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통찰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삶의 바다를 헤엄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어릴 적 꿈은 대통령이었다. 허무맹랑한 꿈이라는 걸 깨닫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산타클로스가 없다는 걸 알게 된 것도 비슷한 시기였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지금까지 여전히 꿈을 꾸고, 산타클로스 이야기를 놀이처럼 즐기고 있다. 현실을 안다는 것이 마냥 좌절이나 실망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른 것을 알아가고 경험하며 자신을 알아가는 과정이 힘들고 어렵기만 한 일일까? 그런 방황의 시간을 거쳐 연극을 만났고 연극을 업으로 삼고자 대학에 진학했다.
연극을 전공하고 예술가의 삶을 산다는 현실은 필연적으로 ‘쩐의 궁핍’을 만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운이 좋다. 우연히 문화예술교육을 만나게 되면서 쩐의 궁핍이 해결되었다. 덤으로 일용직 인력시장이나 중화요리집 배달부, 대리운전 기사로는 지킬 수 없었던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을 지킬 수 있었다. 나는 무대책이었다. 아무 준비 없이 결혼했고 두 아이를 낳아 길렀다. 무슨 일이든 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현실의 문제를 문화예술교육 강사 일을 통해 해결해 갈 즈음, 어릴 적 꿈이었던 작은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을 샀다. 나의 지역 활성화와 장소 기반 문화예술교육(아직도 스스로 정의하지 못하지만) 활동은 그렇게 ‘영끌’에서 시작되었다. 수도권 제일의 자연녹지공원인 인천대공원에서 걸어서 1분이면 닿을, 80년대에 지어진 단독주택 중 하나가 우리 집이 되었다.
자부심 있는 동네 주민으로서
일 없는 어느 여유로운 아침, 티브이를 보다가 깜짝 놀랐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루어지는 어느 동네에 개 농장 주인이 행정과의 보상 협상에 불응하고 행정이 강제집행을 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수백 마리의 개가 좁은 케이지에 방치되었다가 배고파서 서로 물고 뜯고 죽인다는 내용이었다. “이런 몹쓸 일이 있나!” 계속 화면을 응시하는데 어디서 익숙한 들판과 골목이 보이고 그곳이 내가 사는 동네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현장으로 달려갔다. 뙤약볕에 아무것도 못 먹고 갇혀있는 현장에는 동물보호 활동가들이 개들을 구조하고 있었다. 일명 ‘장수동 개지옥’ 사건으로 불리며 몇 주에 걸쳐 전국을 달군 그 사건이 일어난 우리 동네. 스스로 시민이라 생각하고, 그것도 창의적이며 지역을 바꿀 힘을 가진 창조계급(리처드 플로리다에 의하면 그렇다)이라고 자부하던 내가 장수동 개지옥 주민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다.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깊이 생겼다. 뭐라도 하지 않고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목덜미 근육의 경직을 경험했다. 우선 동물권보호단체와 개장수를 만나고 행정을 만나 해결하는 과정에서 주민대표 역할을 했다. 사건은 마무리되었고 다시 조용해졌다.
살기 좋다고 생각했던 우리 동네를 ‘진짜’ 살기 좋은 동네로 만들기 위해 주민들이 모여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를 2006년 시작했다. 당시에는 마을 활동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없었고 알지도 못했다. 주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꽃길을 만들고 예쁜 문패를 달고 가을엔 골목길에서 축제를 하는 동안 입소문이 나고 장수동 개지옥의 아픈 기억은 희석되어 갔다. 그 과정에서 2009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시범사업으로 추진 중이던 ‘생활문화공동체 활성화 사업’ 수기 공모에 1등을 했고 공중파 방송에 다뤄지면서 유명세를 탔다.
장수동 새동네 프로젝트의 경험이 알려지면서 인천 지역 여기저기서 상담과 컨설팅 요구가 들어오게 되었다. 연극만 할 줄 알았지 그런 건 해 본 적도 없었지만, 부르는 곳엔 어디든 갔고 상담료는 소주 두 병에 짜장면이면 즐겁게 이야기 나누었다. 나는 말보다 행동하는 사람이다. 여러 지역을 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데, 이게 그냥 말만 오가다 말고 끝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래서 말 만들기 그만하고 마을 만들기를 하자고 결심했다. 자연스럽게 나의 인식 속 연극의 정의가 ‘종합 예술’에서 ‘공동체 예술’로 전환되었다.
말이 아닌 실천으로
인천의 원도심 재개발 지역, 인천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로 불리며 가진 자의 ‘쩐 불리기’ 장소가 된 숭의동 109번지 빈집을 고쳐서 ‘연극집단 삶은연극’의 사무실로 쓰면서 이때부터 활동 방향성을 ‘삶과 장소’로 정했다. ‘우각로 문화마을’로 지역 활성화 문화 프로젝트를 이어갔고, 인천 연안부두에서 쾌속선을 타고 다시 차도선으로 갈아타야 만날 수 있는 주민 80명이 사는 낙도에서는 ‘문갑도 날개 달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10년 동안 주민들에게 나는 인천에서 망하고 들어온 목수에서 연극 하는 청년으로, 주민으로 변화했다. 모두가 육지로 떠나고 홀로 살던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8년간 비어있던 오래된 집을 고쳐 살았다. 시집온 지 60년이 넘도록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때까지 혼수로 장롱을 안 해 왔다고 구박받던 윗집 할머니에게는 붙박이장을 만들어 드렸다.
‘원더우먼 날개 달기 프로젝트’라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만난 도시 주부들을 문갑도로 초대했다. 자연이 살아 있는 섬에서 공연하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쫑파티를 했다. 마을 회의를 하면서 문화예술 관련 숙원사업인 마을 축제를 만들어 육지 사람들을 초대했다. 환대의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하면서 축제를 준비한 1년 동안의 과정을 마을영화 〈문갑도 사람들〉로 제작하기도 했다. 그런 일련의 과정에서 다양한 단체와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에게 느슨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다. 주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강원도의 화전민 마을, 충청도의 어촌마을 시장, 전라도의 대나무마을 등 산이면 산, 바다면 바다, 섬이면 섬, 안 가본 곳 없이 다녔다.
마을 만들기, 마을공동체 활성화, 도시재생, 어촌 신활력, 문화도시 등 정부의 다양한 부처 사업이 있다. 이런 사업들은 국가의 정책 방향과 관련이 있다. 2027년까지 계획된 「제 2차 문화예술교육 종합계획」에도 “보다 다양한 곳에서 보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는 문화예술교육”을 지향하며 지역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수행하기 위해 협치가 필연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누구와 어디에서 어떻게 협치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돌아보니 지역에 방점을 찍고 도시와 농산어촌을 오가며 해 왔던 활동이 올해로 20년이 되어 간다. ‘내돈내산’으로 하는 일에서는 협치에서 비교적 자유롭지만, 그 외의 일에는 ‘의도적인 협치’가 많았고 실망의 경험도 많았다. 만나야 한다고 하지만 왜 만나야 하는지 모르고 만나는 현장이 많았고, 사업이 끝남과 동시에 종결되는 네트워크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시대적 사명(창조계급으로서)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자기 자리에서, 자신을 사랑하며
현실을 통찰하면서 장소를 만들어 가는 일. 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을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리고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문화예술교육 관계자에게, 코로나 이후 다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이 바닥 상황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자신이 선 자리를 찬찬히 살펴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을 자신이 선택하고 첫 발짝을 뗄 수 있다면, 그 길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일이라도 슬기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다면, 혹시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겨서 상처받거나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면, 그럴 힘은 “자신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것”에서부터 나온다고.
나는 지금 53년 된 전통시장 안 비가 새는 2층에서 3년 전부터 매월 장을 펼치고 있다. 하다 하다 백종원의 영역까지 손대는 거냐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언감생심이다. 그냥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한 시민 배우 양성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연극단을 만들어서 올해는 시장에서 매월 다양한 공연을 하고 있다. 가을엔 일본의 오래된 도시 나라에서 한일교류 공연을 십여 년간 이어온 ‘나라마을만들기센터’와 행사를 잘 기획하는 일에 전력투구할 것이다. 돈이 많이 덤벼야 한다. 하지만 없는 지원사업에 목매지 않는다. 2012년 ‘우수한 평가 성적’을 이어 오던 학교예술강사를 스스로 그만두면서 다짐한 것이다.
나는 지금의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
김종현
김종현
사회적협동조합 삶은연극 이사장. 고교 졸업 후 대학 못 간 시름을 달래다 우연히 시작한 연극을 38년째 하고 있지만, 로컬크리에이터로 불리고 있다. 본캐를 지키고자 인하대학교 문화예술교육원에서 문화예술교육사과정 연극교육 프로그램 개발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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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네일 사진제공_ 김종현 이사장
6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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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3월 01일 at 4:05 PM

    예술가의 통찰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삶의 바다를 헤엄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공감이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5년 03월 01일 at 4:48 PM

    예술가의 통찰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삶의 바다를 헤엄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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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철 2025년 03월 04일 at 1:40 PM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공동체와 함께 삶에 이를 실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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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슬 2025년 03월 04일 at 1:56 PM

    시민연극단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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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섭 2025년 03월 04일 at 8:11 PM

    연극의 확장성을 실천하며 일본과 한국의 마을만들기부터 섬의 문화예술 까지 정말 이사장님의 활동영역은 어디까지인가요? 연극이 이렇게 설레이는 예술장르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음 기사 내용도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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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진 2025년 03월 26일 at 12:34 PM

    김종현님을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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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5년 03월 01일 at 4:05 PM

    예술가의 통찰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삶의 바다를 헤엄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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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5년 03월 01일 at 4:48 PM

    예술가의 통찰이 머무는 곳으로부터
    삶의 바다를 헤엄치는 문화예술교육 현장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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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민철 2025년 03월 04일 at 1:40 PM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공동체와 함께 삶에 이를 실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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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소슬 2025년 03월 04일 at 1:56 PM

    시민연극단을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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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효섭 2025년 03월 04일 at 8:11 PM

    연극의 확장성을 실천하며 일본과 한국의 마을만들기부터 섬의 문화예술 까지 정말 이사장님의 활동영역은 어디까지인가요? 연극이 이렇게 설레이는 예술장르인지 새삼 느끼게 됩니다. 다음 기사 내용도 기다려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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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진 2025년 03월 26일 at 12:34 PM

    김종현님을 응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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