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유통기한
기본적으로 정책을 제안하고 입안, 실행할 때는 ‘좋은 정책(good policy)’을 지향한다. 정책의 지속 여부는 목표 달성의 정도와 결과의 질(quality)에 달려있다. 일반적으로 정책의 지속성이 요구되는 분야는 복지나 교육, 문화예술 등 존엄과 생명에 관련된 영역이거나, 긴 시간을 통해 서서히 변화를 체감하는 영역이다. 다른 한편 정량적 목표 설정이 가능하고 달성 여부가 수치로 분명히 드러나는 정책은 성과 여부에 따라 시대정신이 반영된 새로운 정책으로 변환되거나 일몰된다. 물론 정책 성과가 미미하거나 잘못되었을 경우, 다시 말해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판단과 평가가 있으면 가차 없이 폐기되기도 한다. 그래서 정책의 유통기한을 이해하려면 정책 요구가 일어나게 된 배경, 환경, 쟁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접근방식에 따른 문제 해결 여부, 정책 수단의 적정성, 현장에서 드러나는 다양한 사례와 경험이 실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관해 검토해야 한다.
2005년에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되고,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지속된 지 햇수로 20년이 되었다. 법률에 근거하여 수행해 온 사업 중, 정책 방향이나 지형 변화에 따라 예산의 감액, 혹은 폐기, 정책 명칭이나 정책 대상의 변경도 있었다. 그런데 최근, 국회에 제출된 ‘2025년 정부 예산안’을 보니, 25년째 지속 되어온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산이 전년 대비 72% 감소하였다. 예술강사 사회보험료와 사업운영비를 제외한 예술교육을 위한 강사료는 전액 삭감되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 프로그램을 일반회계에서 지방교육재정으로 이관하면서 예산을 삭감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나라살림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면 ‘종합적인 교부금의 감소와 불용이 예상되는 만큼 문체부의 설명과 달리 실제 사업 수행이 이루어지기 어려운 환경으로 분석’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무엇보다 세수 결손이라는 국가 부담을 지방자치단체에 떠넘기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는 지역 간 불균형과 격차, 학교예술강사 직접지원 감소의 심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물론 사업 예산이 매년, 반드시 증액될 수는 없다. 그러나 예산 삭감이 되거나 정책을 폐기한다면, 적어도 국민에게 폐기의 이유나 이해할 수 있는 예산 적정성의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적어도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과 지역의 요구가 있었던 21년 전 여름, 세계인권선언문 제27조 ‘모든 사람은 자기가 속한 공동체의 문화생활에 자유롭게 참여할 권리, 예술을 즐길 권리, 학문적 진보와 그 혜택을 다 함께 누릴 권리가 있다’는 것으로부터 문화예술교육의 정책 수립이 시작된 것을 나는 잊지 않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우리의 세계를 바꿀 권리의 출발점이자 명백한 증명이라는 생각을 했고, 20년 동안 현장에서 무수한 ‘권리의 증명’을 쌓은 예술가, 교사, 학생, 시민 등이 문화예술교육의 사회적 가치를 풍성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2025년 문화예술교육 예산 삭감이라는 현실 앞에서 지나치게 무기력해졌다. 그동안 어떤 쟁점으로 문화예술교육 정책 방향을 설정했고, 논의의 시작과 법과 제도의 정립, 그리고 사업의 확대 과정을 통해 우리 삶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의 가치가 어떻게 작동해 왔는지, 우리가 과연 주체적인 존재로 살았는지 다시 짚어봐야 할 것 같다는 충동!
2003년, 드물고 빨랐던 정책 수립 과정
지금으로부터 21년 전, 부처 간 협력이 드물었던 시절인 2003년 7월 23일, 정부 부처의 하나인 교육인적자원부(현 교육부)와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가 만나 지역문화시설과 학교 간 연계체계 구축 등을 통한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종합계획」 수립과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공동사업기획단」 구성을 추진한다는 안이 발표되었다. 그해 9월 30일,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예술포럼이 개최되었고, 12월에는 「2004년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사업 추진계획(안)」이 마련되었으며,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되었다. 기억을 더듬어 보면, 비교적 정책 수립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것 같다.
2004년 6월 문화관광부는 여타 국가와 마찬가지로 ‘창의성’을 21세기 핵심 화두로 삼고 「창의한국」 및 「새 예술정책」이라는 국가문화비전을 발표하였다.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문화역량 강화’는 「창의한국」의 27대 중점사업의 하나였으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지역의 초·중·고와 문화기반시설 및 전문예술단체 등 외부 문화자원을 연계하는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을 우선 추진하게 되었다. 부산시 기장군(사업 주관: 부산대학교 교육연구소), 경기도 부천시(사업 주관: 부천문화재단)와 여주군(사업 주관: 여주 밀머리미술학교), 그리고 강원도 평창군(사업 주관: 감자꽃스튜디오) 등 4개 지역이 시범대상지였으며, 국비 지원 규모는 지역별 5천만 원을 민간경상보조 형태로 지원하고, 해당 지자체는 국고 지원 규모 이상의 지방비(도비와 시비)로 예산을 분담했다.
2004년, 정부 내 정책 소관부서 설치
2004년 11월, 문화관광부 예술국 내에 정식으로 문화예술교육과를 설치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 정책 수립을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종합계획」(문화관광부·교육인적자원부, ‘04.11월)은 문화예술교육 정책 수립 및 예산편성의 근거자료이자, 지역단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사업추진에 있어 자원 연계 기초자료로 활용되었다. 2003년 10월부터 지역 네트워크, 미술, 연극, 음악, 문학 등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하여 운영되었던 소위원회 위원들은 종합계획의 내용에 향후 문화기반시설 및 문화예술교육 전문인력양성 등 관련 정책에 활용될 ‘문화예술교육 전국 실태조사’와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방향 및 법안의 주요 내용, 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설립 운영 방안 등과 함께 공교육 연계 문화예술교육 제도화 추진 및 관련법 제·개정의 근거자료가 될 ‘공교육 연계 문화예술교육 활성화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연구를 포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문화예술교육 시범사업 평가와 정책방향 연구」, 「학교와 지역단위 협력망 구축 자료」는 문화예술교육의 전국적 확대 시행을 위한 참고 자료로 활용되었다.
문화관광부 TF팀으로 시작했던 문화예술교육팀이 문화예술교육과로 신설되었을 때, 신규사업으로서의 담당업무 내용은 1) 문화예술교육 정책에 관한 종합계획의 수립, 조정 및 시행, 2) 문화예술 관련 교육과정 개발 및 운영 지원, 3) 문화예술 관련 사회교육 프로그램 개발·운영에 관한 사항, 4) 문화예술 분야 교육요원 육성지원, 5) 문화예술 분야 교재 개발 지원, 6) 문화예술 교육의 진흥을 위한 조사·연구, 7) 문화예술 교육 관련 지역 네트워크 구축 및 협력 사업 지원 등 총 7가지 분야였다. 미래를 대비한 국가 인재상을 ‘창의적 인간’으로 보았던 시기였기에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강조되었다.
2004년 문화예술교육 정책 방향을 잡기 위해 했던 질문, 다시 말해 ‘시민의 문화향유력 향상과 창의력 고취를 위한 사회문화예술교육 활성화’ ‘학교교육을 지식 중심에서 문화중심으로 전환’, ‘지역문화자원과 학교교육간 연계 강화’ ‘문화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기반조성’은 여전히 유효한 질문이었다고 본다. 그런데 20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정책 목적을 달성했다고 여기는지 아니면 외적 변수로 인한 관심 밖의 정책이 되어서인지, 문화예술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와 달리 정책의 힘은 많이 달린다.
2024년, 정책을 대하는 태도의 재구성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확장에 따른 제도개선이 계속되고, 다양한 주체의 등장과 다름과 다양성의 수용과 포용이 요구되는 시대이다. 변화로 인한 새로운 인식과 가치를 반영한 법과 제도의 제·개정 주기를 고려해야 한다. 제도의 변화는 역할 변화를 불러온다. 그러니 지금 이 시기는 오히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일몰과 폐기가 아니라, 드러난 균열을 잘 관찰하여 깊이와 넓이를 도모해야 한다. 왜냐하면 정책 수립을 시작했던 당시의 질문이 아직도 진행형이며, 양적 팽창 뒤의 질적 깊이라는 결과가 뒤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원기구이자 문화예술교육의 기획과 실행을 담당해 온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능동적 전환과 대응이 필요하다. 지방분권으로 인한 중앙의 관여도가 줄어듦에 따라 지역의 역할, 지자체의 의지와 자율성이 중요해지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기본권을 재확립하고 지역 행정체계와 활동가 및 민간 영역과의 거버넌스 구축 의제에 대해 지역의 주체적 해결이 가능하도록 지원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그동안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진흥원 중심의 사업실행이 가졌던 한계를 점검하고, 「지방이양일괄법」 시행을 전환의 기회로 삼아야 하며, 아울러 문화예술교육의 가치 확장에 있어서 각각의 조건을 가진 지역단위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지역 특성 기준의 지원법 개정과 지역단위 조례의 제·개정에 대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지금까지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방향이 과연 우리에게 능동적 즐거움과 지역의 문제 해결에 영향을 주었는지,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정서의 함양, 타자와의 만남과 관계성 확장을 통해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이나 지역에서의 관계회복 활동이 제대로 이루어졌는지, 교육 불균형의 개선은 이루어졌는지, 창의성 증진과 문화적 실천역량이 강화되고 있는지, 문화다양성과 삶의 과정성이 잘 살아났는지 되물어보자. 시니컬과 무기력을 벗어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찾아내자.
- 손경년
- 부천문화재단과 김해문화재단에서 대표이사직을 수행했다. 공연기획, 전시기획, 문화예술교육, 생활문화, 문화도시, 문화다양성 등 다양한 정책 및 사업기획의 기회를 가졌으며, 총괄기획자로 소각장을 ‘부천아트벙커 B39’로 변신시키는 일도 했다. 현재는 공공기관에서의 일은 접어두고, 경남 통영시로 거주지를 옮겨 통영 시민으로서 한몫하기 위해 시동을 거는 중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5대 이사(2018년~2021년)를 지냈다.
dodoso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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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하고 누릴 권리, 출발점은 여전히 유효한가
정책 방향을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
공감이 가네요
참여하고 누릴 권리, 출발점은 여전히 유효한가
정책 방향을 재구성하기 위한 질문
기대만점입니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나’의 태도를 재구성하면서 새로운 정책 방향을 찾아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문화예술교육의 지속성과
더불어 누구나 누리고 향유할 수 있는 정책으로
방향을 제시하고 만들어 가요.
문화예술관련 정책들이 모두를 위해 참여하고 누릴 권리가 보장되는지에 대한 좋은 글 잘 보았습니다. 정책입안자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소외된 지역/사람 등에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문화예술에 대한 향유를 단순히 감상에 그치지 않고 이해를 동반한 권리로서 보장하기 위해서는 교육과 그에 맞는 환경이 필요함을 알게 되는 기사여서 좋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