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국적도 문화도 공기처럼 감싸는 예술의 기운

2024 국제 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아트모스피어〉

지난 11월 10일부터 4일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최하는 국제 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아트모스피어(Artmosphere)>가 열렸다. 세계 각국 청소년이 한국의 문화예술교육과 함께 새로운 환경에서 창의적인 예술 교류를 경험하도록 기획된 행사였다. 몽골, 싱가포르, 필리핀, 한국의 청소년 40명이 그 주인공이었고, 각 나라의 예술교육가(예술가)와 문화예술교육 행정가, 통역, 기록, 안전 등 진행 스태프가 행사를 위해 모였다. 필자는 무용 분야 예술교육가로 이 특별한 만남에 함께 했다. 4개국 청소년이 만나 함께 하는 무용 예술교육 프로그램과 결과발표 공연을 준비하며, 예술교육 현장에서 보고 느낀, 짧지만 강렬했던 <아트모스피어>의 잔상을 나누고자 한다.
하나로 연결되는 특별한 경험
청소년기, 사춘기라는 시기는 유아기에 충분한 발달과 긍정적인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들이 그 시기의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성장기의 마지노선으로 알려져 있다. 뇌과학자들은 고등학교 2학년 나이가 되기 전까지 쏟아질 것 같은 별이 가득한 밤하늘과 푸른 바다와 수평선을 이들에게 꼭 보여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또 한 다양한 분야를 깊이 있게 독서 할 것을 권장하고 악기를 다루거나 음악을 즐기며 활발한 신체 움직임 활동을 매우 강조한다. 사회성이 부족한 아이들은 사회성을 되살릴 성장의 기회를 찾아 사회와 타인과의 긍정적 관계 경험을 맛보아야 하고, 관심받지 못했던 아이들은 사회와 타인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자신을 존중하는 마음을 채울 신체적, 정서적 발달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한다.
충분히 공감하지만 현실적으로 도시에 사는 청소년에게 쏟아질 것 같은 밤하늘을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고 바다가 없는 나라의 청소년에게 바다를 보여주는 것 또한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어른이 되기 전 온몸으로 자연을 느끼고 그림을 그리고 춤을 추고 음악을 즐기라고 한다. 청소년기의 좋은 기억과 경험이 많을수록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미래의 선택은 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이 시대에 필요한 좋은 경험을 한 청소년은 글로벌한 세계관과 다양함을 포용하는 성인으로 자랄 가능성이 커진다.
<아트모스피어> 워크숍 첫째 날은 입단행사와 오리엔테이션으로 환영 인사를 나누고 나라별, 단체별로 옹기종기 모여 앉아 ‘글로벌 친구 만들기’라는 활동을 했다. 마니또 같은 비밀친구가 적혀있는 각자의 패널 조각에 그림을 그리고 40명 청소년 참가자의 그림 조각들을 모아 <아트모스피어> 문구를 완성했다. 각자의 모국어로 인사말을 나누고 우리가 하나로 연결되어있음을 느껴보는 예술교육 움직임 활동이 이어졌다. 오후에는 경복궁, 하이커 그라운드 등 우리의 전통과 대중문화를 체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움직임 활동
꿈꾸는 별들의 공연과 전시
둘째 날, 4개국의 청소년들은 국립극장을 방문하여 국립창극단의 판소리와 연극놀이 활동을, 오후에는 서울 숲을 방문하여 한국의 가을 정취를 느끼며 시각예술 활동 ‘울긋불긋’을 진행했다. 청소년들은 낙엽을 줍고 자연을 스케치하고 놀이터에 들러 미끄럼틀과 뺑뺑이를 타면서 역동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웃음꽃을 터뜨렸다. 성수동의 공간으로 이동하여 숲에서 주운 자연물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만드는 활동이 이어졌다. 가을이 없는 나라에서 온 청소년들은 떨어지는 낙엽과 울긋불긋 물들어있는 가을의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아마도 한국의 가을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이렇게 가을의 숲과 함께한 둘째 날이 저물고 셋째 날은 하루 동안 이루어지는 집중형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으로 무용과 시각예술 두 장르로 나뉘어 20명씩 분반 수업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무용과 시각 예술교육가들이 기다리고 기다리던 청소년들을 만났다. 무용 프로그램은 ‘우정 나누기’를 주제로 숙소인 유스호스텔 내의 ‘힐링 80’에서, 시각예술 프로그램은 인사동 ‘코트’에서 ‘창문을 열면’이라는 주제로 각각 진행되었다.
‘집중형’이라는 이름처럼 하루 동안 이루어진 워크숍으로 다음날 결과발표 전시(시각)와 공연(무용)을 올려야 했기에 가을 숲의 여유와는 다른 분주한 리듬으로 시간을 보냈다. 무용 프로그램에는 예술교육의 맥락에서 무용을 경험한 청소년들이 대다수였고, 케이팝 댄스, 스포츠댄스, 발레를 배우는 이들도 있었다. 청소년들은 언어와 개성이 달라도 이틀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서로에게 친근해진 느낌이었다. 본격적으로 함께 무용 놀이를 통해 주제를 탐색하고 리서치하며 공연의 흐름과 구조를 만들었다.
무용이라는 예술의 특성상 과정과 결과를 동시에 경험하는 일은 즐거우면서도 어렵고 인내하는 것이기에 열린 태도와 스스로에 대한 용기, 팀으로서 협동이 필요하다. 청소년들은 오전과 오후 내내 다양한 방식의 움직임을 시도하고 배우고 나누고 연습하며 구슬땀을 흘렸다. 저녁 시간이 가까이 오자 하얗게 불태운 예술교육가와 청소년들의 체력은 바닥이 났다. 저녁 식사와 휴식을 가진 후 충전된 컨디션으로 다시 연습에 돌입해 내일의 무대를 상상하며 세 번의 예행연습(run-through)을 하며 모두가 최선을 다했다.
시각예술활동 ‘울긋불긋’
예행연습
넷째 날, 2024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 기념행사와 연계하여 <아트모스피어>에 참여한 예술교육 관계자들의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이번 워크숍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회와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청소년과 예술교육을 향한 열정과 솔직함,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각 무대에서는 무용팀 청소년들이 리허설을 하고 있었다. 공연한다는 것은 자신을 온전하게 드러내는 것이기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특히 타인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고 때론 타인의 시선 자체가 매우 불편할 수도 있는 시기인 청소년들에게 공연은 인생에서의 큰 도전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공연을 준비하며 청소년들은 자신의 한계에 도전했고 용기와 인내를 배우는 시간을 견뎌냈기에 공연에서는 잘 보이지 않을 그들의 노력에 많은 박수와 격려를 해주길 바랐다.
오후가 되어 2024 대한민국 문화예술교육 축제 기념행사가 열린 코엑스 오디토리움에서 <꿈꾸는 별들의 춤>이라는 제목으로 몽골, 싱가포르, 필리핀, 한국의 청소년 20명이 결과발표 공연 무대에 올랐다. 제목은 미래에 만나게 될 청소년들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었다. 우리는 별에서 왔고 별들의 자식이라고 말해준 과학자의 말이 영감이 되었다. 우주의 먼지였던 우리는 오늘 함께 춤을 추었다. 전시 <창문을 열면>을 선보인 시각예술팀도 객석에서 친구들의 춤에 뜨거운 박수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공연을 마친 청소년들이 성취감과 공동체 의식이란 글자가 아닌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얻은 자신만의 인적자산이 되었길 바란다.
  • 전시 <창문을 열면>
  • 공연 <꿈꾸는 별들의 춤>
만나야 했던 이유
결과발표를 마친 청소년들은 해단식에 참여하였고 그렇게 <아트모스피어>의 막이 내렸다. 해단식에서 사진 찍는 포즈를 하는 아이들은 다른 나라 친구들의 어깨에 손을 올려보고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결국 청소년들이 만나야 했던 이유는 바로 이것이구나, 깨닫는 순간이었다. 청소년들은 문화예술교육의 경험을 통해 글로벌한 감각과 다양함의 포용을 배웠다.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기에 미래를 선택하는 폭도 넓어질 것이다. 청소년 모두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친구가 된 것은 아닐 테지만 청소년의 교류는 어른의 교류보다 훨씬 유연하고 열려있는 듯 보였다. 창문 너머로 해단식의 아이들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는 한 분이 있었다. 바로 구급대원 선생님이었다. 40명 청소년들의 모든 일정에 늘 함께 했으나 잘 보이지 않았던 고마운 존재가 그제야 보이는 순간이었다.
2024년 울긋불긋했던 가을. 몽골, 싱가포르, 필리핀, 한국의 청소년들은 각기 다른 국적과 문화를 넘어 국제청소년 문화예술교육 워크숍 <아트모스피어>라는 이름으로 함께 연대하였다. 그곳에는 반짝이는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과 진심으로 다정하고 용감한 오늘의 어른들이 있었다.
[참여자 후기]
잊지 못할 아트모스피어에서의 경험
조아나 마리엘 T. 바루엘라_필리핀 라자솔리만 과학기술고등학교 1학년
처음 우리 학교가 국제 청소년 예술교육 워크숍 <아트모스피어>에 초대되어 내가 참가자로 뽑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정말 신났어요. 하지만 저는 한 번도 해외에서 가족과 멀리 떨어진 채로 하루 이상 지내본 적이 없어서 조금 겁도 나고 걱정됐어요. 시간이 짧아서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는 데 약간의 어려움도 있었지만, 다행히 시간에 맞춰 준비를 끝내고 한국이라는 아름다운 나라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워크숍을 기획해 주신 분들과 다른 나라 참가자들로부터 받은 따뜻한 환영, 그리고 자켓, 신발 같은 특별한 기념품을 잔뜩 받아 정말 감동이었어요. 한국에 오기 전 느꼈던 걱정과 두려움은 모두 사라졌고, 마치 이곳이 제2의 고향처럼 느껴졌어요. 함께 시간을 보낸 참가자들은 친구보다 더 가까운 언니, 오빠, 동생이 되었고, 우린 모두 가족이었어요.
저는 워크숍에서 우리의 생각, 감정, 재능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고, 인종과 언어, 문화는 하나도 방해되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어요. 이곳에서의 즐거웠던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나 자신과 나의 능력에 대한 자신감을 더 가지려고 해요. 누구나 음악, 미술, 춤과 같은 활동으로 어려움 없이 자기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과 나눌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이곳에서의 색다른 경험 덕분에 다른 나라 사람들의 문화와 생활 방식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워크숍을 열어주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필리필문화전당(Cultural Center of the Philippines)에 진심으로 감사드려요. 이번 여정 동안 적극적으로 지원해 주셔서 크게 감동했어요. 앞으로도 다른 청소년들에게 이런 기회를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경험은 제 인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으로 평생 남을 거예요. 다시 한번, 이런 경험을 만들어 주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
인정주
인정주
현대무용, 무용교육을 전공하고 안무와 예술교육 활동을 해오고 있다. 2006년 오!마이라이프 무브먼트 씨어터를 공동 설립하여 ‘춤의 가능성’이란 화두로 삶과 예술을 연결하는 예술작업을 해왔다. 2010년대에 들어서며 예술교육가로 입문하여 영유아, 어린이, 청소년의 예술세계를 탐험하고 있다. 국립현대무용단 어린이무용 <얍! 얍! 얍!> <우주·아이·삶·춤> <돼지춤> <동물극장춤> <과일·악기·그림책> 등을 안무했다.
injungju@gmail.com
(프로필 사진 ⓒ최용석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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