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고 한발 가까워지기

오늘부터 그린㊺ 공존을 위한 접근법

유인원과 함께 ‘자연스럽게’
유인원은 동물·환경 과학소통 단체다. 김예나와 안재하, 그리고 생명을 바라보는 눈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11살 반려견 구르미가 코어 멤버로 활동한다. 우리의 시작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는 동물권이나 환경에는 별로 관심 없었던 2009년 김예나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동물원에서 사육 보조를 하다가 동물행동학이라는 분야를 접하고 석사과정에 지원했던 그 시절 김예나는 동기였던 안재하를 만나게 된다. 안재하는 어느 날 공장식 축산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책을 덮자마자 비건이 되기로 결심했단다.
동기들이나 연구실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으레 육류나 어류를 소비하곤 했는데 안재하는 그 안에서 쌈 채소나 나물, 김치를 찾아 한 끼를 때웠다. 우리 연구실은 꼭대기 5층 같은 3층에 있었는데 안재하는 엘리베이터를 타지 않고 계단을 걸었다. 양치할 때도 컵에 물을 받아서 했다. 환경을 생각하는 작은 행동들이 일상화되어 그냥 자연스레 드러나는 사람이었다. 그동안 봐왔던 어떤 사람들보다 멋있고 닮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행동에 점점 더 눈이 가게 되었다. 그 무리 안에 진정으로 속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지금 내 주위에는 그런 사람들이 제법 많다. 유인원도 다른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우리를 통해 우리 주변 동물과 환경이 얼마나 아름답고 즐거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자연스럽게’ 느끼도록 하고 싶었다.
  • 유인원 멤버
  • 봄나물 워크숍
봄나물에서 피어난 시
유인원이 활동하는 과학소통 공간 ‘필드스테이션’은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무릉리에 위치하고 있다. 유인원 중 누군가 항상 상주해 있으며 구르미도 만날 수 있다. 커피도 과학적인 자세로 매우 진지하게 임하는 카페이기도 하다. 얼마 전 필드스테이션 마당에 자란 봄나물을 관찰하고 그 봄나물을 소재로 시를 쓰는 워크숍을 했다. 냉이, 미나리, 쑥, 달래, 질경이, 머위, 곰취의 잎부터 뿌리까지 루페(확대 렌즈)로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의 모습과 닮은 것들을 발견하고 시로 옮겼다. 모임에 시나 문학을 전공한 사람이 없었기에 놀이처럼 시작했지만, 시를 쓴 그 순간 우리는 모두 시인이 되었다.
“진달래는 꽃이라 / 님이 가는 곳에 뿌려지지마는 / 달래는 그냥 풀이라 / 님을 보낸 이의 마음 달래지” – 서서희, 「달래는」 중

“나름의 고초 속에서도 / 힘껏 자라 향을, 맛을 끌어냈을 때 / 기껏 도착한 게 / 매연 가득한 서울이라니” – 누룽지, 「새로 난 봄나물」 중
우리는 이 활동을 통해 자신이 관찰한 나물과 더 가까워졌다. 그리고 향긋하고 싱그러운 봄나물을 내어준 봄이라는 계절을 찬양했다.
  • <망했네, 망쳤네> 짝꿍 생물
  • 『탐조노트』
즐거운 과정으로 맺는 관계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실천한다.’ 유인원을 지도했던 최재천 교수님이 늘 하시는 이야기다. 사실 지도를 받았던 당시보다 유인원 활동을 하며 이 말에 더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얼마 전, 지역 아동센터의 어린이들과 제주에 사는 생물을 자신의 짝꿍 생물로 삼고, 13주 동안 깊이 있게 알아가는 수업을 했다. 나는 목청이 크고 시끄럽게 우는 직박구리와 닮아 ‘직박구리 선생님’이 되었고, 귀뚜라미를 연구했던 재하는 ‘귀뚜라미 선생님’이 되었다. 구르미는 수업에 참여해 아이들이 거리두기를 배우는 데 크게 기여(?)했다. 참고로 겁이 몹시 많은 우리 구르미는 모든 생물 중 아이들을 가장 무서워한다. 아이들은 자신이 선택한 짝꿍 생물이 다른 종과 어떠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지, 어떤 위협에 처해있는지, 직접 그 생물이 되어 몸으로 움직임을 표현하고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절멸 선언’이라는 형태로 적었다. 수업을 진행하며 아이들은 점점 이름이 아닌 짝꿍 생물로 서로를 부르게 되었다.
유인원 활동은 대부분 우리 스스로의 즐거움과 만족을 위해 시작되고 지속되는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런데 가끔 우리의 제법 긍정적인 역할을 확인(?)받을 때가 있는데, 바로 며칠 전 일이 있었다. 한 어머니와 아들이 유인원 필드스테이션을 찾아 음료를 주문하고는 조심스레 이야기를 건넸다. ‘필드스테이션 도슨트’를 듣고 아이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며, 그 후 새 도감을 사서 탐조를 시작해 지금까지 즐거운 탐조 생활을 하고 있으시단다.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늘 소름이 돋는다. 그런데 거기서 멈춘 것이 아니다. 아들은 관찰한 새를 하나씩 그렸고, 어머니는 아들의 그림과 짝이 될 글을 써 독립출판물 책을 한 권 완성하셨다. 제주 북페어에 참가해 『탐조노트』를 판매하고 오셨다며 조금 쑥스러운 듯 책을 건네주셨다.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저 숲은 우리 눈에는 조용하고 평화로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생물이 와글와글 소란스럽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 필드스테이션 도슨트
거리 두고 관찰하기
유인원이 운영하는 여러 프로그램 중 입문편에 해당하는 ‘필드스테이션 도슨트’는 동물학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동물학자가 머무는 공간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필드스테이션 공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데, 연구의 시작이며 가장 기본이 되는 관찰을 경험할 수 있도록 관찰 기록지를 함께 제공한다. 그리고 꼭 이 말을 덧붙인다. “동물의 진짜 모습을 관찰하고 싶다면 그 동물이 불편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고 관찰’해야 해요.” 실제로 야생 영장류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연구 시작 전 거리를 두고 계속 따라다니며 연구자가 위협되지 않는 존재임을 인지시키는 ‘익숙화(habituation)’ 단계를 꼭 거친다. 그래야만 영장류의 가장 자연스러운 행동을 연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존을 위한 우리의 접근도 이와 같다. 자연이 불편하지 않을 만큼의 거리 두기. 그리고 그 거리에서 자연을 관찰하기. 그러면 자연스레 자연은 우리에게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감동을 준다. 그렇게 한발 가까워지면 사랑하게 되고, 함께 공존하기 위한 일상 속 실천을 하게 된다.
김예나
김예나
동물·환경 과학소통 단체 유인원(You In One)의 공동대표로 동물 행동생태학과 영장류 인지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뒤, 전공을 살려 안재하와 함께 과학소통 카페를 만들었다. 유인원은 ‘다양성’ ‘공존’ ‘즐거움’을 가치로 동물과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교육, 체험, 전시, 축제 등의 형태로 소통한다. 유인원에서 행사 사회, 도슨트 어린이 손님 담당 등 주로 시끌벅적한 업무를 맡고 있다.
uio.apes@gmail.com
과학소통 인스타그램 @uio.apes
카페·문화예술 인스타그램 @uio.fieldstation
사진제공_김예나 유인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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