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두꺼비 집을 만들어본 적 있는가. 손등 위에 흙을 올리고 조심조심 두드려 집을 짓고, 완성되면 손을 빼내어 작은 구멍을 남긴다. 그 구멍 속으로 누군가의 손가락이 들어올 때의 감각. 서로의 세계가 처음으로 맞닿는 그 순간. 나는 감각을 나누는 일이 꼭 그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흙집은 모양이 다 다르고, 들여다봐도 잘 모르고, 손을 직접 넣어봐야만 비로소 무언가를 알게 된다.
나는 보청기 없이 일상을 보내는 걸 좋아한다. 사람들 눈에는 멍때리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사실 나는 그 시간에 관찰하고 있다. 내 몸에서 발생하는 움직임이 촉각적인 소리로 변환되어 깊숙이 들어오고, 바깥 세계에서 일어나는 것들은 시각적인 형태로 백색소음처럼 흘러든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를 보면 소리가 제각각의 형태를 만들어내며 내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고요하지만 예측할 수 없는 것들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그것이 나를 일깨운다. 마치 사람들이 공부할 때 백색소음을 틀어놓듯, 나에게는 시각과 촉각이 그 역할을 한다. 나는 그렇게 고요하고 내밀한 세계 속에서 시간과 함께 흘러간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것이 나의 감각이라는 것을. 그리고 이 감각을 타인과 나누고 싶어졌다. 그것이 워크숍의 시작이었다.
입구를 찾아서
문제는 청각장애의 감각이 몹시 내밀하다는 데 있다. 보이지 않고, 설명하기도 어렵고, 본인만 아는 것. 분명 저마다 비슷한 감각을 경험해 봤을 텐데, 어떻게 해야 일치시킬 수 있을지, 어디서 입구를 찾아야 할지, 매번 새로운 숙제였다. 입구를 만드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다. 들어온 다음에도 헤매지 않으려면 촘촘한 안내가 필요했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은 농인 당사자를 대상으로 워크숍을 진행할 때 찾아왔다. 우리는 소리를 보는 사람들이기에, ‘당사자이니 감각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겠지’라고 생각했던 것이 틀렸다. 워크숍에서 만난 많은 참여자에게 그 ‘보는 소리’는 사물과 연결된 행위로 먼저 향했다. 수세미를 보면 그 질감이나 형태보다 설거지하는 행위의 소리가 먼저 떠오르는 식이다. 나는 행위가 아니라 사물 자체, 질감과 형태에서 소리를 감각하는 것을 탐색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닿을 수 있을까? 참여자들이 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반복됐다.
그때 한 참여자가 물었다. “이건 왜 소리예요? 소리가 아니잖아요.” ‘소리’라고 하면 청각이 떠오르는 게 당연하다. 보이는 것은 그냥 보이는 것일 뿐, 소리와는 별개로 인식하는 것이다. 이 사회에서 청능(소리를 감지·변별·이해하는 능력) 중심으로 학습해 왔기 때문에, 본다는 것이 소리일 수 있다는 생각에 닿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소리를 청각으로만 연결할 필요는 없어요.” 농인에게도 이 말을 해야 했다는 것이 아이러니처럼 들리겠지만, 그렇게 말해야만 사회에서 지정한 감각의 위계가 흔들리고, 잊고 있던 감각이 올라올 수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청각이 1순위’라는 사회적 약속을 강하게 인식한 채로 헤매게 된다. 그래서 ‘잘 표현하느냐’보다 다른 것에 집중했다. 세상이 ‘듣기’라고 부르는 것을, 우리는 다른 감각으로 ‘볼 수 있다’라는 생각의 확장, 그것이 먼저였다.
각자의 집에서, 서로의 집으로
농인뿐 아니라 청인이 함께하는 워크숍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반복됐다. 처음엔 어리둥절했지만, 하면 할수록 참여자들은 말했다. “잊고 있었던 감각을 이제야 들여다본 느낌이에요.” 프랑스에서 농인과 청인이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했을 때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곳 참여자들은 유독 “왜”라는 질문이 많았다. 왜 이게 소리인지, 왜 청각을 배제해야 하는지. 질문이 많을수록 내가 안내할 수 있는 방향도 더 선명해졌다. 나는 이 작업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확고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청능 중심 사회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회가 청각을 ‘소리’라고 정의했기 때문에 우리는 보고 만지는 것이 소리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소리는 귀로만 듣지 않는다고.
그렇게 조금씩 따라와 주었다. 워크숍이 끝난 뒤 한 참여자가 말했다. 청인에게 청각을 배제하라고 말한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자신이 공부했던 감각 위계에 관한 철학 이론이 떠올랐다고도 했다. 또 어떤 참여자는 감각을 확장해서 여러 가지를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내가 하는 방식을 반가워해 준 것이다. 농인도, 청인도 결국 같은 지점에서 만났다. 우리 모두 사회가 정해준 감각의 우선순위대로 살아왔다는 것. 그 순위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는 것. 그리고 그 순위 바깥에 자기만의 감각이 있었다는 것을, 워크숍을 통해 처음으로 알아챘다는 것.
나는 그 장면이 가장 좋았다. 누군가의 두꺼비 집 안으로 조심스럽게 손을 넣어, 더듬더듬 만져보고, 그제야 “아, 이런 모양이구나” 하는 순간. 설명으로는 닿지 않았던 것이 경험으로 닿는 순간. 물론 연결의 형태는 제각각이었다.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의 세계와 타인의 세계 사이사이에, 불완전하지만 분명한 연결이 생겨났다. 두꺼비 집 구멍 속으로 손이 닿듯이.

- 김은설
- 들리지 않는 소리를 몸과 감각으로 새기며 기록하는 예술가다. 듣는다는 행위의 의미와 자기 존재의 본질에 질문을 던지며, 소리와 언어, 감각의 경계를 탐구한다. 드로잉, 설치, 영상 등 다양한 형식으로 작업하며, 국내외에서 감각을 매개로 한 워크숍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감각적 차이를 새로운 인식과 소통의 가능성으로 전환하는 예술적 실천을 이어가고 있다.
odd_dreamer@naver.com
인스타그램 @eoeoleo - 사진제공_김은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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