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미디어가 일상화된 후 ‘일반 시민이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힘입어 미디어 콘텐츠의 저장, 해석, 전유, 변형, 재유통 과정에 참여하는 문화(Jenkins, 2003)’, 즉 ‘참여문화’는 ‘지역 미디어센터’의 등장 배경이자 주요한 지향이라고 할 수 있다. 지역 미디어센터는 디지털 미디어 세상을 함께 살아가는 시민·공동체의 미디어 리터러시 함양과 미디어 참여를 지원하는 지역의 전문조직이자 시설로 「지역문화진흥법」 상 생활문화시설에 포함된다. 영상미디어센터, 시민미디어센터, 마을미디어지원센터, 시청자미디어센터 등 다양한 명칭을 사용하지만 ‘지역 미디어센터’는 미디어의 가치와 역할, 그리고 미디어와 관련된 시민의 권리를 전제로 해당 지역(시군)의 특성과 디지털‧미디어 기술변화를 반영하며 사업을 기획‧운영한다.
최근 블록체인, 메타버스,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디지털 기술 서비스의 대중화로 미디어 환경변화 속도에 대한 시민의 체감도와 부적응에 대한 걱정이 커지면서, 모두가 디지털‧미디어에 ‘접근-해석(분석‧평가)-창조-참여(행동)’하는 것을 목표로 운영하는 지역 미디어센터의 필요성과 역할‧역량 강화는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인터넷 서비스(www)와 디지털캠코더의 대중적 이용이 폭발하던 무렵 시작하여 AI가 영상을 만들어 주고 가상공간에서 디지털 자아가 교류하는 오늘까지 변함없이 변화하며 활동하고 있는 지역 미디어센터의 몇 가지 사업‧활동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감각을 보충하여 모두가 함께 즐기는 배움과 실천
대구영상미디어센터 ‘대구지역 배리어프리 영화 사업’
기존 영화에 화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배리어프리 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영화를 ‘배리어프리 영화’라고 한다. 시‧청각 장애인용 영화 상영 비율은 여전히 1%에 미치지 못하고 시청각장애인이 영화관을 상대로 제기한 차별 구제 소송이 대법원의 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다.(참고기사) 하나의 콘텐츠를 하루 종일 여러 플랫폼과 기기를 통해 빨리 감거나 건너뛰며 이어서 보는 미디어 환경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생각해야 하는 곳 중 하나가 지역 미디어센터이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일반시민 대상으로 배리어프리 영화 제작 과정 교육을 운영하고 교육과정 수료자 중심으로 배리어프리 제작단을 구성하여 배리어프리 영화를 제작하고 있다. 지역영화제와 협업하여 배리어프리 섹션을 운영하고 배리어프리 영화 공동체 상영회를 진행하는 등 2019년부터 지역 내 장애인 영화 접근권의 기반을 만들기 위해 다양한 사업‧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배리어프리 영화 사업의 일환으로 영화진흥위원회, 한국농아인협회, 미디어센터내일과 협력하여 2023년 ‘가치봄 제작 활성화 지원사업’을 진행했다. 대구지역의 영화인들이 만든 영화를 포함하여 제작할 작품을 선정한 후 시‧청각장애인의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기 위한 여러 공정의 협업은 새로운 또 하나의 창작 과정이 된다. 대구영상미디어센터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치봄 영화 제작 지원사업을 진행하며, 타 지역 미디어센터 대상 사례 공유를 통해 사업의 확대를 위해 기여하고 있다.
새로운 시대‧새로운 플랫폼에서의 소통, 관계, 안전과 책임
안성미디어센터 ‘메타버스 : 나만의 캐릭터로 우리동네 맵 만들기’
메타버스 진흥을 위한 법률인 「가상융합산업 진흥법」이 2024년 8월 28일부터 시행된다.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관심이 증가한 메타버스는 타인과 상호작용하고 경제적 활동까지 할 수 있는 디지털의 가상공간이다. 특히 이용자가 직접 만들 UGC(user generated conteness) 메타버스 플랫폼은 단순 비대면 활동을 위한 도구를 넘어 개인이 창의적인 콘텐츠를 직접 제작하여 공유‧유통하고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는, 흡사 유튜브와 같은 1인 미디어 콘텐츠 플랫폼이 되고 있다. 영상이 아닌 3차원 인터렉티브 게임 콘텐츠를 경험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미디어의 차기 메인스트림이라는 예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초등학생이 가장 좋아하는 게임이 대표적 UGC 메타버스 플랫폼인 ‘로블록스’이며 이는 미래세대인 어린이가 살아가는 디지털 미디어 환경에 대한 단초를 제공한다.
안성미디어센터는 학교 수업에 많이 사용되며 월간 활성 이용자가 130만명인 UGC 메타버스 플랫폼 ‘ZEP’을 활용한 ‘메타버스 : 나만의 캐릭터로 우리동네 맵 만들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ZEP’을 활용하여 우리집, 동네, 학교 등 스스로 표현하고 싶은 장소를 메타버스 공간에 만들어 보는 프로그램으로 참여하는 어린이로 하여금 또래가 즐겨 사용하는 미디어의 활용 역량과 콘텐츠 제작을 위한 창의력을 갖게 하고자 한다. 더불어 가상의 공간에서의 소통과 관계 역시 실제 생활과 다름없이 책임과 배려가 필요하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는 활동이다. 안성미디어센터 뿐만 아니라 전국의 여러 지역 미디어센터에서는 기성세대에게는 새로운 환경이자 Z세대‧알파세대에게는 이미 주어진 메타버스, AI 등을 안전하고 책임 있게 즐기고 활용하여 소통할 수 있도록 다양한 미디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의 발걸음에 담긴 지역의 일상과 자연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 ‘순천도보여행자 순천워크’
지난해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개최한 대표적인 생태‧정원도시인 전라남도 순천시의 순천시영상미디어센터는 ‘순천도보여행자 순천워크’라는 교육 및 제작 지원사업을 추진했다. 순천이라는 지역의 특색과 콘텐츠 제작‧유통환경 변화를 반영한 시민제작 로컬콘텐츠 활성화 방안에 대한 고민에서 기획되었다.
한국의 자연‧문화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코로나19 시기 국가 간 이동이 제한되는 여건 속에서 해외 이용자들에게 큰 호응을 받았던 워킹 유튜버(서울워커)의 ‘K-로컬’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순천시민에게 큰 호응을 얻어 1기와 2기 두 차례 교육에 총 30명이 참여하여 104편의 콘텐츠를 제작하고 그중 6팀은 추가 제작지원을 통해 18편의 ‘로컬 워킹 유튜브 콘텐츠’를 제작하였다. 올해는 반려동물과 함께 걸으며 순천 지역의 경관과 일상을 담는 ‘반려인 순천도보여행자, 순천워크’ 사업을 추가로 운영하고 있다.
미디어센터 설립이 막 시작되었던 2000년 초반과 달리,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며 지역 미디어센터가 추구해 왔던 도농 간, 세대 간 격차 없이 모두가 미디어 리터러시와 미디어 참여 기회를 가질 권리의 실현은 이제 보편적인 사회과제가 되었다. 지역 미디어센터는 주민자치, 문화도시, 도시재생, 농촌 활력, 평생교육 등 지역민의 생활과 밀접한 정책 분야와 만나 사업과 활동의 지평을 넓혀왔고 현재는 다양한 정책 분야에서 디지털 미디어 관련 시민 역량과 참여의 중요성에 공감하고 관련 사업을 펼치고 있기도 하다.
이제는 지역의 다양한 문화기반시설, 주민지원시설, 평생교육시설 등과 협력하되 지역 미디어센터만의 전문적 역할을 재정립하면서 ‘지역민을 위한 디지털 미디어 지원 허브’로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시기이다. 지역 미디어센터가 그간 만들어 온 변화를 토대로, 항상 그랬듯이 다시 한번 변화하기 위해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에 참여하는 42개 회원센터는 오늘도 경험을 나누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 허경
-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초대 사무국장으로 일했다. 지금은 전국미디어센터협의회 정책센터장, 전국마을공동체미디어연대 운영위원, 전남영상위원회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reunion1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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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위하여, 변함없이 변화한다
문화·교육 거점으로서의 지역 미디어센터
공감이 갑니다
모두의 미디어 리터러시를 위하여, 변함없이 변화한다
문화·교육 거점으로서의 지역 미디어센터
기대만점입니다
확실히 여러 지역에서 이런 식의 활동이 더 늘었으면 좋겠네요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