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비가 오락가락 내리던 3월 25일, 부산 명동초등학교를 찾았다. 학교 앞에 있는 아파트 단지는 가로수 크기로 보아 조성한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했다. 학교 운동장은 1시에 끝나는 정규수업을 마치고 하교하거나 정글짐으로 직행하는 저학년 학생들로 약간 붐볐다. 왁자지껄한 하굣길 풍경을 뒤로하고 찾은 곳은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명동초등학교 도서관이다. 늘봄학교는 올해 3월부터 초등학교 1학년 대상 시범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부산은 모든 초등학교가 늘봄학교에 참여하고 있으며, 명동초등학교는 학습형 프로그램과 함께 매주 월요일, 금요일 각 2교시의 예술 수업을 진행한다.
따뜻한 격려와 지지가 있는 안전한 공간
2층 도서관 복도에 들어서자 하굣길에 오른 학생들과 다르지 않은 왁자지껄한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아직 시작 전인가보다 했던 생각과 달리 문을 열고 들어선 도서관 안쪽에는 17명의 1학년 학생이 미술 활동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사이를 이순옥·김미정 예술강사와 늘봄학교 전담 교사가 오가며 듣고, 묻고, 보아주며 한명 한명과 눈을 맞추고 있었다.
늘봄학교 예술 수업은 두 명의 주강사가 함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명동초등학교 늘봄학교 예술 수업을 진행하는 이순옥·김미정 강사는 함께 만든 다섯 가지 활동을 주제별로 역할을 나누어 진행하고 있다. 1학기 예술 수업의 첫 번째 주제는 이순옥 강사의 ‘봄의 색깔 탐험’으로 이날은 나비 탄생 동화를 읽고 나비 책을 만드는 시간이었다. 색색의 종이에 나비를 그려 오리고 여러 장을 겹쳐 붙여 펼치니 나비가 날갯짓하는 팝업북이 완성되었다. 애벌레가 여러 음식을 먹고 나비가 된 것처럼 언니, 형, 어른이 되기 위해 먹고 싶은 음식을 나비 책에 그린다. 아이들의 손과 눈은 작업에 집중하면서도 수업 시간과는 다르게 삼삼오오 이야기꽃을 활짝 피웠다.
수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봄의 색깔을 탐색한다며 ‘봄은 어떤 색인가요?’라든가, ‘봄 하면 어떤 색이 떠오르나요?’ 같은 질문과 답으로 어린 학생들이 분홍, 연두, 노랑 등으로 봄의 색깔을 규정지어 버리게 될까 봐 고민했어요. 교육적으로는 봄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도 있어야 하지만 봄에 관한 동화책을 읽거나, 나비 책을 직접 만들어보는 활동 과정에서 봄의 색깔에 대한 느낌을 감각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어요. – 이순옥 예술강사
나비 책이 완성되고 이제는 나비가 날아오를 시간. 한 학생이 나비 책을 들고 이순옥 강사 앞으로 가 팔을 위아래로 저으며 나비의 날개를 움직여 보였다. 팔을 움직이는 동작에서 무언가 생각난 걸까? 팔동작이 연결되더니 노래가 곁들여지고, 제법 익숙한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아마도 유행하는 아이돌 노래와 춤인 듯했고, 몇몇이 바로 합류! 한 손에 든 나비는 이전보다 더 자유롭게 펄럭이며 날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무대가 정리되자 한 사람씩 앞으로 나와 각자의 나비 책을 소개했다. 수줍음에 고개를 숙이기도, 작은 목소리도 있었지만 발표가 끝날 때마다 박수가 이어졌다.
늘봄학교는 학교 안에서 이루어지지만, 꼭 교과과정으로 연계되거나 하지 않는, 어찌 보면 제삼지대의 수업이기도 하죠. 그런데 ‘예술’이라는 이름이 붙다 보니 좀 무게가 실릴 수 있는데, 초등학교 1학년 수업인 만큼 안전한 공간에서 편안한 상태로 두 시간이 싫지 않고, 재밌는 과정으로 이끌어가는 게 가장 큰 목표예요. 실력을 쌓거나 자극을 주는 게 아닌 좋은 경험의 과정이었으면 하는 생각이에요. 무조건적인 칭찬보다 격려와 지지를 충분히 받아서 성취의 경험을 가지게 되고 그 경험이 힘이 되어 자신을 나답게 표현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에요. – 이순옥 예술강사
이순옥 강사가 수업을 끌어가는 동안 김미정 강사는 세세하게 학생 한 명 한 명을 살펴주었다. 오늘로 세 번째 만남이지만 선생님이 도와주기를 원하는지, 끝까지 자기가 해보기를 기다려주길 바라는지 등 이미 학생마다 특성을 파악하고 맞춰주며 학생 스스로 만족스러운 시간이 되기를 바랐다.
학생들이 자기표현을 잘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인 요즘, 부모가 아이들의 이야기를 흘려듣거나 마음까지 읽어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요. 늘봄학교 예술 수업이 자기를 마음껏 드러내고, 표현하며 감정을 나누고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 김미정 예술강사
처음 도서관에 들어갔던 때의 인상과 달리 아이들의 자유로운 움직임이 있는 가운데도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이 명확해졌다. 1시간 30분간 이어진 수업에서 예술강사, 교사, 학생 모두 자유로우면서도 한 방향으로 흐르는 물살처럼 역동적으로 흐르고 있었다.
복잡해진 학교생활에 즐겁게 적응하기
예술 수업에 참여하는 1학년 학생에게 초등학생이 되고 가장 달라진 점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복잡해요! 교실도 많고 지킬 것도 많고 밥 먹는 시간도 달라졌고 공부도 어렵고….” 이제 막 크고 낯선 학교의 구성원이 된 1학년에게는 새로운 공간과 사람, 일정에 잘 적응해 학교생활에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터다.
불과 2~3개월 차이지만 유치원(어린이집) 때와 초등학교 1학년은 학교, 제도 교육으로 들어오면 큰 차이가 나면서 중압감이 분명히 있어요. 예를 들면 유치원 다닐 때는 보통 유치원이 끝나면 방과후 하고 4~5시쯤 집에 가는 경우가 드물지 않거든요. 그런데 1학년 3월에는 1시 전에 모든 게 끝나도 학생들이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아요. 바뀐 교실 환경, 잦은 이동, 학생으로 대하는 선생님의 태도, 규칙적인 수업 시간 등 조직의 구성원이 되었다는 걸 몸소 느끼는 거죠. – 이순옥 예술강사
명동초등학교 진해연 교감 선생님은 자기 생각을 다양하게 표현하고 이야기 나누는 과정은 아직 자기표현이 서툴고 새로운 환경에 놓인 1학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1학년 1학기 수업 내용을 보면 색연필과 크레파스가 필수이고 표현하는 활동을 많이 해요. 학부모 대상 설문조사도 진행했는데 방과 후에는 미술 프로그램 수요가 있었어요. 아직 한글을 익히는 단계로 발표를 잘하지는 못하거든요. 그래서 표현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많이 해요. – 진해연 명동초등학교 교감·늘봄학교 전담 교사
명동초등학교 늘봄학교 프로그램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2~3시간으로 영어, 국어 등 학습형 프로그램과 문화예술교육으로 월요일 미술과 금요일 마술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올해 처음 본격적으로 시작한 사업이라 준비시간이 넉넉지 않았고, 전담 교사 혼자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문강사를 공모해 선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무엇보다 초등학교 1학년에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현하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었다.
여러 어려움이 있지만 사실 프로그램을 짜는 게 제일 어려워요. (강사나 프로그램) 풀이 없으니까 단조롭게 영어, 한글 등 학습 프로그램만 할 수밖에 없죠. 그런데 그러면 너무 재미가 없잖아요. 그래서 고민이 깊었는데, 개학이 얼마 남지 않았던 어느 날 교육청에서 늘봄학교 프로그램 신청 안내 공문이 왔어요. 거기에 문화예술교육, 체육 등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프로그램이 잔뜩 있더라고요. 그중 학교 여건에 맞고 눈길을 끌었던 마술과 아이들의 표현을 도와줄 수 있는 미술, 2개 수업을 신청했지요. 선착순이라고 하길래 정말 서둘렀어요. (웃음) – 진해연 교감
프로그램을 신청했지만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데다 어떻게 배치할지도 정하지 못한 채 신청했던 두 프로그램이 다행히 모두 매칭되었다. 진해연 교감 선생님은 이번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으로 행정 업무 경감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만 무엇보다도 수준 높은 프로그램과 신뢰할 수 있는 전문강사를 매칭 받을 수 있어 늘봄학교 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졌다고 했다. 늘봄학교가 기존 방과후학교나 돌봄교실과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여기에 있다. 방과후나 돌봄교실의 경우 강사 1명이 1시간 수업을 진행한다.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주강사 2명이 2시간 수업으로 다양한 활동과 프로그램을 깊이 있게 진행할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을 만나 예술교육을 하는 건 다르지 않지만, 환경 면에서는 학교가 훨씬 나은 공간이긴 하죠. 사실 학교 밖에서 예술교육 프로그램을 할 때는 공간이 여의찮은 곳이 많거든요. 학교 안에서 진행되니 학부모님도 안전에 대한 믿음이 높을 거고요. 또 하나는 늘봄학교가 단순 보육을 넘어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전문강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점이 긍정적인 것 같아요. – 이순옥 예술강사
문화예술교육은 양념인 것 같아요. 영어와 한글은 다 학습이지만 미술, 마술은 아이들이 좀 자유롭다고 느끼는, 약간 숨통을 트이는 것 같아요. 학생, 학부모 모두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져서 학생들이 늘봄학교를 통해서 좋은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계속 접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 진해연 교감
  • 이순옥 예술강사
  • 진해연 명동초등학교 교감
늘봄학교는 올해 17개 시도의 2,700여 개 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다. 교육진흥원은 2023년 자체 시범 운영의 성과를 토대로 올해부터 교육부 ‘늘봄학교 사업추진센터’ 위탁기관으로 지정을 받아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 지원뿐만 아니라 지역 네트워크 및 인력뱅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번 늘봄학교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은 한 학기 지원으로 2학기에는 새로운 프로그램 매칭 과정을 거쳐야 한다. 또한 올해 시범 사업을 이후 단계적으로 초등학교 전 학년을 대상으로 확대 시행될 예정이다. 예술교육가와 학교가 만나(매칭) 준비할 수 있는 시간과 안정된 공간 확보 등 조금 더 세심하게 풀어야 할 과제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복잡하고 새로운 세계에 들어선 어린이들이 문화예술교육을 만나 각자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존중받는 안전한 공간이 되길 바란다.
주소진
주소진
프로젝트 궁리 기획팀장
funkyiju@naver.com
사진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