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지털화, 탈경계화, 세계화(다문화, 다양화)라는 시대 변화와 함께 문화예술교육 현장과 예술교육가 또한 충돌의 틈새에서 조정과 이해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2024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예술(교육)가가 만난 ‘균열’(변화)을 돌아보고, 다가오는 2025년 ‘재구성’을 위한 준비와 다짐을 들어본다.
- ① 변화를 향한 질문
- ② 2024년 돌아보기
- ③ 2025년 내다보기
김선아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 교수·본지 편집위원장
무엇을 특정해서 이야기하기 어려울 만큼 사회의 모든 측면에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체감한 2024년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의 당면한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것이다. 당연하게 여겼던 많은 전제가 흔들리고, 공동의 합의에 도달하는 길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현장 또는 학계에서 문화예술교육의 내일에 대해 어떤 전망도 쉽게 꺼내 놓을 수 없다. 주위 환경 속에서 안전지대를 찾을 수 없을 때 나는 아주 단순한 질문을 던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교육이 나의 삶에, 학교 교실에, 우리 사회에,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해야 할 것이 있는가?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본지 편집위원
과연 공공(Public)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변화의 시점임을 느꼈다.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의 행위만 ‘공공’인지, 공무원과 민간인의 균열, 비영리와 영리의 균열, 중앙과 지역의 관계, 공공과 사적인 행위의 균열. 그러나 그것이 단순한 균열이 아니라 새로운 결합으로 보이기도 한다. 문화예술교육 20년을 맞아 이제는 기존에 관에서 주도하던 문화예술교육 한계의 정점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다양한 주체가 나타나서 공유하고 협력하는 변화의 시대를 생각할 수 있다.
김자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미래사업본부장·본지 편집위원
2024년에는 오랫동안 실행해 온 주요 정책사업에 대한 대대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일부 사회문화예술교육 사업의 지방 이양이 완료되었고, 2025년 학교예술강사 지원사업의 재정원칙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또한 문화취약계층 지원방식을 교육자-참여자 매칭 플랫폼으로 전환하였고, 전국 100여 개 꿈의예술단 참여 기관이 기초지역에서 거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전환역량을 강화하였다. 생각해 보면 2005년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이 본격 추진된 이래, 시대별 사회적 요구에 따라 신규 정책사업이 탄생하기도 하고, 실행구조가 변경되기도 하고, 때로는 일몰되기도 했다. 언제나 그래왔듯, 변화와 균열의 틈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본다.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교육을 위해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김옥진
마음놀이터 대표
변화에 대한 자기 성찰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대로 가도 되는가? 우리는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을 잘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지속 가능한가? 우리의 생태계는 건강한가? 이러한 여러 물음이 시작되고 있다. 그래서 잠시 멈춤을 결정했고 현장을 한발 벗어나 컨설팅과 자문으로 지켜보게 되었다. 여전히 현장은 장르 중심 프로그램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대상(참여자)을 먼저 관찰하고 깊게 들여다보고 어떻게 다가갈지 결정하기보다는 보조사업을 위한 기획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을 발견했다. 더 깊게 한 사람과 사회 곳곳에 스며들어 긴 호흡으로 진행되어야 할 문화예술교육이 (다수가) 다시 참여자모집이 수월한 기관이나 단체와 결합하게 된 것은 유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지점이 어디일지 찾아내고 오래 머물며 관찰하고 만나면서 기획해야 한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본지 편집위원
(비상계엄 선포에서 해제, 탄핵소추안 가결에 이른) 지난 2주간의 시간은 이 시대가 안고 있는 커다란 균열을 적나라하게 체감하게 했다. 동시에, 깊이 각성한 시민의 존재와 함께 사회 변혁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한 시간이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예술가와 예술교육실천가, 기획자, 행정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각자의 역할을 깊이 고민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다양한 관점과 감정이 다채롭고 안전하게 공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문화예술교육의 본질적인 역할이 당위에 머물지 않고 지금의 삶에 밀접하게 연결된 실천적 질문을 제기해야 하지 않을까? 예술교육이 어떤 변화를 어떻게 촉매하고 매개할 수 있을까? 각성한 실천가로서, 실천의 장으로서 문화예술교육의 책임과 역할, 나아가 그 너머의 가능성을 탐구하며 질문의 깊이와 폭을 확장해 가는 일이 우리에게 요구되는 큰 과제가 아닐까 한다.
공인애
독립서점 빛나는친구들
대표
지원금 없이 활동하다가, 올해 처음으로 지원사업을 통해 문화 모임을 열어본 것이 가장 큰 균열이었다. 기존 시스템과는 나름 다르게 접근해 왔었는데 그 틀 안에 어느 정도는 맞추어야 하는 부분이 쉽지 않았다. 유행하는 트렌드만 쫓고 꿰맞추는 것이 아닌 시대의 흐름에는 어느 정도 맞추어 가면서도 각자의 특색에 맞는 맞춤 지원이 필요하고, 결과보다는 과정에도 중점을 두고 진행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송수연
언메이크랩
인간이 기술과 상호작용하는 방식의 변화가 필요한 시기인 만큼 문화예술교육은 이러한 기술을 어떻게 경험하게 할 것인지가 중요한 질문이 되었다. 예술-기술의 사용과 활용을 넘어, 현재의 인공지능과 연결해서 봐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좀 더 세심하게 생각해본다. 이는 문화예술(교육)이 무엇에 더 관심을 두고 창작과 배움의 방식을 변화시켜 나갈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이바로
양평초등학교 교사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예술은 새로운 도전을 맞이한다. 기술의 발전은 비단 예술의 표현 기법의 변화뿐 아니라 역할과 관점의 변화도 불러오는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문화예술교육을 비롯한 교육계의 변화가 의미심장하다. 에듀테크, 미래교과서 등을 위시한, 이른바 ‘신기술’이 교실을 빠르게 휩쓸고 있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모든 교사가 자의적, 타의적으로 교실에 기술(technology)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교실의 모습은 새로운 가능성을 찾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이들에게 예술은 어떤 경험이 되어야 할지, 문화예술교육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고민이 생긴다. 생성형 AI는 너무나도 손쉽게 멋지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완성도 높은 작품이 모니터 안에서 만들어질 동안 아이들의 손과 감수성이 무뎌지지 않도록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음정과 박자를 마음껏 틀려가며 노래 부르고 연주하는 기쁨, 삐뚤빼뚤하더라도, 색칠도 엉망진창이더라도 ‘나만의’ 그림을 만들어내는 환희를 기술이 앗아가지 않도록 우리의 역할을 고민해야 하는 시기가 왔다.
안용세
예술교육실천가‧예술공간100℃ 대표
균형을 깨는 균열은 불안감을 조장하는 변화를 불러온다. 정부의 예산 삭감으로 인한 현장에서 들려오는 우려의 목소리, 현장 동료들의 살 궁리를 듣다 보면 뾰족한 묘수가 없어 답답하다. 이러한 현실에 삼삼오오 결속하여 전방위적이고 급진적인 정책 추진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가 확산하기에는 미비한 현실이다. 불안감은 소문에 더욱 힘을 싣는다. 빠르게 퍼져나가는 오염된 진실은 한쪽으로 편중된 쏠림 현상을 더욱 강화하고 무비판적인 검토와 경계 없는 수용으로 인해 무엇이 본질인가에 관한 자기 주관성과 판단력을 흩트려 놓는다. 불안정한 예산의 흐름을 놓고 먼발치에서 기회를 찾기보다는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함께’하고, ‘따로’ 하기 이전에 행위 주체로서 본질적인 ‘사람’에 집중해야 할 때이다. 예술도 교육도 놓치지 말아야 할 공통분모는 사람이다. 균열로 인한 파열음이 날카로울수록 내가 내 삶의 엄마가 되어, 나를 돌보았으면 한다. 사람은, 주체로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문화예술교육과 비슷한 형식을 띤 활동이 너무 무겁지 않게 시도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예술적 경험에 관한 관심도 일상성 중심으로 이어지고 있다. 문화예술 관련 동아리나 모임 활동의 일상화, 예술 콘텐츠를 기획-소개하는 기업이나 사설 교육기관의 증가, 개인 창작자들의 자유로운 교류 등이 이러한 변화의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편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예술만 존재해야 할까. 이에 대한 질문이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은 결국 사람에 관한 탐구와 상호 질문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람은 언제나 간편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정리할 수 없기에 일반적이지 않은 방식이나 속도로 자신과 타인을 들여다보는 시간도 필요하다. 문화예술교육, 혹은 이와 비슷한 무언가가 얼마나 익숙하게 널리 퍼질 수 있을지에 대한 논의 외에 낯선 시선과 표현의 자리를 어떻게 지속할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인다.
정민정
문화예술기획단 쌈
대표
올해 쌈의 균열은 ‘별별 브릿지: 우리는 별별 크루!’ 프로그램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처음으로 ‘모두의 문화예술교육’에 발을 내디뎠다. ‘장애인은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그들의 존재를 인지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은 곧 ‘친절한 경계’와 맞닿아 있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에 보이지 않는 경계. 이 부드럽고 친절한 경계는 우리를 ‘그들’이 되게 했다. 우리-그들이라는 개념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이고, 그들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필요가 있다. 이 질문이 솟을 때, 바로 그때가 ‘그들’이 ‘우리’로 전환될 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한다.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본지 편집위원
공동체로 규정되는 문화의 의미에 이미 균열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 내가 타자와 만나는 태도, 커뮤니티에 접속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이러한 변화는 문화의 의미를 재구성하고 있다. 교육의 가치도 더 많이 아는 사람이 더 조금 아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을 선택하고 조합하고 통합하는 과정으로 나아가고 있다. 물론 이런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여전한 환경, 관성적 제도 때문에 ‘충돌’과 ‘지체’ 현상이 있다. 하지만, 새로운 단계로 진입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고, 그 흐름을 막지 못할 것이다.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한 마을의 어르신들을 만나 문화예술교육을 진행한 지 5년 차가 되었다. 돌이켜보면 뭣 모르고 ‘기획을 위한 기획’으로 시작했었는데 어르신들과 ‘관계’가 형성되면서 한해 한해 스스로 던지는 질문을 달리하며 어르신들의 속도에 맞는 변화를 찾아가고 있다. 어르신들의 숨은 재능을 발굴하고, 이전에는 가지지 못했던 숨은 꿈을 독려하며 이뤄가는 과정에서 예술이 개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변화를 이루기 위해 투입되는 시간과 자본과 같은 에너지 단위는 얼마로 보아야 하는지, 이 안에서 문화예술교육의 확장은 어떻게 이룰 수 있는지 답이 없는 질문을 가슴 한쪽에 품은 채로 움직이고 있다.
참여하신 분(가나다순)
김규원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선임연구위원·본지 편집위원
김선아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 교수·본지 편집위원장
김옥진 마음놀이터 대표
김자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미래사업본부장·본지 편집위원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본지 편집위원
송수연 언메이크랩
이바로 양평초등학교 교사
정민정 문화예술기획단 쌈 대표
최도인 메타기획컨설팅 본부장·본지 편집위원
최선영 문화예술기획자
황유진 이랑고랑 대표
- 정리_프로젝트 궁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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