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문조사를 넘어 현장으로 향한다. 문화예술교육가, 행정가, 전문가, 연구자 등 24인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조건 속 장벽의 실체를 짚고, 그 공통점과 차이를 탐색하며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성숙을 위한 통찰을 모색한다.
손의 기억과 몸의 사유 – ‘매개 경험’에 맞서다
#인공지능 #인간다움의_원형 #존재적_성장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센터장
클릭 한 번으로 정교한 이미지를 얻고 프롬프트 몇 줄로 작곡이 이루어지는 시대, 사람들은 묻는다. “왜 삶디(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는 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가르치지 않나요? 왜 여전히 목공과 바느질, 요리 같은 아날로그 창작만 고집하나요?” 이 질문은 날카롭지만, 동시에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의 결핍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삶디가 ‘첨단’ 대신 ‘몸을 쓰는 예술’을 선택한 이유는 기술에 어두워서가 아니다. 오히려 기술이 모든 것을 매개하는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인간다움의 원형을 깨닫고 회복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지금 정보가 경험을 대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경험이란 본래 특정 시간과 공간에서 자신의 육체를 투과하며 완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의 청소년들은 자연과 놀이, 심지어 타인과의 관계조차 스크린이라는 매개를 통해 정보로 먼저 접한다. 요리 영상을 보며 맛을 안다고 착각하지만, 식재료의 차가운 촉감이나 칼끝에 전해지는 저항감은 상실된다. 같은 공기를 마시며 말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감정을 느끼고, 서로의 몸짓에 공감하는 비매개적 접촉이 줄어들수록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핵심 요소인 ‘물성의 힘’은 희미해진다.
AI의 등장은 인간의 창의적 활동마저 알고리즘이 대신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었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점은 효율성과 생산성의 논리가 인간의 감각을 밀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창작은 단순히 결과물을 뱉어내는 계산 과정이 아니다. 비록 서툴더라도 자기 손을 움직이고, 몸으로 부딪치며, 실패와 반복 속에서 얻는 ‘감각적 지식’이 창의성의 본질이다. 직접 몸을 써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예술적 행위야말로 인간을 다시 인간답게 만드는 교육의 원형이다.
이는 단순히 아날로그적 감수성으로 돌아가자는 낭만이 아니다. 몸을 쓰는 예술을 기술의 대립항이 아닌, 인간성 회복의 통로로 제시하는 것이다. AI가 결코 복제할 수 없는 것은 ‘손의 기억’과 ‘몸의 감정’이다. 만드는 과정에서의 정서적 몰입과 육체적 고통, 그 속에서 찾아오는 환희는 오직 물리적 실체인 인간만이 누릴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따라서 문화예술교육은 결과물의 완성도보다 ‘만드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존재적 성장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문화예술교육의 과제는 디지털 환경 속에서도 ‘몸의 사유’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에 있다. 단순히 흙을 빚거나 나무를 다루는 형식을 넘어, 청소년들이 손과 몸을 통해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새롭게 느끼는 경험을 설계해야 한다. 기술에 모든 감각을 위임할 것인가, 아니면 기술의 시대에도 자신의 감각을 주도적으로 사용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예술적 감각의 영역을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 이 질문은 기술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감각을 되찾는 실천의 문제이다. 결국 문화예술교육은 과거로의 회귀가 아니라 인간의 감각과 노동, 감정이 중심이 되는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다. 손의 기억을 복원하는 일은 인간의 존엄과 창의성을 지켜내는 가장 본질적인 실천이다. ‘AI가 예술을 흉내 내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으로 예술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삶디는 오늘도 땀 흘리는 손과 정직한 몸의 감각으로 그 답을 써 내려가고 있다.
불안한 속도를 늦추고, 어제의 나를 넘어서
#아득한_속도전 #나다움 #어제의_나
이초영 별일사무소 대표
속도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뉴스를 가려둔 지 꽤 오래됐다.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SNS를 통해 세상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는 속도에 지쳐 SNS 활동마저 줄였더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보다 정보 획득이 늦어서 다시 뉴스를 챙기고 있다. 말 그대로 정보 격차를 고스란히 느끼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 SNS까지 줄이게 된 건, 어느 날 불쑥 압도적인 속도를 따라가느라 나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명분 아래, ‘다 알아야, 다 해봐야, 적어도 들은 적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생겼고, 이제는 그 마음을 서서히 몰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SNS를 덜 해도 여전히 뒤처지는 기분이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는 세상의 속도가 늘 불안하다. 매일 ‘너 역시 항상 바뀌어야 해’라고 요구받는 느낌이랄까. 이 아득한 속도전 속에서 나는 진짜 무엇과 맞서고 있나.
포털 사이트 첫 화면에 뉴스를 가려둔 지 꽤 오래됐다. 굳이 챙겨보지 않아도 SNS를 통해 세상 소식을 쉽게 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는 속도에 지쳐 SNS 활동마저 줄였더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보다 정보 획득이 늦어서 다시 뉴스를 챙기고 있다. 말 그대로 정보 격차를 고스란히 느끼는 기성세대가 되어버렸다. SNS까지 줄이게 된 건, 어느 날 불쑥 압도적인 속도를 따라가느라 나답지 못하게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문화와 관련된 일을 한다는 명분 아래, ‘다 알아야, 다 해봐야, 적어도 들은 적은 있어야 한다’라는 강박이 생겼고, 이제는 그 마음을 서서히 몰아내고 싶었다. 하지만 SNS를 덜 해도 여전히 뒤처지는 기분이다. 자고 일어나면 달라져 있는 세상의 속도가 늘 불안하다. 매일 ‘너 역시 항상 바뀌어야 해’라고 요구받는 느낌이랄까. 이 아득한 속도전 속에서 나는 진짜 무엇과 맞서고 있나.
나다움
20대와 30대의 나는 젊음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놀기를 좋아했다. 그게 일상이자 놀이였고 문화였다. 모든 시간의 주인공은 나였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바뀌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흐름을 즐기며 남들보다 약간 앞서기도 했고, 때로는 선망하며 쫓기도 했다. 현재,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으로 해온 일을 돌아보면, 그간 마주친 모두에게 고유한 가치를 찾아주는 조력자였다고 생각한다. 정책이나 행정이 요구하는 빠른 성과와 형식에 적당히 타협하고픈 순간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휘둘리지 않고, 현장에서 만나는 삶과 서사에 묵묵히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사람에겐 역할을 제안하고, 지역에선 감응을 느끼는 존재를 이야기했다. 정책을 향해서는 맥락과 기본을 살피며 속도와 관성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고유한 가치는 ‘나다움’이다. 나다움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내면의 중심을 잡고 나를 쌓아 올리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깊이 있게 사유하는 문화예술교육을 향한 첫걸음은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이다.
20대와 30대의 나는 젊음으로 대표되는 다양한 거리를 활보하며 사람들을 만나 술 마시고 놀기를 좋아했다. 그게 일상이자 놀이였고 문화였다. 모든 시간의 주인공은 나였다. 세상이 바뀌는 속도와는 무관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바뀌는 세상의 한가운데에 있었다. 그 흐름을 즐기며 남들보다 약간 앞서기도 했고, 때로는 선망하며 쫓기도 했다. 현재,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으로 해온 일을 돌아보면, 그간 마주친 모두에게 고유한 가치를 찾아주는 조력자였다고 생각한다. 정책이나 행정이 요구하는 빠른 성과와 형식에 적당히 타협하고픈 순간도 있었겠지만, 최대한 휘둘리지 않고, 현장에서 만나는 삶과 서사에 묵묵히 귀 기울이려고 노력했다. 사람에겐 역할을 제안하고, 지역에선 감응을 느끼는 존재를 이야기했다. 정책을 향해서는 맥락과 기본을 살피며 속도와 관성을 경계하라고 조언했다. 내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의 고유한 가치는 ‘나다움’이다. 나다움은 내가 누구인지 아는 것, 내면의 중심을 잡고 나를 쌓아 올리는 일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환경 속에서 깊이 있게 사유하는 문화예술교육을 향한 첫걸음은 나만의 속도를 찾는 일이다.
어제의 나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나’라는 질문에, 조급함에 흔들렸던 ‘어제의 나’라고 답하고 싶다. ‘성과’라는 결과에 적당히 타협하려고 했던 나, 제도의 한계로 탓을 돌렸던 나. 이처럼 ‘어제의 나’는 매일 태어난다. 불안한 속도를 늦추고, 내 뜻이 담긴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매일 어제의 나와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나처럼 속도전에 지쳐서 흔들리거나 ‘어제의 나’를 의심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다. 결코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속도에 맞춰 더 깊어지는 중이라고. 우리 곁에 어제의 나와 맞서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한결 단단해져서 묵묵히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나’라는 질문에, 조급함에 흔들렸던 ‘어제의 나’라고 답하고 싶다. ‘성과’라는 결과에 적당히 타협하려고 했던 나, 제도의 한계로 탓을 돌렸던 나. 이처럼 ‘어제의 나’는 매일 태어난다. 불안한 속도를 늦추고, 내 뜻이 담긴 문화예술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매일 어제의 나와 치열하게 다퉈야 한다. 나처럼 속도전에 지쳐서 흔들리거나 ‘어제의 나’를 의심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동료들에게 전하고 싶다. 결코 뒤처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속도에 맞춰 더 깊어지는 중이라고. 우리 곁에 어제의 나와 맞서는 동료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 내일의 나는 어제의 나보다 더 한결 단단해져서 묵묵히 사람들의 곁을 지키고 있을 거라고.
종종 진이 빠지지만, 그래도 애쓰는 것
#실체와의_대면 #정책의_파워 #내적_소란
임재춘 커뮤니티 스튜디오104 대표
예술은 무엇이고, 예술을 배운다는 것은 어떤 경험에 관한 것인지에 대해 서로 묻고, 생각해 보며, 말해도 보고, 듣기도 하며 자신의 이해를 재해석하는 데 시간을 할애하는 데 애를 쓴다. 그런 종류의 시간은 상대적으로 비구조화된 방식을 포함하고 있고, ‘말하고 듣고’가 다양하게 일어나도록 여러 형식과 분위기, 환경의 조성을 기획적으로 도모하곤 한다. 이야기꾼으로, 관찰자로서 현장에 갈 때도 20분이든 2시간이든 나에게 주어진 현장과의 시간은 대체로 이런 모습과 내용적으로 다르지 않다. 맞선다는 비장함을 의도하진 않지만, 정책과 제도를 포함해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나름의 비평과 입장은 나의 몸과 의식의 방향이 그렇게 향하도록 했다. 물론 매번 아름다운 결말로 이르진 않는다.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하란 말이냐는 불만
한 기초재단의 초대로 준비된, 문화예술교육과 지역을 주제로 한 이야기 자리였다.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어서 온 사람과 잘 몰라서 온 이들이 한자리에 있는, 말을 꺼내는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복잡한 맥락을 풀어갈 적절한 수위를 정하기 쉽지 않은 강의였다. 내가 전하는 어떤 말은 쉽게 끄덕이게 되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움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에 고마운 시간이었다. 영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거나 기존에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에 갸우뚱한 자신을 솔직하게 내비치며 이야기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참여자들의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한 사람만 빼고.
한 기초재단의 초대로 준비된, 문화예술교육과 지역을 주제로 한 이야기 자리였다.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어서 온 사람과 잘 몰라서 온 이들이 한자리에 있는, 말을 꺼내는 입장에서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복잡한 맥락을 풀어갈 적절한 수위를 정하기 쉽지 않은 강의였다. 내가 전하는 어떤 말은 쉽게 끄덕이게 되기도 하지만, 혼란스러움도 고스란히 드러난다는 점에 고마운 시간이었다. 영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거나 기존에 자신이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들에 갸우뚱한 자신을 솔직하게 내비치며 이야기의 활력을 만들어내는 참여자들의 분위기가 흥미로웠다. 한 사람만 빼고.
다른 사람들과 동떨어져 앉아 그러잖아도 눈이 갔던 한 청년은 내 이야기 중간중간에 마치 추임새를 넣듯 비웃곤 했다. 딱히 기분이 상하지 않았던 나는 혹시 당신의 생각은 다른지, 무엇 때문에 웃었는지 말해줄 수 있느냐고 말을 걸었고, 그는 도통 알아듣기 어려운 대답 아닌 대답을 했다. 한가지 전달된 것은 (정확한 표현을 재현할 수 없지만) 방법은 알려주지 않고 스스로 하란 말이냐는 불만이었다(고 나는 이해했다). 프로그램이든 활동이든 문화예술교육의 근간이 되는 핵심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예술교육가 자신이 살아가는 삶과 예술, 타인(종), 배움에 대한 사유는 스스로의 시간을 통해 축적해 가야 할 영역이지 2~3시간의 강의로 전달,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마땅함이 자주 현실에서, 서툰 개인의 욕망과 부딪힐 때마다, 방법을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는 피상적 요구에 휘말리지 않으려 나는 큰 숨을 내쉰다. 다시 처음(근본적인)의 이야기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있는 만큼 혹은 부족한 만큼, 자신의 예술관, 교육관, 성의 있게 하고자 하는 의지의 실체와 대면하는 것을 회피하고 문화예술교육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나.
구하고 돕고 해결하겠다는 선함의 정책적 가부장성
정말 물러설 수 없는 사실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보여준, 꽤나 집요하고 일관된 면 중 하나가 바로, 앞서 말했던 ‘나의 예술교육에 대한 입장과 역량에 관한 진솔한 대면의 부재’에 대해, 그래도 가능하다는, 그래야 가능한 행정적 상징, 표식을 공모라는 위계적 구조에서 구사했다는 점이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예술, 예술교육이 솔루션이 되면 예술교육을 설명하기가 수월하다. 의미와 효과가 선명하기에 정책과 제도는 예산확보와 지속성을 빌미로 문화예술교육을 효용성 중심으로 메시지를 생산하고 확대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부득이한 선택 덕분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제도가 지속할 수 있었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예술교육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물러설 수 없는 사실은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보여준, 꽤나 집요하고 일관된 면 중 하나가 바로, 앞서 말했던 ‘나의 예술교육에 대한 입장과 역량에 관한 진솔한 대면의 부재’에 대해, 그래도 가능하다는, 그래야 가능한 행정적 상징, 표식을 공모라는 위계적 구조에서 구사했다는 점이다. 다 아는 얘기겠지만, 예술, 예술교육이 솔루션이 되면 예술교육을 설명하기가 수월하다. 의미와 효과가 선명하기에 정책과 제도는 예산확보와 지속성을 빌미로 문화예술교육을 효용성 중심으로 메시지를 생산하고 확대해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부득이한 선택 덕분에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제도가 지속할 수 있었다고들 하는데 정말 그런 것일까?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까? 나는 많은 사람이 실제로 예술교육을 그렇게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무엇이 먼저인지 따질 수 없는 노릇이지만, 공모로 집약된, 현장을 향한 정책의 파워는 매우 핵심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다. 사회적으로 계층화된 취약성을 대상으로 한 사람(존재)의 규모화, 차시로 산술 한 규격화된 경험의 시간은 소위 ‘모델화’라는 하나의 양식으로 예술교육을 프로그램화하게 한다. 이 속도와 양을 무리 없이 맞추어 실수하지 않으려면 상술한 ‘스스로의 사유’로서의 문화예술교육은 낭만적일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소외되는 예술교육가 자신에 대한 각성은 시끄러운 일이다. 잘 보이지 않더라도, 문화예술교육에 관여한 이들에게, 서로에게 이러한 내적 소란이 일어나게 하는 것, 그게 나의 오래된 관심사다.

박형주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약칭 삶디) 센터장. ‘올제’라는 별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내일’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오늘을 살며 내일을 만들어가는 사람이 되자는 바람이 담겨 있다. 경기문화재단 문화예술교육 웹진 편집위원, 문화체육관광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문위원, 광주문화예술교육센터 팀장, 하자센터 기획부장 등을 역임했다. 2016년 청소년 특화시설이자 문화작업장인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개관과 함께 현재까지 센터를 이끌고 있다.
ollze@samdi.or.kr
삶디 홈페이지 www.samdi.or.kr
인스타그램 @my_sam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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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초영
별일사무소 대표. 20대 마지막쯤, ‘배가 고파도 하고픈 일 하며 살자’는 마음으로 홍대 앞에서 활동을 시작하여, 이후 20여 년간 ‘문화기획자’라는 직업으로 살고 있다.
eve-26@daum.net
페이스북 @choyoung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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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춘
‘생활적정랩 빼꼼’이라는 편협한 공간이 서식처였을 때는 그곳 운영자나 대표로 불렸다. 2020년 공간을 정리한 뒤부터는 행정적인 필요로 만든 단체 ‘커뮤니티 스튜디오104’ 대표로 호명된다. 경기문화재단에서 6년여를 보내며 문화와 예술, 배움, 삶의 가치를 공부하며 일했다. 조금 더 독립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고 싶어 ‘바깥’의 삶을 산 지 15년이 다 되어간다. 연구, 컨설팅, 문화기획 등 여러 일을 하며 사람들을 호명하고, 질문이 이어질 수 있는 장소, 틈을 만들어가고 있다.
-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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