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예술교육 정책은, 예술을 매개로 인간이 자기 삶의 질문을 갖게 하는 것, 일상에서 문화예술을 경험하게 하는 것, 인문적 인간을 키워내는 것을 지향해왔다. 이런 정책 방향에 따라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하 진흥원)은 전국 초중고등학교의 학생부터 농산어촌 마을의 어르신, 복지기관 이용자, 교정시설 수용자 등 삶의 가장 구체적인 현장에서 사람과 문화예술교육이 만나도록 하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다양한 현장에서 만들어진 것은 프로그램 너머의 관계였고, 관계를 통해 가능해진 변화였다.
2026년, 진흥원은 처음으로 ‘인문정신문화 사회적 확산 사업’의 전담기관이 되었다. 20여 년간 쌓아온 문화예술교육 정책 현장에 대한 감각과 철학이 이제 ‘인문정신문화’라는 새로운 영역과 만나게 된 것이다. 문화예술교육과 인문정신문화는 서로 다른 정책 언어와 방법론을 가지고 있지만, 국민의 삶 속에서 문화의 향유, 인문적 사유가 가능하게 한다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
지금, 왜 인문정신문화인가
2026년은 인문정신문화 정책의 중요한 전환점이다. 2016년 제정된 「인문학 및 인문정신문화의 진흥에 관한 법률」에 따라 올해는 3차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시기이다. 1차 계획에서는 개개인의 인문적 소양 회복에 집중했고, 2차 계획은 코로나19로 인한 공동체 위기에 응답했다면, 3차 계획 수립을 앞두고 마주한 현실은 더 복합적이다. AI·디지털 과몰입으로 인한 공감 능력 결여와 문해력 하락, 저성장·불평등과 사회 신뢰의 붕괴. 한국은 2025년 초고령사회에 진입했고 1인당 GDP 3만 달러를 넘겼지만, 삶의 만족도는 OECD 38개국 중 33위다. 물질과 기술이 채울 수 없는 자리에서 인간 존엄과 정신적 풍요를 회복하는 일이 요구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정책 영역인 인문정신문화는 대학·학문 중심의 인문학과 차별화된다. 함께 읽고 사유하는 것에서부터 길 위에서 인문을 만나고, 사회문제를 인문적 관점으로 함께 해결하는 실천까지 그 스펙트럼 역시 다채롭다. 국민의 인문 소양과 지역 인문 생태계를 살리는 일, 인간 존엄과 공동체성의 회복 등 경제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소프트파워의 기반이 인문에 있는 것이다.
현장의 문법으로 새로 쓰는 인문정신문화
진흥원이 인문정신문화 확산 사업을 추진한다면 무엇이 달라야 할까. 그 근거와 힘은 20년간 정책 현장에서 머리와 몸과 마음으로 익혀온 감각에 있다. 말하는 자와 듣는 자로 고정된 구조가 아닌, 서로-배움이 일어나는 현장을 설계하는 것. 강연을 기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자기 안의 질문을 꺼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 그 철학이 올해 인문정신문화 정책사업 설계에서 구체적인 변화로 이어졌다.
대표 사업인 〈길 위의 인문학〉은 도서관을 넘어 다양한 사회시설로 참여 구조를 넓히고, 함께 토론하고 사유하는 방식을 통해 참여자가 인문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설계했다. 〈모두의 인문학〉은 역량 있는 기관·단체가 생활권 내 복지시설·지역서점·문화시설을 연결해 지역 곳곳의 인문 활동을 지원하는 지역 인문 생태계 모델로 새롭게 기획했다. 〈지역인문실천〉은 지역의 현안을 인문적 관점으로 분석하고 지역민이 주체가 되는 실천형 프로젝트를 지향하며, 〈청년인문실험〉은 스스로 사회문제를 탐색하고 인문적 해법을 설계·실행하는 청년 100팀의 활동을 지원하고자 한다. 수혜자가 아닌 인문 활동의 주체로 성장하도록 진흥원이 문화예술교육에서 오랫동안 현장과 함께 쌓아온 믿음으로, 인문정신문화 사업도 그렇게 시작한다.
전담기관 첫해, 시작하는 질문
2025년에 유네스코는 ‘예술교육(Arts Education)’을 ‘문화예술교육(Culture and Arts Education)’으로 명칭을 조정했다. 예술교육이 인간의 문화적 삶 전체의 기반임을 선언한 것이자, 예술교육의 외연이 문화 전반으로 확장되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한 것이다. 같은 해 진흥원은 문화다양성 정책사업을 시작했고, 올해는 인문정신문화 전담기관이 되었다. 문화정책의 여러 영역이 삶의 질과 사회적 가치, 공동체 회복이라는 공통의 과제 앞에 함께 서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 4월 개최한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집담회’에서는 인문과 문화예술교육이 현장에서 이미 자연스럽게 만나고 있다는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기획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자리에서 인문과 예술은 나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문화예술교육과 인문정신문화는 정책 수준에서, 또한 다양한 현장에서 발현되는 각자의 전문 영역이 있다. 어쩌면 전담기관 첫해에 진흥원이 해야 할 일은 섣부른 융합이나 차별화를 서두르기보다 인문 활동이 국민의 삶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그 현장을 먼저 살피는 일일 것이다.
답을 내리지 않고 같이 질문하는 자리, 쓸모를 묻지 않고 함께 앉아 있는 시간, 누군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일. 효율로 환산되지 않는 그 시간이 사실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들일 수 있다. 진흥원은 올 한 해 인문이 실제로 시민의 삶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뿌리내리는지를 살필 것이다. 그 고민이 인문정신문화 사업의 다음을 열고, 문화예술교육의 다음 20년의 방향을 함께 묻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 김자현
- 사람들이 문화와 예술에 참여할 기회와 능력을 갖추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설립 시기부터 함께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 공감대 확산, 꿈의 오케스트라·어린이 예술마을 등 신규 정책사업모델 개발, 전문인력 양성 및 국제교류 등을 담당했다. 현재는 인문정신문화본부에서 일하며 문화예술교육은 모든 국민에게 인문학적 태도나 시각에 기반한 예술교육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문화예술교육 분야 안팎을 넘나드는 상호보완적인 작업에 재미와 열정을 느끼고 있다.
jhkim@arte.or.kr - 섬네일_인문360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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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을 보여주고, 인문은 그 마음이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길을 어주네요. 바쁜 일상 속에서 무뎌진 감각을 깨워주는 고마운 만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