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노리교실은 LH 사회공헌 사업의 일환으로 지난 2022년 봄부터 가을까지 진주 봉원중학교의 유휴공간을 학생을 위한 생태, 자연체험 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프로젝트다. 서울가드닝클럽은 이 프로젝트에서 전반적인 프로젝트의 기획, 공간 디자인, 조경 시공, 운영계획에 참여했다. 프로젝트 대상지인 봉원중학교는 진주시 구도심에 자리했다. 1984년 개교하여 과거에는 한해 1,000명이 넘는 학생이 다녔지만, 점점 학생이 줄어 프로젝트 당시에는 150여 명 학생이 등교하고 있었다. 그에 따라 학교에 있던 여러 교실은 새로운 쓰임을 찾아야만 했다. 그중 우리에게 주어진 공간은 별관에 위치한 탁구 교실과 그 바깥의 을씨년스러운 중정 공간이었다. 그 외에도 등하교하며 늘 마주하는 삭막한 운동장 입구와 가로수길 등을 개선하는 작업도 주어졌다.
빈 교실에 무엇을 채워 넣을까
새벽같이 고속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택시를 타고 이동해도 학교까지는 점심이 넘어 도착하는 고된 일정이었다. 반년을 넘게 진주를 오가는 일이 부담스러웠음에도 우리 팀은 이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었다. 서울가드닝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조경이 가진 공공성과 민간이 가진 창의성의 사이 지점에서 우리만 꼭 할 수 있는 일이 있다고 믿던 우리에게, 감수성이 풍부한 청소년기 아이들에게 도시 속 자연과 생태 감수성 등을 일깨우는 작업은 너무나 큰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프로젝트를 시작하기 전 우리에게 언젠가 학교 프로젝트를 꼭 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한 영감을 주는 사례가 있기도 했다. 미국의 유명 셰프인 앨리스 워터스가 이끄는 ‘에더블 스쿨야드 프로젝트(Edible Schoolyard Project)’가 그것이다. 교육기관에서 진행하는 대부분의 자연체험 수업이 일회성으로 식물을 심거나 수확해 보는 경험에 그치는 반면, 앨리스 워터스의 프로그램은 텃밭 정원을 가꾸는 커리큘럼과 인문, 철학, 과학 등의 수업이 함께 정규교육 과정으로 편입되어 운영되는 프로젝트다. 아이들이 텃밭에서 시간을 보내면서 정원 가꾸기, 요리하기의 방법을 넘어 호기심, 존엄성, 팀워크, 타인에 대한 존중 등의 각종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하고 있다. 더불어 이 프로젝트는 저소득 계층 지역의 식품 사막(food desert, 양질의 신선식품을 구하기 어려워지는 현상) 문제, 형편없는 식사의 질로 인한 아동비만 문제 등을 개선하기 위한 오바마 여사의 백악관 텃밭 프로젝트와도 연결되어 실질적으로 청소년들의 식생활 개선과 관련된 정책 재정을 이끌어내는 등 큰 반향을 일으켰다.
우리에게 주어진 프로젝트의 구도나 만들어내야 하는 결과물은 에더블 스쿨야트 프로젝트와는 완전히 달랐지만, 그럼에도 한 가지 꼭 이루고 싶었던 지점은 단지 식물로 꾸며진 예쁜 공간에 그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식물과 자연이 있는 공간이 아이들의 일상에 작게라도 실질적이고 의미 있는 변화를 불러올 수 있으면 했다. 공간을 이루는 소재는 자연이지만, 아이들이 스스로 어떤 순간에 몰입하게 되는지 발견하게 되거나, 친구에게 마음을 여는 방법을 알게 되거나,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조금 누그러뜨릴 수 있거나, 뭔가를 깊이 탐구하는 기쁨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같은, 작지만 마음을 성장시키는 그런 변화 말이다.
아이들이 식물을 싫어하는 이유
이 프로젝트에는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관여하고 있었다. 우선 LH와 학교, 지역사회 주체들 간의 중심에서 커뮤니케이션을 담당한 경남사회적가치지원센터, 함께 공간을 기획한 메타기획컨설팅과 야무진건축사사무소, 현지에서 건축시공을 담당한 참신한 건축, 공간이 만들어진 이후 이곳을 채울 프로그램을 담당할 지역 커뮤니티의 교사들 등이다. 참여하는 주체가 다양한 만큼, 여러 차례의 워크숍을 통해 이 공간에 담을 콘텐츠에 대한 의견을 모으고 결정하는 과정이 필수적이었다. 총 세 차례 교사와 공간을 이용할 아이들과 함께하는 워크숍을 진행하고, 두 차례 이 공간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할 커뮤니티 교사들과 교육 워크숍을 진행했다.
첫 번째 워크숍은 교사와 학생을 심층 인터뷰하는 작업이었다. 개선 대상인 교실과 중정, 운동장 등의 공간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고 있는지, 이용이 꺼려진다면 어떤 부분 때문인지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아이들이 식물을 싫어할 수도 있다는 점과 공간 이용에 있어 아이들 간의 권력과 서열이 작용한다는 사실이었다.
우리는 막연히 식물로 공간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면 힐링이 될 거로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의 중학생 친구들은 훨씬 영민했다. 이 공간이 생기면 당연히 선생님들이 물주기나 흙 치우기 등의 잔심부름을 자신들에게 시킬 것을 예견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식물이 너무 많은 것보다는 적당하게 써주기를, 필요하다면 조화도 조금 섞어서 본인들이 관리하기에 어렵지 않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또한 기존 탁구 교실, 중정의 벤치 등은 모두에게 열린 공간이기는 하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고 했다. 고학년이 이미 공간을 점령하고 있으면 저학년은 거기에 쉽사리 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픈 스페이스라도 앉는 자리들이 칸막이로 구분되거나 서로 간의 프라이버시를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기로 했다.
두 번째 워크숍은 직접 식물을 심고 관리 방법을 배우는 수업을 통해 식물이 자신의 일상에 들어왔을 때 어떤 정서적 변화를 느꼈는지 감각해보는 내용으로 진행했다. 학생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함께 워크숍에 참여했는데, 식물이 있는 공간을 만들고 이용하고 관리하는 것이 누구 한 사람에게만 미뤄둘 책임은 아님을 공통으로 느끼길 바랐던 이유이다. 또한 자연을 대하며 느낀 긍정적 감정이 이후 생길 공간에 자연스러운 애착 관계를 형성해 줄 것이며, 공간 기획에 참여한 학생들이 다른 친구들에게도 새로운 공간의 부드러운 안내자 역할을 수행해 줄 것으로 기대했다.
마지막 워크숍은 건축가와 함께 구체적으로 만들어질 공간을 상상해 보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서는 식물에 중심된 사항보다, 아이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휴식의 자세와 공간 디자인의 관계성에 대해 조금 더 포커스를 두어 이야기를 나눴다. 하루 종일 신발을 신고 생활하는 학교에서, 신을 벗을 수 있거나 다리를 쭉 펴는 공간, 반쯤 누워있듯이 지낼 수 있는 공간과 같은 필요 요소가 나왔다. 원하면 혼자 있는 것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의자를 이동해서 서넛이 모일 수도 있는 공간의 가변성 같은 요소들도 아이디어로 나왔다. 이 워크숍을 통해, 평상같이 앉을 수 있는 라이브러리 공간,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공간, 폴딩도어에 면해 있는 카페 같은 바 공간 등의 구성을 확정 지었다.
워크숍을 통해 의견을 꼼꼼히 수집한 이유는 ‘아이들이 좋아할 것이라고 막연하게 상상하는 디자인을 피하는 것’과, 의견이 갈릴 때 최종 판단의 기준을 이용자인 아이들의 의견에 두기 위함이었다. 과업지시서에는 바이오필릭 디자인(Biophilic Design, 자연의 요소를 실내외 공간에 도입하는 개념의 디자인)을 적용해 코로나 이후 아이들의 힐링, 디지털 과의존도의 해소 등 바람직한 가치를 지향하는 방침들이 많았지만, 어른들끼리만 진행한 디자인 회의에서는 아이들의 요구와는 상관없는 공공기관 특유의 경직된 시설물 벤치가 요구되는 등 아쉬운 순간도 있었다. 그러나 다행히 학생들과의 워크숍 기록이 중요한 설득자료가 되었고, 경남사회적가치지원센터와 워크숍에 함께 참여했던 교사들이 중심을 잘 잡아주어서 이용자 의견을 중심으로 한 공간이 완성될 수 있었다.
풀과 함께 성장하는 공간
풀노리교실은 크게 세 가지 지향점을 가진다. 첫째는 배움으로, 생태와 자연에 대해 배우며 지구를 위한 건강한 미래를 꿈꾸는 공간이다. 둘째는 쉼으로, 자연을 기반으로 한 체험과 놀이를 통해 학업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는 공간이다. 셋째는 성장으로, 자연과의 관계 속에서 ‘나’를 넘어 ‘우리’라는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공간이다.
각각의 키워드를 위해 가드닝 도서와 식물재료를 아카이빙하는 ‘초록도서관’, 식물과 대화하며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는 기분 기록소 ‘풀노리거울’, 식물을 통해 친구와 가족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하는 식물공방 ‘가드너의 작업실’, 따로 또 같이 식물을 가꾸는 모듈형 커뮤니티 가든 ‘풀노리 허브’ 등의 공간을 구성했다. 또한, 외부의 정원은 식물을 넘어 식문화, 농업, 도시 속 소생태계 등과 연계한 체험 수업이 가능하도록 식용 허브, 텃밭 작물, 밀원식물 등을 활용해 다채롭게 조성했다.
다음은, 이 공간이 어떠한 지향점을 가지고 만들어졌는지 공간을 이용하는 학생들이 알 수 있도록 풀노리교실 입구에 붙여놓은 ‘풀노리교실 마음약속’의 문장이다.
-
풀노리교실 마음약속
1. 자연은 누구에게나 공정하며 어떠한 차별도 하지 않는다.
2. 나의 일은 스스로 결정한다.
3. 누구나 각자의 아름다움과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4. 따뜻한 시선으로 서로를 바라본다.
5. 누구에게나 힘든 시기가 오며, 언제든 회복할 수 있다.
6. 오늘도 나는 1cm씩 성장하고 있다.
지속 가능한 공간 운영을 위해 정원관리 매뉴얼과 프로그램 매뉴얼도 함께 제작하고 관리를 담당할 선생님들의 교육 워크숍도 함께 진행했다. 교내에 있는 정원을 직접 가꾸며 공간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는 장기 프로그램인 ‘풀노리 클럽’, 식물학자, 환경운동가, 생태연구가 등 관련 분야의 제3의 어른을 만나 자신의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프로그램인 ‘그린잡(Job)산책’과 같은 기획이 중심이다.
학교에서는 오랫동안 운동장의 텃밭을 일구며 아이들에게 정원교육을 해오신 열정 있는 선생님과 교감 선생님이 구심점이 되어 주었고, 지역사회에서 가드닝/생태 분야와 관련된 교육을 담당할 수 있는 커뮤니티 교사들을 모으는 작업도 함께 진행해 주었다. 최근까지도 풀노리교실에서는 커뮤니티 교사와 함께하는 가드닝 프로그램, 진로탐색교육, 환경교육 등이 운영되고 있으며, 지역 대학교의 조경학과 동아리와 함께 정원의 허브를 이용한 식문화 프로그램 등도 함께 운영되고 있다.
진주 봉원중학교의 사례는 프로젝트를 주관한 공공기관, 공간 이용자들, 이곳을 기획하고 만드는 기업, 이후 운영할 커뮤니티의 주체들이 한 팀이 된 드문 사례가 아닐까? 공간의 지속 가능성을 논하자면 고려해야 할 지점이 한둘이 아니겠지만, 프로젝트 초기부터 완성 너머의 시간을 고려해 과정과 논의 체계를 잡았던 것은 매우 중요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공간 기획과 디자인이라는 것은 이 체계에 대한 고려로부터 시작되는지도 모르겠다.
- 이가영
- 서울가드닝클럽 대표. 광고회사에서 커리어를 시작해, 이노션에 7년간 재직하며 현대자동차, LG전자 등의 브랜드 콘텐츠와 해외 전시 등을 기획했다. 이후 서울대 환경대학원에 진학해 도시설계와 조경을 공부했고, 서울가드닝클럽을 창업했다. 정원이라는 공간이 도시와 모두의 일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조경가이자 라이프스타일 기획자이다. 도시전문 미디어 ‘요즘도시’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we@seoulgardeningclub.com
서울가드닝클럽 홈페이지 https://seoulgardeningclub.com/ - 사진 제공_서울가드닝클럽
기사가 좋았다면 눌러주세요!
3 Comments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코너별 기사보기
비밀번호 확인
매일 조금씩 자라날 아이들과 풀꽃들을 위하여
진주 봉원중학교 풀노리교실
잘 보고 갑니다
매일 조금씩 자라날 아이들과 풀꽃들을 위하여
진주 봉원중학교 풀노리교실
기대만점입니다
초록이 가득한 교실이 정말 보기 좋네요.
따뜻함이 가득한 게 느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