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웹진 [아르떼365] 3기 편집위원 임기가 올해 3월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지난 2년간 12개의 주제로 이어온 논의와 질문들을 되짚어보며, 그 여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정리하고 매듭을 짓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디에 서 있으며,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며 느낀 소회와 함께 그 물음을 나누었다. 그날의 깊은 대화를 세 편의 기사로 전한다.
- [글 싣는 순서]
- ① 2024-2025 [아르떼365]가 써 내려간 서사는
- ② 지금 여기, 문화예술교육의 좌표는
- ③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잘 짜인 틀 vs 작동하지 않는 현장
김선아 앞서 이야기 나눈 것처럼 우리는 격변기를 지나왔다. 개인적으로도 격변기를 지나면서 막 쓸려가고 있는 건 아닌지, 어디로 가든 방향성은 가지고 있는지 고민하게 된다. 문화예술교육 20주년을 맞아서 뭔가 새롭게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시야를 어디로 향해야 할지 고민되는 시점인 것 같다. 웹진 편집회의에서는 평소 연구나 예술교육 사업에서 만나기 어려운 분들과 깊이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았고 배우는 게 많았다. 가장 좋았던 점은, 정책연구,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문화예술교육실천가의 시선, 문화예술 기획의 입장 등 편집위원 각자의 분야와 현장이 절묘하게 반영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현재 위치를 조금씩 다르게 보고 계실 것 같다. 어떤 진단이라기보다는, 편집위원 각자의 입장이나 시선으로 인식되는 상황이나 현실을 공유해달라.
김규원 21세기 초에 ‘창의한국’으로 현대적인 문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궤적을 밟아왔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도 그때 만들어졌다. 요즘 느끼는 건, 문화예술, 문화예술교육에서도 상상력이 형식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힘을 다 잃어버렸다. 행정, 예산과 절차에 의한 문화예술이 되면서 힘이 빠지고 있는 걸 느낀다. 행정화 같은 꽉 막힌 부분이 한계에 온 것 같다. 그 아래 있는 힘이 잘 분출할 수 있는 어느 순간이 필요한 것 같다. 문화예술을 계속 수치나 제도, 법으로 통제하려는 이 부분이 현장에서 더는 용납이 안 되는 상황이다. 수영할 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가라앉는다. 그냥 둥둥 떠 있는 게 아니라 전진하기 위해서는 행정과 제도, 법이 어느 정도 힘을 빼고 물을 저으며 나아가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AI 시대 이후 많은 분야에서 쓸모를 고민한다. 문화예술교육도 변화의 흐름, 허물어지는 제도, 불필요성을 조합해서 힘을 빼고 부드럽게 연체동물처럼 유영할 수 있어야 한다. 지금이 그런 유연함을 가져야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인 것 같다.
김선아 상상의 힘은 사라지고 행정과 형식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으로 굳어져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것들이 경직되어 있을까.
김규원 문화예술교육은 학교-사회 등 칸막이가 있지만, 그나마 그 안에서 다양하게 할 수 있다. 문화예술 정책 전반으로 보면, 목표와 예산에 딱 맞춰서 모든 걸 해야 하고, 계속 점검하고 평가하고 성과를 내도록 한다. 굉장히 자유롭게,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사업인데도 성과가 표로, 수치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안 되는 거다. 규정을 좀 벗어나고, 각자의 상황이나 지역에 맞게 어떻게 할지 생각하는 데 힘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제는 그러한 설계와 합리성, 제도가 한계에 와있다고 본다.
김선아 저도 문화예술교육사 교육과정을 받아 보면 심플하게 표에 들어가 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한 단어 뒤에 담긴 내용이 너무나 많다. 그 괴리가 너무 크고, 문화예술 분야나 지역마다 모두 다를 텐데 다 똑같은 틀에 넣었을 때의 한계나 차이를 어떻게 나타낼 수 있을까. 지역이나 현장을 지원하기 위해 사업의 형태로, 정책의 형태로 만들었던 것이 결국 거꾸로 문화예술교육을 규정하는 틀이 되어버린 것 같다.
김규원 처음에는 진흥하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좋은 의도로 만들었는데, 그 틀이 고정되어 버린 거다.
김자현 정책 사업의 지원 지침이나 가이드 등은 고도화될 때마다, 사회적 신뢰 비용이 너무 커진 것은 아닌지 생각할 때가 있다. 점점 형식화된 상상력에 익숙해져, 국가의 문화예술교육 예산이 증가한들 우리는 창조적으로 설계할 수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 스스로 강박에 갇혀 제한된 매뉴얼과 지침 안에서만 사고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기존의 방식과 더불어 다른 상상이 필요한 때다.
동시에,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와 성과를 사회적 가치와 영향, 나아가 사회적 비용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질 때, 형식화된 상상력을 깰 여지도 생기지 않을까.
최근 유네스코는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이행지침을 발표하며 기존의 ‘예술교육(Arts Education)’을 ‘문화예술교육(Culture and Arts Education)’으로 조정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도 작년부터 문화다양성 정책 사업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올해에는 인문정신문화 정책 사업 전담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국제사회와 국내 정책의 변화가 공고화된 문화예술교육의 틀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동시에, 문화예술교육의 효과와 성과를 사회적 가치와 영향, 나아가 사회적 비용과 어떻게 연결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런 사회적 공감대가 만들어질 때, 형식화된 상상력을 깰 여지도 생기지 않을까.
최근 유네스코는 문화예술교육 프레임워크 이행지침을 발표하며 기존의 ‘예술교육(Arts Education)’을 ‘문화예술교육(Culture and Arts Education)’으로 조정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도 작년부터 문화다양성 정책 사업을 담당해오고 있으며, 올해에는 인문정신문화 정책 사업 전담기관으로 지정되었다. 이러한 국제사회와 국내 정책의 변화가 공고화된 문화예술교육의 틀에 균열을 내고, 새로운 전환의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전환의 신호, 반복의 경계
김선아 정책이라는 틀이 필요하면서도 조심스러운 것 같다. 인문정신문화와 문화다양성 사업을 말해주셨는데, 어떤 맥락에서 이 키워드(사업)들이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되었는지 궁금하다. 이 키워드를 받아 실천하는 것은 현장이다. 이것이 전환이나 확장이 될지, 해체가 될지 모르겠지만 현장에 큰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김규원 걱정되는 건 정책 행정의 틀로 큰 사업이 움직인다는 거다. 문화예술교육 안에는 이미 문화다양성도 인문정신문화도 자연스럽게 녹아있고, 거기서 더 나아가서 생태나 기술 등 다양한 예술교육이 일어났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안에 큰 사업명으로 들어오게 되면 이전처럼 자연스럽게 섞이기 힘들 것 같다. 사업이 ‘따로따로’ 되지 않도록 계속 고민해야 한다.
김자현 전환일지 균열일지는 잘 모르겠지만, 지평의 확장은 될 것 같다. 20년 전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정책적 용어가 탄생한 것도 기존 기능 중심, 엘리트 예술교육에 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되었다. 20년이 지난 지금 비슷한 맥락 안에서 인문정신문화나 문화다양성이라는 큰 키워드가 들어오게 되었다. 문화예술교육 안에서 어떻게 해석할지가 중요한 것 같다.
김규원 두 사업은 여러 기관을 거쳐 왔다. 그 기관의 사업과 화학적 결합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 가장 큰 요인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과 화학적 결합을 만들어 가면서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
김선아 앞으로 이렇게 외부에서 새로운 주제가 파도처럼 들어올 수 있다. 그럴 때 빠르게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라는 것을, 그랬을 때는 상상력 없는 형식만 남는다는 것을 이제는 경험으로부터 학습한 것 같다.
서지혜 원래 있던 것들과 자연스럽게 결합하면 더 풍부한 실천이 될 수 있는데, 새로운 범주가 생기는 순간 그것은 별도의 형식과 체계를 갖춰야 한다는 인식이 뒤따르곤 한다. 그 결과 현장은 유연하게 대응하기보다 범주에 맞는 모양을 갖추는 데 몰두하게 되고, 문화예술교육 역시 다른 영역과 연결되기보다 분리된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지난 20년간 진흥원을 주축으로 정책적 드라이브가 걸리며 문화예술교육은 많은 것을 상상해 왔고, 그것은 환상이 아닌 건강한 상상의 실천적 확장이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실천이 기획 사업의 형태로는 구현되었지만, 그 필요성과 가치를 뒷받침하는 논리, 이를 함께 세워갈 주체들의 기반, 그리고 사회적 합의를 이루며 토양을 만드는 데까지는 충분히 나아가지 못한 데에서 비롯된 현상은 아닐까.
지방 이양 이후 지역은 이 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지역에서 정책의 기획부터 실천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사업의 이관이 아니라 지역의 풍토 속에서 질문을 다시 만들고 언어를 구성할 시간과 예산, 권한 부여와 위임, 안정적인 의사결정 구조다. 그런데 중앙을 통해 축적된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하나의 기대치이자 전형으로 작동하면서, 지역은 오히려 기존의 형태에 머문 채 방향을 잃는 경우도 있다. 결국 건강한 상상이 건강한 풍토로까지 이어지기에 20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지역에는 이 20년이 남긴 가능성에 대한 비전과 문제의식, 사람이 있다. 문제는 정책과 예산, 의사결정체계가 불안정하고 자유도가 낮은 조건 속에서 지역에 쌓인 자산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구성해가는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하기 어렵다.
지방 이양 이후 지역은 이 문제를 가장 첨예하게 느끼고 있다. 이제는 지역에서 정책의 기획부터 실천까지 감당해야 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단지 사업의 이관이 아니라 지역의 풍토 속에서 질문을 다시 만들고 언어를 구성할 시간과 예산, 권한 부여와 위임, 안정적인 의사결정 구조다. 그런데 중앙을 통해 축적된 문화예술교육 경험이 하나의 기대치이자 전형으로 작동하면서, 지역은 오히려 기존의 형태에 머문 채 방향을 잃는 경우도 있다. 결국 건강한 상상이 건강한 풍토로까지 이어지기에 20년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걸 느낀다. 그럼에도 지역에는 이 20년이 남긴 가능성에 대한 비전과 문제의식, 사람이 있다. 문제는 정책과 예산, 의사결정체계가 불안정하고 자유도가 낮은 조건 속에서 지역에 쌓인 자산이 문화예술교육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구성해가는 현장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낙관하기 어렵다.
위기를 넘는 변화의 방향
김자현 현재 문화예술교육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누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서지혜 지역별 격차는 여전히 크다. 그런데 그 격차는 때로 예술교육을 맡은 담당자 한 명으로 인해서 좁혀지기도 한다. 경험적으로, 초기 꿈의 오케스트라 사업을 상당 기간 깊이 있게 담당한 사람이 팀장으로 성장하여 예술교육 전반을 바라보는 사고 체계가 확보된 경우도 본다. 그러나 설령 질 높은 문화예술교육 사업의 경험으로 전문성을 쌓은 사람이 있더라도, 빈번한 인사이동 속에서는 그 경험과 관점의 축적 역시 오래 이어지지 못한다. 문화예술교육이 20년의 세월을 지나왔음에도 인적 토대가 충분히 두터워지지 못한 것은, 순환보직 체계의 공공기관 중심으로 작동해온 우리 분야의 구조적 취약성을 드러낸다. 돌이켜보면 문화예술교육은 사업은 부지런히 축적해왔지만, 그 과정에서 성장한 사람들과 맺어진 다양한 관계를 남기고 지속시키는 데에는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것 같다.
현장 바깥에도 예술교육의 질적 경험으로 결합했던 개개인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생태계가 되려면 비예술 분야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포함해 여러 층위의 연결과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문화파출소 같은 획기적인 사업도 시도하여 길게 수행했지만 관계가 깊어지거나 이어질 수 있는 체계로 생태계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진흥원이 이런 일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해외에는 이를 떠받치는 비영리단체나 중간조직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용역의 형태로 수렴되기 쉽다. 하지만 중간조직의 역할은 단순한 사업 수행에 있지 않다. 이들은 현장과 제도 사이를 오가며 언어를 번역하고, 흩어진 사람과 경험을 연결하며, 일회성 사업으로는 남지 않는 관계의 지속성과 생태계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공공기관이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실험과 매개, 신뢰 형성의 과정을 떠받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조직들이다.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안에서 이러한 존재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간의 기반은 여전히 허약하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빈자리를 함께 메워갈 것인가.
현장 바깥에도 예술교육의 질적 경험으로 결합했던 개개인이 많다. 하지만 그것이 생태계가 되려면 비예술 분야 기관과의 파트너십을 포함해 여러 층위의 연결과 관계 형성이 필요하다. 문화파출소 같은 획기적인 사업도 시도하여 길게 수행했지만 관계가 깊어지거나 이어질 수 있는 체계로 생태계를 형성하지는 못했다. 진흥원이 이런 일을 모두 감당할 수는 없다. 해외에는 이를 떠받치는 비영리단체나 중간조직이 존재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러한 조직이 지속적으로 살아남기 어렵고 결국 지원사업을 수행하는 용역의 형태로 수렴되기 쉽다. 하지만 중간조직의 역할은 단순한 사업 수행에 있지 않다. 이들은 현장과 제도 사이를 오가며 언어를 번역하고, 흩어진 사람과 경험을 연결하며, 일회성 사업으로는 남지 않는 관계의 지속성과 생태계의 기억을 만들어내는 존재다. 공공기관이 직접 감당하기 어려운 실험과 매개, 신뢰 형성의 과정을 떠받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조직들이다.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안에서 이러한 존재들이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민간의 기반은 여전히 허약하다. 결국 남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 빈자리를 함께 메워갈 것인가.
김규원 그러려면 기관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 사업은 줄이고 플랫폼 역할로 공공적 성격을 가진 민간이 필요로 하는 부분을 연결하는 조직이 되어야 하는데, 사실 여러 측면에서 쉽지 않다.
최도인 공공기금은 재정에 의한 통제 구조이다. 우리나라 문화 정책은 많은 부분을 국가, 즉 중앙 정부의 재정이 컨트롤하면서 커왔다. 20년 전 ‘창의한국’이라는 새 예술정책이 문화 행정과 정책을 상당 부분 구조화시켰다. 결국 그 구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재정이 투입되고, 세금은 투명하게 집행되어야 하니까 그만큼 행정의 통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당시에도 소수지만 그런 문제 제기와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다. 문화예술 정책뿐만 아니라 산업 정책도 마찬가지로 여러 층위가 얽혀 있는 것이다. 다시 사회 계약을 맺지 않고서는 계속 반복될 수 있다. 누가 권력을 쥐느냐에 따라 어젠다가 바뀌고 재정과 행정이 출렁거리는, 수직적 관계에서 흔들리는 구조가 되는 거다. 결국 점진적으로 사업화된 예산을 다른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난다.
서지혜 예술교육은 더 이상 부가적인 프로그램이나 선택적 지원의 대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이제는 공교육과 같은 공적 가치재로서 그 사회적 필요를 인정받고, 그에 걸맞은 제도와 조건을 다시 고민하고 갖추어야 한다. 과거 공교육이 산업사회의 요구에 부응하는 제도적 역할을 수행했다면, 오늘의 사회에서 예술교육은 인간의 감각과 상상력, 관계 맺기와 응답의 힘을 길러내는 공적 토대가 되어야 한다. 나아가 삶의 취약한 시기를 지나는 이들을 동반하고 지지하는 사회적 자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한다.
최도인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은 결국 개인의 삶이지 않나. 그런데 3, 40년 전만 해도 개인의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악기를 배우는 정도였다. 그걸 문화예술교육이라고 했고, 내 삶을 구성하는 요소 중 아주 일부였다. 산업사회에서 중요한 노동력을 제공하는 데 있어서 문화예술은 여가적 요소였다. 탈산업사회, 지식 정보 사회로 넘어오면서 창의성이 중요했고, 틀을 깨는 사고, 상상력에 있어 문화예술교육이 중요한 가치가 되면서 발전해 왔다.
지금은 사회적 삶, 공동체적 삶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해졌다. 근대 문화 정책은 사실 사회통합 정책에서 나왔다. 국가적이고 공동체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하향식(top-down)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에 의해서 공동체가 재구성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것을 국가가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환경, 특히 기술 환경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시대, 나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느냐가 중요하다. 그 안에서 존엄과 존중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문화예술교육에서 이어져 온 가치일 수도 있고 현상적으로 보면 창의성으로 포장되거나 정서로 포장될 수 있지만, 세계사적 재편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존엄과 존중의 가치는 시대정신인 것 같다.
세계화를 통해서 기존의 룰이나 국가 간 경계를 완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했다. 그런 다원적 사고에 문화예술교육이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권위주의적 리더들이 기존의 세계 질서, 국가 체계를 흔들며 질주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의 돌봄, 공존을 다시 환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국가가 통제적으로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면서 조화나 통합을 만든 시대였다면, 이제는 개인들의 힘이 훨씬 더 세진 시대다. 개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존중도 결국 ‘나’에 대한 존엄이 있어야 형성된다. 결국 존중과 존엄은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인데, 문제는 그 부분에 있어서 문화예술교육가가 자신이 하는 일이나 관계에 대해 존엄과 존중을 받고 있나 했을 때, 여러 측면에서 감정이 상해 있는 거다. 이 역시도 지금의 사회적 변화와 흐름 안에서 확실히 재구성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정책이나 행정을 권력관계로 보기보다 정책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보인다. 그런 면에서 장래를 어둡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지금은 사회적 삶, 공동체적 삶으로서의 의미가 중요해졌다. 근대 문화 정책은 사실 사회통합 정책에서 나왔다. 국가적이고 공동체적 사고에서 출발한다. 이것이 하향식(top-down)이었다면 이제는 개인에 의해서 공동체가 재구성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것을 국가가 바꾼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관계를 맺는 환경, 특히 기술 환경의 변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시대, 나와의 관계에서 어떻게 재구성되느냐가 중요하다. 그 안에서 존엄과 존중이 본질이라고 생각한다. 과거부터 문화예술교육에서 이어져 온 가치일 수도 있고 현상적으로 보면 창의성으로 포장되거나 정서로 포장될 수 있지만, 세계사적 재편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존엄과 존중의 가치는 시대정신인 것 같다.
세계화를 통해서 기존의 룰이나 국가 간 경계를 완화하는 가운데 우리는 문화다양성을 이야기했다. 그런 다원적 사고에 문화예술교육이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권위주의적 리더들이 기존의 세계 질서, 국가 체계를 흔들며 질주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관점에서 보면 공동체의 돌봄, 공존을 다시 환기하는 역할이 필요하다. 과거에는 국가가 통제적으로 권력관계를 재구성하면서 조화나 통합을 만든 시대였다면, 이제는 개인들의 힘이 훨씬 더 세진 시대다. 개인들이 구성하는 공동체 안에서의 존중도 결국 ‘나’에 대한 존엄이 있어야 형성된다. 결국 존중과 존엄은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것인데, 문제는 그 부분에 있어서 문화예술교육가가 자신이 하는 일이나 관계에 대해 존엄과 존중을 받고 있나 했을 때, 여러 측면에서 감정이 상해 있는 거다. 이 역시도 지금의 사회적 변화와 흐름 안에서 확실히 재구성되어야 하는 부분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이제 정책이나 행정을 권력관계로 보기보다 정책을 대하는 태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점차 변화하고 있다는 신호가 보인다. 그런 면에서 장래를 어둡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점점 더 나아지지 않을까.
김선아 각자의 위치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현재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행정, 정책, 제도, 예산, 국가 권력까지 이어졌다. 정책 관련한 자문회의에 가면 ‘문화예술교육이 뭐예요?’ 하는 질문을 아직도 받는 게 늘 답답했다. 우리가 문화예술교육을 정의 내리기 위해 애써왔는데, 사실 그것이 무엇이든 정책과 제도에 담아내는 방법을 몰라서 헤매고 고민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문화예술교육의 정의를 내리는 것보다 정책과 행정 등 우리를 구성하는 틀에 관해 진단해 보고 그 안에서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을 구성해 나갈지의 고민이 시작된 것 같다.
- [좌담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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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장소: 2026. 2. 26.(목) 오후 3시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 라이브러리
• 참석자: 김선아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 교수(편집위원장),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김자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미래전략사업실 실장,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 - [3기 편집위원 좌담 | 다른 기사 읽기]
- ① 2024-2025 [아르떼365]가 써 내려간 서사는
- ③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 정리_프로젝트 궁리 주소진, 양희경
- 사진_이재범 라무팜스튜디오 실장 andy45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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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
3기 편집위원 좌담② 지금 여기, 문화예술교육의 좌표는
공감이 가네요
고정된 틀을 깨고 새로운 질서를 찾아
3기 편집위원 좌담② 지금 여기, 문화예술교육의 좌표는
기대만점입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여겼던 정책이나 제도가 오히려 우리의 상상력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깊이 되돌아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히 예술 기교를 배우는 것을 넘어, 급변하는 시대 속에 개인과 공동체를 잇는 ‘공적 토대’로서 예술교육을 바라보는 위원님들의 깊은 통찰 덕분에 문화예술교육을 바라보는 시야가 한층 넓어진 기분입니다
문화예술교육이 20년이라는 긴 시간을 지나오며 겪은 성장통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글이었어요. 때로는 행정적인 틀에 갇혀 현장의 숨소리가 작아질 때도 있었지만, 결국 본질은 ‘사람의 존엄과 존중’에 있다는 결론이 참 따뜻한 위로로 다가옵니다. 현장의 예술가들이 다시 즐겁게 상상할 수 있는 유연한 토양이 만들어지길 함께 응원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