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을 떠올리면 선명하게 ‘즐거웠던 공부’로 기억되는 순간들이 있다. 유치원 때 아빠와 함께했던 화산폭발실험, 초등학교 2학년 때 비닐로 만든 우리 반 붕어 연못에 누군가 커피를 쏟아 연못의 재건축과 사건의 재발 방지를 위해 학급 회의를 열어 사태를 수습한 일, 중학교 1학년 때 학원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에 사람이 몰려 정체되는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한 줄 서기 안내문과 발판을 붙였던 일. 가만히 들여다보니 공통점이 있다.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자신의 힘으로 실행한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의 배움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된다.
여기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며 노는 놀이터가 있다. 미래의 이 행성에서 다양한 문제를 만나며 살아갈 아이들이 미리 안전하게 경험을 쌓는 곳. 그리고 이곳엔 아이들의 생각과 실행을 돕고 아이들의 힘을 믿어주는 어른들이 있다. 아이들의 삶과 맞닿은 교육을 위해 세계 곳곳의 기관들과 연계하여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교육 스타트업 ‘프로젝트 플래닛(Project Planet)’의 박지원 대표와 박보은 감독을 만났다.
박보은 감독, 박지원 대표
‘프로젝트 플래닛’의 뜻이 궁금하다. 이름처럼 모든 활동이 ‘프로젝트’ 중심으로 진행되는 데 프로젝트를 강조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박지원  저희 소개 문구에 ‘One and Only Planet’이라는 표현이 있다. 우리의 아이들이 살아갈 유일하고 하나뿐인 이 행성에서 모두가 잘 살아가기 위해서 다양한 프로젝트를 하는 거다. 프로젝트에서는 아이들이 스스로 질문을 찾고 그 질문에 대한 해결책도 스스로 기획한다. 미래를 살아갈 아이들에게 꼭 필요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박보은  지금의 아이들이 이 현실 세계와 접해있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교육은 수학, 사회, 국어 등 교과로 나누어진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우리가 현실 세계에 나와 직업을 가지고 살아갈 때는 특정 과목의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 당장 맞닥뜨린 융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잖나. 그런 문제 해결 능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프로젝트를 통해서 스스로 생각하고 실행하는 경험이 필요하다. 실패마저도 점수로 환산되는 현재의 아이들에게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프로젝트에서는 가능하니까.
  • Plant Mars Competition 프로젝트
  • Plant Mars 마션 프로젝트
프로젝트마다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주제를 접목한 점이 흥미로웠다.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주제로 삼게 된 계기가 있나?
박보은  2022년에 UN 협력 기관인 미국 TAG(Take Action Global)에서 진행한 글로벌 프로젝트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당시 10개월간 ‘기후행동학교’를 진행했는데,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속가능발전목표’가 어른들끼리 생각하고 논의하는 것이 아니라 2030년에 성인이 되어 살아갈 아이들이 더 많이 생각하고 작은 행동이라도 할 수 있도록 경험을 쌓아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살펴보면 주제를 ‘Think, Act, Connect’의 방식으로 풀어간다. Think, Act, Connect는 각각 무엇인가?
박보은  ‘Think(생각하는 힘), Act(실행하는 힘), Connect(소통하는 힘)’는 우리의 핵심 가치다. ‘Think’는 프로젝트의 기반이다. 주제와 관련된 자료를 찾으면서 지식을 쌓고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질문을 떠올리는 과정이다. 지식이 기반 되어야 사회적인 현상을 분석하거나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이 지식으로만 끝나지 않고 실행해 보는 과정이 ‘Act’다. ‘Think’ 과정에서 직접 찾은 질문이나 주제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인지 스스로 설계해서 실행하는 것이다. 마지막 ‘Connect’는 진짜 현실 세계와 아이들의 프로젝트가 연결될 수 있도록 저희가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부분이다. 아이들이 더 많은 사람, 기관, 정부, 글로벌 세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그래서 저희가 TAG나 TED 등 국제기관와도 협약을 맺었고, 다양한 계층과 지역의 아이들을 만나기 위해 풀무원재단이나 다음세대재단, 아모레퍼시픽과도 협력을 맺었다.
Connect NASA 파트너기관 ICS에서 주최하는 Plant Mars에 ‘화성 토양 시뮬런트’ 신청
Think 미디어, 다큐멘터리, 책 등 자료조사를 통해 구체적인 질문 및 계획 세우기
Q1. 지구 토양과 화성 토양의 적절한 배합 비율은?
Q2. 물을 몇 번, 얼마나 주어야 할까?
Q3. 어떤 작물을 심어야 할까?
Q4. 빛을 얼마나 주어야 할까?
Act 1. 토양 1:9 비율
2. 일주일에 3회
3. 토마토
4. 24시간
1. 토양 4:6 비율
2. 일주일에 3회
3. 토마토
4. 12시간 단위
1. 토양 1:9 비율
2. 일주일에 1회
3. 감자
4. 12시간 단위
Connect 원하는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의 연구 결과를 공유하도록 지원 (소설창작, 시 낭독회 등)
박보은 감독의 설명을 통해 구체화한 Plant Mars 마션 프로젝트 진행 과정
아이들이 Act하고 Connect하는 과정에 예술적인 부분이 스며들어 있는 것 같다. 예술교육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도 예술적인 면이 보인다는 건 프로젝트 안에서 예술이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는 뜻일까?
박보은  예술이 나의 안에 있는 것을 표현하는 데 굉장히 좋은 도구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마션 프로젝트’라는 과학 프로젝트를 했는데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짧은 소설을 쓰거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도 한다.
박지원  최근에 5학년 친구가 환경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신의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했다. 그래서 브랜드 이름도 ‘얼쓰캔버스(Earth Canvas)’라고 정하고 그 브랜드에 가장 어울리는 캐릭터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캐릭터가 들어간 텀블러를 판매하기 위한 홍보 전략으로 캐릭터를 활용한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 100컷도 넘는 그림을 그리더라. 이 친구의 최종 목표는 이 제품을 판매해서 모은 돈을 환경단체에 기부하는 거였다.
박보은  결국 이 모든 형태가 다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캐릭터를 만들고 이걸 어떤 스토리로 홍보할지 고민하고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기부하는 모든 과정이 예술이다. 특히 미디어적인 것은 아이들이 훨씬 더 잘 알고 있다. SNS를 활용하거나 ‘릴스’ 같은 영상 매체를 활용하는 것 등 손안에서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에 익숙한 세대라고 느낀다.
사이언스 픽션 & SF 크리에이티브 스토리 프로젝트
아이들은 이미 예술가인 것 같다. 예술을 굉장히 넓은 범위로 보고 열어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다. 기존에는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것도 예술의 범주 안에 포함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예를 들어 ‘릴스’ 같은 경우에 기성세대는 그게 예술인지 의심할 것 같다.
박보은  Think 단계에서 다양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분석도 해보는 과정을 거치면 좋은 점을 찾아낼 수 있다. 올해 진행 예정인 아모레퍼시픽과 함께하는 ‘미트 유어 뷰티(Meet your Beauty)’의 경우 미디어에 노출된 보편화되고 획일화된 미(美)의식을 제대로 바라보자는 캠페인 사업이다. 이를 위해 ‘미’의 개념을 내면·외면 건강과 관계, 취미와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볼 수 있도록 Think 단계를 거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릴스 같은 미디어 도구도 나의 이야기, 나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로 넘어올 수 있다고 믿는다.
아이들의 생각이 확장될 수 있도록 많은 부분을 신경 쓰시는 것 같다. 활동사진을 보면 프로젝트마다 공간 구성도 다르더라. 프로젝트를 위해 세심한 부분까지 신경 쓴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어떤 부분을 주로 신경 쓰나?
박보은  허락을 구하지 않는 공간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아이들이 “이거 써도 돼요? 이거 해봐도 돼요?”라는 질문을 굉장히 많이 했다. 근데 이제는 다 안다. 모두에게 열려있는 공간이고 모든 자료와 도구를 다 사용해서 나의 문제를 푸는 데 집중하는 거다.
박지원  어디까지 아이들에게 자율성을 줄지를 굉장히 많이 고민했다. 프로젝트 교육의 핵심은 자발성인데 시간과 자원의 한계가 있다 보니 어디까지 열어야 하나를 고민이 있었다. 그런데 첫 프로젝트 ‘인사이드 아웃(Inside Out)’을 하면서 모든 것을 열어주어야 한다고 확신했다. ‘인사이드 아웃’은 나를 탐구하는 프로젝트였는데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의 감정, 욕구를 들여다보고 욕구 불충족에서 오는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시간을 가졌다. 거기서 <키 작아도 괜찮아> <쓰레기 없는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앱 만들기> <나의 한옥 아파트> 등 다양한 프로젝트가 나왔다. 모든 걸 열어두었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인사이드 아웃 프로젝트
아이들의 삶과 연결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만, 우리는 현실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한다. 그 사이에서 오는 딜레마가 있을 것 같다.
박지원  진행 단계에서나 아이들을 만나면서 경험하는 가장 큰 딜레마는 아이들이 스스로 의심을 많이 한다는 거다. ‘과연 내가 하는 이 행동이 무슨 변화를 몰고 올까?’ 하는 의심이다. 어른도 ‘텀블러 들고 다니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도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하잖나. 아이들도 처음에는 너무 자신 있게 시작했다가도 이런 캠페인 몇 번, 길거리에서 하는 실천 몇 시간이 세상에 무슨 변화를 불러올 수 있을까에 대해 의심을 한다. 근데 우리 스스로가 믿어야 하는 것 같다. 이런 목소리가 모이고 합쳐지면 지금 당장은 보이지 않아도 나중에 더 큰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것을 우리도 믿고 아이들에게 그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또 하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대표님 표정에서 이 일이 힘들고 딜레마가 존재해도 계속하는 이유가 드러나는 것 같다.
박지원  내가 너무 재밌어하나? (웃음)
프로젝트를 하면서 즐겁고 보람찬 순간들이 떠오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어떤 순간이 떠올랐나? 프로젝트 플래닛을 하면서 가장 값진 순간은 언제였나?
박지원  아무래도 교육이 끝난 이후 아이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이어졌다는 피드백을 들을 때 가장 보람 있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아이가 프로젝트가 끝난 후 자발적으로 학급 친구들을 모아서 쓰레기도 줍고 포스터를 제작해서 해안도로를 걸었다고 하더라. 그 아이는 프로젝트에서 필요성을 느껴서 그냥 한 행동인데 이게 제주도 신문 기사에 실린 거다. 이렇게 숙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그들의 삶에 들어가서 실천의 영역까지 갔다는 소식을 들을 때 진짜 의미가 있구나 싶어 보람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미래 세대에게 필요한 예술교육을 위해 예술가, 예술교육가가 무엇을 신경 쓰면 좋을지 물었다. 앞으로도 예술교육가로 살아가고 싶은 나를 위한 질문이었다.
“문화예술이라는 게 굉장히 삶과 사회와 맞닿아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예술의 기술적인 부분보다 그 아이들의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역할을 해주시면 좋을 것 같다. 노래를 배운다면 이 아이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를 표현하는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미술이 하나의 작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사회에 메시지를 주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거다.”
나는 박지원 대표의 대답이 이렇게 들렸다. 예술을 통해 당신과 아이들의 삶, 그러니까 사람과 사람의 삶이 연결될 수 있다고. 모두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플랫폼이 되는 상상을 해본다. 프로젝트 플래닛이 아이들과 세상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성장하면 좋겠다는 박지원 대표의 꿈처럼.
박지원·박보은 프로젯트플래닛
박지원·박보은 프로젝트 플래닛

10년간 교육청, 예술기관, 방송국, 학교 등 여러 교육기관과 협력하여 창의융합 프로젝트 교육을 진행하였고, 2021년 미래세대의 다양한 경험과 성장을 위해 교육브랜드 ‘프로젝트 플래닛’을 설립했다. ‘원더러스 프로젝트’ ‘AI & Ethics 워크숍’ ‘Plant Mars 마션 프로젝트’ ‘Future City Project & LEGO Day’ 등 지속가능발전목표 SDGs 주제를 담은 프로젝트 교육 콘텐츠를 기획 및 진행하고 있다.
· 홈페이지 projectplanet.kr
· 인스타그램 @our_project_planet
차화연
차화연
사람들과 연극 하는 게 즐거운 예술교육가. 연극은 삶의 리허설이자 가장 안전한 놀이터라고 믿으며 아이들의 삶의 문제로부터 출발한 주제로 연극을 만든다. 프로젝트 그룹 ‘딴짓’과 함께 ‘기후 위기 시나리오 : 시드볼트 프로젝트’ ‘가상 세계에서의 나 : 기게스의 반지’ 프로젝트 등을 진행했으며, 문화다양성 예술교육 프로젝트 ‘I Am Gronud’를 통해 예술과 아이들의 삶을 연결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hello_my_muse
사진제공_프로젝트 플래닛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