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땀 한 땀, 이어가는 바다

오늘부터 그린㊻ 함께하는 바다 만들기

강원도 속초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늘 곁에 있는 바다의 소중함을 몰랐다. 그 소중함이 무엇이었는지 깨닫기까지는 한참이 걸렸다. 외지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힘들게 생활하던 중, 부산 광안대교 2층 교각을 지나며 우연히 본 바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되살리며 내 마음속으로 훅 들어왔다. 그 순간 저 바다가 내 맘의 안식처가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바다 수영이 내 인생을 바꿨다.
매일 새벽 해운대 바다에 입수할 때마다 내 맘은 점점 바다와 하나가 되었다. 바다 수영에 몰입하던 3년 차 어느 날, 검정 비닐봉지가 손가락 사이에 걸렸다. “왜 이런 게 바다에 있지?” 그때부터 버려진 해양쓰레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떠내려오는 폐목재에 머리도 부딪치고, 백사장에 널브러진 종이컵, 빨대, 음식물을 보면서, 바다에 대한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아픔도 커졌고, 바다의 상처를 누군가에게 알려야 한다는 의무감이 생겼다. 당시 바다 수영을 즐기는 사람들은 고래 꼬리 목걸이를 안전과 바다의 상징물처럼 즐겨 착용했다. 나는 입지 않던 내 첫 바다 수영 슈트를 사회적기업가와 협업해 고래 꼬리 키링으로 제작했다. 바다 행사에서 참가자에게 키링을 나눠주며 바다를 깨끗이 보존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전했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적극적인 해양 환경보호 캠페인 활동을 시작했다.

바다의 흔적을 품은 폐해녀복
2013년 제주도에 정착한 후 매년 바랏길(‘제주 바다 위 올레길’로 불리는 바다수영 코스) 행사를 개최하며 제주 바다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을 즈음, 귀덕리 어촌계 마당에 버려진 폐해녀복을 발견하고 고민이 시작되었다. 당시 해녀 삼춘들은 입지 않는 해녀복을 태우고 땅에 묻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었다. 석유 소재인 네오프렌 폐해녀복은 일반 쓰레기로 분류되지만, 소각하면 염화수소 같은 유해가스가 발생하며, 산화분해에 약 300년이 걸려 환경파괴가 필연적인 상황이었다. 바랏길 행사로 제주도 어촌계와 협력 관계가 자연스럽게 구축되면서 수거한 폐해녀복을 태우는 대신 기존 고래 꼬리 키링의 재료로 사용하는 방향으로 전환했다. 해녀 삼춘들의 생명과도 같은 해녀복엔 그들의 일생이 담겨있었으며, 바다의 거칠고 날카로운 흔적도 배어 있어 제작자로서 심적 부담이 컸다. 자투리조차 버릴 수 없어 자투리는 잘게 잘라 솜 대신 넣고 있고, 주무르면 엄마의 품속 같은 부드러움을 느끼게 된다. 폐해녀복은 ‘GOGGO’(GO GREEN GO OCEAN) 브랜드의 키링, 향, 파우치 등 다양한 상품으로 재탄생해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상품 개발 외에도 폐해녀복으로 만든 <파도> <고래의 시선> <갇힌 고래> <해녀의 시간> <고래꼬리> 등 업사이클 작품 제작과 체험수업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작품을 만들 때는 늘 책을 읽고, 자연스럽게 바다에 나가 수영하고, 해안 정화 활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마치 퍼즐이 맞춰지듯 책에서 얻은 생각과 바다에서 본 풍경, 손으로 느껴지는 재료의 감각이 모두 하나로 연결되는 경험을 하고, 그런 순간들이 작품에 담긴다. 교육 현장에서는 아이들에게 제주 바다의 주축인 해양쓰레기, 남방큰돌고래, 해녀 문화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폐해녀복으로 고래 꼬리 키링을 만든다. 하루는 초등학교 수업을 마치고 한 아이가 내 모습과 해녀, 남방큰돌고래를 그리고 해양 환경보호에 대한 다짐을 적은 종이를 내밀며 나에게 사인을 해달라고 했다. 난 사인을 해주며 그 아이를 힘껏 안아주었다. 아이의 손으로 만든 착한 그림이 마음 깊이 울렸고, 나를 이 자리에 계속 있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 폐해녀복으로 만든 작품 <남방큰돌고래>와 <파도>
바랏길 위에서 만난 바다
‘다시바다’의 해양 행사 중심에는 ‘바랏길’이 있다. 나는 바다 수영을 하며 부산과 제주도에 바랏길 코스 46개를 개척했다. 바다를 헤엄쳐 다니며 만난 해안선의 모습들, 지역마다 독특한 바다의 표정이 어쩌면 내 작업의 근간이 되었다. 바랏길은 단순히 바다 수영 코스가 아니라, 지역의 해양환경과 해녀 문화, 그리고 이 땅의 삶을 이해하는 길이었다. 수영할 때마다 우리 바다가 얼마나 아름답고, 또 얼마나 상처받는지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바다에 트라우마가 있거나 바다를 두려워하는 분들을 위한 해양 치유 프로그램 <멍~海(해)>가 있다. 패들보드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바다 내음을 맡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고, 손끝에 전해지는 바닷물을 체감하며 삶을 잠시 리부트하는 것이다. 지금은 해녀 삼춘들과 <멍~海>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 마음을 전하고 있다. 해녀 삼춘들은 해산물을 채취할 때, 밭일할 때, 자식을 키울 때조차 늘 아래를 바라보며 생활한다. 하늘을 의도적으로라도 볼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 바다에서 하늘을 보는 시간은 이들에게 생존의 바다가 치유의 바다로 다가올 수 있음을 알게 해주었다. 모 어촌계 해녀 삼촌은 “치열한 삶의 현장이 이토록 아름답고 소중한 곳이었음을 알게 해줘 고맙다”라는 말을 해줘 참 고맙고 행복했다.

제3의 바다를 향하여
현재 제주에 남은 남방큰돌고래는 120여 마리다.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인 돌고래의 배설물에는 질소, 철분, 인 성분이 포함되어 있어 플랑크톤과 해초의 성장을 돕지만, 해양오염과 무분별한 정치망 사용으로 생명이 위협받고 있다. 수거한 폐해녀복으로 만드는 고래 꼬리 키링은 이러한 문제를 참여자와 함께 고민하는 시발점이 된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럽게 만드는 이유는 이 고래 꼬리 키링이 선물로 아이들이나 누군가에게 가 닿아 사람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되어줄 거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 땀 한 땀이 모여 파도가 되고, 그 파도가 모여 바다가 된다고 믿는다.
나는 바다를 세 단계로 나눈다. 제1의 바다는 원초적이고 원시적인 바다, 제2의 바다는 경쟁과 개발의 바다, 그리고 제3의 바다는 ‘동행의 바다’ ‘함께하는 바다’이다. 나는 제3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 여러 길목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사)제주해양레저관광협회 이사로서 2025년 시범으로 ‘제주 씨로드 페스티벌’을 개최했다. 이 축제는 제주도에 산재해 있는 다양한 해양레저업체들을 ‘씨로드’라는 코어로 한자리에 모여 함께 축제를 진행하며 바다를 단순한 관광 자원이 아닌, 해양레저가 함께하는 해양 문화 공간으로 재정의하려는 노력이다. 축제에는 해녀, 지역민, 관광객, 기업, 남방큰돌고래, 해양레저 그리고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 바다를 새로운 가치의 공간으로 재정의하려고 한다.
동시에 점점 고령화되고 있는 해녀 문화를 지속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해녀 로컬 프랜차이즈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해녀의 삶과 문화가 단순히 과거의 유산이 아닌, 현재와 미래에도 살아 숨 쉬는 문화로 남을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이며, 동시에 남방큰돌고래 작품을 비즈니스 모델로 연결해 수익 창출까지 가능하게 하는 구조다. 이를 통해 새로운 세대가 해녀 문화에 참여하고, 해녀 공동체도 함께 활성화될 수 있는 순환 구조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바다는 우리 모두의 자산이며 그 자산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함을 깨닫게 되면 바다를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오늘도 나는 바다 수영을 하며 그 품속에 안긴다.
안성관
안성관
해양문화기획자이자 업사이클 작가로 활동 중이다. 16년간 바다 수영을 통해 부산과 제주도에 46개 바랏길 코스를 완성했으며, 폐해녀복 업사이클링을 통해 해양 환경보호에 대한 공감대 확산에 힘쓰고 있다. 다시바다 대표, 제주업사이클작가협회 대표, 海타임 대표, (사)제주해양레저관광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지속 가능한 제주 해양 문화의 미래를 그려나가고 있다.
pga0819@naver.com
홈페이지 www.dasibada.com
인스타그램 @sea_creator / @hello_goggo
사진제공_안성관 다시바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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