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을, 그 삶을 만나고 있는가

연구자의 고민①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문조사를 넘어 현장으로 향한다. 문화예술교육가, 행정가, 전문가, 연구자 등 24인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조건 속 장벽의 실체를 짚고, 그 공통점과 차이를 탐색하며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성숙을 위한 통찰을 모색한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

#예술이_재미_없다 #미래_말고_오늘

최보연 상지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문화정책연구자
[아르떼365] 원고청탁을 받은 후 수일 동안 생각들이 뒤섞여 떠올랐다 사라졌다. 마치 잘못 끼운 셔츠 단추처럼 어색하고 불편한 느낌이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에 맞서고 있나?”
어쩌면 너무나 익숙한 질문이기 때문에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20여 년 동안 문화예술교육에 관해 우리는 유사한 질문을 반복적으로 던져왔다.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엇에 기여하는가, 무엇을 해결할 수 있는가. 그리고 이제는 무엇에 맞서고 있는가를 묻는다. 얼핏 달라진 것 같지만, 질문의 방향과 구조는 다르지 않다.
매 학기 첫 수업에서 예술에 관한 생각을 학생들에게 묻는다. “왜 우리는 더 많이, 더 자주 예술을 즐기지 못하는 걸까요?”라는 물음에 매번 빠지지 않는 응답이 있다.
“내 관심사나 삶과는 딱히 관련이 없기 때문에”
학생들의 응답이 나를 오래 붙잡는다. 비판도, 거부도 아니다. 그저 자신의 삶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답이야말로 지난 20여 년간 문화예술교육이 현실에서 어떠한 위치에 있는지를 정확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원고 준비 과정에서 최근 진행된 문화예술교육 포럼과 집담회 자료집 그리고 [아르떼365]가 진행한 독자설문 결과 기사를 여러 차례 곱씹어 읽었다. 읽을수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것일까?”
예술교육가, 행정가, 연구자들 모두 문화예술교육이 처한 문제(늘 지적했지만 크게 변하지 않았던!)와 미래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예술이 재미없다고 말하는 사람들, 자신의 삶과 크게 상관없다는 사람들,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
그 와중에 「독자 설문조사 결과① 데이터로 읽기」 (아르떼365, 2026.6.1.)에서 유독 주목되었던 다른 한 가지는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내에서의 역할별 ‘재미’에 관한 답변 결과였다. ‘행정가’ 그룹은 8.2로 가장 높았던 반면, 일반 시민·참여자를 포함한 ‘기타’ 그룹은 6.7로 가장 낮았다.
우리는 지금까지 잘못된 질문을 잘못된 방향으로 던지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까?
어쩌면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맞서야 할 대상은 외부가 아닌 우리 자신인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오래도록 반복해 온 질문들,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온 언어들, 그리고 참여자와 이야기하고 있다고 믿어온 우리의 방식 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시대정신이나 해결 과제, 새로운 대상과 방식을 찾는 일이 아니라, “왜 여전히 많은 이들이 예술을 자신의 삶과 무관한 것으로 느끼는지”를 근본적으로 묻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지난 사반세기 동안 수많은 사업과 프로그램, 담론을 내세워왔음에도, 여전히 시민들의 일상 언어가 되지 못하고, 여전히 어렵고 낯선, 재미없는 무언가로 남아 있는 이유를 찾는 열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그 질문 앞에서라면, 문화예술교육은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감각의 표면을 넘어설 수 없도록 방해하는 것들에 맞서, 다시 예술의 ‘형식’을 소환하며

#감각을_통해 #감각을_향해 #자기표현을_넘어

최진 예술교육철학 연구자·대구교육대학교 교육학과 부교수
문화, 예술이 토대하기도 하고 또 겨냥하기도 하는 가장 중요한 축은 아마도 우리의 ‘감각’일 것이다. 문화예술‘교육’은 바로 그 감각을 ‘통해’ 또 다른 감각을 ‘향해’가는 경로를 마련하기 위한 기획이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은 지금 ‘어떤’ 감각을 향해가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어떻게’ 감각들에 접촉해야 하는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교육 기획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훨씬 ‘팬시’하고 그야말로 ‘힙’한 감각자극이 그 어느 때보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지향해야 할 특정한 감각의 성격이나 범주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K-팝의 영향력이나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한국 영화감독들의 약진과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웹툰 등의 인기는 과거에 비해 훨씬 세련되고 완성도 높은 우리의 감각적 향유 수준을 예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둘러싼 여러 주체는 각기 다른 감각과 관련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기관이나 재단 관계자는 그러한 감각 수준을 반영한 획기적이고 만족도 높은 교육적 기획이 나오길 기대할 것이고, 참여자는 수많은 자극 속에서 그래도 내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에 다른 재미가 있기를, 때때로 어떤 의미가 다가오기를 기대할 것이며, 무엇보다 예술교육가나 기획자, 강사들은 어떻게 참여자의 감각에 접촉하고 나아가 흔들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를 위해 먼저 기관 관계자들의 감각에 가닿는 말을 어떻게 골라야 할지 타협하며 지원서를 쓰고 있겠지만 말이다.
최근 [아르떼365]에서 문화예술교육이 맞서고 있는 것에 대해 수행한 대규모 설문조사는 이 모든 감각의 충돌 속에서도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고 있는 한 가지 지점이 있음을 드러내 보여주었다. 그것은 속도가 느리거나 지루하더라도 올지 안 올지 모르는 그 예측 불가능한 사건이 일어나기를 어쨌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사건이 예술이 줄 수 있는 유일한 ‘교육적 힘’이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각기 다른 언어와 경험들로 체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기에 문화예술교육이 맞서고 있는 것은, 어쩌면 그 교육적 힘이 발현될 가능성을 막고 있는 모든 것이 될 것이다. 가장 심각하게 막아서는 것과 용감해지면 가뿐히 넘길 수 있는 장애물들은 그 종류도, 범위도 다르겠지만 그것은 모두 우리가 훼손하고 싶지 않은 그 교육적 힘을 위협하는 데서 비롯될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예술의 교육적 힘을 정말 수많은 감각이 폭력적으로 우리를 뒤덮어버리는 시대에 더 분명하게 각자의 언어로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비약이 새로운 교육적 기획을 자꾸 요청하지만, 어쩌면 그 본질이 달라지지 않는다는 건 우리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표면 수준에 머문 감각을 뚫고 사물과 현상에서 물러나 있는 것들을 더 깊이 감각할 때 우리가 나 자신과 타인, 그리고 사물의 존재 방식을 정당하게 대우하게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의 감각을 유혹하고 위협적으로 덮치고 있는 감각물의 속도 전쟁 속에서 어떻게 문화예술교육은 누군가의 감각에 가닿고 다른 감각으로 안내할 수 있을까?
얼마 전 한 토크쇼에서 김애란 작가는 그 전략을 ‘형식’이라는 말로 귀띔해 주었다. 엘리트주의적이라고 멀리 미뤄놓았던 낡은 용어, 예술의 ‘형식’이라는 말을 조용하지만 단호한 자신의 주장 속에서 건져낸다. 그녀는 어떤 고통은 반드시 누군가가 말하고 싶은 속도와 방식으로 전해져야 하며, 그것이 바로 문학이 존재 이유라고 말한다. 스크롤을 앞으로 당기거나 빠른 재생 속도를 원하는 내 욕망을 누르고, 느리고 지루하더라도 누군가가 안내하는 특정한 ‘형식’에 따라 진동할 감각을 내어주는 것, 그렇게 들여오는 타자성에 예술의 교육적 힘이 있다. 이제 우리가 제안할 그 속도와 방식을 ‘형식’이라는 말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에 응하는 것이 이 시대의 윤리라고 말하는 김애란 작가의 말처럼, 예술교육은 이제 감각을 통한 자기표현을 넘어 윤리적 응답의 방식을 예시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 김애란 소설가(출처_MBC ‘손석희의 질문들’ 2026.4.15. 방송 캡처)
문화예술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대상 #성과 #지속

홍혜전 문화예술교육 연구자·장애무용교육가·국립공주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늘 좋은 의도에서 시작한다. 더 많은 사람이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문화적 기회를 넓히며, 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사업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오랫동안 연구하고 운영하면서 점점 더 커진 질문이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사업 공고문을 읽다 보면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유아, 아동, 청소년, 노인, 장애인, 취약계층, 지역 주민.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만나기 전에 대상을 먼저 정의한다. 물론 공공정책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문제는 그 기준이 문화예술교육의 출발점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보다 어떤 대상군을 모집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한다. 참여자의 삶과 이야기를 상상하기 전에 사업 요건을 확인한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자신을 그런 이름으로 기억하지 않았다. 참여자들은 청소년이어서, 장애인이어서, 취약계층이어서 문화예술교육이 의미 있었다고 말하지 않았다. 오히려 처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 보았던 경험, 누군가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보았던 기억, 낯선 사람과 관계를 맺게 된 순간을 이야기했다. 문화예술교육이 사람에게 남기는 것은 대상의 이름이 아니라 경험의 기억이었다.
연구를 하면서 또 하나 자주 마주한 것은 성과였다. 문화예술교육은 늘 몇 명이 참여했는지,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성과가 있었는지를 증명해야 했다. 사업이 끝나면 우리는 보고서를 쓰고 참여 인원과 운영 실적, 만족도 결과를 정리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다. 우리가 기록한 것은 수많은 숫자였지만, 정작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는 “그때 처음으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었어요”라는 한 참여자의 말 속에 남아 있었다. 한 참여자가 처음으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순간, 서로 낯설던 사람들이 조금씩 가까워진 과정,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만 함께 웃으며 마무리했던 경험은 어떤 항목으로 기록할 수 있을까. 사람에게 일어난 변화는 시간이 지나야 비로소 알 수 있는데 사업은 당장 성과를 요구한다. 관계는 천천히 만들어지는데 평가는 빠르게 이루어진다. 문화예술교육은 늘 이 딜레마와 마주하고 있다.
또 다른 고민은 지속성이다. 좋은 문화예술교육 사례는 많다. 훌륭한 예술교육가도 많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도 계속 만들어진다. 그런데 왜 문화예술교육은 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처럼 보일까. 사업은 끝나고 예산은 종료된다. 참여자들은 남아 있지만 프로그램은 사라지고, 현장에는 경험이 축적되었지만 제도는 다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 학교 문화예술교육 연구를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사례들은 짧은 성과가 아니라 오랜 시간 축적된 관계에서 만들어졌다. 예술이 학교의 문화가 되고, 지역의 일상이 되고, 사람들의 삶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재의 구조는 그 시간을 충분히 기다려주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예산 부족이나 참여자 부족과 맞서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보다 대상을 먼저 보게 만드는 방식, 관계보다 성과를 먼저 설명해야 하는 문화, 그리고 축적보다 끊임없는 새로움을 요구하는 구조와 맞서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문화예술교육을 계속 이야기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여전히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일이다. 대상이 아니라 사람을, 성과가 아니라 관계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바라보게 하는 일. 그래서 나는 다시 묻고 싶다. 문화예술교육은 누구를 위한 교육인가.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사람을, 그 삶을 만나고 있는가.
  • 2014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예술의 身’-예술을 통해 과학의 신이 되다!>(홍댄스컴퍼니 운영) 활동사진
최보연
최보연

공연기획 분야로 예술계 입문 후, 예술경영/문화정책을 공부했다. 정책과 예술현장이 필연적으로(!) 발생시키는 간극에 관심을 가지며, 줄다리기 균형 탐색을 업보로 생각하는 문화정책연구자다. 현재 상지대 문화콘텐츠학과 조교수로 재직 중이다.
philoarts@gmail.com

최진
최진

예술교육철학 연구자. 예술가들이 세계와 관계 맺는 방식에, 나를 비롯한 우리 사회가 결핍하고 있는 실존적 고민과 그로부터 빚어지는 자연스러운 존재 방식이 있다고 믿고 그것의 교육적 의미를 탐색해왔다. 대구교육대학교에서 초등교사가 될 학생들을 가르치며, 각자 세계에 대해 사랑하는 것들을 만들고 그것을 안내해줄 사람이 되어가자고 하는 중이다.
jinchoi@dnue.ac.kr

홍혜전
홍혜전

문화예술교육 연구자·장애무용교육가, 국립공주대학교 무용학과 교수. 사람과 예술을 연결하기 위해 문화예술교육을 연구하고, 그 만남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라며 교육한다. 학교문화예술교육과 사회문화예술교육, 장애예술 분야에서 연구와 실천을 이어오고 있으며, 현재 대학에서 문화예술교육가를 양성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성과보다 관계를, 대상보다 사람을 바라보는 일이 되기를 고민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hong_dance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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