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문화계를 가장 뜨겁게 달군 이슈 중 하나는 영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흥행과 연이은 수상으로 나타난 ‘K-컬처’의 열풍이다. 이전까지 한류의 흐름이 개별 그룹이나 콘텐츠(드라마, 영화)를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K-뷰티·한식·언어 등 다양한 삶의 영역에 영향을 주고 있다. 나는 ‘K-컬처’의 황금기에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으로 한류 열풍의 중심에 있는 필리핀 현지 한국문화원에서 6개월간 근무하며, ‘K-문화예술교육’이 가질 수 있는 의미와 가치는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소중한 시간을 보냈다. 이 글에서는 아직 문화예술교육이 깊게 닿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필리핀이라는 현장에서 발견한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의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025 코리아 페스티벌 [사진출처] 주필리핀한국문화원
우리는 무엇을 먼저 고민해야 하는가
지난 9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1시간 정도 떨어져 있는 ‘카가얀 데 오로’ 지역에서 펼쳐진 ‘2025 코리아 페스티벌’에 참여했다. 필리핀에서 3개월간 케이팝 페스티벌이나 게임 박람회, 한국영화제, 국제도서전 등 다양한 행사를 경험했고, 그중 가장 큰 행사인 2025 코리아 페스티벌에서 한국 문화가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형 쇼핑몰 메인 홀에 설치된 한국 문화 체험 부스에서 한국어로 이름을 써보고, 전통 매듭을 만드는 활동을 지원하며 다양한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한국 드라마를 접한 이후 한국 유학을 꿈꾼다는 청년 ‘카일’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사자 보이즈가 마지막 무대를 펼쳤던 남산타워에 가보는 것이 꿈이라는 한 어린이가 기억난다. 이들은 왜 이렇게까지 한국 문화를 좋아하고, 그로부터 느끼는 행복감은 어디서부터 오는 것일까? 좋아하는 무언가를 자유롭게 경험하며, 각자의 인생에 하나의 작은 목표를 세워보는 것, 그 자체가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닐까.
“멋진 글자를 써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서, 내가 생각하는 단어에 ‘왜’ 그런 감정이 떠오르는지, 그것을 ‘어떻게’ 표현해 볼 수 있을지에 집중해 보세요.”
“무엇을 그려야 할지, 어떤 색을 입혀야 할지보다는, 나만의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충분히 느끼고 즐겼으면 좋겠어요.”
– 주필리핀한국문화원 문화수업 중
다양한 문화원 현장에서 가장 많이 한 생각은 ‘문화예술교육적인 활동은 무엇이어야 할까?’였다. ‘매듭’이라는 도구가, ‘캘리그래피’라는 장르가 참여자들에게 문화예술교육의 가치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소재가 맞을지 고민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류’의 열풍 속에서, 많은 사람이 한국 문화를 바탕으로 ‘어떤’ 활동을 할지에 대한 고민을 이어가고 있을 것이다. 필리핀에서 다양한 교육 현장을 보며 느낀 것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떤 형태로 보여주어야 할지, 방법론적인 부분보다는, 그들에게 그 활동이 왜 필요한지, 참여자와 깊은 교감을 하려면 활동 과정을 어떻게 설계해야 할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25 세종문화아카데미 ‘캘리그래피로 써보는 나의 감정’
추석·한글날 기념 문화주간 민화워크숍 ‘혼문을 지켜라’
[사진출처] 주필리핀한국문화원
진정한 배움은 나누는 것
주필리핀한국문화원에 있는 세종학당 수업은 1년에 세 번 학기별로 운영한다. 학생들은 한 학기 3개월 동안 한 주에 2~3시간의 수업과 함께, 특별 문화 수업 주간에는 한국의 문화를 경험하는 활동을 한다. 1년간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모두 모여 진행하는 연말 수료식에서는 그동안 함께했던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은 공연과 발표를 선보인다. 수많은 이들의 여정이 담긴 수료식 현장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배움이 주는 가장 큰 가치는 각자가 느낀 것을 나누는 과정에서 깊게 새겨진다는 사실이다. 성찰하고 교류하는 과정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는 탁월한 예술성을 가진 무대만큼이나 값진,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제가 혼란스러웠을 때, 당신은 저와 함께했어요. 함께한 시간들이 제가 포기하지 않고, 머물 수 있는 힘을 주었어요.”
“선생님은 우리의 삶을 바꿔주셨고, 선생님과 함께하는 우리의 세상은 훨씬 더 밝다고 말해드리고 싶어요.”
– 세종학당 수료자 글 중
수료식을 지켜보며, 배움을 통해 알게 된 지식이나 예술적 경험을 내 안에만 쌓아두거나, 작품이라는 결과물로만 만드는 작업에서 그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어 수업, 혹은 한국 문화 수업을 들으면서 배운 지식과 경험 자체도 중요하겠지만, 그 과정이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었는지를 생각해 보고, 그것을 함께한 사람들과 공유하는 단계에서 진정한 문화예술교육의 의미가 발현될 수 있지 않을까.
존중과 공감으로 시작되는 협력
필리핀에서 지낸 지 중반을 지나가는 시점, 다양한 장르와 실험을 기반으로 한 신진 감독들의 작품을 선보이는 필리핀 판타스틱 영화제 ‘바쿠나와 페스트(Bakunawa Fest)’ 개막식에 초대되었다. 행사는 기관장 인사말, 초청기관 축사, 영화제 취지 설명 시간으로 이어졌는데, 그때 진행자가 돌연 객석 맨 뒤편에 앉아 있던 개막작 감독들을 무대 앞으로 호명했다. 세 명의 신인 감독들은 예상하지 못한 듯 초췌한 차림으로 쭈뼛쭈뼛 무대 앞으로 나와서, 자신이 어떤 생각으로 영화를 만들었는지를 열심히 설명했다. ‘영화제의 주인은 영화를 만든 예술가에게 있다’라는 메시지를 깊게 새길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문화예술교육이라는 분야는 결국 현장에 있는 ‘예술교육가’의 고민이 가장 기본이 되고, 문화예술교육을 받는 ‘참여자’의 목소리가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 때로는 전문가의 목소리가, 기관의 입장이 더 크게 드러나기도 하겠지만, 정책의 영향력을 가장 가까이에서 치열하게 마주하고 있는 현장 관계자가 담론 그 자체보다도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한편, 한국으로 돌아오기 한 달 정도를 앞두고 문화예술교육 ODA 사업 사전 타당성 조사를 위해 연구진과 함께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와 만났다. 관계자들과 문화예술교육이 가진 의미, 그들이 필요로 하는 지점 등 의견을 들으며 더욱 단단해지는 협력의 관계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함께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의 태도와 예술에 대한 공통된 애정과 관심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문화예술은 종종 정부 정책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기도 하고, 많은 이들이 단순한 오락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한계점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여러 가지 계획과 활동을 통해 예술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알리기 위한 정책을 고민하며 노력하고 있다.”
– 필리핀문화예술위원회(NCCA) 회의
사실 갓 한국에 돌아왔을 때만 해도 ‘한류’라는 기회 안에서 앞으로 ‘우리가 누군가에게 어떤 것을 더 전해줄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아직 문화예술교육 사업이나 제도가 닿지 않은 곳에 우리의 지원이 더해질 때, 더 많은 상상을 가능하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하지만, 앞선 사례들을 떠올리며, 지금은 필리핀에서 보고 느낀 점들을 어떻게 우리의 현장에 적용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 문화예술교육은 부족한 어딘가에 무엇을 채워 넣는 것이 아닌 서로가 가진 관점을 바탕으로 각자 필요한 부분을 끊임없이 나누는 과정에서 어떤 가치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K-문화예술교육이 더 멀리, 더 많은 사람과 문화예술교육의 진정한 의미를 공유할 기회가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 이현민
- 학창 시절 프랑스 문화와 다큐멘터리 영화에 빠져 프랑스어 문학·영상학을 전공했다. 문화예술교육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아서 10년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홍보, 지역 협력, 디지털 콘텐츠, 전략사업 등 다양한 업무를 거쳤으며, 최근 주필리핀한국문화원 해외 파견 업무를 마쳤다. 현재는 문화국제협력팀에서 문화예술교육 국제교류를 담당하며 또 다른 세상, 새로운 사람들과 만남을 기대하고 있다.
hmlee@art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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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과 우리나라가 이렇게 문화예술로 교류하는게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교류를 하려는 서로간의 노력이 느껴져서 더 좋고, 교육 수료자들이 한 말들도 뭔가 뿌듯하고 반가운 느낌이네요~
이현민 주임님의 글을 읽고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K-문화의 열풍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필리핀에서의 문화예술교육 경험을 통해 그 의미를 되새기신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교육이 단순한 전달을 넘어 배우고 나누는 과정이라는 점에 공감합니다. 앞으로도 K-문화가 다양한 삶의 영역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기대합니다.
필리핀에서의 멋진 활약 잘 보았습니다! 앞으로도 멋진 행보 기대하겠습니다^^77
K-문화예술교육, 전해주는 것에서 배우고 나누는 것으로
주필리핀한국문화원 파견 근무로 돌아본 ‘문화예술교육’의 의미
공감이 갑니다
K-문화예술교육, 전해주는 것에서 배우고 나누는 것으로
주필리핀한국문화원 파견 근무로 돌아본 ‘문화예술교육’의 의미
기대만점이네요
한류가 단순히 한국 문화를 알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사람들의 삶에 작은 목표와 감정을 남길 수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특히 무엇을 보여줄지보다 왜 함께해야 하는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는 부분이 깊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