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정답이 아닌, 각자의 이유와 해석

컨설턴트의 질문①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문조사를 넘어 현장으로 향한다. 문화예술교육가, 행정가, 전문가, 연구자 등 24인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조건 속 장벽의 실체를 짚고, 그 공통점과 차이를 탐색하며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성숙을 위한 통찰을 모색한다.
같은 마음 다른 언어

#문화예술교육의_정의 #질문해야_할_시간

김옥진 마음놀이터 대표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조력자의 자리에서 생겨난 질문들
글을 쓸 때면 종종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리해 AI의 도움을 받는다. 그리고 그렇게 완성된 문장을 마주할 때마다 묘한 감정을 느낀다. 문장은 매끈하고 논리는 정교하며 부족한 부분도 쉽게 채워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내가 썼으되 온전히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 감각은 최근 몇 년간 현장에서 한발 물러나 다른 이들의 기획서와 프로그램을 바라보며 느껴온 거리감과도 닮아있다. 과거에는 기획서에 담고 싶은 한 문장, 한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몇 시간, 때로는 며칠씩 붙들고 고민하곤 했다. 그 과정은 비효율적이었지만 동시에 내가 왜 이 사업을 해야 하는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끊임없이 ‘새로움’과 ‘차별성’을 요구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여전히 철학과 가치, 예술교육적 깊이를 말하지만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이전에 없던 방식, 눈에 띄는 형식, 새로운 대상과 장르의 결합이 선정의 중요한 기준이 되곤 한다. AI는 이러한 요구에 매우 능숙하게 대응한다. 장르와 대상, 지역의 특성을 입력하면 기획 의도를 작성해 주고, 사업 목적에 맞는 프로그램을 제안하며, 성과지표까지 정리해 준다.
물론 이러한 결과물은 아무런 맥락 없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적절한 프롬프트를 작성하기 위해서는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결국 사업을 위한 제안서일 뿐, 사람으로부터 출발한 이야기는 아니다. 참여자 한 사람의 삶과 지역의 맥락, 관계 속에서 발견되는 질문들은 효율적으로 정리된 문장 안에서 종종 지워진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변화는 단순히 AI 기술의 등장 때문만은 아니다. 효율성과 성과, 차별화와 경쟁이 우선되는 사회적 환경 속에서 문화예술교육 역시 점차 그 흐름에 적응해 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의된 문화예술교육을 따라가기 위해 쉼 없이 노력해 왔다. 새로운 담론을 공부하고, 전문가의 언어를 익히고, 정책이 요구하는 가치를 기획서에 담아내기 위해 애써왔다. 그리고 나는 심사와 자문의 자리에서 그 노력이 충분한지 평가하는 사람이 되었다. 현장이 문화예술교육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돌아보면, 그 말은 20여 년의 현장 경험과 전문가들로부터 들어온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나의 이해를 현장에 요구하고 강요하는 일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지금은 다른 질문이 남는다. 현장이 문화예술교육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일까? 아니면 우리가 만들어 놓은 문화예술교육의 정의가 현장의 경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했던 것일까? 우리는 현장과 조력자, 그리고 행정의 자리에서 같은, 혹은 비슷한 마음으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그러나 어쩌면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상대와 마주 서 있는지도 모른다.
정의된 문화예술교육을 넘어
우리는 오랫동안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를 설명해 왔다. 하지만 그 설명은 누구의 언어였을까. 현장은 그 언어를 배우고 따라가야 하는 위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을 정의하는 사람과 실천하는 사람이 함께 질문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전문가가 가르쳐 주는 정답이 아니라, 현장과 정책, 연구와 실천이 함께 만들어 가는 질문이어야 한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맞서고 있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은 이미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다는 우리의 확신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대신,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질문해야 할 시간이다. ‘현장은 부족한가?’ ‘전문가의 정의는 충분한가?’ ‘문화예술교육은 정말 하나의 정의로 설명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부터.
단순한 원칙

#방송과_유행 #관종_문화 #타인의_시선

김탕 독립기획자
얼마 전, 국내에서는 그리 인기를 끌지 못한 철 지난 넷플릭스 시리즈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리키시〉(원제; 聖域)라는 8부작. 스모를 모르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렇다고 스모를 즐겨보는 우리나라 사람을 찾는 건 힘들다. 극단적인 레슬러의 몸집은 어떤 면에서 괴기스럽기도 하고, 경기 시간이 짧아서 현장이 아닌 경우 시시하게까지 느끼게 되니 말이다. 이야기는 우리에겐 이미 익숙한 방식이다. 동네의 시시한 건달로 살던 주인공이 우연한 계기로 스모에 입문하는 성장 스토리. 폐쇄적인 집단에 반발하지만, 왜 이런 방식이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되면서 일어나는 동요를 다룬다. 상업드라마의 특성상 과하게 포장된 면이 있지만 초심자가 무엇을 어떻게 알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교육자의 기다림이 왜 미덕이 되는지가 상당히 밀도 있게 묘사되었다. 시리즈의 중반을 넘어서면 ‘즐거워’나 ‘재밌어’라는 외침이 등장하면서 시청자가 공감하게 되는 정점을 찍는다. 재미있고 즐겁다는 것. 결국 행동의 이유는 거기 있지만 그 과정은 그리 쉽거나 함부로 할 수 없는 영역에 있다는 것이 핵심 메시지다.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에 맞서는가를 생각하면 엉뚱하게도 픽션이 떠오른다. 언제 이후라고 특정하긴 어렵지만 문화예술교육을 예술 창작이나 문화적 상상력이 비껴가는 것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든다. 예술 창작은 예술가 개인의 고유 영역에 해당한다. 창작을 위한 다양한 경험의 총합이며 스스로 한계를 몰아붙이는 작업의 반복으로 예술가는 ‘재미있고 즐거운’ 작품활동을 이어간다. 어떤 면에서 유일무이하면서도 미학의 역사에서 끝없는 순환의 과정 안에 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창작을 교육으로 치환하는 문화예술교육에서, 예술가의 경험과 창작 과정이 커리큘럼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창작을 업으로 삼는 직업교육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곤란하기에 중용(中庸)을 지켜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즐겁다는 것을 감각으로만 해석하는 데 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단시간에 흥미로운 사건을 일으키는 것에 머물고 있을 때 창작은 사라지고 교육자가 준비한 도구로 꾸러미를 조립하며 끝내는 경우가 많다. 교육자에게 커리큘럼을 써 내려가면서 영감받은 것이 있는지 궁금해질 때가 있다. 간혹 방송프로그램의 형식을 가져왔다거나 유행하는 것이어서라는 답변을 듣게 된다. 방송의 형식이나 트렌디한 모습은 학습자가 접근하기 쉽게 만드는 일종의 장치여서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진 않는 편이다. 하지만 영감을 받거나 교육의 방향성에 영향을 준 것은 아니길 바란다. 오히려 방송과 유행에서 영감받았다면 문화예술교육에서는 학습자와 함께 방송프로그램을 기획하거나 유행의 속성을 따져 새로운 유행을 만드는 것은 어떻게 하면 가능할까 하는 질문이 필요해 보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속칭 ‘관종’이 지배하는 문화에 살고 있다는 생각을 버리기 힘들다. 무엇을 느꼈는지보다 ‘느낌 있는 나’로 인증받으려고 한다. 의미 있는 행동보다 그럴싸한 모습을 드러내야 한다고 강요받는 시대라고나 할까. 학습자는 이런 환경에서 문화예술교육의 장으로 모인다. 사진을 찍어 오늘의 나를 인증받거나, 조립한 무엇인가를 집으로 들고 가야 예술 창작이 증명된다는 듯이 움직이는 장면을 자주 목격한다. 감각에 순응하는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타인의 시선에 반응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성찰 또한 필요해 보이는 순간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리키시〉를 떠올린 이유다. 알몸이 드러나는 벨트를 하고 이유 없는 순종을 강요받는 것에 저항하던 청년이 긴 시간이 빚어낸 형식의 의미를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새벽에 오리걸음으로 언덕을 오르며 재밌다고 외친다. 누구에게 인증받는 곳이 아닌 순간에 터지는 외침이다. 잘 설계된 과정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를 만들어낸다. 지금 우리가 맞서고 있는 것은 보여주어야 하는 강박과 그럴싸한 포장에 매료될 것이라는 착각이다. 본질은 언제나 단순하고 명료한 법이다. 예술가는 예술하고, 문화예술교육은 그 창작 과정의 경험을 나누는 장이어야 하는 그 단순함을 잊지 않길.
질문을 하기 전에

#지원사업_심사 #운영_중심_구조 #역할과_책임

김희연(팅) 문화기획자
심사는 심사표에
몇 년 전 문화예술교육가들의 실천공동체(CoP)에 멘토로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팀의 주제는 ‘지속가능성’이었다. 첫 번째 토론부터 참여자들이 쏟아낸 것은 사업 이야기가 아니었다. 지원사업 심사에서 만난 심사위원 이야기였다. 부당한 평가를 받았다는 이야기, 면접 시간 내내 눈 한 번 마주치지 않았다는 이야기, 질문을 빙자한 컨설팅을 받았다는 이야기, 심사와 관계없는 신상정보를 묻는 말까지. 참여자들은 탈락의 아쉬움보다 그 자리에서 들었던 말들이 더 오래 남아 몇 년이 지나도 그때 들었던 말 한마디 때문에 새로운 지원서를 쓰는 것이 두렵다고 했다.
심사는 심사표에 하면 된다. 모르겠으면 모르겠다고 적으면 된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감점하면 된다. 그게 심사의 역할이다. 그런데 가끔 심사보다 자신의 지식을 증명하는 데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나는 모르는데”라는 말로 자신의 무지를 자랑하거나, “내가 알기에는 이것보다”라는 말로 비교 평가를 시작하거나, 질문 시간 대부분을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는 데 사용하는 사람들 말이다. 심사위원의 한마디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선정 여부보다, 사업 결과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다시 말하고 싶다.
“심사위원분, 심사는 심사표에 합시다.”
교육 현장은 지원서 밖에 있다
교육 현장은 생각보다 복잡하다. 지원사업에 선정되면 참여자를 만나기 전에 파견된 기관의 담당자를 먼저 만난다. ‘가급적’ 손이 안 가게. ‘가급적’ 민원이 발생하지 않게. ‘가급적’ 강사가 알아서 다 해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진 피곤한 얼굴들을 만난다. 사실 그 마음을 이해한다. 사업은 많고 사람은 부족하다. 행정은 늘 시간에 쫓기고 현장은 늘 변수투성이다. 그런데 교육은 원래 변수가 생기는 일이다. 누군가는 갑자기 말을 하기 시작하고, 누군가는 울고, 누군가는 침묵한다. 질문은 계획서대로 나오지 않고 사람은 운영 매뉴얼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준비에 대한 정보조차 전달되지 않은 채 시작되는 교육, 교육하기 어려운 공간, 참여자를 함부로 대하는 태도를 만나면 교육자는 끊임없이 계산하게 된다. 어디까지 이야기할 것인가. 어디까지 문제 제기할 것인가. 어디까지는 민원이 되지 않을 것인가. 교육을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민원을 고민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문화예술교육은 지금도 교육보다 운영이 우선되는 구조와 싸우고 있다.
떠나는 사람들, 찾아오는 사람들
경력이 쌓인 예술강사가 오래 버티기란 쉽지 않다. 선거가 있을 때마다 리더가 바뀌고, 정책 용어가 바뀌고, 지원사업의 이름이 바뀐다. 올해는 지역이고, 내년은 AI이고, 그다음은 관광이고, 또 다른 무언가가 된다. 환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현장의 책임은 계속 늘어나는 것 같다. 얼마 전 ‘2026 유네스코 문화예술교육 주간’ 문화예술교육 포럼 ‘전환을 위한 질문’에 다녀왔다. 그날 포럼은 나에게 지난 20여 년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 같았다. 연구자, 기획자, 교육자, 정책가도 있었다. 모두가 문화예술교육의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장면은 포럼 시작부터 눈을 감고 있던 한 분의 모습이다. 현장은 계속 질문을 만들고 있는데 질문을 들어야 할 사람은 눈을 감고 있고, 연구는 계속 쌓여가는데 비슷한 정책 언어는 반복되고, 수많은 간담회와 연구보고서의 내용은 활자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현장은 부족한 정책까지 이해해야 하고, 교육자는 행정의 빈틈까지 메워야 하고, 심사는 컨설팅이 되고, 연구는 보고서가 되고, 정책은 또 다른 정책 용어를 생산한다. 그러니 심사위원은 심사하고, 행정가는 환경을 만들고, 연구자는 연구하고, 정책가는 정책을 만들고, 교육자는 교육하자. 각자 자기 역할과 자기 일을 좀 하자. 그래서 전환을 위한 새로운 질문은 자신의 역할과 책임 안에서 먼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 경기문화예술교육 매개자 연수 [멈칫] <겅중겅중 질문으로 가는 길>(2025)
김옥진
김옥진

마음놀이터 대표. 골목에 놓인 평상처럼 사람 사이 곳곳에 문화예술교육이 흘러가고 머물길 바라는 마음으로 20여 년을 그 곁에 있다. 여한이 없이 현장에서 놀았고, 이제 넘들 노는 거 구경하고 참견하러 다닌다.
okjin_do@naver.com

김탕
김탕

소통과 미디어를 주제로 작업하는 독립기획자. 다음커뮤니케이션, CJ CGV, 넥슨 컴퍼니, KT&G 상상마당 등 기업의 예술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했다. 공공 창작공간이나 예술교육 공간을 기획·설계하는 디렉터로 참여했고, 현재는 평범하려 노력하는 도시인의 삶을 이야기로 담는 작업과 도시 속 나무의 생존 방식과 건축이 기후위기 시대에 어떻게 전개되어야 하는지 작업하는 중이다.
홈페이지 zoinno.oopy.io

김희연(팅)
김희연(팅)

(Ting)으로 불리기를 좋아한다.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노리단’과 다문화 다국적 노래단 ‘몽땅’에서 활동했으며 현재 예술교육과 문화기획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서울·경기·강원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람과 지역을 만나고 연결하는 일을 한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많고, 훗날 명랑한 할머니가 되는 것을 인생의 중요한 계획으로 삼고 있다.
tingheeyeun@gmail.com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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