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을 향한 지지와 제도를 향한 증명, 그 사이

행정가의 시선②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문조사를 넘어 현장으로 향한다. 문화예술교육가, 행정가, 전문가, 연구자 등 24인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조건 속 장벽의 실체를 짚고, 그 공통점과 차이를 탐색하며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성숙을 위한 통찰을 모색한다.
가는 길에 엔진이 계속 꺼지더라도

#혹독하고_외로운_지역 #움츠러드는_마음 #온전히_지지받는_경험

고소희 하남문화재단 문화교육그룹 그룹원
‘문화예술교육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라는 나의 작은 외침으로는 아무것도 변화시킬 수 없겠지만, 그 방향에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 “가만히 있자, 여긴 군대야”라는 메모장 속 문장과 함께 차가운 현실 앞에서 자꾸만 엔진이 꺼져간다. 이직 후 첫 주말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던 길, 복잡한 마음으로 나에게 남겼던 다짐이었다.
지역재단에서 교육사업을 한다는 건, 마치 오지 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일 같다. 각자의 상황은 다르겠지만, 우리 모두 무언가에 꽉 막힌 무력함을 공유하곤 한다. 특히 경기도 문화예술교육의 핵심과제인 ‘지방 이양’은, 문화예술교육이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지역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더 혹독하고 외롭게 만들었다. 지역 안에서 교육이 설 자리는 여전히 녹록지 않다. 재단의 현실은 늘 비슷하다. 공연이나 축제처럼 단번에 사람에게 각인되는 사업이 늘 우선순위가 된다. 교육의 필요성을 애써 호소해 보다가도, 재단의 사정도 이해가 가기 시작하면, 결국 한 걸음 물러서게 된다. “그저 유지라도 하게 해주세요”라고 빌다가 “이 정도면 할 만큼 했다” 타협하게 된다. 언제나 진심 어린 호소만으로는 누구를 설득할 수 없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을 해야만 하는 수치적인 결과와 성과가 필요하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본질보다 겉을 포장해야 하는 상황, 당장 위에서 원하는 성과가 없으니 불안한 마음. 결국 애꿎은 참여자 수라도 늘려보자는 생각에 매몰되고 만다. 그 과정에서 담당자인 나조차 흥미를 잃어갔다. ‘이걸 유지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던 문화예술교육일까? 담당자로서 나에게 오는 이점은 무엇일까?’ 고민 끝에 결국 마음이 자꾸만 움츠러들었다. 가망이 없어 보일 때쯤 만난 것이 경기문화재단 ‘경기 지역중심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다. 프로그램 운영이 아니라 지역 특색에 맞는 기반 구축 지원을 하는 이 사업을 통해, 나는 현장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동료 만나기’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내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결과는 지역 실천가들이 자생적으로 움직이는 현장이다. 그런 모임이 많아져서 오히려 재단에 힘을 실어주길 바랐다. 다행히도(?) 내부적으로 이 사업에 큰 관심이 없었던 덕분에 조금 더 자유롭게 기획할 수 있었다. 간절한 마음으로 ‘플러스마이너스1도씨’ 김지영·유다원 선생님께 도움을 청했고, 운 좋게 함께하게 되었다. 혼자서는 절대 못 할 작업이었다.
우리는 먼저 ‘공모사업용 콘텐츠’가 아닌 ‘나만의 것’을 찾는 데 집중했다. 자기 정립을 위한 연구 시간과 모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다다랐고, 그렇게 〈탐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프로젝트를 통해 지역 실천가들이 모였고, 워크숍에서 영감을 얻으며 마음이 맞는 파트너들을 만났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은 지속해서 연락하며 새로운 ‘작당 모의’를 이어가고 있다. 나는 이런 연구 모임들을 계속 응원하고 싶다. 예술교육 활동가가 지역에서 자생하려면 ‘내가 왜 해야 하는지’ 스스로 정립하는 시간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원사업의 틀 안에서가 아니라, 그 순간만큼은 정산과 성과 같은 형식에서 벗어나 온전히 지지받는 경험을 주고 싶다. (이 경험은 내가 원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으로 내 열정이 얼마나 더 갈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가는 길에 엔진이 계속 꺼지더라도, 길에서 마주치는 사소한 만남과 대화들 덕분에 다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어찌 됐든 내가 계속 이 길을 가고 싶어 한다는 것 하나만큼은 확실한 것 같다.
  • <탐미 프로젝트>
현장과 지역의 생동감을 위한 질문들

#축소되는_현장 #희미해진_연결 #행정가의_품

김영경 인천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과장
맞서고 있지는 않다. 그래도 인천문화재단에서 16년째 문화예술교육 업무를 담당하면서 놓치지 않고자 하는 관점, 그리고 정책과 스스로에게 늘 던지는 질문은 있다.
현장을 살리지 못하는 정책은 의미가 없다
모든 정책은 현장을 반영하여 수립된다. 현장의 요구와 제안으로 만들어진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다시 현장을 만든다. 그런데, 정형적일 수밖에 없는 정책사업은 종종 새로이 등장하는 현장 주체들이 그 틀에 활동을 맞추게 만든다. 이는 현장의 다양성과 생동감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정책사업이 모든 활동을 포용할 수는 없기에, 지원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정책사업 안팎을 넘나들며 자기 활동을 이어가는 현장을 기대한다. 인천에서의 몇 가지 시도 중 하나는 민간단체가 거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하는 지원이다. 핵심은 단체가 자기가 하고자 하는 문화예술교육을 분명히 하고, 활동을 이어가기 위한 구조와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은 아기를 낳고 보살피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김민지 대리가 설계했다.
중앙정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초기 정책사업 구조는 국비와 지방비를 매칭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사업을 전국에 펼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자치에 기반한 지역 중심 문화예술교육 추진으로 방향을 다시 잡아 사업을 자율적으로 구성할 수 있게 되었고, 진정한 ‘정책전달체계’로의 변화가 모색되고 있다. 이 시기 나는 광역단위 중간지원조직의 역할을 정책과 현장 사이에 ‘낀’ 조직으로서 이해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취지와 방향을 견지하면서, 보다 지역에 가까이 있는 기초문화재단이 각 지역에서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기초문화재단의 상황이 어떤지, 무엇이 어려운지를 함께 논의했고 그로부터 협력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재정 지방 이양 이후 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추진하는 중앙사업과의 연결이 희미해졌다. 중앙이 문화예술교육의 지향을 잡아주고 어려운 지역을 지지해주기를 바랐는데, 추진하는 사업들은 병렬적인 지원사업으로 보인다. 변화된 환경 속에서 나름의 고민이 깊고 현실적인 어려움도 많다는 것은 알지만, ‘중앙’의 역할을 선명히 하고 서로의 고민을 함께 풀어가는 연대와 협력이 절실하다.
행정가는 어디에 품을 들여야 할까
모든 조직은 한정된 예산과 인력으로 사업을 꾸린다. 그래서 체계적이되 확장 가능한 사업 구성과 효율적인 사업 방식은 늘 고민이다. 그런데 이렇게 도출된 사업구조가 깔끔하게 정리되었다고 해서 무조건 좋다고 할 수만은 없지 않나 하는 고민을 계속 품고 있다. 비슷한 사업을 하더라도 담당자가 어디에, 어떻게 품을 들이느냐에 따라 내실이 달라지는데, 문화예술교육은 그 정도가 더 크다. 적재적소에 품을 들이는 것이 만만치 않은 과제이지만, 현장과 만나 머리를 맞대는 과정을 공식적인 프로세스에 넣을 수도 있고, 때로는 비공식적으로 소통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누구나 자기 질문이 있다. 한 행정가가 가진 이 질문들이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각 주체에게 전해져, 스스로의 질문을 갱신해가며 작은 변화를 시도하는 어떤 움직임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 인천 문화예술교육 기획 지원 과정공유회(2025)
스스로를 어떤 언어로 설명하고 있는가

#제도적_언어 #자격의_간극 #관리하는_위험

김주희 전주문화재단 예술교육팀장
나는 지역에서 문화예술교육 기획과 실행을 오가며 일하고 있다. 현장에서 마주하는 여러 고민은 제도나 예산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문화예술교육이 스스로를 어떤 언어로 설명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에 가까웠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맞서고 있는 몇 가지 단어를 떠올려본다.
교육
문화예술교육은 어쩌면 스스로가 품고 있는 ‘교육’이라는 단어와 가장 오래 맞서고 있는지 모른다. 여전히 많은 문화예술교육은 누군가는 가르치고, 또 누군가는 배우는 구조 안에서 작동한다. 참여자는 배움을 제공받는 사람으로, 예술가는 그것을 전달하는 사람으로 구조화되어 있다 보니, 현장에서는 종종 이런 질문을 듣는다. “문화예술교육은 교육부에서 하는 것 아닌가요? 문화체육관광부의 교육은 무엇이 다른가요?” 익숙하지만 쉽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단순히 소관 부처의 차이를 설명한다고 해결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질문은 문화예술교육이 ‘교육’이라는 제도적 언어 안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증명해 왔는지를 되묻게 한다.
문화예술교육이 학교 교육의 대안으로 등장했던 이유는 지식을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이 아니라, 감각하고 관계 맺고 함께 살아가는 경험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지금의 문화예술교육 역시 어느 순간부터 교육의 효과와 성과를 설명하는 데 익숙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본다. 참여자의 변화, 역량 강화, 정량화된 만족도 같은 언어들 속에서 정작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들은 자꾸만 뒤로 밀려나는 듯한 현실 속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여전히 ‘교육’이라는 단어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다.
문화예술교육사
문화예술교육사는 문화예술교육을 수행하기 위한 국가 자격 제도다. 교사, 의사, 요리사처럼 ‘사(師)’라는 호칭은 전문성을 부여하고 제도 안에서 역할을 증명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문화예술교육사 자격 여부만으로 전문성을 설명하기 어려운 순간을 자주 마주한다. 지역의 생활문화 활동가, 문화예술 현장의 행정적 조력자, 마을에서 오랫동안 관계를 만들어온 기획자들처럼 자격증 없이도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문화예술교육사 제도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문제는 제도가 현장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충분히 담아내고 있는가에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전문성은 단순히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참여자와 관계를 맺는 태도, 지역의 맥락을 읽는 감각, 예술과 삶 사이를 연결하는 방식 역시 중요한 역량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책과 행정은 종종 전문성을 증빙 가능한 형태로만 판단하려고 한다. 자격, 이수 시간, 운영 실적 같은 기준이 행정적으로는 필요할지 몰라도, 그것만으로 현장을 설명할 수는 없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은 제도가 정의하는 전문가와 실제 현장에서 신뢰를 만들어가는 사람들 사이의 간극과 계속 맞서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이 사람이라면, 지금 필요한 것은 자격의 유무를 넘어 어떤 사람이 현장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가에 대해 깊게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대상화
문화예술교육 사업은 종종 참여자의 유형에 따라 분류된다. 가족, 장애인, 노인, 청소년, 군인, 직장인 등 사업의 이름은 대부분 특정한 대상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물론 누가 문화예술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지 살피고, 접근 기회를 넓히는 데 필요한 장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그 분류가 때때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라 사업을 설계하기 위한 조건처럼 작동하는 순간이 있다. 참여자는 한 사람의 복합적인 삶이 아니라 특정한 범주로 호명될 때, 그리고 사업은 그 범주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모았는지, 얼마나 많은 변화를 만들어냈는지 증명해야 할 때가 바로 그 순간이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사람을 만나기’보다 ‘대상을 관리하게’ 되는 위험에 놓인다. 예술교육 현장의 성과를 제출할 때, 외국인, 장애인, 노인이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선택하는 나 자신에게 ‘현타’가 오는 그 심정을 아마도 많은 기획자가 공감하지 않을까.
문화예술교육은 지금도 끊임없이 성과와 형식, 제도와 행정의 언어 속에서 스스로를 설명해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장에는 여전히 설명되지 않는 경험들이 존재한다. 숫자로 환산되지 않지만 누군가의 삶을 오래 흔드는 순간들, 정해진 목표보다 우연한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성장과 변화들 말이다. 어쩌면 문화예술교육은 지금, 제도가 요구하는 언어와 현장에서 실제로 발생하는 경험 사이의 간극과 맞서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 전주문화재단 예술교육팀 (AI 제작)
고소희
고소희

한때 연극을 공부하며 무대 위 배우를 꿈꿨지만, 지금은 모니터 앞에 8시간 동안 앉아있는 성실한 직장인. 그래도 예술교육 사업을 운영하며 현장을 기분 좋게 어슬렁거리는 중. 주어진 현실과 타협하는 법을 익혔지만, 가끔 마주하는 가혹한 현실 앞에서는 욱할 때도.
ksh11@hnart.or.kr

김영경
김영경

어쩌다 공공기관에서 일하게 되면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세계를 알게 되었다. 어느 사이 시간이 흘러 이제 이 자리에 있을 시간도 그리 많이 남지 않았다. 해야 할 것과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를 갈무리하며 일하고 있다.
shal@ifac.or.kr

김주희
김주희

예술행정가이자, 행정예술가. 문화예술 행정가는 누구인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정체성을 찾기 위해 애쓰는 중이다. 문화인류학을 전공했고, 광역과 기초문화재단에서 근무하면서 지역 예술인들 곁에서 일하고 있다.
전주문화재단 예술교육팀 인스타그램 @palbokartplay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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