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 제정 20주년을 앞두고 있다. 이제 청년이 된 문화예술교육의 성장 과정을 되돌아보고 지금, 여기(here and now)에서 미래를 향한 질문을 던져야 할 시점이다.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성찰적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음은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공론화 이슈」(주1)를 통해 알 수 있다. 이 보고서에서는 사회, 학교, 정책 환경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대응 방안을 제시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다각화’라는 단어가 종종 등장한다. 그간 이루어 온 양적 성장과 비교할 때 문화예술교육의 정책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에 대한 대안으로 다각화가 논의되고 있다는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이 보고서에서는 지난 15년 문화예술교육 정책의 한계를 분절성, 단편성, 경직성, 제한성으로 진단하면서, 지역 특성과 현장 수요를 반영한 문화예술교육으로의 ‘전환’을 위해 다각화를 주장하고 있다. 즉 현장과 맞닿아 있는 문화예술교육 지원 체계 자체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다각화는 20여 년의 시간 속에서 서서히 형성된 문화예술교육의 포맷(format, 정형)에 균열을 만드는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의 정책 변화와 관련하여, 이를 교육 대상과 실행 주체의 2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2023년 시범사업으로 출발한 ‘늘봄학교’ 사례는 교육 대상에 따른 문화예술교육 다각화의 일면을 보여준다. 교육 대상 자체의 변화이기보다는 교육 대상에 대한 유연한 정의가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대상으로서 학생이라는 점은 달라진 바 없지만, 교실 안의 학습자가 아닌 돌봄이 필요한 아동·청소년으로 만나게 되기 때문이다. 2023년 발표된 보도자료(주2)에 따르면, 늘봄학교는 ‘가정·학교·지역사회 협력으로 교육·돌봄의 국가책임 강화’를 비전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아이’들이 원하는 맞춤형 프로그램과 ‘학부모’ 부담 경감을 위한 탄력적 돌봄을 주요 방향으로 제시하고 있다. 동일한 학교 공간이라도 학생, 교사와의 상호작용을 전제로 했던 학교 문화예술교육과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이 서로 다른 맥락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늘봄학교라는 새로운 상황 속에서 교육 대상의 변화는 문화예술교육이 지향하는 교육 목표에서부터 수업 운영, 관리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도전 과제를 제시한다. 무엇보다 신중하게 논의되어야 할 것은 ‘돌봄’과 ‘교육’의 경계에서 예술의 역할을 명료화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비판교육학의 토대를 제공한 프레이리(Freire)는 교육이 방임과 길들임의 온정주의적 양육으로 격하되는 것을 강하게 경계하면서, ‘지적 엄격성, 인식론적 호기심, 사랑할 수 있는 능력, 창의성, 과학적 능력’ 등을 자극하는 교사의 전문적 책무를 역설한 바 있다.(주3)
같은 맥락에서 놀이와 유희는 즉흥성과 상상력을 자극하는 예술의 중요한 속성이지만, 단순히 보살핌의 시간을 채우는 활동에 그친다면 예술 교육적 의미를 상실하기 쉽다. 수업의 운영 측면에서도 정해진 시간에 동일한 나이의 학생들이 모여 있는 한 학급에서 이루어지는 기존의 학교 문화예술교육과는 달리 학생들의 출석이나 참여도가 계속해서 변화하는 등 느슨한 틀 안에서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러한 점에서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은 학교 문화예술교육과 사회 문화예술교육의 경계에 놓여 있다.
둘째, 문화예술교육의 다각화는 실행 주체의 변화를 포함한다. ‘예술가가 우리 학교에 찾아옵니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성장해 온 학교 문화예술교육은 예술강사 지원사업을 통해 오랜 기간 전문 예술가 1인이 만들어가는 교육으로 그려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협력수업이 강조되면서 예술강사와 교사 간의 상호 관계와 교사의 역할이 강조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문화예술교육을 기획‧운영하는 주체가 지자체의 문화재단과 문화기관, 예술단체, 민간 예술교육 단체, 문화예술교육사 개인 등으로 다변화되면서 문화예술교육의 지형이 조금씩 변화되고 있다. 더 나아가 예술교육에의 융복합적 접근과 기술 기반의 디지털 문화예술교육 실험이 확산하면서, 콘텐츠 개발 및 현장 적용에 있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함께 활동하는 팀 작업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매개자’는 이러한 문화예술교육 실행 주체의 다각화를 구현하는 또 하나의 실제적 개념이다. 매개자는 학교와 학생의 요구를 반영한 학교 문화예술을 기획, 운영, 지원하는 예술교육자 혹은 문화예술 기관을 지칭한다. 이를 위해 매개자는 학교-지역사회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교사-예술가와 소통하면서. 다양한 지역 구성원이 참여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환경을 조성하고, 중재하며, 모니터링한다. 이때 학교 안과 밖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다양한 차원에서 의미 생성을 위한 통로로서 기능하게 된다. 매개자는 예술가-교사 간의 만남이 새로운 예술교육적 방법론이 생성되는 순간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소통의 공간을 창출한다. 더 나아가 지역 문화자원이 학교와 맞닿으면서, 우리 마을이 학생들의 삶 속에 살아 있는 예술 환경으로 발견되는 경험을 만들어간다.
2023년 운영되었던 전남문화재단의 「예술로 링크(Link)」는 위에서 논의한 변화된 사회적 요구에 대응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이다. 저출산, 인구 소멸, 고령화, 교육 격차와 같은 지속가능성의 이슈가 비단 전남 지역에 국한된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역 구성원이 피부로 느끼는 가운데, 인구 변화에 따른 교육의 문제를 극복하고 특성화된 예술교육을 중심으로 학교 운영체제를 전환하려는 지역 교육청의 노력에 문화예술교육이 호응하였다는 점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섬 지역 부모의 직업이 대부분 어업임을 고려하여 해양의 생태환경을 주제로 진행된 ‘소안도 지킴이 프로젝트’나 ‘우리 마을 링크이음 언니·형 멘토단’ 등은 가정, 지역, 학교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안에서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남문화재단의 「예술로 링크(Link)」 수행 과정에서는 늘봄학교의 특성과 수요를 이해하고 연구하기 위한 설계 단계에 큰 노력과 시간이 투자되었다. 교육청, 학교, 실행기관 모두에게 주어진 ‘돌봄’이라는 키워드를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안에 담아내기 위한 협의와 소통, 그리고 매개자의 수업 연구가 실행 전반을 이끌어가는 기반이 된 것이다. 이는 교육청-학교-매개 기관 간의 소통 채널을 만드는 것, 협력 방식을 찾아가는 것, 프로그램 실행에 있어 각각의 역할을 규정하는 것 등 늘봄학교를 위한 학교 문화예술교육 네트워크의 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성과 맵핑(주4)을 통해 살펴본 매개자 활동 분석에서는 학교 요구 조사, 프로그램 개발, 운영 지원, 모니터링, 아카이빙이 고르게 높은 활동 빈도를 나타내었다. ‘늘봄학교’라는 새로운 조건 안에서 프로그램의 기획과 운영 관리를 위한 관심과 노력이 성과 관리 영역 전반에 기울여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예술교육 인력의 전문성 개발 성과도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 4차 산업혁명, ESG 기업 환경 등 시대적 변화에 따른 문화예술교육의 방향을 모색하는 매개자의 연구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는데, 이를 통해 프로그램 개발뿐만 아니라 예술교육 인력의 연구 및 기획 역량이 향상되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AI 기술과 같이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는 속도로 진화를 거듭하는 시대 속에 놓여 있지만, 20여 년 동안 겹겹이 쌓인 문화예술교육의 지형은 견고하기만 하다. 하지만 복합성, 유연성, 연결성, 다양성을 향해가는 사회적 변화에 대응하는 문화예술교육의 실험은 미룰 수 없는 과제일 것이다. 이는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쫓아가는 몸부림이기보다는, 사회가 당면한 시대적 전환에 대한 답을 문화예술교육이 앞서 제시하는 도전이 될 것이다. 모험적인 학교를 이야기하였던 프레이리는 교육이 사회변혁을 위한 궁극적인 수단은 아니지만, 교육이 없으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마찬가지로 예술이 궁극적으로 사회와 학교의 개혁을 위해 존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근대의 틀을 깨고 미래 사회로 진입하는 현시점에 예술이 없으면 근본적인 변혁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익숙한 방식에 파열음을 내고 학교/사회, 예술/교육, 예술강사/교사의 이분법적 공식에서 벗어나는 문화예술교육의 상상력과 새로운 담론이 시작되고 있다.
(주1) 문화예술교육 공론화 추진단(2020). 「문화예술교육 공론화 추진단 결과보고서 – 문화예술교육 전환을 위한 공론화 이슈」 서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주2) 교육부 공식블로그 2023. 1. 9 보도자료 「2025년부터 전국에서 ‘늘봄학교’ 운영-교육돌봄 국가책임 강화」 (2024. 1. 31 접속)
(주3) Freire, P. (2003). 『프레이리의 교사론: 기꺼이 가르치려는 이들에게 보내는 편지』. 서울: 아침이슬(10쇄). p. 42.
(주4) 투입(input)에 따른 산출(output) 및 파급효과(impact)의 관계 속에서 성과를 분석하는 성과 맵핑(outcome mapping)은 다양한 실행 요인들 간의 논리적인 연결을 통해 현장의 실제적인 변화를 구조화하여 시각화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참여 주체의 활동, 매개 기관의 역할, 프로그램의 특성 등 다양한 변인 간의 연관성을 분석하고 해석하여 의미 있는 변화를 발견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2022 예술로 링크(Link)를 위한 성과 맵핑 101 가이드북」 참조.
- 김선아
- 미술교육, 문화예술교육, 다문화 교육, 예술치료, 미술관 교육, 디지털 미술교육 등 페다고지의 관점에서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저소득층, 장애청소년, 미술영재 등 문화 다양성을 위한 사회소외 계층 대상 미술교육 프로그램을 개발, 운영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응용미술교육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한양대학교 미술영재교육원 원장, HEAD Lab 센터장, i보다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sakim22@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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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교육 다각화: 생성과 변혁을 위한 균열 만들기
전환의 시대 예술교육가의 역할
공감이 가네요
문화예술교육 다각화: 생성과 변혁을 위한 균열 만들기
전환의 시대 예술교육가의 역할
기대만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