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능을 통제하는 지성, 아름답고 모순된 실존의 영역

디지털 체계와 예술의 고유함

1. 인공지능이 시와 문학작품을 쓰고 작곡을 할 뿐 아니라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만들어내는 시대가 되었다. 인간이 만든 것과 구별할 수 없는 정도를 넘어 심지어 어떤 작품들은 일류 예술가들의 창작에 뒤지지 않는다. 조만간 인간의 창작 능력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탁월한 작품이 생겨날 날도 멀지 않았다.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에 미루어볼 때 예상을 넘어 곧 현실이 될 것이다. 이런 시대에 도대체 인간이 창작하는 예술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근본적으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인간적 예술의 고유함이 있기나 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이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근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컴퓨터, 인터넷, 챗GPT, SNS, 인공지능, 챗봇 등 알고리즘 체계로 작동하는 모든 현상을 간단히 디지털 문화로 총칭하기로 하자. 인간이 자연적으로 인지하고 사용하는 정보전달 체계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는 것(analogue)이라면, 디지털 체계는 0과 1, 온-오프(on-off)의 이진법으로 작동하는 단속적 정보전달 체계를 일컫는 말이다. 그것은 물질과 정보, 원자(atom)와 비트(bit)의 차이이기도 하다. 디지털 체계가 계산을 실행하는 과정은 알고리즘 시스템을 통해 이루어진다.
디지털 체계의 대표적 현상인 인공지능은 흔히 두 가지로 구별된다. 약한 인공지능은 알고리즘 체계로 주어진 특정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의 지능을 말하며, 강한 인공지능은 개별적 문제 영역을 넘어 사람과 같은 추론, 문제해결, 의사소통, 자아의식, 감정, 신념 등 인간의 모든 지능적 요소를 지닌 인공지능을 의미한다. 약한 인공지능은 지금 우리가 보듯이 놀라울 정도로 발전하면서 인간이 예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탁월한 계산 능력, 그를 통한 문제해결 능력과 그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오늘날 우리는 그 결과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그에 비해 강한 인공지능은 현재까지는 가능성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인간과 같은 지능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인간 지능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지만, 아직 인간은 자신의 지능이 어떤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어떻게 작동하는지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강한 인공지능, 즉 인간과 같은 마음과 의식, 지능을 지닌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것은 여전히 상상의 영역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다. 약한 인공지능의 놀라운 발전 속도를 보면서 사람들은 언젠가 이 지능이 자율적으로 생각하고 추론하면서 인간의 지능과 같은 영역에 도달하지 않을까 예상하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설사 그런 지능이 가능하더라도 그것은 인간의 지성과는 다른 차원의 것일 수밖에 없다. 그 이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지능에 대한 본질적 이해가 필요하다.
2. 자기복제를 수행하는 유기물에서 진화해 온 생명의 역사는 어느 순간 의식을 생성하기에 이르렀다. 의식과 자의식은 생명체의 진화 역사에서 독특한 새로운 영역임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생명체는 어느 순간 외부적 인지 경험과 사건을 기억하고 이를 지각하는 의식을 진화시키기에 이른다. 이는 전적으로 생명체가 개체로서 생존하고 종으로서 번식하기 위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조건이었다. 아니 이런 조건이 가능했기에 오늘날 우리가 보는 생명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옳은 표현이다. 그 끝자락에서 생명은 스스로를 지각하고 인지하는 자의식을 진화시키기에 이르렀으며, 이 생명체를 우리는 호모(homo) 종이라 부른다. 인간은 이 자의식에서 마음과 생각을, 지성과 감정을 간직하게 되었다. 그것들은 디지털 운영체계가 아니라 외부 세계와 내부 세계의 상호작용을 통해, 또한 그 시간과 과정 안에서 작동한다. 이러한 작동 방식과 과정은 전적으로 고유하며 상호작용 안에서 자율성을 토대로 한다. 이것이 알고리즘 운영 방식으로 작동하는 디지털 체계와 유기체로서의 생명체가 작동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차이다.
디지털 운영체계와 인간의 지능을 상호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가령 달리기와 비교해보자. 인간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포르쉐를 추월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포르쉐는 어디로 달려야 하는지, 왜 달리는지, 달리는 의미는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또한 달려야 함에도 이를 포기하고 되돌아가지도 못한다. 알고리즘 체계로 목표가 설정된 프로그램은 자기모순과 자기부정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의 마음과는 전혀 다르게 운영된다. 인간의 지능은 일인칭(first-person)적이지만, 인공지능은 삼인칭적이다. 그 지능은 알고리즘 체계에서 심화학습(deep learning)을 통해 초지능으로 발전할 수는 있지만, 지능을 넘어 성찰하고 반성하는, 이해하고 해석하는 지성으로 발전하지는 못한다. 지성은 자율적이며 자기모순과 자기부정을 수용할 수 있는 자유도를 유지할 수 있다. 초지능은 인간과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지적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의미와 목적을 스스로 설정하지는 못한다. 인공지능은 인간의 모든 실존성을 이해하거나 언어화하지 못한다. 죽음을 이해함으로써 스스로를 부정하거나 초월하는 인간의 실존성을 인공지능이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3. 그런 까닭에 인공지능이 만들어내는 지식의 ‘알지 못하는 영역(terra incognita)’이 생겨날 수 있지만, 그 지능이 자율적으로 기능함으로써 어떤 창조적이거나 파멸적인 결과를 만들어낼 수는 없다. 문제가 되는 것은 목표를 설정한 프로그램이 자율적으로 추론하고 계산함으로써 인간이 도저히 통제할 수 없는 지식이나 결과를 초래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생태계를 파괴하는 요소를 제거하라”는 명령어를 수행하는 킬러로봇은 초지능적 결과를 만들어 무엇보다 먼저 인간을 제거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을 통제하지 못할 때 인공지능은 파멸적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인공지능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탁월한 예술을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것을 이해하고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자율적 의식, 인간의 지성이다. 예술작품의 아우라(aura)를 결정하는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의 예술적 지성이다.
자율성(autonomy)은 자아의식을 지닌 지성이 스스로를 결정하고, 그 의미를 자각하고 성찰하는 능력이다. 인간의 지성은 자율성을 지닌다. 자율성은 모순적이며 고유하다. 이는 위험과 신비로움, 비참함과 존엄함, 선과 악의 양면성을 가능하게 하는 인간만의 특성이다. 인격성은 자율성이 있기에 가능한 개념이다. 그에 비해 탁월한 계산 능력과 알고리즘을 수행할 수 있을지언정 자율성을 지니지 못하는 인공지능은 인간의 지성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예술적 가치를 알고리즘화할 수는 없다. 디지털 체계에 자연어를 비롯한 생명체의 영역, 그 삶과 실존, 그 의미 세계를 학습시키기 위해서는 그에 대한 인간의 이해와 해석이 필요하다. 그것은 전적으로 고유하며, 의미론적이다. 그 대표적 영역이 예술과 철학이다. 인공지능이 예술과 철학을 만들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의 의미와 아우라는 인간 지성의 영역에 속한다. 인공지능이 이해하지 못하는 의미와 가치, 그 목적은 인간의 고유한 지성 때문에 해명이 가능해진다.
관건은 인공지능이 생성한 그 ‘알지 못하는 영역’을 통제하는 인간의 지성적 노력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것은 그에 걸맞은 예술적 감수성과 디지털 문해력이다. 그 감수성은 알고리즘적 지식의 영역이 아니라, 여전히 예술과 철학, 실존과 의미를 담지(擔持)하는 인간의 존재론적 영역에 속한다.
신승환
신승환
가톨릭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 독일 뮌헨대학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성찰』(2003), 『문화예술교육의 철학적 지평』(2008), 『생명철학』(2023) 등 다수의 저서와 역서가 있으며, 「근대와 탈근대의 문화해석학」 등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였다.
sehanul76@gmail.com
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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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4월 08일 at 1:35 PM

    지능을 통제하는 지성, 아름답고 모순된 실존의 영역
    디지털 체계와 예술의 고유함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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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4월 08일 at 2:46 PM

    지능을 통제하는 지성, 아름답고 모순된 실존의 영역
    디지털 체계와 예술의 고유함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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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04월 15일 at 9:26 AM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온 시대, 인간 예술의 의미와 고유함에 대해 깊이 있게 알려주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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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경 2025년 04월 16일 at 11:51 AM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예술과 철학의 의미와 아우라는 인간만의 실존적 지성과 감수성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어가는 차별성을 만들어야하는 몫으로 남아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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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성 2025년 04월 19일 at 6:34 PM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달리기로 비유하신 부분이 많이 와닿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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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4월 08일 at 1:35 PM

    지능을 통제하는 지성, 아름답고 모순된 실존의 영역
    디지털 체계와 예술의 고유함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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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4월 08일 at 2:46 PM

    지능을 통제하는 지성, 아름답고 모순된 실존의 영역
    디지털 체계와 예술의 고유함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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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정훈 2025년 04월 15일 at 9:26 AM

    인공지능이 예술 창작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온 시대, 인간 예술의 의미와 고유함에 대해 깊이 있게 알려주신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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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혜경 2025년 04월 16일 at 11:51 AM

    인공지능이 아무리 발전하더라도, 예술과 철학의 의미와 아우라는 인간만의 실존적 지성과 감수성에 의해 비로소 완성되어가는 차별성을 만들어야하는 몫으로 남아 있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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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찬성 2025년 04월 19일 at 6:34 PM

    인공지능과 인간의 차이를 달리기로 비유하신 부분이 많이 와닿네요~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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