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

이은형 무용교육가

문화적으로 학습되는 몸에 대한 이상화, 대상화 때문일까? 취약성과 한계를 경험하는 나의, 혹은 타인의 몸을 마주하기 위해서는 대단한 무언가 필요할 것만 같다. 이런 상상도 해본다. 몸의 연약함과 실패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방구석에서 홀로 무수히 수행하는 모습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활동을 할 수 없는 자신의 몸을 마주했을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할 수 있을까? 두려움에 갇혀 이상적인 몸의 이미지를 쫓거나 몸을 부정하기보다는, 자신의 몸 상태를 존중하고 수용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다양한 신체적 상태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몇 년째 장애인과 예술교육을 진행하며 나는 이런 질문들을 품고 있었다. 시니어와 춤추는 이은형 무용교육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장애를 차이로 인정한다는 것은 실질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 그것은 장애인이 가진 지식과 관점을 찾아내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익숙하지 않은 생각의 형태나 존재의 방식을 존중하고 그로부터 배우고자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또한 인간 신체의 완벽함을 추구하고 통제하려는 환상을 포기한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 수전 웬델, 『거부당한 몸』 중에서
파킨슨 환우, 치매노인과 무용교육으로 만나고 있는 이은형 무용교육가는 수업을 설명하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움직이기도 하고, 맨바닥에 엎드리기도 하면서 수업 장면을 묘사해 주었다. 경험에서 나오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내 머릿속에서 수업 참여자들의 목소리와 움직임이 그려지며 나도 마치 그들을 만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이은형 무용교육가는 시니어에게 예술교육이 꼭 필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한다. 거창할 필요가 없는데 거창하게 다가가야지 않을까 하는 조심성이 있는 것 같고, 무엇보다는 더 많이 만날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했다. 거창할 필요 없고 ‘내가 즐거우면 어르신들도 즐겁게 놀 수 있다’는 이은형 무용교육가를 만나보자.
Q.

먼저 파킨슨 환자를 위한 전문 무용 프로그램 ‘댄스 포 피디’가 궁금하다.

A.

‘댄스 포 피디(Dance for PD-Parkinson’s Disease)’는 미국의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과 브루클린 파킨슨 재단이 협력해서 파킨슨 환자를 위해 개발한 무용 프로그램이다. 우리나라에는 2017년도 전문무용수지원센터와 마크 모리스 댄스 그룹이 협약을 맺으며 들어왔다. 마크 모리스가 댄스 포 피디를 개발할 때 내건 슬로건은 ‘우리는 파킨슨 환자를 환자로 보지 않고 무용수로 본다’였다. 실제 무용수가 연습하듯이 포인, 플렉스, 플리에 등 발레 기본동작부터 시작해서 점진적으로 즉흥적인 표현, 공연까지 한다. 무용수처럼 활동하고, 삶에서 무용을 향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저는 전문무용수센터 댄스 포 피디 강사 양성 2기이고, 현재 5기까지 100명이 넘는 강사가 양성되었다. 현재 댄스 포 피디 수업을 진행하는 곳이 전문무용수센터 외에 한 곳밖에 없다. 100명이 넘는 강사가 모두 활동할 수 있을 정도로 활성화되는 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지 않을까 싶다.

Q.

그럼에도 강사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

A.

2017년에 1기 강사들이 전문무용수센터에서 수업을 열었다. 그때만 해도 환자들이 파킨슨 진단 사실을 가족 외에는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는 문화였다. 치매의 경우, 많이 알려져 있고 이해도도 있는 데 반해 파킨슨은 그렇지 않았다. 게다가 파킨슨은 증상이 신체적으로 드러나다 보니 더 숨기려고 하셨다. 신체적 증상이 안 나타나는 초기라 해도 주변에 병을 알리면 ‘어쩌다 그런 병에 걸렸냐’ ‘건강관리 좀 잘하지’, 또 되게 불쌍하다는 식으로, 삶이 끝난 것처럼, 약자로 보는 시선이 많다. 그런 시선이 싫어서 모임 같은 것도 반으로 줄이고 안 나가게 된다고 하시더라. 저희 프로그램이 파킨슨 환우들에게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코로나 시기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면서 전국 각지에서 참여했다. 하지만 집에서 누군가가 컴퓨터를 켜주지 않으면 수업에 참여 할 수가 없더라. 수업을 더 열어달라고 하는데 그러자면 그만큼의 공간과 참여자가 어느 정도 모여야 한다. 그런데 출석률이 굉장히 들쑥날쑥하다. 월요일에 수업 잘 받고 가셨는데 금요일에 집에서 일어나 물 마시러 가시다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시는 거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수업을 더 열려고해도 쉽지가 않더라. 저희 그룹에서 활동하는 강사들이 돌아가며 수업을 진행한다. 수업이 3개월에 한 번, 길게는 6개월마다 한 번 돌아오는 경우도 있어서 아직은 완전한 직업으로 전환하기에는 힘들다. 저는 N잡 중에 하나로 여기고 하고 있다. ‘댄스 포 디멘시아(Dance for Dementia)’에서 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 수업도 병행하고 있다. 지금은 꾸준히 금천구 치매안심센터에서 어르신들과 수업하고 있다.

Q.

저는 중증 발달장애 성인과 수업을 하고 있다. 만날 때마다 새롭고 가끔 내가 잘하고 있나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한다. 이은형 선생님이 시니어에게 관심을 갖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A.

어렸을 때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셨다. 학교 끝나면 할머니 집으로 가서 부모님이 퇴근해서 오실 때까지 텔레비전도 보고 숙제하면서 할머니랑 놀았다. 할머니가 외출하면 증조할머니랑 만화 보면서 이야기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사실 저희가 노인에 대해서 ‘고집불통이다, 말이 안 통한다’ 이런 고정관념이 많다. 한 번은 어느 분이 수업 중간에 손짓으로 강사진을 부르셨다. 그러면서 물 갖다 달라, 가방 갖다 달라 요구를 하셨다. ‘나는 수업을 진행하러 온 선생님인데 왜 이런 심부름을 시키지? 아 어르신들 대하기 힘들어’ 이렇게 되는 거다. 또 한 번은 수업에서 스카프 같은 것을 사용한 적 있는데 스카프 휘날리면 ‘먼지 난다, 창문 열어라, 이런 거 왜 쓰냐’ 이런 식의 불평이 많다. 즐겁게 하셨으면서 왜 불평하지? 이해가 안 되면서 ‘시니어분들 하드코어다’ 하며 포기하는 선생님도 많다. 저는 그런 것이 늘 익숙했다. 지금도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아버지랑 함께 살고 있다. 전혀 거리낌이 없이 친숙했고, 그래서 도와드리고 싶고 같이 춤추는 기쁨을 나누면 너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어르신들이 더 편한 제가 오히려 좀 특이한 케이스이다.

Q.

어르신들과 관계 맺는 과정에서 생긴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을까?

A.

처음 치매안심센터에 갔을 때 혼난 적이 있다. 2시에 수업을 시작해서 2시 50분에 끝내야 하는 빠듯한 일정이었다. 마음이 급해서 가자마자 간단한 인사 후 바로 수업을 시작했는데, “아무리 선생님이라도 여기 나이 많은 어르신들인데 이름도 얘기하고, 깍듯하게 인사하고 시작해야지.” 이러셔서 너무 당황했다. ‘혼났다’ ‘큰일났다’며 마음에 담아뒀는데, 조금 전에 혼냈던 어르신들이 까먹고 되게 즐겁게 하시는 거다. 또 한 번은 어르신이라고 하지 말고 ‘○○님’이라고 이름을 불러달라고 하신 적도 있었다. 그런 걸 경험하면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어르신들의 관점을 생각하게 됐다. 우리가 볼 때는 별거 아닌데, 어르신들은 그게 아닌 거다. 다름과 차이를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공부하면서 책으로만 봤던 시니어의 특징 같은 것들이 현장에서는 또 달랐다. 치매 환우들은 신나면 수업 중간에 나와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른다. 근데 파킨슨 분들은 그렇지 않다. 표정으로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내가 수업을 잘 하는 건지 이들이 즐거운지가 전혀 가늠이 안 됐다. 그런데 어느 날 보호자 한 분이 지금 굉장히 즐거운 상태이고 굉장히 집중하고 잘 하고 있는 상태라고 얘기하시더라. 파킨슨 특성상 얼굴 근육이 굳어서 표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라고 하셨다. 정말 퀘스트 깨기 하듯이 참여자에 대해 알아 가는 게 재미있다. 내가 몰랐던 사실 또 하나 알았다. 유레카! 또 하나 이해했네! 진짜 즐거워하시네! 지금 뭐가 필요하시구나! 지금 이거 하면 더 좋아하시겠다! 이런 것들이 이제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Q.

인종 차이, 종교 차이보다도 넘기 힘든 게 세대 차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얘기일 텐데 어떻게 해나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A.

먼저 다가갔다. 원래는 소심하고 사람들과 쉽게 친해지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어르신들과 어떻게 친해질까? 도대체 공통분모가 뭘까? 이런 고민을 많이 했다. 처음에는 저도 모르게 쭈뼛쭈뼛 대며 AI처럼 수업만 했다. 그러던 중 치매안심센터에 갔는데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젊으신 선생님이 와서 수업해 줘서 너무 고맙다고 얘기하셨다. 그다음 주에 또 갔는데, 내게 다시 새로운 선생님이 오셨다면서 너무 반갑다고, 우리를 위해 젊고 예쁘신 선생님이 왔다면서 안아주시면서 너무 고맙다고 하시는 거다. 그때 느꼈다. 내가 쭈뼛쭈뼛하면 안 되겠구나. 그 이후에는 먼저 안부를 묻기도 하고 제 얘기를 하기도 한다. 먼저 다가가니까 그분들은 항상 열어주시더라. 웰컴이다. 또 하나 세대 차이를 허물 수 있는 것은 음악이지 않나 싶다. 어르신들이 노래를 흥얼거리셔서 무슨 노래냐고 물어봤더니 <대머리 총각>이었다. 처음 듣는 노래였는데 이 노래를 활용해서 움직임을 해봤다. 그랬더니 노래를 부르시고 갑자기 일어나 나와서 춤을 췄다. 내가 익숙한 음악보다는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트로트나 올드팝도 많이 듣고 움직임을 만들 때도 내 기준으로 만들지 않고 어르신들 입장에서 움직임을 해본다. 이 동작이 되는 게 내 생각, 내 기준이 아니라 어르신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접근하다 보니 세대 차이가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는 것 같다.

  • 〈시니어를 위한 LG아트클래스 무용 프로그램〉 한국메세나협회×LG연암문화재단
Q.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것들을 해본다는 이야기에서 다가감에 대한 깊이와 노력이 느껴진다.

A.

시니어분들과 수업하면서 제가 바뀌게 된 것도 있다. 처음에는 한 동작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설명하고 동작을 했는데 어르신들한테는 설명이 끝나고 음악을 들으면 새로운 상황이 되는 거다. 너무 장황하게 설명하지 않고, 말도 좀 가지치기가 되면서 음악 들으면서 바로 따라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어르신들은 대부분 동작을 틀리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다. 이제는 순서가 중요한 게 아니라 즐겁게 음악을 듣고 내 몸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동기에 의해서 움직이는 게 중요하고 개선해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틀려도 괜찮다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한다.

Q.

무용교육가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무엇인가?

A.

다양한 대상과 교육하기 전까지는 원리 원칙대로 해야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발레 전공자를 교육할 때는 무조건 기본을 다 지키게 한다. 발레에서 그게 중요하니까. 하지만 전공자가 아닌 시니어와 수업을 하는데 이 모든 걸 지키라고 할 수가 없다. 여기서는 시선을 위로 보고, 이 동작에서는 간격 30㎝를 지켜야 하고. 늘 이걸 말할지 말지 머릿속에서 충돌이 일어 났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나오는 모든 동작이 춤인데 그걸 꼭 지켜야 하나 싶더라. 즐기면 뭐든지 다 가능하다. 어르신들은 어르신대로 나는 나대로 신나게 몸에서 나오는 움직임으로 소통하고 춤추면 그게 즐거운 무용교육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이제는 좀 내려놨다. 함께 즐겁게 춤을 추고 싶고 몸을 움직이고 춤추는 것에 대한 즐거움을 느꼈으면 좋겠다.

Q.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생각하는 예술은 무엇인가?

A.

예술은 핸드폰처럼 내 옆에 가까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사람이 미술관에 가고 싶으면 가고 무용을 보고 싶으면 무용을 보고, 내가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보고 느끼고, 또 그것이 내 안에서 어떤 감정으로 휘몰아치게 하고. 그런 모든 과정이 예술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을 굳이 표현하지 않더라도 느끼는 것만으로도. 금천구 치매안심센터 반장님이 “주말에 안양천을 갔다가 나뭇잎이 흔들리는 걸 봤는데 선생님과 했던 활동이 생각났어요”라고 하시는 거다. 나와 춤을 추면서 일상 속에서 이런 예술을 느낀다는 게 너무 감사했다. 예술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우리 삶 가까이에 있는 모든 것이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예술교육도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었으면 좋겠다.

이은형

이은형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무용교육을 하고 있다. 발레를 전공하고 시니어를 위한 무용 수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Dance for PD(파킨슨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과 Dance for Dementia(치매 환자를 위한 무용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며 무용이 고령자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현재는 전문무용수지원센터의 Dance for PD 강사, 금천구·도봉구 치매안심센터, 한국메세나협회 ‘시니어를 위한 LG아트클래스 무용프로그램’, 서울시립미술관 접근성 향상 프로그램 등에서 무용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임금님
임금님
생태움직임연구소소행성 대표. 대표작으로 <수치심 감옥> <상실공간> <트랜스 몸 숲> <이몸저방구석> 등이 있다. 수치심, 몸 키워드로 예술작업을 하고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의 사연 듣는 일을 한다.
king0922@hanmail.net
인스타그램 @so.haengseong
페이스북 @so.haengseong
인터뷰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3 Comments
  • author avatar
    김양남r 2024년 07월 28일 at 1:19 PM

    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
    이은형 무용교육가
    잘보고 갑니다

  • author avatar
    안기현 2024년 07월 28일 at 2:09 PM

    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
    이은형 무용교육가
    기대만점입니다

  • author avatar
    이지영 2024년 08월 02일 at 4:26 AM

    통합음악치료를 하고 있어요.무용은 직접적으로 나의 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생각 위주의 활동보다 더 직접적인 느낌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효과가 강력하고 아주 매력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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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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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양남r 2024년 07월 28일 at 1:19 PM

    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
    이은형 무용교육가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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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기현 2024년 07월 28일 at 2:09 PM

    차이를 가진 몸으로부터 배우는 즐거움
    이은형 무용교육가
    기대만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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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영 2024년 08월 02일 at 4:26 AM

    통합음악치료를 하고 있어요.무용은 직접적으로 나의 몸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생각 위주의 활동보다 더 직접적인 느낌을 끌어낸다는 점에서 효과가 강력하고 아주 매력있다고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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