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환의 시간, 다시 질문을 시작하자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집담회’를 진행하며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은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집담회’를 운영 중이다. 별도 방청객이 없는 형식의 특성상 외부로 많이 알려지진 않았지만, 4월 여섯 차례에 걸친 집담회를 통해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질문과 의제를 발굴해 5월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주간 연계 ‘문화예술교육 포럼’에서 나누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제도화 이후 남겨진 과제들
20년, 한국에서 문화예술교육이 제도·정책 영역 진입 후 지난 시간. 문화예술교육의 변화는 드라마틱하다. 얼마 전 발간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20년 백서」를 보면 예산과 참여 인력, 기관, 시설, 전문인력 등의 양적 성장은 가파르게 이어져 왔다. 그뿐만 아니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은 글로벌 차원에서도 뚜렷한 위상을 확보했다. 2010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개최와 ‘서울 어젠다’ 선언, 2024년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채택을 기억해 둘 만하다. 한국은 근대화 후발주자로서 모든 영역에서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는데, 이는 문화예술교육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문화예술교육은 순식간에 양적 성장을 일궈왔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세계 문화예술교육 지형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행위자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동시에 양적 팽창에 가려온 질적 한계와, 글로벌한 성과와는 다르게 고착되어 가는 정책적 관성 역시 만만찮다.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과 진흥원 설립 이후, 문화예술교육은 국가 정책의 주요 의제로 부상하였으나, 역설적으로 초기 문화 운동적 활력과 예술적 야생성은 제도라는 틀 속에 박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제도는 스스로를 복제하며 조금씩 딱딱해지는 경향성을 보인다. 외부의 자극이 없는 제도는 관성화되고 관료화되는 경로를 벗어날 수 없다. 물론, 공공 문화예술교육이 20년을 이어져 오는 동안 숱한 도전과 질문이 오갔지만, 현실의 각종 한계에 가로막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기 어려운 부분이 많아진 것이 사실이다. 지금 다시 전환이라는 키워드로 성년이 된 문화예술교육을 새롭게 들여다보는 이유다.
여기에는 현실적인 이유도 포함된다. 올해 문화체육관광부의 ‘인문정신문화 사회적 확산 사업’을 진흥원이 맡게 되었다. 인문과 문화예술교육의 관계 속 이 시대 문화예술교육의 지평에 대한 고민, 나아가 사업의 확장과 전환이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된 것이다. 2028년으로 예정된 ‘제3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 수립의 밑돌을 놓는 작업으로서의 의미도 빼놓을 수 없다.
질문을 던지며 시작되는 전환
집담회는 총 6회차로 연구자, 기획자, 현장 단체 및 예술교육가, 행정가, 인문 주체 그룹으로 나누어 진행 중이다. 각 테이블에는 공통 질문과 영역별 질문이 주어졌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논의를 촉발하기 위한 마중물로서의 장치다. 질문 내용은 아래와 같다.
공통 질문 ⦁ 당신이 문화예술교육 활동·현장 속에서 경험하면서 떠오르는 반복된 질문은?
⦁ 각자 경험한 문화예술교육에서 ‘전환’이 필요하다면, 어떤 질문을 던지고 싶나요?
연구자 ⦁ 문화예술교육 20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 문화예술교육의 성과를 판단하는 기준(지표)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기획자 ⦁ 문화예술교육 20년 동안 무엇이 어떻게 변화했나요?
⦁ 지원 구조의 한계를 벗어난 실험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예술교육가·단체 ⦁ 새로운 시도나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 어떤 변화가 있으면 문화예술교육이 더 좋은 무대가 될까요?
행정가 ⦁ 문화예술교육의 정책 목표를 현실에 어떻게 적용하고 있나요?
⦁ 새로운 시도나 전환을 어렵게 만드는 요소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인문 주체 ⦁ 문화예술교육과 인문의 본질적 연관성은 무엇일까요?
⦁ 인문과 문화예술교육이 만나야 할 이유(근거)는 무엇일까요?
현장에서는 수많은 질문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어찌 보면 이번 집담회는 질문을 재발견하고 수집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도 질문에 스스로 답해보기를 바란다. 가능하다면 아래 댓글에, 질문에 대한 답이나 다른 질문을 제시하는 분들이 있다면 좋겠다. 이번 집담회 준비와 진행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 주체들의 연결 감각이 옅어졌다는 이야기가 많았다. 집담회를 계기로 사소하게라도 질문을 공유하고 감각을 가로지르는 일들이 끊이지 않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자기만의 질문을 발견하고 따라가는 일과 긴밀하게 연관이 있다고 할 때, 질문의 축적은 결국 사회적 임계점을 만들어내는 기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집담회 전체 내용을 정리하고 공유하는 일은 일정이 마무리되고 난 후에 별도로 진행될 예정이니, 이 글에서는 논의의 일부만 소개한다.
답에 이르지 못한 질문들
연구자 집담회에서는 문화예술교육 개념의 혼돈, 시혜적 문화예술교육의 문제, 새로운 주체 형성의 방향, 문화예술교육의 성과 목표와 측정을 위한 지표 설정 등의 문제가 다각도로 논의되었다. 참여자들이 대체로 기능 중심 교육과는 다른 영토를 확장하며 문화예술교육이 하나의 생태계로 자리 잡았다는 것에는 동의하면서도 예술교육의 확장성과 문화교육과의 차이, 교차 지점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는 양상이 흥미로웠다. 기존의 통념을 반복하거나 시혜적인 운영이 아니라 경험하지 못한 것을 전달하며 ‘나쁜 주체’(탈규범적인 주체)를 만들어내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다.
기획자들의 논의는 좀 더 구체적인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문화예술교육 20년을 통해 형성된 지원 구조가 하나의 틀로 작동하며 규격화를 강제한다는 의견, ‘기획자’의 역할과 개념 규정에 대한 논의, 컨설팅·평가 구조 개선의 필요성, 창작으로서의 교육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었다. 사업 예산의 10% 내외는 사업의 운영과 평가를 위해 배정할 필요가 있으며, 컨설턴트의 역할이 일회성 방문이나 면담을 통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을 함께 하며 현장을 읽어주고 역량을 끄집어내는 길잡이 역할로 자리매김하기를 바란다는 제안이 있었다. 창작으로서의 교육을 논하며 문화예술교육을 예술가의 창작 행위와 분리하지 않는 수행적 예술에 대한 논의가 인상적이었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질적 성과를 양적으로 확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내는 폴리시랩(Policy Lab) 형태의 필요성이 제기되기도 했다.
담론장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있다. 이야기는 추상화되고, 해결 방안이 제시되지 않는 논의는 공전하고, 같은 질문이 반복되는 게 공론장이라는 인식이다. 맞다. 수많은 논의가 시기별로 거푸 이어져 왔다. 실제로 진흥원에서 발행한 「문화예술교육 주요 담론장 자료 요약집」(2024)에는 포럼과 콜로퀴움, 라운드테이블, 간담회, 워크숍 등 줄잡아 40여 개의 담론장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집담회 기획을 하면서도 이 지점이 우려되었다. 우리가 불필요한 반복을 되풀이하는 건 아닐까?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현장의 필요와 요구가 제도와 정책의 핵심에 가닿지 못했기 때문에 논의의 공전이 일어나는 것이다. 같은 이야기가 반복된다는 것은 여전히 그 문제가 해결 지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반복이 두려워 현실을 외면할 수는 없다. 반복은 허무의 알리바이가 아니라 집요함의 근거여야 한다. 전환은 새로운 답을 찾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오래된 질문을 새로운 맥락에서 다시 던지는 데서 시작되기도 한다. 지금, 여기를 담아내지 않는 질문은 부질없다. 이제, 다시 질문을 시작하자.
안태호
안태호
한국문화정책연구소 부소장(이사). 학창 시절 좌절된 예술가의 꿈을 뒤로하고 예술경영을 공부한 뒤 몇몇 기관과 단체에서 문화정책 및 기획 관련 일에 관여해 왔다. 음풍농월, 미음완보의 느긋하고 여유로운 삶을 몇 해째 꿈만 꾸고 있다. 함께 쓴 책으로 『나의 아름다운 철공소』 『노년 예술 수업』 『생애 전환 학교』 등이 있다.
redanth22@gmail.com
페이스북 @taeho.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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