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편집위원 좌담] 무엇과 맞서고 있나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이번 편집위원 좌담에서는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나’를 주제로 지난 2개월간 진행한 독자 설문 결과와 현장 전문가 기고를 바탕으로,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고민과 문제의식을 깊숙이 들여다본다. 서로 다른 위치와 역할에서 마주한 경험을 연결해 그 배경과 맥락을 짚어보고,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어떤 변화의 국면에 있고 당면과제는 무엇인지 논의한다. 나아가 [아르떼365]가 이 논의를 어떻게 이어갈지 함께 모색해 본다.
[좌담 개요]
일시·장소: 2026.6.22.(월) 오후 1시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아르떼 라이브러리
참석자 : 백현주(좌장/편집위원장)·김주리·김혜일·이화원·최선영 편집위원
 
[글 싣는 순서]
현장이 던진 질문
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백현주  앞서 설문을 바탕으로 우리의 문제의식을 짚어봤다. 이제 제도나 정책적으로 응답하고 개선해야 할 영역, [아르떼365]가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 이야기해 보자.
최선영  전문가 기고 중 김희연(팅) 선생님의 글 이 좋았다. 앞으로 웹진도 그런 방식으로 조금 더 분명하게 말했으면 좋겠다. 의미와 가치 중심으로 문화예술교육을 고민하는 글은 이미 많다. 이제는 제도 비판도 ‘아닌 건 아니다’라고 정확하게 짚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심사위원은 더는 섭외하지 말자’ 같은 이야기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개별 기관이나 실무자가 직접 말하기는 어려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김혜일  지역 문화재단을 예로 들면, 심사위원 풀을 구성할 때 여러 사람의 추천을 모아 중복되는 사람을 뽑는 방식이다. 문화예술교육의 경력이나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지, 어떤 작업을 해왔는지 보다는 추천한 사람과 그 네트워크에 대한 신뢰로 호명되는 구조인 셈이다. 물론 좋은 사람을 추천하면 다행이지만, 그 연결이 느슨해지면 문화예술교육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 현장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채 심사하는 상황도 생길 수 있다.
김주리  심사 방식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지만, 말씀하신 방식으로 운영하는 곳도 있다.
최선영  전문가 추천은 대부분 실무자가 전문성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이 방식이 충분히 투명하거나 전문적이지 않다는 것도 알지만, 현실에서는 이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측면도 있다.
거품을 걷어 내고, 예술 본연의 역할로

김혜일  심사는 여러 문제 가운데 한가지일 뿐이다. 저는 현장의 언어를 행정의 언어로 바꿔내는 작업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장에서도 수많은 실험이 이루어지지만 문제는 흥미로운 경험으로만 남고, 그 실험의 결과가 정책이나 공모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공모에 지원할 때가 되면 다시 자기 검열과 자기 복제를 하게 된다. 이것은 공모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제도권 안에서 모험과 실험, 도전이 허용되지 않으면서 현장은 포기하거나, 제도 밖에서 다른 방식으로 실험하는 구조가 반복됐다. 이렇게 놓고 보면 결국 바뀌어야 할 것은 제도와 정책이다.
백현주  그런 규격화가 결국 ‘성과 보여주기’가 되고, 설문조사 키워드로 보면 ‘규정과 지침’이지만, 더 들어가 보면 결국 ‘가치 증명’과 연결되는 것 같다.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이 지나치게 가치를 증명하려고 해온 것이 문제 아닐까.
최선영  요구하는 가치가 과대한 것 같기도 하다.
백현주  사실 문화예술교육은 그런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지금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도 예산을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예술가나 예술교육가 역시 한정돼 있다. 오히려 지난 20년 동안, 특히 중앙정부 정책의 요구에 따라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수치로 과도하게 증명해 온 것이 함정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이는 전문 기관과 전문가들에게 명확한 책임이 있다는 생각이다. 어떤 식으로든 분투해서 ‘그럴 수 없다’라거나 ‘이것이 가치다’라는 것을 증명해 내거나 설득해 내는 시간과 역량이 필요했는데 본질이 아닌 것으로 계속 설명해 온 결과다. 그 역사가 지금 개선해야 할 제도와 지침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최선영  문화예술교육이 막 시작되던 시기에 저도 활동을 시작했다. 당시에는 문화나 예술이 부흥하는 분위기 속에서 ‘뭐든 해보자’라는 흐름이 있었다. 그래서 정책의 설정값도 다소 높게 잡혔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현실은 달랐고 그사이 사회는 변했다.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과 인식도 달라졌는데 문화예술교육은 여전히 초창기 정책의 큰 방향성과 기준을 놓지 못하는 것 같다. 처음 만난 사람이 잠시라도 자기다운 표현을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문화예술교육의 가장 큰 가치이자 성과인데, 사업에서는 어느새 개인의 변화를 넘어 ‘지역 문화 활성화’ ‘예술의 일상화’ 같은 정책적 성과까지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도 그것을 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양성된 측면도 있다.
이제는 ‘무엇을 새롭게 할까’보다, ‘어떤 시기에는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 거품이 필요했던 때도 있었다’라는 사실을 인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고 문화예술교육이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깊고 섬세하게 다뤘어야 했을 과제가 여전히 남아 있다. 지금의 거품과 과도하게 설정된 기준을 인정한 뒤, 그다음 단계를 고민해야 할 시점인 것 같다.
이화원  문화예술교육은 이제 진흥원만의 영역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 곳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설문의 ‘문화예술교육’이라는 표현도 응답자마다 서로 다른 범위를 떠올리게 했을 가능성이 있다. 다만 진흥원이 지원하는 문화예술교육은 공공 재원을 기반으로 하는 만큼, 활동이 사회에 어떤 공공적 기여를 하는지는 여전히 중요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술이 작품 활동 자체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듯, 문화예술교육 역시 사람들의 삶을 회복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이런 가치보다 경제적 효용이 더 우선하는 분위기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문화바우처 사업만 봐도 참여자들은 취업에 도움이 되거나 결과물을 가져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더 선호한다. 그러다 보니 경험과 과정 중심의 문화예술교육은 참여자를 모으기 어려운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김주리  작년에 문화예술교육 정책 20년을 맞아 우리가 계속 반복해서 놓치고 있는 게 무엇인지 돌아보았다. 물론 의견이 갈릴 수 있지만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그동안 매우 도구적으로 포지셔닝되어 온 측면이 있다. 예산을 확보하려면 ‘왜 문화예술교육을 해야 하는가’를 계속 설득해야 했고, 그때마다 사회적 이슈를 가져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하다’라고 설명하면서 ‘무엇에 기여하는가’만 계속 강조된 거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도 사회적으로 잘 쓰여야 한다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 같다. 그렇게 사회적 역할과 목표가 더 강조되는 공모 방식 구조를 반복하다 보니 문화예술교육 주체 역시 예술가 외에 다른 분야의 주체가 다양하게 섞이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김혜일  또 하나는 사람에게 집중하지 못했던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정체성, 주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는 이렇게 많은 사업을 해오면서 정작 무엇을, 누구를 보고 있었을까. 문화예술교육은 예술인을 중심에 두고 함께 가야 했다. 그런데 사업이 많아지다 보니 누가 하든 상관없는 구조가 되었고, 그러면서 주체성도 점점 느슨해졌다. 예술인이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히 있는데 그런 역할을 기대하면서도 정작 그 기대를 분명하게 이야기하고 그에 맞는 지원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그래서 ‘예술인의 힘’을 다시 회복하고 힘을 실어줘야 한다. 예를 들어 무정산이나 무계획 사업도 해보고, 아이디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실험하고 모색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볼 수 있다. 그런 방식은 예술인에게 다시 초점을 맞출 때 가능해진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부터 조금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주리  문화예술교육이 기존의 교육 시스템에 잠식당한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원래 그 틀을 깨기 위해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다시 그 시스템 안으로 들어가 버린 느낌이다.
백현주  김주희 전주문화재단 예술교육팀장의 글(행정가의 시선②)에서도 느꼈지만, 저는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교육’과 맞서고 있다는 생각에 무척 공감한다. 문화예술교육은 전형적인 교육보다는 예술 행위에 가깝다. 하지만 지금 현장에는 문화예술교육이 교육의 일환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수가 된 게 아닐까. 그래서 다시 주체의 문제로 돌아오게 된다. 결국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고 함께 갈 것인가가 앞으로 중요한 과제가 될 것 같다.
김혜일  송선미 스윗뮤직가든 대표의 글(예술교육가의 키워드②)에서 문화예술교육은 “혼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 굉장히 와닿았다. 그 말이 ‘예술인에게 다시 초점을 맞춰야 한다’라는 이야기와도 연결된다. 결국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술인을 정책의 파트너로 인정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지금은 진흥원, 광역 재단, 예술가, 전문가가 모두 따로 움직이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을 함께 만들어가는 팀으로 다시 구성할 수 있는 구조를 실험해 볼 필요가 있다.
이화원  결국 정책이나 제도부터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연극 분야만 봐도 최근에는 공모에 선정되려면 AI나 기후위기 같은 정책적 의제를 제안서에 담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위기가 생겼다. 작품의 방식이나 예술적 문제의식과는 크게 상관이 없어도 그런 키워드를 넣어야 한다는 것이다. 공연을 보러 가도 AI나 로봇이 나오고, 환경위기가 계속 등장하는 이유도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사실 시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한 사람의 삶이 변하고, 그 변화가 주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성과다. 그런데 시를 가르치면서도 ‘AI와 우리의 관계를 써라’처럼 정책이 요구하는 주제를 얹는 순간, 오히려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본래의 의미는 희미해질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한다.
가치가 형식이 되도록

최선영  일상적인 교류가 토대가 되어야 예술교육 활동도 하고 사업도 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은 교류 없이 각자도생하면서 서로 눈치를 보는 상황인 것 같다. 자기 색깔을 잃더라도 사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선택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공공기관, 특히 진흥원은 공모 사업보다 현장에 교류의 기회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
문화예술교육이 교육과 맞서고 있다는 것은 결국 형식의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교육학도 다양한 실험과 담론이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계획 중심으로 무언가를 전달하는 교육 방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다 보니 문화예술교육도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교과목처럼 운영되어 온 측면이 있다. 다만 지금의 현장을 다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지난 20년 사이 예술을 배우고 경험하는 현장은 훨씬 다양해졌다. 원데이 클래스도 있고, 기업과 협업하는 프로그램도 있고, 대형 미술관은 접근성까지 고민하며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그런데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여전히 10차시, 20차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금 예술교육 현장이 어떤 모습으로 변화하고 있는지, 그 안에서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어떤 위치에 놓여 있는지를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이를 연구하고 분석할 주체나 예산도 충분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진흥원은 직접 사업을 계속 만드는 것보다 현장을 조사하고 담론을 형성하며, 제도 개선의 근거를 축적하고 공유하는 역할을 우선해야 하지 않을까. 내년 공모 사업을 어떻게 바꾸는 것보다, 여러 현장이 함께 참고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앙 기관의 역할일 것이다.
이화원  지난해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20주년이었는데, 그동안의 성과나 문제점, 개선 과제를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연구는 없었나. 20년이라는 시점이면 한 번쯤은 전체를 짚어볼 필요가 있지 않았을까.
김주리  백서도 만들었고 여러 점검 작업도 있었다. 다만 지금 최선영 선생님 말씀이나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 같다. 개선하려면 결국 어떤 렌즈로 볼 것인지가 중요하다. 무엇을 문제로 볼 것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가지고 분석해야 한다. 그런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과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내용을 쭉 나열하고 기존 방식대로 연구하는 것은 분명 다르다고 생각한다. 물론 기존 방식의 점검과 연구는 계속 이루어져 왔다.
김혜일  다른 창작 분야에 비해 유난히 문화예술교육에서는 형식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결국 교육이라는 틀 때문이다. 교육은 설계와 과정이 중요하다 보니 점점 형식과 틀에 갇히게 되고, 전문가들 역시 자연스럽게 과정 설계나 프로그램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에 더 집중하게 되는 것 같다.
백현주  문화예술교육이 담아야 할 가치가 자연스럽게 형식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제도와 사업이 요구하는 형식이 아니라,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가 자기 형식을 만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화원  그 부분은 예술가에게도 정말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를 하면 늘 ‘국고를 지원받으면서 그렇게 마음대로 해도 되느냐’는 논리로 반박한다. 하지만 그건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예술은 원래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라는 중요한 원칙이 있지 않나.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에서는 왜 그런 형식까지 강요하는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혜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에서는 문화재단 통합을 시작하면서 공모 사업 지원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논의를 하고 있었다. 특히 행정과 기관,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지원체계를 만드는 과정부터 심사까지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는 구조를 만들려고 하더라. 이 실험이 어떻게 될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흥미로운 시도라고 생각했다.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결국, 문화예술교육 20년 동안 이어온 정책과 시스템이 현장을 더 성장시키지 못하는 한계에 부딪혔다면 이제 새로운 상상력을 발휘할 때가 되었다고 본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된 새로운 변화를 두 기관의 통합과 맞물려 기대하면서 지켜보고 있다.

  • 김주리 편집위원

  • 백현주 편집위원장

  • 김혜일 편집위원

  • 이화원 편집위원

  • 최선영 편집위원
지지와 신뢰를 담아 다른 질문 하기

백현주  가치 증명을 위해 과도하게 부여된 미션과 그로 인해 만들어진 지침들이 발목을 잡고 있는 현실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제 시선을 바꿔서, 개인적인 경험담이나 성찰의 태도가 묻어있는 키워드와 답변 중에서 인상적인 사례를 이야기해 보자.
최선영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정말 많다. 그런데 그 경험들은 결국 제도와 연결되어 있다. 최근에는 제도가 타 기관과 연계하라는 신호를 많이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단체에 들어가거나 알음알음으로 하는 게 당연했다면 지금은 학교와 복지관, 유치원 등 다양한 기관과 협력 파트너를 맺는 것이 사업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된다. 하지만 그 촘촘한 사업 체계 이면에는 결국 한 개인이 홀로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현실이다. 자기 공간도 없이, 예술가나 예술교육가에 대한 이해가 충분하지 않은 기관에서 2시간짜리 블록 수업하는 여러 강사 중 한 사람으로 활동하다 보니, 현장에서는 자신의 가치와 역할을 끊임없이 증명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개인이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할 때는 그것을 만들어내는 사회적·제도적 조건도 함께 짚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해주는 게 매체의 역할인 것 같다. 이번 주제에 기고한 예술가들의 글처럼 자신을 성찰하는 이야기를 함께 전하는 것도 중요하다. 모두가 갈 길을 잃었다고 느끼는 시대지만, 결국 무엇이 재미있어서 여전히 이 일을 붙잡고 살아간다.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혼자일 수밖에 없는 구조가 그렇게 만들고 있다는 점도 함께 드러낼 필요가 있다.
이화원  설문을 보면서 많은 사람이 자신이 예술가인지, 교육자인지, 행정가인지 혼란을 겪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작업을 하다가 교안을 만들고 수업을 하고, 끝나면 사진을 찍고 성과를 정리하고 정산까지 하는 일을 한 사람이 모두 감당하는 경우가 많았다. 초기에 진입하는 예술교육가에게는 이런 부담을 덜어주는 구조나 예술교육단체가 필요하기도 하다. 문제는 많은 민간단체가 지속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대부분 사업은 행정 인력에 대한 예산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예술교육가가 교육에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운 구조가 반복되고, 그것이 근본적인 어려움과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예술교육가가 겪는 이런 구조적인 고충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이제는 더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백현주  정말 중요한 것은 모두 계획 밖에서, 의도 밖에서, 통제할 수 없는 곳에서 일어나는 것 같다.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인 효과나 감동적인 순간도 대부분 그런 곳에서 생겨난다고들 이야기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포착하지 못하고, 어떻게 다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곤란함을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제도와 정책은 속도와 효율을 계속 요구하지만, 문화예술교육은 그 정반대 편에 서 있는 일이다. 기다려야 비로소 드러나는 변화가 있는데 참여자도 지원 기관도 기다리지 못하고, 실행하는 사람들 역시 계속 성과를 요구받으며 쫓기다 보니 본질을 놓칠지도 모른다는 조바심과 우려를 안고 있는 것 같다. 이 이야기는 연구자들과 다른 필자들의 글에서도 반복해서 등장한다. 이렇게 시간을 요 하는 변화와 경험을 매체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
김혜일  핵심은 신뢰다. 현장은 행정을 믿지 못하고, 행정도 현장을 의심하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글을 읽으면서 행간에서 그것이 느껴졌다. ‘서류와 성과 지표로 다 담아낼 수 없는 경험이 있다’ ‘우리는 이렇게 애쓰고 있는데 왜 믿어주지 않는가’ ‘몇 번의 실수가 전부인 것처럼 우리를 판단하지 말아 달라’ 물론 현장에서 신뢰를 무너뜨리는 일도 생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서로의 신뢰를 어떻게 다시 만들어갈 것인지 시그널을 줄 필요가 있다. 앞서 이야기한 제도 개선도 그런 시그널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다. 예를 들어 ‘표에 넣지 않을 용기를 우리는 가질 수 있는가’ 같은 질문과 이야기들이 쌓일 때, 우리를 신뢰하고 함께 대화하려고 한다는 시그널을 현장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최선영  지금까지 제도나 심사위원, 컨설턴트가 주로 궁금해했던 것은 2시간짜리 프로그램 안에서 무엇이 이루어졌는가였던 것 같다. 계획대로 잘 추진됐는지, 참여자들이 좋아했는지, 그 시간 안에서의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해 왔다. 그러다 보니 현장 역시 그런 기준으로 활동을 설명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어떤 순간이, 어떤 참여자의 모습이 오래 남았는지 등 애써 넓혀서 질문해도, 2시간 안에 계획한 대로 잘 추진되었고 사람들이 좋아했다는 이야기로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우리는 평소 어떤 실천을 하고 있는지, 어떤 질문을 품고 살아가는지를 더 많이 물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날은 프로그램이 매끄럽지 않더라도, 무엇이 이 활동의 토대가 되어 동력을 잃지 않게 하는지를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화원  대부분 국고 지원사업은 원래 정성적인 성과를 보고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에는 그것조차 정량적으로 쓰라고 요구한다. 이전과 이후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몇 명이 얼마나 변화했는지를 수치와 그래프로 제시하라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작은 변화와 영향력을 만들어가는 일

백현주  현장의 진솔한 이야기를 통해 앞으로 [아르떼365]가 다뤄야 할 대목과 접근법에 대해서 여러 힌트를 얻은 설문이었던 것 같고, 위원님들께서 그것들을 짚어주셨다. 구조와 관계의 맥락 안에서 현장의 정수를 어떻게 전달해 보여줄 것인가 고민이 깊어진다. 이제 덧붙이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마무리 겸 나눠주시면 좋겠다.
김주리  정책 초기와 지금을 비교해 볼 때 가장 달라진 것 중 하나가 연구인 것 같다. 초창기에는 현장의 고민에서 출발한 작은 연구가 많았는데, 지금은 많이 사라져서 서론부터 결론까지 일정한 형식을 갖춘 연구만 남아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정책 과제를 개선하거나 새로운 방향을 만들기보다 이미 정해진 답을 뒷받침하는 경우가 많다. 공무원이나 진흥원, 지역센터에서도 정책의 근거가 필요하고, 결국 그런 연구가 반복된다. 이번 [아르떼365]에서 다루는 내용도 어떻게 보면 하나의 현장 연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웹진에서 이런 현장 연구의 주제와 방식을 함께 제안하고, 현장의 고민을 끌어가며 축적하는 역할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백현주  지난해 말 웹진 [지지봄봄]에서 ‘직접생산확인증명서’를 기사로 다룬 적이 있다. 원래 제조업 분야의 조달 과정에서 중소기업이 경쟁에 불리하지 않도록 직접생산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만든 제도이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문화예술교육 관련 용역사에도 이 자격을 요구하기 시작했단다. 기사는 이 행정 사례의 문제를 다룬다. 최근 한 기초재단에서 유사한 일이 발생해 경영지원팀에 해당 기사의 일독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납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실제로 요청이 철회되었는지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회계 부서에서 제도를 재점검하게 하는 사건이었다. 이런 것이 매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제도 개선으로 당장 이루어지진 않더라도 사안의 이해도를 높이고 질문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어렵지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최선영  작더라도 현실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지역에서 이런 문제를 고민할 수 있는 태도와 자질을 가진 사람들과 협력해 작은 실험부터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지원서 하나를 바꾸기 위해 몇 차례 함께 회의를 해보라는 정도의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이다. 그러면 현장의 담당자도 자신의 권한 안에서 충분히 실행해 볼 수 있다. 반대로 목표가 너무 거대하고 본격적이면 대부분 ‘우리는 못 한다’라며 뒤로 물러나게 된다. 오히려 작은 목표를 제안하는 것이 현실에서는 더 빠른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김혜일  사실 누군가가 못 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니다. 법으로, 거대한 권력이 가로막고 있지도 않다. 결국 스스로 한계를 만들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선영  지난 5월 열린 ‘문화예술교육 포럼-전환을 위한 질문’에서 최라윤 인천문화재단 대리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현장을 보고 그 내용을 다음 사업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제대로 현장을 보고 있느냐인 것 같다.
김주리  제가 느끼기에도 제도와 행정은 담당자의 관점 하나에 따라 되는지 안 되는지가 갈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제도를 벽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벽이 아니라 기둥에 가깝다. 자꾸 ‘안 된다’라고 말하는데, 조금만 시선을 바꾸면 그 사이로 충분히 지나갈 수 있는 틈이 많다. 결국 어디를 보느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이화원  예전에 한 공모 사업에서 왜 이렇게 설계되었는지 질문한 적이 있다. 그때 담당자는 바꾸고 싶지만, 자기 선에서 바꾸기 어려운 벽이 있다고 하더라.
백현주  제도 개선에서 가장 중요한 단위는 지역 문화재단, 그 안에서도 팀이라고 생각한다. 팀장 한 사람이 방어막이 되어 주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다. 행정이 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영역이기 때문에 결국 누구와 함께 변화를 만들어갈 것인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재단의 팀장들과 함께 작은 실험을 만들어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종의 작은 탐사보도팀처럼 움직이면서 현장에서 문제를 함께 들여다보고 작은 사례들을 발굴해 보는 역할을 웹진이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김혜일  그렇게 어느 한 지역재단의 팀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해 봤는데 재미도 있었고, 실제로 가능하더라는 사례가 나오면 그다음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화원  [아르떼365] 독자가 누굴까 늘 궁금했는데, 이번 설문에 응답한 분들이 모두 잠재적인 독자라고 생각하니 어깨가 더 무거워졌다. 이렇게 각자의 자리에서 힘겹게 맞서고 있는 분들에게 우리가 땀이라도 닦아주고, 조금이나마 지지할 수 있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더 고민하게 됐다. 그런 점에서 책임감도 느끼고, 앞으로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으면 좋겠다.
백현주  매체가 할 수 있는 일은 어쩌면 ‘질투 나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나도 한번 해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게 만드는 것이다. 이번 기획의 답변이나 기고 글에서 그런 면을 발견해 반가웠다. 아울러 그동안 담론권을 행사하지 못했던 다수의 목소리를 듣고 전할 수 있었던 것도 큰 소득이었다. 이 분야의 풀이 협소하다고 느꼈는데 많은 분을 발견하고 발굴한 기분이다. 함께 대화를 나누고 고민을 풀어갈 분들을 만난 것 같아서 힘을 얻는다. 감사하다.
[글 싣는 순서]
현장이 던진 질문
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정리_주소진 프로젝트 궁리 기획팀장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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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7월 29일 at 10:41 AM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편집위원 좌담] 무엇과 맞서고 있나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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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7월 29일 at 11:43 AM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편집위원 좌담] 무엇과 맞서고 있나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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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혜 2026년 07월 30일 at 11:40 AM

    제도 하나가 바뀌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실험과 질문이 쌓여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씀, 현장에서 늘 느끼는 부분이라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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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6년 07월 29일 at 10:41 AM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편집위원 좌담] 무엇과 맞서고 있나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공감이 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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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6년 07월 29일 at 11:43 AM

    누구와 함께 무엇을 향해 갈 것인가
    [편집위원 좌담] 무엇과 맞서고 있나② 다음을 여는 실마리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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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지혜 2026년 07월 30일 at 11:40 AM

    제도 하나가 바뀌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보여주신 게 인상적이었습니다. 작은 실험과 질문이 쌓여야 변화가 시작된다는 말씀, 현장에서 늘 느끼는 부분이라 크게 공감하며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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