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에서 마주한 중장년의 감각

중장년 여가 예술감상교육 프로그램 ‘예술에 빠질 예.감.’

오랫동안 나는 미술의 현장 안에 있었다. 전시를 기획하고, 작품 앞에서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일을 반복하면서, 어느 순간부터는 작품보다 사람들의 얼굴을 더 오래 바라보게 되었다. 그림 앞에 선 몸의 각도, 시선이 머무는 시간, 그리고 그 시선이 이내 어디론가 미끄러지듯 흘러가는 순간들. 미술관은 늘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지만, 그 안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공백이 있었다. 작품은 충분히 존재했고, 정보 역시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것들이 감각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공기 중에서 흩어지는 장면을 나는 반복해서 목격했다.
본다는 것의 감각
그 공백이 무엇인지 이해하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시장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한국 미술시장의 수요층이 얇고, 미술을 적극적으로 소비하는 층이 제한적이라는 익숙한 진단에 쉽게 동의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시장의 문제가 아니라 더 근본적인 층위의 문제라는 확신에 가까워졌다. 사람들은 미술을 소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자기 삶의 언어로 번역해 본 적이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대상을 인지하는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자기 내부의 감각과 연결하는 과정이다. 그 연결의 경험이 거의 축적되어 있지 않았다.
이 문제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층이 바로 중장년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미술에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의 문법을 몸으로 통과해 온 사람들이다. 산업화의 시간 속에서 ‘빠르게, 많이, 정확하게’라는 기준이 삶을 지배했고, 그 안에서 감각은 언제나 후 순위로 밀려났다.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 앞에서 멈추고 싶은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탐색하는 일은 대부분 유예되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 결과 미술은 그들에게 정답을 맞혀야 하는 시험지이거나, 애초에 자신과 무관한 세계로 남았다.
그래서 나는 질문을 바꾸었다.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보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미술에 대한 정보를 얼마나 전달할 것인가가 아니라, 그림 앞에 서는 방식 자체를 어떻게 전환할 것인가를 묻기 시작했다. 그것은 지식을 더하는 일이 아니었다. 이미 존재하지만,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감각을 꺼내는 일, 그리고 그 감각을 신뢰해도 된다는 경험을 만들어주는 일이었다. 본다는 것은 눈앞에 대상이 나타나는 사건이 아니라, 세계와 자기 몸이 서로를 통과하는 경험에 가깝다. 나는 이 오래된 통찰을 강의의 설계 원리로 삼았다.
고정된 시선은 없다
중장년 여가 예술감상교육 프로그램 ‘예술에 빠질 예.감.’을 맡았을 때 중장년의 예술 찾기에 대한 내 생각을 구체적인 방식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안동에서는 한국미술을, 세종에서는 현대미술을 각각 여섯 차례씩 진행했다. 준비 과정에서 나는 다시 공부해야 했다. 미술사적 지식을 보강하는 방향이 아니라, ‘본다는 것’ 자체를 다시 사유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었다. ‘설명은 줄이고 대신 보게 할 것, 빠르게 이해시키기보다 오래 머물게 할 것’이라는 기준 아래에서 기존의 강의 방식을 해체하고, 모든 강의를 처음부터 다시 구성했다.
안동에서의 강의는 그 실험의 시작이었다. 나는 한국미술 감상에 서양미술을 병치하는 방식을 택했다. 책가도의 조형성을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작품과 나란히 놓고 보았고, 정선의 금강산을 폴 세잔의 생트빅투아르 산과 같은 화면 위에 올렸다. 그것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보는 방식 자체를 흔들기 위한 장치였다. 민화 강의에서는 조선 후기 책거리와 브라크의 〈둥근 테이블〉(1929) 같은 큐비즘 작품을 함께 보여주었다. 처음에는 낯선 조합으로 보이지만 두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하나의 고정된 시점을 거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책거리 화면 한가운데 수박이 있다. 잘린 단면은 위에서 내려다본 시점으로, 옆에 놓인 수박 조각은 측면에서 본 시점으로 그려졌다. 같은 수박을 두 개의 눈으로 동시에 본 것이다. 왼쪽 탁자는 옆에서 바라본 모습이지만, 그 위에 놓인 사물들은 조금 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본 형태로 그려졌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는 한자리에 서 있지 않았다. 각 사물의 가장 잘 보이는 면을 포착하기 위해 시선을 계속 이동시켰다. 이는 브라크의 분석적 큐비즘이 사물을 해체해 여러 시점을 하나의 화면에 쌓아 올린 것과 정확히 같은 원리다. 브라크는 그 해체를 극단까지 밀어붙여 사물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들었고, 조선의 화원은 사물의 형태를 지키면서도 시선을 복수로 운용했다. 목적은 달랐지만 두 그림 사이 방법론의 뿌리는 같았다. 둘 다 고정된 시선이 없다는 것을 보게 했다.
정선과 세잔의 그림도 같이 보았다. 정선은 금강산을 수십 차례 직접 오르며 그렸다. 그가 택한 방식은 관념적 재현이 아니었다. 수직의 붓질을 반복해서 쌓아 암벽의 중량을 만들었고, 짙은 먹을 여러 번 겹쳐 바위의 기세를 눌러 담았다. 젊은 시절에 그린 금강산과 나이가 들어 그린 금강산은 서로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세잔도 생트빅투아르 산을 평생 수십 번 그렸다. 계절에 따라 보는 시선에 따라 그려낸 그의 산은 풍경이 아니라 조형의 문제였다. 그는 산의 표면을 기하학적 색면으로 분해하고 재구성하면서, 눈에 보이는 산이 아니라 자신이 이해한 산의 구조를 화면 위에 세웠다.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을 반복해서 마주하면서, 재현이 아닌 재발명을 택했다. 나는 이런 그림을 수십 장씩 나란히 놓고 보여주었다. 전혀 다른 시대, 전혀 다른 문화권에서 온 그림들이 같은 화면 위에서 대화를 시작할 때, 본다는 행위 자체가 다시 발견된다고 생각했다. 지식이 아니라 감각으로 그림 앞에 서는 방식,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느끼는 경험. 그것이 내가 이 비교의 방식으로 강의를 설계한 이유였다.
자기 안에서 시작되는 감상
수업이 끝난 뒤 한 분이 다가왔다. “오늘 강의를 듣다가 너무 좋고 흥분되어서, 심장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요.” 나는 그 말을 오래 기억했다. 내가 만든 방식이 그들에게 실제로 작동하고 있다는, 가장 명확한 증거였다. 울산에서 안동까지 매주 빠지지 않고 찾아온 분도 있었다. 그분도 비슷한 말을 했다. 자기 감각이 열리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고. 그 거리를 매주 감수하게 만든 것이 지식에 대한 갈증이 아니라 감각의 경험이었다는 사실이, 내가 이 강의에서 하고자 했던 것이 맞았다는 확인이었다.
강의가 이어지면서 우리는 함께 미술관을 찾았다. 그 시간은 강의실과는 다른 밀도를 가지고 있었다. 스크린이 아니라 실제 작품 앞에서 나는 설명 대신 질문을 던졌다. “어디에서 시선이 멈추세요?” “이 부분이 왜 불편하게 느껴지세요?” “이 장면이 기억나는 이유가 있을까요?” 처음에는 조심스럽던 말들이 점점 길어졌다. 누군가는 색채를 이야기했지만, 그것은 화가의 색이 아니라 자신이 처음 본 대나무의 색이었고, 강물의 색이었다. 누군가는 작품 속 인물의 자세에서 오래된 기억 속 누군가를 떠올렸다. 설명할 수 없지만 이상하게 좋다는 말을 반복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감상이었다. 그들과 함께하는 동안, 미술은 더 이상 외부의 대상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발생하는 경험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가르친다는 감각은 사라지고, 함께 탐색한다는 감각이 자리를 대신했다.
세종에서는 또 다른 방식의 실험을 시도했다. 현대미술 강의에서 나는 인상주의를 건너뛰고 개념미술에서 시작했다. 대부분이 선택하는 안전한 경로를 의도적으로 피한 것이다. 마르셀 뒤샹의 작업을 보여주며 ‘왜 이것이 예술인가’를 묻기보다, 우리가 이미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개념으로 나누고 정의하며 살아가고 있는지를 먼저 드러냈다. 마트의 진열 방식, 뉴스의 언어, 공간을 구획하는 습관들. 그것들이 하나의 개념적 질서라는 것을 확인한 뒤, 다시 뒤샹의 변기로 돌아오자, 참여자들은 더 이상 낯선 작품 앞에서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경험으로 그것을 해석하기 시작했다.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흥미로운 것은 그 이후였다. 개념의 문을 먼저 열자, 팝아트도 퍼포먼스도 미디어아트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감각이 먼저 열리면 지식은 뒤따라온다는 사실을 그들은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지식이 먼저 들어가면 감각은 오히려 더 위축된다는 것도 드러났다. 강의가 거듭될수록 “나는 미술을 잘 모른다”라는 말은 줄어들고, “나는 이렇게 느꼈다”라는 말이 늘어났다. 그것은 단순한 표현의 변화가 아니라, 세계를 받아들이는 방식 자체의 전환이었다. 매 강의 마지막에는 준비한 이미지들을 다시 돌려보며, 각자의 마음에 남는 한 작품을 고르고 그 이유를 이야기했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이들도 이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감상은 설명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보고 느끼고 그것을 말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는 사실을 그 시간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전시를 만들던 시절의 나는 좋은 전시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전시는 완성된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의 감각 위에서 비로소 작동하는 장치에 가깝다. 아무리 정교한 전시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감각이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것은 끝내 닿지 않는다. 안동과 세종의 강의실, 그리고 미술관의 작품 앞에서 나란히 서서 보냈던 시간. 더운 계절에 시작해 가을로 넘어가는 동안, 나는 그 변화의 속도를 옆에서 지켜보았다. 감각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 감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 순간은, 설명이 아니라 ‘보는 방식’을 건네받는 자리에서 시작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침묵 속에서 작품을 바라보던 그들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 변화는 미술관 안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 한 번 열리기 시작한 감각의 문은, 결국 일상의 어느 장면에서든 다시 열리게 되어 있다.
중장년 여가 예술감상교육 프로그램 ‘예술에 빠질 예.감.’
2025년 9월부터 11월까지 세종시와 안동시에서 진행된 중장년 대상 문화예술 감상 프로그램 ‘예술에 빠질 예.감.’은 현대미술·한국미술·클래식·뮤지컬·문학/영화·사진 총 6개 분야로 운영됐다. 이 가운데 미술 프로그램은 세종과 안동에서 각각 ‘현대미술–정답 없는 그림 앞에서 진짜 나를 만나다’, ‘한국미술–붓 끝을 따라 거닐며, 마음의 풍경을 보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프로그램은 단순한 작품 감상을 넘어 강의·전시 관람·감상 노트·토론 등을 통해 참여자들이 자신의 삶과 감각을 예술과 연결해보는 데 주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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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연
홍지연
인문과 예술을 브랜드 자산으로 전환하는 전략가이다. 지식자산화기업 마로이즘(maroism) 대표이자 국립현대미술관·백남준아트센터 전시해설가로 활동하며, 독립적인 전시 기획과 아트페어 디렉팅을 병행한다. 기업과 인물의 역사 안에 잠든 서사를 꺼내 아카이브·콘텐츠·출판·디지털 IP로 설계하는 작업을 이끌고 있다. 대표 프로젝트로 《노마드의 미적 상상력》 《K-석유의 미래를 묻다》 《김치 프리미엄》이 있으며, 강연 ‘예술에 빠질 예감’, 와우아카데미 강의, 유튜브 채널 [마로이즘]을 통해 예술적 시각으로 브랜드와 시장을 읽는 관점을 제시한다. 인문과 예술이 장식이 아니라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실천으로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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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www.marois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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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홍지연 마로이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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