지는 시간을 가지면, 다르지만 같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면, 서로 사랑하지 않을까.” – 2022년 〈왁자지껄 흔한여행〉 참가자 2022년 안양천 정자에 오가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다. 나물을 다듬고 먹을 수 있는 꽃으로 떡을 꾸미며,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시집살이며 직장 생활, 투병기, 친정과 자식, 외로운 자신 등 어디 가서 말 못 할 이야기를 풀고 흩어진다. 다시 같은 곳을 찾기도 하고, 때론 그 한 번의 방문으로 끝나기도 한다. 도시에서 그저 스쳐 지나가던

영감을 주는 휴식, 감각을 깨우는 경험

2024 도시숲 예술치유 〈어떤오감: 태화강 국가정원〉

대한민국 제2호 국가정원인 태화강 국가정원에는 83만 5,452㎡의 면적에 생태‧대나무‧계절‧수생‧참여‧무궁화 등 6개 주제로 20개 이상의 테마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중 ‘자연주의 정원’은 네덜란드 조경가 피트 아우돌프(Piet Oudolf)가 울산 시민, 시민정원사 등 200여 명과 함께 2022년 조성한 공공정원이다. 이렇듯 태화강 국가정원이 가진 돌봄의 서사는 장소 탄생의 과정에서부터 회복의 가능성을 보여준 사례이기에 2024 도시숲 예술치유 <어떤오감 Autumn Awakening>의 추진 장소로 선정하고 울산광역시(녹지정원국), 울산시민정원사 단체와 협력하여 사업을 기획했다. 처음 도시숲 예술치유 프로그램을 우리 울산시민정원사회와 함께 기획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놀랍고 의아했었다. 우리는 그동안 울산

불확실한 길 위에서 함께 걷는 법

‘움직이는 세상’이 가만히 들여다본 세상

세상은 도통 알 수가 없다. 사람의 욕심은 어째서 끝이 없는지, 마음은 왜 이토록 허무하게 변하는지, 무슨 기준으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것인지. 세상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한데 우리는 여지없이 어리석고 허약하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 앞에서 영화 <벌새>(김보라, 2018)의 대사를 떠올린다. “힘들고 우울할 때 손가락을 봐. 그리고 한 손가락 한 손가락 움직여. 그럼 참 신비롭게 느껴진다. 아무것도 못 할 것 같은데 손가락은 움직일 수 있어.” ‘움직이는 세상’의 시선은 천천히 움직이는 손가락 사이에 머문다. 세상을 신비롭고

느리지만 꾸준히 자라는 영광의 아이들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뮤’

제법 큰 나무가 자라는 언덕이 보이는 집으로 이사 온 지 1년이 되어 간다. 창밖 풍경은 매일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바라보면 나무들의 빛깔과 형태가 조금씩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변화는 그렇게 한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나고 나면 전과는 다른 어떤 것이 되어 있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학생들을 주축으로 10년을 이어온 영광학생예술동아리 ‘락(樂)뮤(Musical)’를 취재하고 돌아오니, 문득 창밖의 나무들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마다 같은 일을 일상처럼 반복했을 뿐이지만 어느새 멀리까지 걸어온 락뮤의 10년을 들여다보자. 〈여순사건-YOU가족〉 다름이 아닌 자연스러운 환경 2000년대 이후 우리

산업의 흥망성쇠를 넘어 지역의 역동을 만드는

문화예술로 채워가는 탄탄마을의 미래

강원도 태백시는 대한민국에서 석탄이 최초로 발견된 지역으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다. 1921년 본격적으로 석탄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히 발전하고 산업화하였다. 태백시는 석탄산업의 발전과 함께 번창하면서 한때 12만 명이 넘는 인구를 자랑했다. 그 결과, 1962년에는 삼척군(현 장성군) 장성읍에서 독립하여 태백시로 분리되며, 지역의 행정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21세기에 들어서며 글로벌 에너지 전환의 흐름과 탄소 배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석탄산업은 급격한 침체를 겪기 시작했다. 특히 2024년 6월, 태백의 마지막 석탄 광산인 장성광업소가 문을 닫으면서 석탄산업 중심의 경제 구조는 사실상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다양한 삶의 경험을 아우르고 연결하며

극장이 지역사회와 만나는 방법

2018년 8월, 나는 영국 국립극장(National Theatre)의 올리비에 대극장 객석에 앉아 〈페리클레스〉(Pericles)의 마지막 공연을 보고 있었다. 무대 위에는 5세부터 83세까지 나이도 제각각인 225명의 참여자가 마음을 담아 노래하고, 춤추고, 연기하는 모습이 펼쳐졌다. 이 무대는 영국 국립극장의 전국 단위 커뮤니티 프로그램인 ‘퍼블릭액츠’(Public Acts)로 제작된 첫 작품이다. 나는 감사하게도, 퍼블릭액츠 프로그램과 공연의 감독으로 이 과정을 함께하는 특권을 누렸다. 우리의 사명은 ‘극장과 공동체의 비범한 행위를 창조하는 것’이었고, 바로 이 순간, 우리의 목표를 달성하면서 벅찬 감정을 느꼈다. 8명의 아이 엄마인 라히마와 13살 아데가 마지막 대사를 마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