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문화예술교육 ODA 사업이 14년 차에 접어들었다. 베트남 최북단으로 중국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오까이성 산간 지역에서의 소수민족 아동·청소년을 위한 사진 교육을 시작으로, 인도네시아 치르본의 바틱 작업장과 몽골 울란바토르의 국립인형극장, 그리고 필리핀 마닐라 톤도의 교실로 그 무대를 조금씩, 꾸준히 넓혀왔다. 그동안 4개국에서 총 5,095명의 참여자가 직접 문화예술교육 연수와 워크숍에 참여했으며, 2만 명 이상의 현지인이 성과공유회를 통해 문화예술교육의 파동을 경험했다.
낯선 두 세계의 공명
올해까지 8년 동안 이 사업을 기획·운영해 온 담당자로서, 변화와 성장의 궤적을 담은 「문화예술교육 ODA 백서 2013-2025」를 발간하는 일은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나의 사업명으로 묶어버리기에는 우리가 만난 국가의 문화·정치적 환경이 저마다 달랐고, 현장에서 만난 정부 관계자, 교사, 예술가, 그리고 아동·청소년과 지역민들이 함께 쌓아온 이야기는 그 어떤 문서로도 담아내기 부족할 만큼 복잡하고 방대했다. 하지만, 이 모든 여정을 돌이켜보며 다시금 깨달은 사실이 있다. 문화예술교육 ODA의 핵심은 ‘문화예술교육’과 ‘ODA’라는 낯선 두 세계가 서로를 이해하고 설득하며 엮어온, 하지만 서로에게 닿을 수 있었던 공명의 과정이었다는 점이다.
본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라는 용어는 일방향적이고 수직적인 이미지를 내포하고 있다. ‘개발’이라는 단어 자체가, 이미 그 지점에 도달했다고 믿는 국가(Developed Country)가 특정 목표 지점을 향해 가고 있는 국가(Developing Country)를 향해 일방적인 방향을 제시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초기 개발학 분야가 낙후된 사회가 일정한 단계를 차례로 거치면 언젠가는 선진화된 국가가 될 수 있다는 단선적인 ‘근대화 이론’에서 싹을 틔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1960년대 이후,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도 수많은 고민과 성찰을 거쳐 다양한 이론적 발전이 있었다. 특히 현대 개발 협력의 철학적 근간을 세운 대표적 학자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은 개발의 진정한 목적을 단순한 경제 성장이 아닌 ‘인간의 자유와 선택권의 확대’라고 정의했다. 서구의 경제 모델을 복제해 부를 축적하는 대신, 개인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믿는 삶을 주체적으로 꾸려나갈 수 있는 ‘역량(Capabilities)’을 갖추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개발의 본질이라는 논리다. 센의 통찰에 따르면 개발의 주도권은 ‘국가’라는 거대 담론이 아닌, 한 사람의 ‘인간’에게 있다.
겨자씨 크기의 문화 ODA, 번져가는 변화
문화예술교육 ODA는 분명 사람 간의 상호호혜 정신을 근간으로 성장해 왔다. 인도네시아 ‘바틱 스토리’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신보슬 책임 큐레이터는 “처음에는 우리가 무언가를 가르쳐 주고 도움을 주러 간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배움의 방향이 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만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문화예술교육 ODA 백서」)라고 회고했다. 문화예술은 우리가 상대방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전통적 의미의 ODA 실행 방식과는 궤를 달리한다. 함께 시간을 견디고 실수를 나누는 문화예술교육의 과정은 진정한 의미의 예술적 파트너십이 형성되는 토대가 된다.
이러한 상호호혜적 연대는 누군가의 삶에 꺼지지 않는 불씨의 동력이 되기도 한다. 초기 사업에 참여하여 처음으로 사진 예술을 접했던 베트남 사파의 산골 소녀 부이 티 아잉 응웻은 한국 선생님이 쥐여준 카메라 렌즈를 통해 마을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고, 그 열정이 전문 사진작가가 되어 현재 한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오늘날의 자신으로 이끌었다고 밝혔다.(「문화예술교육 ODA 백서」) 그녀에게 문화예술교육 ODA는 아마르티아 센이 강조했던 ‘역량’을 스스로 일깨우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해 나가는 실질적 자유의 등불이었던 셈이다.
그동안 협력국들의 수요는 전통 인형극을 활용한 문화예술교육 역량강화(몽골)부터 빈곤 지역 아동의 정서적 회복(필리핀), 학교에서의 예술교육 범위의 확장(인도네시아)까지 천차만별이었으나, 모든 국가가 가지고 있던 이면의 믿음은 동일했다. 문화예술을 경험한 미래 세대가 창의력과 공감 능력 등의 사회적 역량을 함양하고 스스로 삶을 변화시킬 내적 동기를 키워야 한다는 확신이다. 「문화예술교육 ODA 백서 2013-2025」에서 정정숙 한국문화기획평가연구소 소장은 문화 ODA를 ‘ODA’라는 거대한 산맥에서 거의 보이지 않는 ‘겨자씨 크기의 희망’에 비유했다. 한국 ODA 전체 예산(2026년 확정액 기준 5조 4,372억 원)임을 고려할 때, 개인의 창의적 역량과 내적 성장에 집중하는 문화예술교육이 당장 가시적인 결과로 드러나는 여타 대규모 ODA 사업과는 그 결이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정부가 발표한 한국 최상위 ODA 전략인 「제4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6-2030)」에서 기존의 보건, 교육 등 강점 분야 외에 ‘문화’가 새로운 중점 분야로 전격 등장했다. 또한 2026년 상반기 내에 ‘문화분야 ODA 추진전략’을 수립하여 우리의 문화 역량을 접목하겠다는 구체적인 청사진도 함께 제시했다. 겨자씨 크기의 문화 ODA가 제4차 기본계획이 지향하는 보편적 가치와 혁신의 맥락에서 새로운 성장을 이끌 창의적인 해답으로 그 존재감을 드러낸 것이다.
동반자적 ODA를 향해
이러한 정책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의 ODA 사업 역시 중요한 전략적 변곡점을 맞이하고 있다. 기존의 사업이 한국 전문가를 파견하여 현지의 매개자를 직접 양성하는 ‘인적 자원 개발’에 방점을 두었다면, 향후의 여정은 협력국 스스로 문화예술교육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구축하는 체계로 그 무게중심을 옮겨갈 예정이다. 이는 협력국의 문화예술교육 정책 및 인력 양성 시스템 마련, 맞춤형 커리큘럼 도출 등 보다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접근을 의미한다.
한국이 축적해 온 제도적 노하우를 기반으로, 협력국이 저마다의 역사·문화적 맥락 속에서 직면한 사회적 문제에 창의적으로 대응하고 해소할 수 있도록 돕는 접근을 강화하고자 한다. 이는 도움을 주는 자와 받는 자의 경계를 허물고 현지의 당면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동반자적 ODA’ 모델로 나아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시도는 문화예술교육이 해당 사회와 지역 공동체 내에서 자생적인 해결책으로서 스스로 숨 쉬며 성장하게 하는 실질적인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물론 문화예술교육의 고유한 가치와 개발의 전략적 논리가 교차하며 발생하는 이 낯섦과 긴장감이 단숨에 사라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지난 14년간 꾸준한 변화를 통해 그 간극이 결코 넘지 못할 벽이 아님을 증명해 온 만큼, 인간의 내면에 등불을 켜는 이 긴 여정을 더욱 힘차게 이어갈 수 있으리라는 확신은 그 어느 때보다 분명해 보인다. 문화예술교육 ODA 사업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더 넓고 깊게 공명할 수 있도록, 많은 분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 [관련 자료]
- · 4차 국제개발협력 기본계획(2026.2.26.)
- · 「문화예술교육 ODA 백서 2013-2025」

- 박은형
- 정치외교학과 국제개발협력을 전공하고,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연구원으로도 근무했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는 ‘평창문화올림픽 <아트드림캠프>’ ‘글로벌 탐방 프로젝트 <A-round>’ 등의 사업을 수행했으며, 2019년부터 현재까지 ‘문화예술교육 ODA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ODA)과 문화예술교육이라는 서로 다른 두 영역의 언어를 해석하고 그 접점을 찾는 즐거움으로 업무에 임하고 있다.
ehpark@arte.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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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서 서술된 대로 ODA..즉 공적’개발”원조’가 문화분야에서 어떻게 이뤄질지 막연하게 궁금했는데, 인간의 자유와 선택권 확대라는 점에서 문화 분야 ODA가 앞으로는 겨자씨가 아니라 완두콩, 강낭콩이 되어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ㅎㅎ 실무자의 진심이 느껴지는 글 재밌게 읽었습니다
전문성과 진심이 담긴 글을 나누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의 문화예술교육 ODA의 행보도 기대가 됩니다!
지원에서 생태계로, 공명으로 이어지는 변화
문화예술교육 ODA의 14년 여정
잘 보고 가네요
지원에서 생태계로, 공명으로 이어지는 변화
문화예술교육 ODA의 14년 여정
기대만점이네요
문화예술교육을 통한 봉사의 여정
공명으로 이어지는 의미가 깊게 다가 옵니다.
앞으로도 응원할께요
문화예술교육 ODA는 단순히 문화를 전달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하며 함께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점이 인상 깊었다.
작은 예술 경험 하나가 한 사람의 선택과 삶의 방향까지 바꿀 수 있다는 가능성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