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리 동네 화실은 어떻게 ‘산업’이 되었나
골목길에서 마주치는 작은 미술 교습소나 피아노 학원을 보며 우리는 흔히 ‘교육’이나 ‘예술’이라는 단어를 먼저 떠올린다. 그러나 경영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그곳은 조금 다른 이름을 갖는다. 누군가의 열정이 깃든 일터이자, 시민들의 감성이 소비되는 ‘서비스 산업’의 현장이다. 그동안 문화예술교육은 주로 ‘공공복지’나 ‘사회적 가치’라는 틀 안에서 논의되어왔다. 예술이 우리 삶을 어떻게 치유하고 변화시키는지에 대한 담론은 풍성했으나, 이 생태계가 실제로 얼마나 큰 규모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관한 실체적 데이터는 늘 안갯속에 가려져 있었다. 정책은 실체 없는 이상만으로는 지속할 수 없다. 「2025 문화예술교육 공급자 분류체계 및 모집단 구축 연구」는 바로 그 보이지 않던 거대한 생태계의 지도를 ‘데이터’라는 렌즈를 통해 투명하게 들여다보려는 시도였다.
연구의 배경과 목적: 왜 지금 ‘공급자’와 ‘데이터’인가
그간 문화예술교육 통계의 중심은 주로 수요자, 곧 향유자에 맞추어져 있었다. 얼마나 많은 시민이 참여하는지에 집중하다 보니, 서비스를 실제로 제공하는 공급자의 생태계는 정책적 관심의 사각지대에 놓이기 일쑤였다. 게다가 기존의 표본조사는 응답자의 주관과 기억에 의존하는 회상식 설문에 머물러 시장의 실제 역동성을 포착하는 데 뚜렷한 한계가 있었다. 이에 더해, 1인 창작자·플랫폼 운영자·디지털 기반 예술융합 교육자 등 새로운 공급자 유형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으나 기존 분류체계와 행정통계는 이를 충분히 포착하지 못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공급 구조를 더는 공공부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구를 공급자로 볼 것인가’ ‘어떤 기준으로 분류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이 정책의 출발점이 되어야 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한국표준산업분류(KSIC)와의 연동성을 유지하면서도 문화예술교육 고유의 특성을 반영하는 특수분류체계를 수립하는 것, 다른 하나는 설문지가 아닌 실제 결제 데이터라는 객관적 증거를 통해 시장의 총량을 정밀하게 추정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을 독립된 ‘산업’으로 인식하는 데이터 기반 의사결정의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었다.
관점의 전환: 서비스 패키지로 본 문화예술교육 생태계
문화예술교육을 산업으로 정의하기 위해서는, 이 분야가 제조업이 아닌 서비스 산업에 속한다는 인식에서출발해야 한다. 제조업이 유형의 상품을 ‘생산’한다면, 서비스업은 무형의 가치를 ‘전달’한다. 문화예술교육은 결과물이 아닌 교육 과정 안에서 가치가 창출되는 전형적인 서비스 산업이다. 무형성·비분리성·이질성·소멸성이라는 서비스의 4대 속성이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고스란히 발현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번 연구에서는 이러한 서비스 산업의 특성을 반영한 이론적 틀로 ‘서비스 패키지(Service Package)’ 개념을 채택했다. 서비스 패키지는 특정 서비스 전달을 위한 재화와 개별 서비스의 묶음으로, 그 중심에는 향유자가 경험해야 할 공급자의 ‘의도된 서비스 경험’이 있다. 이 경험이 향유자에게 온전히 전달되기 위해서는 공급자의 명시적 서비스(교육 행위 자체)와 이를 뒷받침하는 지원설비, 보조용품, 정보가 유기적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 프레임워크를 기반으로, 문화예술교육 생태계를 세 가지 층위의 가치사슬(Value Chain)로 구조화했다. 핵심산업(Core Industry)은 예술적 가치가 직접 전달되는 중심부로, 전업 교육기관은 물론 예술가로서의 활동과 교육을 병행하거나 교육자로 경력을 전환한 인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연관산업(Related Industry)은 핵심 서비스 수행 시 현장(Onstage)에서 동시적·특화된 지원을 제공하는 산업군으로, 문화예술교육 서비스를 실행할 공간과 기회를 제공하며 핵심산업과 공진화(Co-evolution)하며 성장한다. 파생산업(Derivative Industry)은 두 유형으로 세분화하는데, 파생산업1은 교육 콘텐츠의 물리적 구현을 위한 투입재(악기, 디지털 저작 도구, 교육용 콘텐츠 패키지 등)를 공급하는 영역이며, 파생산업2는 회계·법률·시설관리 등 사업체 운영을 위한 범용적 후방 지원(Back-office) 서비스를 의미한다. 이러한 분류체계는 문화예술교육을 단순한 수업의 단위를 넘어, 상호 유기적인 전후방 연쇄 효과를 창출하는 하나의 경제 생태계로 인식하게 한다.
연구의 수행 과정: 파편화된 정보를 산업 지도로 엮는 3단계 분석
시장의 실체를 데이터로 규명하는 과정은 방법론적 정밀함이 요구되는 작업이었다. 이번 연구는 기존의 ‘표본조사’ 방식(일부 표본 매출×전체 모집단 수)을 지양하고, 모집단에 속한 개별 사업자의 변수를 기반으로 사업자별 실매출을 추정한 뒤 산업군별로 합산하는 ‘바텀업(Bottom-up)’ 방식을 채택했다. 연구진은 데이터 신뢰성 확보를 위해 다음과 같은 3단계 분석 과정을 거쳤다.
1단계는 모집단 선별 및 키워드 필터링이다. 통계청의 표준산업분류와 현장 사이의 괴리를 메우기 위해 수백 만개의 사업자 상호를 대상으로 텍스트 마이닝을 수행하였다. 업종 키워드 분석을 통해 문화예술교육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사업자군을 추출하는 선별 코드를 설계하여 1차 모집단을 구축했다. 2단계는 다차원 데이터 매칭 및 장르 분류이다. 복수 카드사의 가맹점 거래 데이터, 기업정보 데이터, 국세청 신고 소득 데이터를 결합했다. 파편화된 사업자 상호를 분석하여 미술·음악·연극 등 장르를 분류하는 알고리즘을 적용하고, 개별 사업자의 지리적 위치 정보와 매출 정보를 연결하여 입체적인 분포 분석의 기반을 완성했다. 3단계는 머신러닝 기반 매출 추정 및 검증이다. 카드 결제 데이터만으로는 포착되지 않는 현금 거래 비중이나 타 카드사 매출을 보정하기 위해 머신러닝 회귀 모형을 적용했다. 이를 통해 상당한 수준의 설명력으로 공급자의 총매출액을 추정했으며, 이후 현장 전문가와의 델파이 조사를 통해 계량적 수치가 실제 현장과 부합하는지 교차 검증하여 분석의 완성도를 높였다.
주요 연구 결과: 데이터가 드러낸 시장의 실체
분석 결과, 문화예술교육 공급자는 전체 수십만 개 규모로 추정되었다. 이중 개인사업자가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며, 법인사업자는 소수에 불과했다. 이는 문화예술교육 시장이 대형 법인이나 공공기관이 아닌, 개인 단위의 강사·소규모 운영 주체에 의해 실질적으로 운영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특히 핵심산업에서도 개인사업자의 매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 이 시장이 프리랜서와 특수고용 형태의 소규모 공급자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지역 분포 측면에서는 수도권에 전체 공급자의 절반 이상이 집중된 것으로 나타나, 문화예술교육의 지역 불균형 문제가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확인되었다. 창업자 연령 분석에서는 청년층과 중장년층이 비슷한 비율로 공존하는 이원적 구조가 나타났으며, 이는 신규 진입과 경력 전환 창업이 동시에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공급자 생태계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심화 분석에서는 핵심산업의 신생률과 소멸률 모두 두 자릿수를 기록하여 시장의 유동성이 상당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문화예술교육 공급 생태계가 안정성과 역동성이 공존하는 복합적 구조임을 나타낸다.
연구의 의미와 영향: 예술적 가치를 과학적 증거로 뒷받침하다
이 연구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문화예술교육 민간 시장의 규모를 체계적으로 추정하고 모집단에 빅데이터를 적용한 시도라는 점이다. 그동안 공공지원 중심의 통계에서 소외되어 온 민간 공급자, 프리랜서 강사, 비등록 단체까지 포괄하는 모집단을 구축함으로써,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느낌’이 아닌 ‘사실’의 영역으로 인식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데이터로 확인된 시장 규모는 예술가의 노동 가치를 객관화하는 근거가 된다.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되는 순간, 그 시장 규모와 참여 공급자 수는 문화예술교육이 우리 경제와 사회에 얼마나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지 수치로 증명하는 힘을 갖는다. 이러한 근거가 확보될 때, 예술인 지원을 위한 사회적 합의는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한편, 이번 연구는 한국표준산업분류(KSIC) 기반 표본틀과 전문 기업정보 서비스와의 협력을 통해 방대한 데이터 필드를 확보해 조직 형태·매출·지역 분포 등 통계 수집의 기반을 마련했으며, 공급자 대상 표준 설문 문항도 함께 개발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전제를 명확히 해둘 필요가 있다. 이번 연구는 모집단의 규모를 수치적으로 파악하게 된 것이지, 모집단의 내면을 이해하게 된 것은 아니다. 공급자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되었으나, 공급자의 역량·미래 지향점·필요 자원 등 질적 내용은 별도의 정성적 조사를 통해서만 온전히 파악될 수 있는 영역이다. 결국 데이터는 예술을 감시하는 눈이 아니라, 예술가가 더욱 안정적인 환경에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뒷받침하는 토대로서 그 역할을 다하게 될 것이다.
정책 제언: 데이터 행정을 통한 민관 상생 생태계 설계
구축된 데이터는 지속적으로 관리될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한다. 이번 연구 결과를 정책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네 가지 실천 전략을 제언한다.
첫째, 데이터 분석 역량의 내재화와 시계열적 추적이다. 구축된 데이터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역량과 환경을 정책 실행 기관 내에 안착시켜야 한다. 2024년 기준 데이터를 출발점으로 삼아, 실시간으로 갱신되는 카드 매출 정보를 지속적으로 연동한다면 특정 정책 투입 전후의 시장 변화를 시계열적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이는 예산 투입의 타당성을 입증하고 정책을 적시에 수정할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환류 시스템이 될 것이다. ‘구독+추가 분석’ 패키지 계약 방식을 통해 비용 효율적인 지속 운영 체계를 갖추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다. 둘째, 마이크로 데이터를 활용한 정밀한 창업 지원이다. 개별 사업자 단위의 데이터를 분석하면 청년 창업자의 생존율이나 장년기 전환 창업자의 정착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창업 초기부터 성숙기까지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성장 사다리(Growth Ladder)’ 모델을 구축하고, 특정 역량을 공식적으로 인증하는 ‘마이크로 전공(Micro Degree)’ 제도를 도입하여 공급자의 전문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할 필요가 있다.
셋째, 예술가의 교육자 경력 전환 지원이다. 문화예술교육은 전임 교육자가 아닌 예술가가 교육 행위를 병행하거나 전환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잘하는 사람(Performer)’이 ‘잘 가르치는 사람(Educator)’으로 성공적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대학의 교수학습지원센터나 스포츠 지도자 양성 과정에 준하는 체계적인 전환 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넷째, 예술과 지역 경제의 시너지를 입증하는 상권 연계 분석이다. 음악제나 예술제 전후의 상권 매출 변화를 분석하여 문화예술교육의 지역 경제 기여도를 수치화해야 한다. 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주변 상권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데이터로 증명할 수 있을 때, 문화예술교육은 지역 소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경제 활성화의 핵심 수단으로 재평가받을 수 있다.
에필로그: 과학적 이성으로 예술의 지평을 넓히며
데이터는 차갑지만, 그 데이터가 담고 있는 삶의 궤적은 뜨겁다. 예술을 데이터로 분석하는 작업은 결코 예술의 신비로움을 훼손하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데이터라는 돋보기를 통해, 예술이 시민의 일상에 얼마나 깊고 넓게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비로소 확인할 수 있었다. 수십만에 달하는 문화예술교육 공급자가, 하나의 산업으로 인식될 수 있는 시장 규모, 그리고 청년과 중장년이 함께 만들어가는 이원적 공급 구조, 이 모든 정보가 말해주는 것은 문화예술교육이 이미 우리 사회 깊숙한 곳에서 거대한 경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의 이 기록이 씨앗이 되어, 앞으로 대한민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이 데이터라는 단단한 토대 위에서 예술가와 시민 모두를 포용하는 따뜻한 숲을 이루길 기대한다.

- 조부연
-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하고, 제주대학교에서 생산운영관리, 서비스운영관리 등을 강의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 고등기술대학에서 재직했으며, 말라야대학교에서 연구원으로 연구 중이다. 한국생산운영관리학회 32대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한국경영학회 부회장이다. 기술 동인이 서비스 산업에 미치는 영향을 중심으로 연구하면서, 문화예술산업과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계량적 의사결정과 관련한 분야에 더 집중하고 있다. 서비스 산업이 가져올 수 있는 수익과 고용 창출의 공존이 문화예술산업에서 가장 크게 나타날 것으로 믿고 있다.
bycho@jeju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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