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과 관련된 소비는 경험재의 성격을 가진다. 즉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을 하기 전까지 그 가치를 평가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그렇게 일컫는다. 다른 의미로 보면 문화예술 활동은 경험과 참여가 중요하며 그로 인해 그 가치를 알게 되고 만족스러움을 느끼게 되면서 계속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첫 경험이다. 그런데 현재 중고령층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첫 경험이 없었거나, 아니면 지속하지 못한 경우가 태반이다. 1950년 전쟁과 함께 태어난 세대들은 1970년대 20대를 보내면서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주역으로 등장하였으며, 이들이 현재에는 75세 이상의 고령층이 되어있다. 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경험한 문화생활은 TV가 보급되면서 대중음악의 전파와 통기타로 전해지는 카페문화, 그리고 영화관람 정도이다. 그러다 1980년 자유롭게 해외여행이 허용되고 1981년 한국프로야구가 창단되었지만, 이때 이들은 30대 연령대로 한창 경제활동이나 자녀 양육으로 해외여행은 엄두도 못 내고 TV로 중계되는 프로야구 중계를 보는 정도에서 문화생활을 경험하게 되었다. 이렇게 일평생을 보내던 분들이 은퇴 후나 자녀가 독립하고 나서 새로운 취미생활이나 문화생활을 즐기려고 해도 신체적으로 움직이는 게 어렵다거나 경제적으로 부담을 느끼거나, 또는 새로운 것을 새로이 접하는 것이 두려워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2022 문화예술활동조사」나 「고령화연구패널조사(2008~2020)」에서 90% 이상의 고령자들이 문화활동을 1년 동안 단 한 번도 경험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고, 대부분 고령자가 현재 지속해서 참여하는 여가 활동이나 문화 활동은 거의 없으며, 어쩌다 한 번씩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거나 TV를 시청하는 수준이다.
중·고령층에게 문화예술의 첫 경험을 위해,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지속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들이 강구되어 왔다. 그중 하나가 문화예술의 교육이다. 실제 중·고령층들이 문화예술의 경험을 하기 위해 다양한 교육 현장을 찾고 강좌를 들으면서 시작한다. 그런데 이러한 시작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 하나의 강좌가 끝나면 다른 강좌를 찾아 떠나는 강좌 사냥꾼이 있는가 하면, 한 가지를 배우다가 싫증을 내어서 그만두기를 반복하는 중도포기자들도 많다. 문화예술의 첫 경험을 위해 시작한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수단이다. 예를 들어 같이 참여하는 사람이 있거나, 그 활동 자체가 재미있거나, 새로운 가치를 부여하거나, 그 활동을 하면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면서 지속하는 경우 등이다. 특히 고령자들의 문화예술 활동에서 중요한 것은 그 활동이 주는 활력이나 건강함도 중요하지만, 그 활동에 참여하면서 외롭고 소외된 마음을 치유하고 서로 교류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그래서 대부분 오랫동안 문화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거나 새로운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실제 고령층이 문화예술 활동을 포함한 여가생활을 어떻게 참여하고 있는지 분석해 보면, 다른 활동 참여율은 낮고 휴식 활동을 주로 하는 휴식 집중형, 취미 오락 활동과 사회적 관계 활동 참여가 높게 나타나는 취미 부자형, 문화예술 활동과 스포츠 활동 참여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빈도를 나타내는 문화체육 활동형, 문화예술 활동을 포함하여 스포츠 활동․관광 활동․취미 오락 활동․사회적 관계 활동 등의 참여율이 높은 다양한 참여 활동가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이때 이러한 활동 참여 유형에 따라 삶의 행복 수준도 차이가 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다양한 참여 활동가와 문화체육 활동형 집단에 속한 고령층이 휴식 집중형이나 취미 부자형 집단보다 행복 수준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즉 활기차고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며, 특히 스포츠 활동과 문화예술 활동에 많이 참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파악하였다. 다시 강조해서 말하면 고령층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문화예술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근거해 볼 때 고령자들의 문화예술 활동을 증진하고 교육활동에 참여하게 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휴식 집중형이나 취미 부자형의 집단을 다양한 참여 활동과 문화체육 활동형으로 전환하고, 어떠한 활동이라도 지속해서 유지하게 하는 것이며, 연령이 높고 건강이 나빠져도 문화예술의 경험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표에 근거해 볼 때 문화정책의 표적 집단은 (1)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 있고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이 낮으며 휴식 집중형의 활동만 참여하는 집단, (2) 문화예술에 대한 경험이 있고 건강한 상태로 그 활동을 지속해 오고자 하는 취미 부자형 집단, (3)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렵지만 문화예술 활동 참여를 통해 치료나 사회적 관계가 확대될 수 있는 집단 등으로 제안된다. 각각의 집단을 세분화하여 고령자들의 문화예술 정책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이 4가지 방안이 제시될 수 있다.
첫째, 여가 경력이 부족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지 못한 고령층을 위한 교육이나 노인 일자리 제공을 통한 경제적 지원 방법이 그것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고령층의 경우 문화예술을 통한 삶의 질과 행복을 지원할 방법으로 교육을 통해 문화예술 활동에 새로이 진입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 필요하다. 이러한 교육 지원의 방법은 바우처 등을 활용한 경제적 지원 방식이 제안되며, 노노케어(老老care, 노인이 노인을 돌보는 서비스)에 해당하는 노인 일자리 형태로 사회 서비스형 문화 일자리를 만드는 방법도 제안된다.
둘째, 문화예술에 대한 교육을 받았고 문화누림 활동을 지속하는 고령자들을 위해 그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인프라를 지원하는 방법이 있다. 고령층의 문화예술 활동을 지속하고 확대하기 위해 동호회 활동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 구체적으로는 연습실 비용을 지원하고 지역사회의 비어 있는 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지원하는 방식이 제안된다.
셋째, 고령이나 노인성 질병 등으로 일상생활을 혼자 수행하기 어렵지만 문화예술 활동을 통해 치료나 사회적 관계가 확대될 수 있는 집단을 지원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고령층이 이용하는 사회서비스 제도 중 하나인 요양보호사 이용제도를 활용하여, 특화 서비스로 미술치료나 예술치료를 제공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이를 위해 요양보호사 교육과정(6주 교육, 1회 시험, 실습 시간 포함 3개월 과정 진행)에 문화예술 관련 전공자나 미술치료 및 음악치료 관련 전공자들의 기초교육 시간을 줄여 주는 방법이나 특화 서비스 제공 전문가 양성 과정 등을 운영하는 방안이 제안된다.
넷째, 가장 공통으로 요구되는 지원 방법이 문화 예술 활동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용이하게 얻게 하는 방법이다. 고령자들이 생활권에서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나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방법이 제안된다. 예를 들어 서울시가 65세 연령이 되면 ‘경로 무임승차 제도’의 대상자임을 알려 주는 알람 서비스를 핸드폰으로 제공하는 것과 같이, 고령자 문화예술 정책 대상자인 고령자들에게 문화예술 활동과 관련된 공공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플랫폼이나 사이트를 알려 주는 알람 서비스 방식이 제안된다.
현재 고령친화산업 영역에서 중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문화예술교육이나 체험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장이 형성되고 있다. 예를 들어 ㈜로쉬코리아는 종로 삼청동의 오프라인 복합문화공간 ‘오뉴하우스’와 온라인 큐레이션 서비스 애플리케이션 ‘오뉴 App’을 통해 기존의 문화센터, 복지관에서 경험할 수 없었던 차별화된 문화예술 콘텐츠와 커뮤니티를 제공하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 형태의 강좌 프로그램이나 다양한 문화예술 체험 커뮤니티를 통한 콘텐츠 제공 등을 유료로 제공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마련되고 있다. 액티브 시니어들이 자신에게 적합한 특화 서비스를 경험하고, 이를 발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교류하고 성장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마련되고 있다.
2023년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으로 ‘초기노년 세대 특화 연극 프로그램’ 운영 사업이 진행된 것은 매우 의미 있다. 중·고령층의 요구가 세분되고 특성이 다양하다는 점을 반영한 신규 문화예술교육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러한 특화 교육 프로그램이 확대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대로 이미 민간 시장에서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이 운영 중이고, 이것이 교육과 체험 위주라고 한다면 공공 서비스와 정책 내용은 그 대상을 특화하던, 내용적 차별성을 가지던, 아니면 고령자들의 문화예술 첫 경험에 집중하던, 더욱 구체적인 정책목표가 필요하다. 오히려 민간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연계할 방안 모색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윤소영
윤소영
50세가 넘는 시점부터 ‘어떻게 늙어 갈 것인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이를 정책 연구로 담아내고 있다. ‘고령화 시대 문화의 역할과 과제: 고령자를 중심으로’(2016), ‘인구구조 변화에 따른 문화적 영향분석 및 정책방향’(2021), ‘고령층 문화누림 분석 및 정책방안 연구’(2023) 등의 연구가 그것이다. 이러한 연구에서 연구자는 고령 친화적인 문화 환경을 만들기 위해 공공과 민간이 협력하는 모델이 반드시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soyoung@kcti.re.kr
썸네일 출처: 2024 생애주기별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초기노년(욜드)세대 특화 연극 프로그램 운영모델 개발」 프로그램 참여자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