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것 없이 반짝이고 별것처럼 유쾌하게

삶의 해학이 흐르는 독립서점 ‘빛나는친구들’

한정된 공간에 선택지를 만들어 놓은 독립서점은, 저마다 갖는 특색과 지향이 다르고 그에 따라 구축된 세계가 있다. 그래서 독립서점을 가는 길은 어떤 세계로 들어서는 여행의 길처럼 느껴진다. 다른 도시를 갈 때면, 꼭 독립서점을 가보려고 애쓰는데 그 도시의 일상을 느낄 수 있는 틈이기도 하고 때론 문화적 지형을 엿볼 수 있는 너른 장이기 때문이다. 나의 가치관과 접점이 진하게 찍히는 독립서점이 일상 공간 내에 가까이 있으면 든든하다. 퇴근길을 밝혀주는 동네 서점으로 곁에 있을 때의 푸근함을 느껴본 사람이면 공감할 것이다.
우리 동네에 또 하나의 독립서점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소문으로 익히 들었었다. 그 세계로의 여행을 준비하기 위해 블로그와 SNS 계정을 먼저 둘러본 적이 있었는데, 눈에 띄는 몇 가지 단어가 있었다. ‘개그 욕심과 유머’ 그리고 스탠드업 코미디. 개그 욕심이라니?! 그러한 세계라니! 부천시 원미구 상동에 위치한 독립서점 ‘빛나는친구들’로 향하는데, 잠자고 있던 개그 욕심이 솟아올랐다.
  • 마음의 빚을 갚는 프로젝트 <빚갚는친구들>
장소의 기억을 연결하는 사람, 그리고 공간
“사람들은 상동이라고 하면 신도시만 생각하는데, 여기가 진짜! 오리지널 상동이에요.” – 공인애 독립서점 빛나는친구들 대표
신도시가 들어서고 변화하는 도시의 모습을 목격해 온 나에게 ‘오리지널 상동’이라는 단어는 시공간에 대한 경험, 장소에 대한 자부심으로 들린다. 그렇다. 부천시 상동이라고 하면 신도시를 생각하기 쉽지만, 경인 철도를 중심으로 북쪽에 다세대 주택과 상가들로 오밀조밀한 상동 구시가지가 있다. 전철 1호선 중동역에서 내려 북쪽으로 나와 고가도로를 넘어 상동시장 입구를 지났다면 ‘빛나는친구들’과 매우 가까워진 것이다. 작은 골목 안에 부천여자고등학교 정문과 마주 보고 익살스럽게 빛을 내는 간판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포스터가 빼곡히 붙어 있는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디가 스탠드업 코미디 무대였을지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밀도 높은 공간이 모습을 드러낸다.
현재 빛나는친구들의 자리는 이 동네 토박이로 나고 자란 공인애 대표가 어렸을 적 드나들던 동네 문방구 ‘연화 문구’ 자리이다. 그 옆에는 굴렁쇠 책방이 있었고 그 옆으로 분식점들이 즐비했었다. 그때의 추억을 모아 메뉴판에 떡볶이와 피카츄 돈까스를 넣고 책방 한편에 문구류도 여러 가지 놓았다. 연화 문구와 굴렁쇠 책방을 아는 이들에게는 빛나는친구들의 존재가 반가울 수밖에 없다. 그 시절의 동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서점 주인이 맞이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장소의 기억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부천여자고등학교 졸업생들과 모임을 꾸리고 떡볶이를 만들어 ‘수다모임’을 했다. 이 수다 모임은 1992년도에 부천여고를 졸업한 이세연 씨(출판사 혜움터 대표)가 주도해서 모았다. 지금은 예전보다 더욱 빽빽해진 빌딩 숲 도시를 고향으로 둔 이들이 모교 정문 앞에 모여 기억과 경험이 깊숙이 배어 있는 마음의 풍경을 나눴다. 그 시간만큼은 그들이 여고생의 모습이었을 것이라 상상이 되었다.
  • <빚갚는친구들>
풍자와 해학을 나누는 꿈의 무대
“하루에 한 명이라도 웃기지 못하면 밥을 먹지 말자는 것이 저의 모토에요. 풍자와 해학이 흐르는 가운데 웃음이 서로를 이어주죠. 개그 안에는 인문학, 예술, 우리네 인생이 다 들어있다고 생각해요.” – 공인애 대표
한때 코미디언이 꿈이었던 공인애 대표는 개그맨 전유성 씨의 빅팬이다. ‘청도세계코미디아트페스티벌’을 보면서 작은 도시에 세계 곳곳의 코미디언들이 모이는 풍경에 감탄하여 코미디 관련한 독립 출판을 준비하기도 했다. 결국, 내지는 못했지만. 서점을 열면서 전유성 씨의 책 『지구에 처음 온 사람처럼』 북 토크를 기획했다. ‘빛나는친구들’을 연지 두 해째가 된 올해 봄, 서울에서 열린 3‧8 여성의 날을 기념한 여성 스탠드업 코미디에도 도전했다. 단식원에 갔다 온 얘기, 거기서 만난 사람들과 비즈니스 관계가 되었던 얘기 등 비만 여성의 삶을 해학적으로 나눴다. 그리고 마을로 돌아와 동네 사람들에게 스탠드업 코미디를 해보자고 말했더니, 예상보다 많은 사람이 개그 욕심을 드러냈고 9명이 모였다.
해학이란 우리가 웃을 때면 우리에게 주어진 메시지에 반응하는 것이고, 어울리거나 일치되지 않는 생각이나 사건, 상황 등의 메시지를 평가하고 정신적으로 경험하는 활동을 의미한다. 공인애 대표가 이야기한 개그의 의미, 활동의 주요한 가치로 자리 지은 이유가 강하게 납득이 되었다. 이 독립서점에서는 책 사이로 개그를 통해 발화하는 의미에 반응하고 웃음을 나눈다. 웃음으로 관계가 이어지고 사건과 상황이 되는 활동들이 꾸려진다. 스스로 배우고 넘나들며 배우는 무대가 이어진다.
  • <문화반장>
서로에게 설레는 뽐뿌질의 연대
2024년 부천 문화도시 조성사업 지원을 받아 빛나는친구들이 기획‧운영하고 김동익, 김의진 문화기획자와 함께한 <반짝반짝 수다모임>, <빛나는 문화반장>, <빚갚는친구들> 등이 뜨거운 여름 내내 펼쳐지고 있었다. 이 작은 공간 안에 활발하게 모임이 꾸려지고 너르게 펼쳐지는 동력, 이 일들의 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의도하고 만들어가는 모임은 사실 없어요. 그때그때 인연에 따라 이뤄지는 것들이 많고, 대화 속에서 발견된 것들이 많아요. 누구의 엄마, 어떤 가게의 사장님으로 알고 있던 분들과 조금 더 깊게 대화하다가 발견된 것들 말이에요. 별거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외면하는 것 중에서 많은 것들이 진정 별거예요” – 공인애 대표
지난 9년 간 예술장돌뱅이와 함께 이곳저곳에서 욕을 써주는 ‘투덜 그라피’를 하고 책으로 만든 것, 어릴 적 꿈의 공간이었던 문방구에서 독립서점을 열게 된 것, 스탠드업 코미디의 주인공으로 그 무대에 서고 싶은 사람들과 손을 잡은 것, 자신이 좋아하는 개그맨의 북콘서트를 기획한 것, 이 모두는 좋아하는 일을 하며 만난 인연들의 ‘뽐뿌질’의 결과라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곳에 오는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하고자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돕고 싶은 마음이 제일 앞에 있었다는 말에 대한 대답이 서점에 붙어있는 포스터 속의 얼굴들에서 들렸다.
빛나는친구들에는 오랜 시간 무명의 배우이자 코미디언 지망생이었지만 이제는 마을에서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 문화반장이 있다. 무용수의 길을 접고 15년간 세 아이의 엄마로 가족을 위해 살다가 지금은 무용 명상 프로그램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문화반장도 있다. 이처럼 계속해서 미뤄두었던 자신의 꿈에 접속하며 동네 문화를 만들어가는 문화반장님들(김권하, 김태은, 이경화, 신영심, 최진아)이 얼굴을 드러내고 있다. 동네 속에서 개인의 관심사와 성장을 중심으로 만나는 <빛나는 문화반장>의 키포인트는 서로에게 설레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경화 문화반장의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반했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서로에게 설레고 반하며 ‘뽐뿌질’을 하기에 코너 속의 코너처럼 계속해서 문화반장이 탄생하고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문화반장의 출연을 기대해 본다.
<반짝반짝 수다모임>은 펼쳐지는 과정과 방향이 조금 더 다채롭다. 시작은 수다 모임이지만 예술교육, 자기돌봄, 문화기획 등의 모임으로 나아간다. <아이와 함께 놀이 동시>, <아이들의 빛나는 그림자 극장> 등의 어린이 예술교육 프로그램부터 시민문화기획 프로그램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 시민연극 프로그램<재미있는 연기 수업> 등이 이뤄졌다. 의도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외면하지 않고 귀 기울이고 각자가 가진 꿈에 함께 설렜기에 계속해서 발아하는 텃밭이 일궈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서로의 꿈을 환대하며 뽐뿌질하는 일은 온라인에서도 이뤄진다. 그것도 새벽 6시부터 말이다. 아침 루틴을 만들면서 얼떨결에 책 3권을 읽어보자며 시작한 <빛나는 새벽 6시 독서 모임>은 2023년 2월 시작해서 벌써 시즌 2를 맞이했다. 독립서점을 시작하고도 독서 모임이 없었던 빛나는친구들 초창기에 옆 동네 독립서점 사장님이 강력하게 뽐뿌질 해서 만들어진 모임이다.
인연 따라 바람 따라 지금의 서점이 되었다는 지난 이야기 속에 기꺼이 주고 기꺼이 받는 너른 품과 유쾌함이 흐른다. 웃음은 아무리 심각한 상황도 뒤집는 반전의 힘이 있고 유쾌한 정서를 전염시키는 매개체이니, 고비마다 웃음의 힘이 있었을 것이다. 지독하게 웃기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바램은 또 얼마나 멋진가. 나아가는 발길 한 걸음마다 촌철살인이, 함께 걷는 이들에게 박장대소가 이어지길 바라본다. 두 발을 구르며 포복절도하고 싶은 날, 우리 동네에 있는 빛나는친구들로 향하게 될 것 같다.
민경은
민경은
여러가지연구소 대표. 2010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 부천시에서 여러가지연구소의 대표이자, 마담을 맡고 있다. 회화, 미술교육을 전공하고 일상 공간 내에서 지역 리서치, 문화기획, 문화예술교육 등의 주제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연결되는 문화예술현장의 관찰자이자 참견쟁이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경인 지역과 옛 소사읍(현 부천역)을 중심으로 도시의 변화, 도시산업문화유산 등을 살피며 과거와 현재를 잇는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dayodayo798@gmail.com
사진제공_독립서점 빛나는친구들 @brightfriends_offic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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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민종 2024년 10월 16일 at 1:38 AM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내부 공간의 독립서점의 모습 잘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책도 읽으면서 동네사람들과 차 한잔 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함께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해 특색있는 문화공간으로써 청소년들도 많이 찾는다는 점이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가 없네요 .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형태의 마을 콘텐츠를 기획하는 공간이 우리 주위에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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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민종 2024년 10월 16일 at 1:38 AM

    투박하면서도, 정감 있는 내부 공간의 독립서점의 모습 잘 살펴볼수 있었습니다. 책도 읽으면서 동네사람들과 차 한잔 하며 도란도란 대화를 나누는 모습과 함께 예술가의 아이디어가 더해진 재미있고 의미 있는 문화예술교육을 실행해 특색있는 문화공간으로써 청소년들도 많이 찾는다는 점이 고무적인 일이 아닐수가 없네요 .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형태의 마을 콘텐츠를 기획하는 공간이 우리 주위에 많이 생겨났으면 하는 바람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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