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틀

우리 삶과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이슈를 사유하고 질문을 건넵니다.

안전한 공간, 장미다방에서 만나요!

어려움에 처한 이를 위한 환대의 꽃 피우기

아나스와 자이납은 이집트 군부 독재 정권에 맞섰다는 이유로 군과 경찰에 쫓기고 고문을 당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목숨을 지키기 어렵겠다고 판단한 두 사람은 안전한 곳을 찾아 함께 고국을 떠났다. 군부를 몰아내고 민주 정부를 세운 나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난민법을 제정했고 전쟁과 피난을 경험한 이가 대통령인 한국에 정치적 망명을 하고 난민 신청을 했다. 해마다 수천 명이 한국에 찾아와 난민 신청을 하는데, 그중 난민 인정을 받는 사람은 고작 1% 남짓인 수십 명 정도인 걸 그들은 미처 몰랐다. 자이납과 아나스 사이에 아이가 생겼다. 아이가 안정적인

어디에나 있는, 그러나 쉽게 오지 않는

평화를 느낀다는 것

평화란 무엇일까? 누구나 평화를 원한다고 말하지만 평화가 무엇인지 물었을 때 주저 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평화에 대한 정의는 하나로 말할 수 없다. 평화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요한 갈퉁이 전쟁이나 직접적인 폭력의 부재 상태를 소극적 평화로, 그리고 그러한 전쟁, 폭력,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이고 문화적이며 간접적인 폭력까지 사라진 상태를 적극적 평화로 명명한 이유는 그 때문이다. 사회가 지닌 복잡하고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폭력까지도 사라진 상태가 평화라고 한다면 한 사회의 평화는 그 사회의 맥락에서, 또는 개개인의 관점에서 다르게 정의될 수

음악으로 건네는 회복의 인사

[좌담] 회복과 전환을 위한 꿈의 오케스트라의 역할

지난 4월 한 달간 코로나19로 인해 관계가 단절된 시민에게 회복의 가치를 전하고 사회적 지지를 보내기 위해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19개 거점 기관이 참여한 이번 프로젝트는 초등학교, 지하철역 등 지역 내 의미 있는 장소에서 대면 공연을 진행하거나, 지역 단체와 협업해 온라인 공연으로 회복의 메시지를 전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자립거점의 실행과 경험, 포스트코로나 시대 꿈의 오케스트라의 역할은 무엇일지 이야기 나누었다. 좌담 개요 • 일 시 : 2022년 5월 12일(목) 오후 4시 • 장 소 : 온라인 ZOOM • 참석자 : 꿈의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4인_차문호(창원,

나와 남 사이 역동적인 균형을 찾아서

사회적 면역력이란 무엇인가

전염병은 외부에서 균이나 바이러스가 몸으로 침투해서 일으키는 몸의 교란이다. 건강한 사람은 그러한 적(敵)들을 잘 막아내는 면역력이 강하다. 면역이란 무엇인가? 간단하게 말하면, ‘나’를 ‘내가 아닌 것’으로부터 지내는 시스템이다. 그런데 그 둘 사이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다. 우리 몸 안에는 엄청난 미생물이 서식하고 있는데, 그들이 건강하게 균형을 유지하면서 면역력을 지탱해주기 때문이다. 장내 세균만 해도 200조 개나 되고, 그 가운데 10% 정도는 유해균이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고 한다. 박테리아는 명백히 ‘내가 아닌 것’이고, 더구나 해로운 세균은 나를 위협하는 것이지만, 그들이 일정 비율 있어야만 면역

순서대로 피는 봄, 너마저!

거꾸로 보는 회복과 전환

순식간이긴 해도 봄 풍경엔 순서라는 게 있었다. 나목을 배경으로 산수유가 가장 먼저 노랑을 흘리고 목련이 손바닥 같은 꽃잎을 드리우면 길가에는 개나리가 늘어진다. 언덕과 산등성이에서 겨우 분간이 될까 말까 하는 진달래 연분홍을 찾아 헤매다 보면, 곧이어 벚꽃에 시선을 내주어야 할 시간이 된다. 바닥에서 시작한 새순의 가녀린 연둣빛은 낮은 관목에서 키 큰 교목으로 옮겨가다 결국엔 요란스러운 철쭉과 만나 본격적인 초록으로 마감한다. 그랬던 봄이, 봄꽃들이 언제부터인가 점점 더 빨리, 툭하면 순서도 없이 한꺼번에 봉우리를 터트린다. 아, 봄 너마저! 꽃이 피는 조건은 단순히 따뜻한

누가 보호망이 있는 세계를 지을 것인가

회복과 전환의 시작점

아무도 몰랐다. 2020년 3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우리가 서로에게 닿을 수 없는 시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은. ‘한 달이면 충분할 거야’란 막연한 믿음이 두 달이 되고, 반년이 되고, 한 해가 되고, 2년이 될 것이라고는.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다. 사람 사이도 그랬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괜찮을 거야’란 믿음은 마치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처럼 되어버렸다. 타인의 현존을 잃은 예술가 그래도 우리는 나름 훌륭했다. 그 긴 사회적 거리두기 속에서도 서로를 보살피기 위해 노력했다. 마스크가 일상이 되었고,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에서 고립되어 외로워진 사람들을

달라진 세상, 내면에 잠든 어린이를 깨우며

포스트코로나 시대, 예술교육의 역할

#1. 삼삼오오 모여 있는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서로를 보고 있지 않지만, 이들은 같은 온라인 게임에 접속되어 있다. 뭐하냐고 물으면 당연한 것을 왜 묻냐는 눈빛이 되돌아온다. “놀고 있잖아요.” #2. 쉬는 시간, 학생들이 스마트폰을 켠다. 잠금화면을 열고 SNS에 접속하고 사진첩에 들어가 스크롤을 오르락내리락한다. 이들은 쉬고 있다고 말한다. 접촉의 세계를 벗어난 우리는 접속을 통해 수많은 정보와 그리고 타인과 끊임없이 연결되고자 하는 열망에 불을 켠다. 한 학기를 만난 학생들이지만 식당에서 마주친 마스크를 벗은 얼굴은 낯설다. 이제 곧 마스크를 벗고 대면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는

돌아보고 되새기고 준비하기

[좌담] 존재하는 위험, 그 속에서 예술교육을 한다는 것

코로나 시대의 예술교육 위기를 건너는 방식, 지탱하기 위한 동력 달라진 환경과 새롭게 관계 맺기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며: 계획과 다짐 지난 4월 18일부터 실내외 마스크 착용 의무를 제외한 모든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었다. 약 2년 1개월 만의 일이다. 이제 위드-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본격화되겠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내재화된 두려움과 이미 달라진 일상의 어려움은 당분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로 인해 예술교육 현장 역시 많은 변화가 일어났고, 예술교육가에게 요구되는 역량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그동안 각자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마주친 고민과 문제들, 운영상의 어려움과 해결 과정 등에

머물고 그리며 환대하라

마을의 기도하는 예술가가 되어야 할 시간

지난 선거 기간에 나를 가장 우울하게 한 것은 여고 동창 카톡방이었다. 추억의 팝송이나 감동적인 동영상을 나누는 한가로운 방이었는데 선거 기간 즈음해서 혐오와 적대에 가득한 가짜 뉴스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가부 예산이 31조로 국방 예산과 같고, 여가부의 본질은 “좌파 교육”이라는 글도 있었다. 여가부 예산은 1조 4천억 원, 국방부 예산 54조 6천억 원의 2% 정도로 사실상 여가부는 예산이 없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상태다. 손녀들이 ‘몰카’ 때문에 공중화장실도 못 가고 갖가지 성폭력에 시달리는 현실은 모른 척하고 싶은 걸까? 정작 자기 삶은 돌보지

예술가이자 교육자로서, 지치지 않고 살아내기

일과 삶에 균형감을 더하는 자기 돌봄

돌본다는 것은 주로 아이를, 아픈 사람을,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보살피는 것이다. 자기 돌봄은 말 그대로 자신이 그 돌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보살핀다는 것은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라’ ‘나를 사랑하자’는 말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도 자기 돌봄은 늘 조금은 손에 잡히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자기 돌봄은 심신의 건강과 삶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말한다. 이는 당면한 자극과 고민이 적지 않은 현대사회에서 스트레스에 무너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아가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나서 그 소중함을

예술교육가의 곁에, 다정하고 삐딱한 비빌 언덕

[아르떼365] 2기 편집위원의 다짐

이선옥 편집위원 이선철 편집위원 임상빈 편집위원 제환정 편집위원 2022년 [아르떼365] 2기 편집위원이 ‘존재하는 위험’ 속에서 예술교육을 위해 고군분투해온 많은 분들을 향한 첫인사를 건넨다. 또한 지난 2년간 코로나19 속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일상의 따뜻한 위로를 전하고 관점을 전환하는 질문을 던져온 예술교육가들과 [아르떼365] 독자들과 함께 여전히 녹록지 않을 앞으로의 여정에 동행하는 편집위원의 다짐과 응원을 전한다. 외면하지 않는, 다정한 격려 이선옥_수원문화재단 문화도시센터장 “낡은 것은 가고 새것은 아직 오지 않았다. 이러한 공백 상태에서는 아주 다양한 병적인 증상이 출현한다.” 신자유주의 헤게모니의 위기와 전망을 담은 낸시 프레이저의

풍류, 예술이 삶이 되는 시간

삶을 향하여 흐르는 예술적 체험

예술이라는 사치 지금처럼 예술가에게 어려운 시대가 있었을까? 제4차 산업혁명의 파도가 거세게 몰아닥칠 것이라는, 대비하지 않으면 예술가도 방법이 없을 것이라는 위협 속에서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코로나19라는 복병이 등장하여 이전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주문하고 있다. 관객은 스마트기기 앞에 존재하(고 있다고 여겨지)거나, 마스크로 인해 온전한 소통이 어려운 채로 객석에 앉아있다. 정신없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려면 발 빠르게 영상에 적합한 공연을 만들라고 한다. 아니면 꼭 공연장을 찾을 수밖에 없는 무언가를 제시해야 한다. 영상이 대세가 될수록 공연장 공연은 더욱더 귀하게 여겨질 거라는 전망도 있지만

공들여 떼고 갈고 창조하는―DNA

주먹도끼에 새긴 문화의 본질

박영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드라마 <왕룽일가>는 88올림픽을 기점으로 새로운 격변의 시기를 보내던 1980년대 말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던 그 시절의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버무린 TV 연속극이다. 특히 뽀글뽀글 촌스러운 파마머리에 새까만 선글라스를 걸치고 능청스럽고도 기름진 목소리로 “누님 예술 한번 하시죠”를 무기 삼아 변두리 카바레를 주름잡던 삼류 제비 ‘쿠웨이트 박’은 그 시절을 기억하는 세대에게는 지금도 아련한 추억으로 떠오르는 인물이다. 1970년대는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수많은 속칭 ‘노가다’들이 열사의 건설 현장으로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떠나던 시절이었다. ‘쿠웨이트 박’은 가족을 위해 머나먼 타국으로 돈

절지천통 시대-격동하는 예술을 위하여

예술의 본질에 관한 서론

절지천통(絶地天通)이라니. 초장부터 무슨 낯선 말일까 싶을 거다. 이건 지천통(地天通) 즉 “땅의 입장에서 하늘과 통해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 통해있는 상태가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 끊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 그게 무슨 뜻인가. 주변을 잘 보라. 예술가들은 넘쳐나는데 정작 예술 현장[scene]의 파노라마는 격동하지 않고 개별적인 예술 작업은 여전히 과거의 모더니즘 언저리를 다리 다친 물방개처럼 뱅글뱅글 돌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절지천통 상태에서는 이런 질문에 극히 취약해진다. 사실 아득한 태초의 낙원을

예술은 어떻게 삶을 흔들고 갈망하게 하는가

빼뻘에서 마주한 예술의 질문

2018년 가을 한국전쟁과 기지촌을 주제로 한 작업을 지속해오던 당시 나는 고심 끝에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기지촌 여성의 몸을 소환하여 망자의 고통을 현재의 ‘나’ – 퍼포머가 입음으로써 기억해내는 영상작업 <몸, 부름, 말> 그리고 연결된 주제의 사진, 텍스트드로잉들을 조심스레 전시에 내놓았던 적이 있다. 단지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 단 한 사람의 특별한 서사가 아닌 한국 땅에 수많은 여성의 삶이라는 점, 그 고통이 현재로 연결되어 있음에도 제대로 문제해결이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리서치와 현장 답사를 통해 인식해가면서 예술을 통해 내가 할 수 있는

잃어버린 어둠을 찾아서

예술의 본질과 마주하며

“우리의 탐험이 끝나는 때는 시작이 어딘지 알아내는 순간이다.” – T.S. 엘리엇 – 예술의 본질에 대한 원고청탁을 호기롭게 받았으나,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자판을 두드릴 수 없는 실어증에 빠져버렸다. 허세 한 번 부려봤다가 된통 독박 쓰게 생긴 것이다.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말해야 하는 이 참담함, 이 생소한 고통에서 허우적거리는 비루한 정신머리는 자꾸만 도망치려고 한다. 형광등 불빛이 닿지 않는 책상 밑 그늘막으로, 두꺼운 이불 속으로, 어둠으로, 자궁으로 기어들어 가려고 한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것은 내 안의 옹졸함과 편협함 그리고 비겁함이기 때문에 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