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연극협회 정회원 면접 과정에서 장애예술을 향한 차별을 야기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로 인해 연극·예술·장애·인권 연대가 형성되었고 차별 발언을 한 당사자의 사퇴를 요구하는 일까지 이어졌다. 사실 차별적인 발언과 행위는 자주 일어난다. 다만 특정 인물이나 공적인 자리에서 드러날 때 비로소 사건이 된다. 지금 이 원고를 쓰기 위해 앉아 있는 카페에서도 나는 차별을 겪었다. 키오스크 앞에서 점프하며 음료를 고르는 나를 보며 키득거리는 커플의 웃음을 들었다. 누군가에겐 찰나의 해프닝일지 모르나 당사자에겐 일상에 늘 존재하는 혐오의 한 장면이다. 40여 년을 그렇게 살아오며 내린 결론은 그 모든 행위가 결국 무지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이다. 당사자인 나조차 공부하며 감수성이 성장했듯, 변화에는 교육이 필요하다. 그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 시작되는 자연스러운 교육 말이다.
벽이 조금씩 허물어지던 순간
나는 직장 내 장애인 인식개선 강사로서 성인과 중고등학생을 주로 만났지만 초등학생 앞에서는 늘 망설여졌다. 아이들에게 어떤 언어로 다가가야 할지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은 그림책을 만들어 다가가기로 했고 그래서 3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어린 시절의 나와 어른이 된 나의 이야기를 담은 『어린 어른』과 시각장애 아동이 자신만의 세상의 색을 짓는 이야기 『색을 짓다』가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출간 후 1년 가까이 책도 안 팔리고 강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수원시장애인가족지원센터에서 연락이 왔다. 전교생이 강당에 모여 함께하는 수업이 아닌 2주 동안 30개 학급 1학년부터 특수학급까지 하나하나 찾아가는 수업이었다.
긴장과 설렘을 안고 첫 교실 문 앞에서 크게 심호흡한 후 문을 열었다. 내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조용했다. 나를 보며 웃거나 수군거리며 ‘키 작은 선생님이다’라고 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풀기 위해 ‘키가 작은 선생님의 별명은 뭘까요?’라고 묻고 그럼 ‘난쟁이요’라고 답하며 벽을 허무는 질문을 하는데 내 질문에 아이들은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살피기만 했다. 수업을 진행하며 알게 된 사실은 내가 들어오기 전 아이들은 불편한 질문을 하지 말라고 담임선생님에게 주의를 들은 것이다. 그 순간 우리는 혹시 차별하지 않는 법보다 차별하는 방식을 더 먼저 가르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나는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공연 영상을 보여줬다. 무대 위에서 다양한 역할로 활동하는 나의 모습에 아이들은 비로소 벽을 허물고 망설임 없이 웃음을 터뜨렸다. 몇몇 아이들은 화면 속의 나와 교탁 위의 나를 번갈아 보며 “선생님 화면에서는 하나도 안 작아 보여요”라는 말을 했다. 예전 공연장에서 한 관객에게 들었던 그 말을 다시 들으니 우리 사이의 벽은 녹아내리며 신뢰가 쌓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의 수업은 시작되었고,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쌓아 나갔다.
아이들이 건넨 마음
수업은 지식을 전달하는 시간을 넘어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과정이었다. 수업이 시작되면 담임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책상 위에 아무것도 올려놓지 말라고 당부한다. 그런데 한 학급에서는 두 아이가 수업 내내 노트에 뭔가를 끄적였다. 내 말을 열심히 적는 중인가? 아니면 내 수업이 따분해서 낙서하며 시간을 때우나? 여러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수업을 마치고 나가려는데 그 두 학생이 긁적이던 노트를 나에게 주며 “선생님 편지예요. 감사합니다”라며 건넸다. 그 노트에는 ‘사랑하고 존중합니다’라는 삐뚤빼뚤한 글씨와 나를 그린 그림이 담겨 있었다. 낙서인 줄로만 알았던 그 몸짓이 사실은 나를 향한 가장 따뜻한 응원이었던 것이다.
한번은 폭설이 내리던 날, 차량 경고등 때문에 차를 역 근처에 세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학교로 가야 했다. 서둘러 가던 중에 초행길이라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헤매고 심지어 빙판길에 넘어지기도 했다. 그래도 아이들을 만나야 한다는 일념에 다행히 수업 2분을 남기고 도착했다. 그렇게 4교시 수업을 마치고 체력이 바닥난 상태에서 학교를 나서는데 뒤에서 ‘선생님’ 하며 두 학생이 뛰어왔다. 학생들은 안부를 물으면서 선생님이 주신 책 재미있게 잘 읽었다고 감사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래서 난 어디 가는 길이냐며 물었고, 학생들은 선생님이 있어서 보러 뛰어왔다고 말했다. 너무 고마웠다. 아이들의 그 따뜻함에 지독했던 아침의 피로는 눈 녹듯 사라지고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보다 아이들이 나에게 채워주는 에너지가 훨씬 더 컸던 순간이었다. 난 그렇게 비타민이 가득 담긴 위로를 받고 남은 수업까지 열심히 달릴 힘이 생겼다.
다름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
가장 긴장하고 준비를 많이 한 특수학급 수업 날이 다가왔다. 수업은 그림책 『색을 짓다』를 활용한 연극 놀이를 진행했다. 아이들과 함께 눈을 감고, 세상의 소리를 듣고, 그 소리를 직접 발화하기도 했다. 책 내용 중 앞이 보이지 않는 주인공 ‘유슬’이가 케인(흰 지팡이)을 이용해 걸으며 발자취를 남기는 모습을 보고 할머니가 흰 천에 바늘과 실로 수를 놓는 장면이 있다. 그 장면처럼 우리는 모루실을 이용해 숲속의 동물을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자폐와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은 느리지만 각자의 속도로 자신만의 세상과 동물을 만들어 갔다. 한 아이는 놀라울 정도로 정교한 공룡을 완성해 박수가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수업을 통해 발화했던 소리, 만든 동물들을 보고 특수학급 담임선생님들은 아이들이 이런 것까지 할 줄 몰랐다며 놀라워했다. 그 말을 듣는데 뿌듯하고 뭐라 말할 수 없는 행복함이 쏟아졌다.
2주 동안 많은 추억을 쌓으며 느낀 점이 있다. 아이들은 처음부터 누군가를 다르게 보거나 선을 긋지 않는다. 웃기면 웃고, 궁금하면 묻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는 있는 그대로의 솔직함으로 나를 대했다. 하지만 교실에 들어서기 전의 그 조용한 분위기를 떠올리면 여러 생각이 스친다. 아이들은 이미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어디까지 표현해도 되는지를 먼저 배우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차별하지 않는 방법보다 차별하는 방식을 더 먼저 가르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래서 어릴 때부터 장애인식개선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엇을 조심해야 하는지를 가르치는 교육이 아니라 어떻게 함께 살아갈 수 있는지를 배우는 교육.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아도 된다. 함께 웃고 소리를 내고 질문하고 답하며 서로의 다름을 자연스럽게 바라보는 경험이면 충분하다. 나는 이번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쳤다기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다. 앞으로도 나는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의 다름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를 함께 배우기 위해 기꺼이 교실 문을 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학교에서 불러줘야 하는데…. 이 글을 보고 불러주면 좋겠다.

- 신강수
- 키 132cm. 저신장 장애인이다. 장애를 활용해 흰 무대 위에서는 글을 쓰고 검은 무대 위에서는 연기한다. 그 경험을 살려 장애인식개선 강의도 하고 있다. 희곡집 『급이 다르다』, 에세이 『132cm 사용설명서』, 그림에세이 『어린 어른』, 그림책 『색을 짓다』를 출간했다. 조만간 에세이 『난쟁이가 써 내려간 작은 책』, 희곡집 『시럽이 필요해』도 출간할 예정이다.
sks419@nate.com
인스타그램 @132cm_ - 사진 제공_신강수 배우·작가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11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책을 낸 배우가 있다고? 뉴스레터로 받아본 메일에서 ‘모두의 예술교육’이 어떤 내용일까 궁금해서 들어와봤더니, 저신장장애인이 쓴 일화가 너무 감동적이라 댓글을 남깁니다.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차별 없는 사회를 위한 수업이 많아졌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어떤 내용의 책을 쓰셨는지 책을 한번 살펴봐야겠어요. 뮤지컬 영화 에서도 사회적 차별을 딛고 일어선 여러 명의 배우들이 나왔었는데, 참 흥미로웠거든요.
저도 아이들과 만날 때 가장 편견이 없어지는 순간들을 경험할 때가 있어서 더 공감가는 인터뷰였어요! 다름을 특별하게 만들지 않는 태도. 사회 곳곳에 인식개선 문화예술 프로그램이 더욱 많아지기 바라봅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을 가르치는 것은 결국 무엇을 해야할지는 알려주지 않게 되는 것 같아요. 차별이 비켜난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지로 시선을 돌려봐야겠네요!
차별하지 않는 법보다 함께 웃는 법을
모두의 예술교육⑩ 서로의 다름을 배우는 교실
공감이 갑니다
차별하지 않는 법보다 함께 웃는 법을
모두의 예술교육⑩ 서로의 다름을 배우는 교실
기대만점입니다
신강수 배우.작가님이 작성하신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장애예술에 대한 차별 문제를 다루신 내용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중요한 이슈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특히, 일상 속에서 겪는 작은 차별들이 당사자에게는 얼마나 큰 상처가 되는지를 잘 표현하신 것 같습니다. 키오스크 앞에서의 경험을 통해 무지에서 비롯된 차별이 얼마나 흔하게 발생하는지를 보여주셨고, 그로 인해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정말로,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애예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차별을 없애는 것보다 함께 웃고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에 깊이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이러한 주제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힘써 주시기를 바랍니다. 응원합니다!
글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수업에 들어갔을 때 아이들이 쭈뼛거리던 모습과 사전에 담임교사로부터 전달받은 ‘주의해야 할 점들’에 대한 대목이었습니다. 오히려 그 조심스러움이 아이들이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시선을 제한하는 것은 아닐까, 미리 구분 짓고 선을 긋는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누군가를 배려한다는 마음이 때로는 무의식적인 거리두기나 차별의 방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 다시 돌아보게 되는 지점이었습니다.
힐링을 받았어요 고마워요 감사해요
행복충전소입니다 감동이에요 감사합니다
장애를 이해하는 문화예술교육은 특별한 배려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자연스럽게 존중하는 감각을 키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편견은 설명보다 직접 만나고 경험하는 순간 더 천천히 그러나 깊게 바뀔 수 있다는 점을 느꼈다.
그러게요… 다양성에 대한 강의를 할 때 초등학생이 제일 어려운 것 같습니다. 왜 안돼요? 싫어하면 왜 안돼요? 왜 불편해도 배려를 해야해요? 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려 하다 보면 스스로에게 그 질문들을 되묻는 계기가 되기도 하더라구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