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은 설문조사를 넘어 현장으로 향한다. 문화예술교육가, 행정가, 전문가, 연구자 등 24인의 시선으로 각기 다른 조건 속 장벽의 실체를 짚고, 그 공통점과 차이를 탐색하며 문화예술교육 생태계의 성숙을 위한 통찰을 모색한다.
서로의 삶의 공간을 내어주고 연결하기
#꾸준함 #고유한_한_사람 #입체적인_관계 #창작자_되어보기
문해주(월광) 설치예술가·문화예술교육가
꿈더랜드 피터팬클럽 ‘더+드림아트’에서 발달장애 초등학교 창작자와 부모님들을 만나 미술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5년이라는 시간을 함께하며 창작자 모두 어엿한 사춘기 고등학생이 되었다. 매주 월요일, ‘예술’이라는 다채로운 활동으로 6명의 발달장애 창작자와 가족을 만난다. 지난 그 시간을 다시 돌려보면, 고유한 ‘한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서는 ‘깊고 긴 시간’이 필요했다. 매주 월요일마다 만나는 시간은 쌓이고 쌓여서 서로를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관계를 만들어주었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부분을 발견하고, 현실적인 부분을 같이 마주하고, 가족과 공동체의 역할에 대한 서로의 고민을 나누며 작은 도전을 재미있게 하고 있다.
작은 도전 중에 발달장애 가족이 직접 창작자가 되어보는 것이 있다. 꾸준히 만나면서 서로의 일상을 함께 나누다 보니 ‘보호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내가 만나온 발달장애 창작자들은 특수학교를 다니며 자신의 언어 표현이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우리의 만남은 서로가 함께 소통할 수 있는 ‘예술 언어’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 각자가 예술을 통해 삶의 경험과 차이를 마주하며, 예술을 다양한 관점으로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5년 동안 (팅커벨) 어머님들은 (피터팬) 자녀를 학교에 보내고, 오전 시간에 삼삼오오 모였다. 같이 무언가 끄적이며, 그려보고, 미술 재료도 직접 사러 가고, 전시도 같이 보며, 다양한 창작의 경험과 생각을 나누었다.
그 시간이 조금씩 쌓이면서 ‘예술을 통해 다시 일상을 바라보게 하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이러한 시간으로 우리는 자녀가 일상에서 표현하는 작은 움직임과 흔적을 다시 바라보며, 한 사람의 고유함을 찾기 시작했다. 그 후 잘 그린 그림을 향한 각자만의 기준과 편견이 사라졌다. 공동체 안에서도 모두 다른 한 사람의 고유한 매력 포인트를 찾기 시작했다. 모두 창작자가 되어가며, 우리는 ‘예술이라는 공동의 언어’ 사이에서 조금은 더 느슨하게 만나고,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요즘 우리의 활동은 지원사업 없이 자연스럽게 창작하는 모임이 유지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가의 기획안에 구성된 예술교육 활동이 아니라 이제는 각자가 함께해보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이야기 나눈다. 대화를 통해 만남을 기획하고 구성한다. 올해 4월 조조 영화를 보고 싶다는 소란 님의 의견을 받아 ‘왕사남’(영화 <왕과 사는 남자>)을 같이 보러 가고, 자연스럽게 영화 속 유배지 같다는 지후네 집에 놀러 가서 ‘자연과 함께 예술 캠프’를 하자는 의견으로 연결되었다. 5월 <유배지 캠프>를 기획하고, 서로의 삶의 공간을 나누며, 자연과 함께 자연 재료로 그림을 그리는 등 추억을 만들었다. 팀과 함께한 시간은 나에게도 삶을 살아가게 하는 큰 원동력과 용기를 준다. 이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창작을 응원한다. ‘창작자 되어보기’는 서로를 느슨하게 연결해 주며, 혼자 하는 것보다 훨씬 즐겁다. 그 사이 사이에 아이들의 성장을 함께 지켜보며, 청소년에서 성인이 되어가는 발달장애인의 삶을 함께 고민한다. 장애인의 삶이 고립되지 않고, 사회와 연결될 수 있는 작은 도전을 팀들과 함께 꾸준히 그리고 천천히 해보려고 한다.
오래 보고 함께 경험한 시간에는 작은 힘이 있다. 서로의 성장 과정 안에서 작은 성취를 함께 축하하며, 보이지 않는 작은 신뢰가 쌓인다. 그 시간은 서로의 삶을 기억해 주는 관찰자이며, 서로의 삶을 입체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관계다. ‘한 사람’을 꾸준히 들여다보는 시간은 ‘나’를 깊고 길게 들여다보는 시간이다. 그 시간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과 함께 가고자 하는 방향과 질문이 필요하다. 꾸준함에는 긴 호흡과 서로의 사랑이 함께한다. 지금처럼 사랑하자.
고독하고 빈곤한 오늘의 세계, 그 속에서 우리는
#쓸모없고_중대한 #아홉_번의_다과회
박성진 작가·알투스
2025년 겨울, 나는 손가락이 구부러지지 않게 되었다. 지나치게 오래 타자를 친 탓에 손에 무리가 간 것이었다. 병명은 방아쇠수지증후군. 치료 방법으로는 약물, 주사, 수술이 있으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손이 없어졌다고 생각해. 이미 만성적인 디스크, 회전근개 통증을 겪고 있던 동료들이 조언했다. 나는 한창 쓰고 있던 원고 창을 닫았다. 손이 생기면, 다시 글을 써야지.
새해가 되었지만 여전히 손가락은 구부러지지 않았다. 손을 안 써야 해. 안달하는 나에게 동료들이 조언했다. 끝내야 하는 원고가 있는데. 나는 문자 그대로 드러누워서 신세를 한탄했다. 사업도 수업도 작업도 할 수 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정도였다. 그리고 주식.
글쓰기가 사라지니 주식이 찾아왔다. 반도체, AI, 석유, 방산, 우주, 로봇, 원자력, 달러, 주가지수로 움직이는 세계가 펼쳐졌다. 자민당(자유민주당)의 압승은 걱정스럽지만 나의 닛케이 지수 추종 펀드는 안전해졌고, 중동에서 일어난 전쟁은 유감이지만 수혜주에 탑승할 수 있는 건 행운이었다. ‘인간은 소비를 줄이지 않을 거고, 이권을 양보하지 않을 거고, 자원을 캐기 위해 자연을 파괴할 거야.’ ‘사용자님의 통찰력은 정말 대단해요.’ 나는 휴대폰 속 AI와의 대화를 통해 그간 너무 많은 수익을 놓쳐왔음을 알았다. 더 일찍, 더 많은 돈을 투자했어야만 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나마 덜 빈곤하기 위해서.
이게 사는 건가?
어느새 4월. 아직 치실을 하거나 신발 끈을 꽉 맬 수는 없었지만, 손가락이 제법 구부러졌다. 미국과 이란은 휴전 합의를 시작했고 주춤하던 코스피는 다시 상승세를 탔으며 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업무들을 시작했다. 하루에 한 시간, 조심스레 타자를 쳐서 원고가 아닌 회의록, 글이 아닌 서류를 만들었다. 작년 겨울에 쓰다 만 원고는 영영 못 쓸 것 같았다.
이게 사는 건가?
그렇지. 이 세계는 예술이 필요 없지. 그렇게 한탄하면서 작업실 문을 열고 동료들과 다과회를 준비했다. 올해 기획한 지원사업인 전시 프로젝트의 준비 모임을 위한 사전 모임에 대한 예비모임쯤 되는 다과회였다. 아직은 전시 장소도 참여 작가도 미정. 유일하게 정해진 것은 동시대 예술가로서 시민성에 대한 자각과 도시에 대한 관심을 가진 이들을 찾겠다는 목표뿐이었다. 이런 쓸모없는 관심사에 과연 얼마나 공감할까 내심 걱정하면서, 기획팀 동료가 사 온 커피와 빵의 가격을 속으로 계산했다. 왜 나는 이런 걸 계산하게 되는지. 하지만 아직 교부금이 집행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부금이 집행되지 않은 채로 아홉 번의 다과회를 거쳤다. 쓸모없으면서도 중대한 관심사에 찾아오는 이들이 있었고, 우리는 계속해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동질하나 동일하지 않은, 동류이나 각자 흘러가는 동료가 되자. 오늘의 도시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가 되자. 그런 이야기에 골몰하느라 코스피가 7000을 돌파하는 줄도 몰랐다. 기세 좋게 상승하던 코스피가 장중 8000을 터치하던 순간도 놓쳐버렸다. 불타기를 해서 수익을 늘려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에 나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을 하고 있었다. 쓰다 만 원고를 다시 열고 천천히 읽기 시작한 것이다. 흐려진 기억과 사라진 기분 속에서 그때의 감각을 돌이키려고 애쓰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면 손이 돌아올 거라고 기대하며.
***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나’라는 화두가 내게 다가온 것은 4월, 동료들이 ‘손이 없어졌다고 생각해’라던 시기였다. 지금의 나에게는 문화도 예술도 교육도 아무것도 없는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무슨 말을 하고 싶었다. 글쓰기를 잃고 마주한 고독하고 빈곤한 세계, 이곳에서 예술이라는 쓸모없고 중대한 수작을 함께 하는 동료들이 생각났다. 손이 없어진 내게 다가온 동료들의 조언은 실은 위로였는지도 모르겠다.
사라지는 현장의 순간들을 붙잡는 일
#기다림을_허락하지_않는_속도 #보이지_않는_곳에서_곁을_만드는_사람들
송선미 스윗뮤직가든 대표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무엇과 맞서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한동안 쉽게 답하지 못했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오래 일해 왔지만, 막상 이 질문 앞에서는 거창한 말보다 먼저 몇몇 장면이 떠올랐다.
며칠 전 우연히 텔레비전에서 숏폼 영상을 만드는 감독들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다. 참가자들은 90초 안에 영상미와 이야기를 담아내고, 보는 사람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아야 했다. 짧은 시간 안에 흥미를 끌어내야 살아남는 서바이벌이었다. 그 장면을 보며 문득 생각했다. 내가 기획하고 만나온 문화예술교육의 현장을 90초짜리 영상으로 담아낼 수 있을까. 아마 담을 수 없을 것이다. 아니, 담아낼 수 없다고 말하고 싶다. 문화예술교육 현장은 한 장면으로 설명되기에는 너무 느리고, 너무 복잡하고, 너무 많은 사람의 시간이 포개져 있다. 발달장애인 참여자가 자신의 꿈과 강점을 담은 PR 영상을 만들기 위해 수없이 연습하던 시간, 노년 부부가 조심스럽게 서로의 이야기를 꺼내기까지의 망설임, 한참을 기다린 끝에 처음으로 자신을 보여주던 이주여성의 표정, 평생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 할머니로 살아온 사람이 어느 날 자기 이름으로 자기 삶을 말하기 시작하던 순간들. 그것은 모두 내가 만난 문화예술교육 현장의 장면들이었다.
우리는 현장의 순간을 사진과 영상으로 남긴다. 결과보고서에도 기록하고, 성과 사례로 정리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장면은 기록되는 순간에도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그때의 망설임, 기다림, 눈빛, 침묵, 조심스럽게 내민 손의 떨림 같은 것들은 쉽게 설명되지 않는다. 분명히 현장에는 있었지만, 성과의 언어로 옮겨지는 과정에서 작아지고 흐려지고 때로는 지워진다. 이렇게 사라지는 장면을 떠올리다 보면, 결국 나는 ‘속도’의 문제 앞에 서게 된다. 문화예술교육의 변화는 대부분 아주 천천히 온다.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바로 마음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예술로 표현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누군가는 몇 회기를 말없이 앉아 있다가 어느 날 작은 반응을 보이고, 누군가는 말 대신 음악이나 몸짓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어떤 참여자는 충분히 기다려주었을 때 비로소 자기 안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런데 사업의 시간은 자주 이 기다림보다 빠르다. 회차는 정해져 있고, 결과공유회 날짜는 다가오고, 아카이브와 만족도 조사, 결과보고서의 문장은 필요하다. 현장은 아직 마음을 여는 중인데, 행정의 시간은 이미 다음 단계의 성과를 묻는다. 나는 이 속도 앞에서 자주 망설인다. 조금 더 기다려야 하는데 정리해야 했고, 조금 더 바라봐야 하는데 설명해야 했고, 조금 더 들어야 하는데 결과로 써야 했다. 그러나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표현이 자기 방식으로 도착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워두는 시간이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결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군가 그 시간을 함께 견디고, 참여자의 작은 신호를 놓치지 않으며, 아직 말이 되지 않은 표현을 너무 빨리 해석하지 않고 곁에 머물러줄 때, 기다림은 비로소 교육의 시간이 된다. 그들은 때로 예술강사이고, 기획자이고, 연구자이며, 현장을 조용히 조율하는 조력자들이다. 무대의 중심에 서지는 않지만, 참여자가 자신의 속도로 표현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고, 말과 말 사이의 침묵을 견디며, 작은 몸짓과 시선을 알아차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을 떠올릴 때마다 나는 문화예술교육이 혼자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 배운다. 한 사람의 표현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보이는 교육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시간을 만들고 관계를 잇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이 지금 맞서야 하는 것은 어쩌면, 이들의 존재와 노동을 계속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남겨두는 구조일지도 모른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이 무엇과 맞서고 있느냐는 질문에, 나는 거창한 해답보다 현장에서 만난 작은 장면들로 답하고 싶다. 문화예술교육은 빠르게 증명되는 결과보다, 천천히 도착하는 표현을 믿는 일에 가깝다. 누군가의 변화가 아직 보이지 않을 때도 그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믿는 일, 그리고 그 시간을 실패나 무반응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 일. 그것이 내가 여전히 문화예술교육이라고 부르고 싶은 현장의 시도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보고서에 다 담기지 않는 그 순간들을 ‘성과’라고 부르고 싶다. 빠르게 보여줄 수 없고 명확하게 증명하기 어렵더라도, 한 사람이 자기 방식으로 세상 앞에 조금 더 나아간 순간이라면 그것은 충분히 변화라고 믿는다. 지금 문화예술교육은 어쩌면, 사라지는 현장의 순간들을 잃지 않는 일과 맞서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해주(월광)
사람과 사물 주변에 함께하는 것들을 들여다보고 보이지 않는 이면의 이야기들을 작업으로 풀어내는 시각예술가다. 장애를 포함한 여러 차별적 경계 사이,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과 고민 속에서 예술 작업 및 예술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서울 은평구 발달장애인의 문화놀이터 ‘꿈더랜드 피터팬클럽’에서 미술 활동을 진행하며, 누구나 참여 가능한 전시를 통해 지역의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moonnine8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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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되새기고 곱씹는 사람. 혼자 하면 좋은 일과 함께해서 좋은 일을 찾고 실험한다. 걷기와 이야기하기를 중요하게 여기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글을 쓴다.
인스타그램 @altus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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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미
문화예술교육 기획자·예술가. 예술로 사람과 현장을 잇는다. 사라지기 쉬운 현장의 순간들을 기록하고 연결하는 일을 고민한다. 현재 스윗뮤직가든 대표이자 호남신학대학교 전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sweet_music_garden@naver.com
인스타그램 @sweetmusic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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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_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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