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둘투둘해도 재밌게, 마음껏 인생을 연습한다

‘펀그라운드 진접’이 채워가는 사이와 틈

청소년기와 후기청소년을 지나 어느덧 후기 청년을 목전에 두고 있는 2024년 오늘의 나는 언젠가부터 눈뜨면 청소년을 생각하고 그들과 함께하며 청소년의 삶과 행복의 질을 고민하는 사람들 곁에 서 있다. 돌아보면 누구나 우둘투둘했던 청소년기를 보낸 것 같은데, 그래서인지 청소년기를 ‘환승하는 시절’로 가벼이 여겨왔던 것 같은데. 아이러니하게도 요즘 들어 내가 가장 많은 위로와 공감을 나누는 대상은 청소년으로부터 시작된다.
‘존중받는 청소년, 행복한 청소년’ 펀그라운드 진접이 비전으로 내세우는 ‘존중’과 ‘행복’은 허울 좋은 단어에 그치지 않는다. 펀그라운드 진접의 청소년들은 우둘투둘할 법한 청소년기를 서로 존중하며 즐겁게 행복을 만들어가고 있다. 예사롭지 않았던 펀그라운드 진접과의 첫 만남을 기억해 본다.
외딴섬을 채우는 매력의 공간
내비게이션이 알려주는 펀그라운드 진접에 가까워져 올수록 동시에 의아함이 커졌다. ‘이곳이 맞나?’ ‘제대로 찾아온 걸까?’ 외관은 고래의 뱃가죽처럼 하얗고, 예상했던 펀그라운드 입간판은 보이질 않는다. 첫 만남의 낯섦과는 별개로 동네 풍경과 묘하게 상반되는 분위기가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그때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그제야 안심이 된다. 간판을 감추고 암호 코드처럼 삐뚤빼뚤 기호화된 펀그라운드가 내게 준 첫인상은 나랑 같이 숨바꼭질하자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층별 고유한 테마가 있는 펀그라운드 진접은 층마다 공간의 고유성은 지키되 기존에 봐왔던 청소년 공간과의 차별성은 분명하게 만들고자 했다. 1층과 2층이 계단으로 연결되어 시원한 개방감을 주는 언더그라운드와 언더그라운드 하이, 그리고 로마의 판테온을 연상케 하는 3층의 온그라운드, 끝으로 해가 들면 노란색으로 물드는 청소년 방과 후 아카데미 ‘아띠’와 개방감 넘치는 4층의 옥상 공간 오버그라운드까지. 펀그라운드 진접이 추구하는 차별성은 무엇일까?
“다른 청소년 수련관이나 문화의 집을 가보면 대부분 강의실이나 강당, 댄스 연습실, 밴드 연습실로 구성되어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강의실은 프로그램 참여자만 갈 수 있고, 댄스 연습실은 댄스부만 갈 수 있고, 밴드 연습실은 밴드부만 가게 되죠. 목적성을 갖고 가게 됩니다. 하지만 펀그라운드 진접은 탁 트여 있어서 카페처럼 편안한 분위기를 줘요. 어떠한 목적 없이 청소년들이 오고 싶으면 오는 곳이에요. 공간에서 자유롭게 눕고, 자고, 놀고, 공부하고, 공간을 빌릴 필요 없이 그냥 들어와서 사용하면 되는 거예요. 그게 청소년에겐 훨씬 더 자연스럽게 다가와요.” – 펀그라운드 진접 김승섭 선생님
오랜 기간 청소년 기관의 운영을 지켜본 김승섭 선생님은 펀그라운드 진접을 처음 설계하는 과정에서부터 공간의 자유도를 최대화하고 특히, 목적성을 띠지 않는 공간으로 청소년에게 접근해야 한다는 분명한 원칙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인터뷰에 참여했던 청소년자치기구 학생들도 입을 모아 자유로운 분위기 속 교류가 허용되는 펀그라운드 진접의 공간을 소개한다. 학생들은 3개월에 한 번씩 진행되는 라운딩을 통해 다른 지역에서 처음 방문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본인들이 직접 공간을 소개하고 안내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학생들은 주체적으로 함께 논의하는 소속감과 나의 기여를 통해 공간의 가치를 채우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적어도 석 달에 한 번은 다른 지역과 교류하는 데, 그때마다 청소년운영위원회가 직접 팀을 꾸려서 층별로 공간을 소개해요. 여기저기 공간을 보고 처음 온 사람들이 놀라는 반응을 볼 때마다 제가 지은 건물이 아닌데도 뿌듯함을 느껴요. 내가 이만큼의 소속감을 갖고 있구나,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구나, 하면서요.” – 이라엘 청소년운영위원회 ‘다원’ 위원장
층마다 공간의 자유성이 확보되는 것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앞서 고려해 볼 지점은 이러한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 펀그라운드 관계자일 것이다. 그들은 청소년에게 언제나 주제를 던져주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조력자 역할을 자처한다. 그리고 그 결과 학생들은 펀그라운드 진접의 공간을 마음껏 누비며 본인들의 생각과 꿈을 현실화한다.
  • 타지역 청소년 기획단과 교류활동
사이와 틈을 채우기 위한 노력
펀그라운드 진접에는 비단 청소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학생부터 대학에 다니고 있는 후기청소년까지 그 연령층이 다채롭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세대 간의 교류가 펀그라운드 진접 내부에서뿐 아니라 외부로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1년에 세 차례 진행되는 ‘청소년플리마켓’부터 ‘인권페스타’까지 공간과 공간 사이의 빈틈을 채우기 위한 노력은 지속된다. 외부와의 교류를 지속하고자 하는 이러한 노력은 펀그라운드 진접이 외딴섬이 되어 고립되는 것을 막아주고 문화 공유제로서 지역과 지역, 지역과 청소년을 연결하는 교두보 역할을 해준다.
펀그라운드 진접은 사이의 틈을 채우고자 하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지역의 거주지를 직접 찾아 발로 뛰며 전단을 돌리고 가까운 제로웨이스트 상점과 협력하며, 인근 지역의 대학과 맺은 MOU를 통해 공간의 숨을 불어넣는다. 게다가 매주 열리는 오일장에서 상점 주인 및 어르신들과 관계 맺기를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도모하기 위해 골똘히 고민하고 건강한 연대를 꿈꾼다. 펀그라운드 진접을 둘러싼 지역과 지역 사이에 벌어진 틈을 채우기 위한 이러한 노력이 어떠한 의미 혹은 가치가 있는지 물었다.
“저는 청소년 모두가 텔레비전에 나오는 유명한 사람이 될 거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보다는 다양한 동네 사람들과 함께 부대끼며 그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청소년들과 함께 섞였으면 좋겠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하나의 인생 공부이고 학교에서 배우지 못하는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공간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으로 교육보다 체득이 우선되어야 해요. 신나게 춤추는 친구도, 밴드 음악을 하는 친구도, 언젠가 진로를 고민할 때가 되면 이걸 계속해도 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더라고요. 저는 항상 같은 생각이에요. 진로를 고민할 때 춤과 음악이 삶을 풍족하게 만들어 준다고요. 그래서 이런 고민을 하는 청소년 친구들에게 늘 같은 이야기를 해줘요. 여기서만큼은 마음껏 다 해라. 재미있게. 그래서 펀그라운드라고요.” – 김승섭 선생님
펀그라운드 진접과의 첫 만남에서 느꼈던 낯선 기분이 눈 녹듯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펀그라운드 진접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그곳을 애정하고 다정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 다른 공간을 연결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다. 그리고 어떠한 실천을 담아내느냐에 달려있다. 공간과 공간 사이의 벌어진 틈을 채우고 연결하는 과정에서 펀그라운드 진접에 곁을 두고 하하 호호 즐거운 청소년의 이전 삶과 오늘의 삶 사이의 빈틈이 채워진다.
‘편하게 웃을 수 있는 공간’
‘다양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을 만나는 시간’
‘이전 삶과 오늘의 삶 사이의 빈틈이 채워진 기분’
– 이라엘, 조수아, 안서정 / 펀그라운드 진접에서 활동하는 청소년 및 후기청소년
  • 청소년 문화기획단 ‘더 웨이브’가 기획한 플리마켓 <지구 살리장>
편하게 재밌게 연습하고 경험하는 공간
‘삶이 더 재미있어진 것 같아요.’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문장이 있을까 싶은 청소년의 말. 그리고 그 말 속에 담긴 의미를 곱씹어 본다. 그간의 노력과 펀그라운드 진접이 추구하는 가치와 방향성에 대해 물었다.
“이곳에 오는 청소년의 이름을 외우려고 노력해요. 본인의 이름을 불러줬을 때 그 친숙함이 있잖아요. 사실 이름을 불러주는 최소한의 노력을 통해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다가가는 것 같아요. 그렇게 이름을 불러주면서 친구들도 편하게 저에게 고민을 이야기하고 그러면서 저희의 테두리 안으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공공의 가치나 사회로 나가기 전, 삶을 살아가기 위한 연습을 함께 시작해요.” – 김승섭 선생님
끊다, 자르다, 나누다, 분리하다 등 최근 우리 사회가 마주하기 쉬운 고립의 문제를 대변하는 종결어미가 무색하도록 김승섭 선생님이 말하고 있는 최소한의 노력은 정서적 연대가 확산되고 그 결과 따뜻한 온기의 공간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희망의 틈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물리적 공간 사이의 틈을 비집고 존재하는 정서적 연대는 연결고리가 되어 지역사회, 세대갈등, 나아가 청소년 존재에게 ‘나’와 ‘우리’라는 공동체성의 깊이를 더해준다.
“다양한 청소년과 선생님을 만나면서 어디서든 어른과 청소년을 대할 때 좀 더 호의적인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었어요. 이전에는 청소년을 단순히 조금 더 이해해야 할 대상이라고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실제로는 이해할 수 없었는데, 이곳에서 친구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어요.” – 조수아 청소년자원봉사단 ‘여정’ 단장
  • 진접‧진건 문화기획단과 자원봉사단의 공간기획 연합 프로젝트
    ‘펀그라운드 진건 외벽 그리기’
펀그라운드 진접이 나아가야 할 길 앞에 놓인 장애물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펀그라운드 진접을 가치있게 바라보고 빈틈을 채우고자 애쓰는 청소년의 눈빛은 여느 때보다 진지하다. 그들은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와서 이미 편그라운드 진접이 추구하는 가치가 익숙하고 편안한 청소년뿐 아니라 아직은 낯설고 불편한 사람들도 함께 그것을 향유하고 나눌 수 있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세대 간 분리로 인해 벌어질 문제의식을 청소년이 주체가 되어 변화가 촉발되길 소망한다.
펀그라운드가 주창하는 매니페스토(Manifesto) 세 가지

하나,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동시에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웁니다.
하나, 공짜가 아닌 공공의 가치를 배웁니다.
하나, 바로 지금, 여기에서부터 사회성을 연습하고 시민성을 체득합니다.

사이 공간을 채우는 청소년은 펀그라운드가 딛고 선 땅에서 피어난 생명의 발아다. 뭉근하게 번져가는 향처럼 그들의 웃음소리가 더 멀리 사이의 공간 곳곳을 채우며 울려 퍼지길 바란다.
안용세
안용세
공연학부에서 연극을, 융합교육학부에서 교육연극 전공으로 석사과정을 수학하며 시민/응용연극 분야에 대한 실천적 연구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의 청소년열정공간99℃, 청년네트워크공간1℃와 함께 다년간 작업하며 아동·청소년 그리고 일반 시민의 삶을 반영시키고자 한다. 현재 예술공간100℃ 대표, 상명대학교 문화예술교육사업단 기획·행정 팀장으로 있으며,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예술교육실천가의 삶을 펼치고 있다.
인스타그램 @an_yongse
홈페이지 www.artsspace100.com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펀그라운드 진접 , 청소년 문화기획단 더 웨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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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4년 10월 22일 at 2:23 PM

    우둘투둘해도 재밌게, 마음껏 인생을 연습한다
    ‘펀그라운드 진접’이 채워가는 사이와 틈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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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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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 2024년 10월 22일 at 2:23 PM

    우둘투둘해도 재밌게, 마음껏 인생을 연습한다
    ‘펀그라운드 진접’이 채워가는 사이와 틈

    공감이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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