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종종 변화의 해석자, 혹은 변화의 촉진자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비평하는’ 상징으로 여겨진다. 덕분인지 해마다 겨울이면 각종 지원 서류에 ‘사회적 변화에 대한 예술적 대응, 존재적 탐구, 창의성과 혁신’의 언어를 채워 넣는다. 무한 지혜나 불사의 물약을 제조하는 연금술사처럼, 거대한 당위를 앞세워 예술이 만병을 통치할 기세도 불어 넣어본다. 이런저런 성취를 영끌해 숙련도를 강조하면서, 차별화된 참신함도 쥐어짜(보려고 노력해) 보지만, 바늘귀처럼 좁아진 기회를 잡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변화에 대한 격언들-“무언가를 시작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파블로 피카소)” “모든 성공의 비밀은 새로운 시작(헨리 포드)”-도 곱게 들리지 않는 시점이다. 기대치 않았던 변화에, 엉덩이는 마음만큼 무겁다. 아니면, 마음이 엉덩이만큼 무겁거나.
그래도 누군가는 뭔가를 한다. 코로나 시기에 4명의 예술가·예술교육가(글_정경미, 사진_안중필, 미술_장윤지, 무용_이희은)가 모여 예술교육 연구 활동을 시작하였다. ‘동시대 예술교육이란 어떤 것인지’ 질문하고, ‘사회·문화적 흐름과 맞물려 변화해가는 예술교육에 관해 연구하고 실험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바람직한 만남이다. <아트테이블 파고>라는 이름으로 “비평예술교육”을 지향하는 이들은, 각각의 매체를 이용해 “질문력”을 키우고, “과정중심”의 작업을 하고 있다. 이제 4년 차, 아트테이블 파고의 정체성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그들의 언어로 들어보고 싶어 정경미 대표를 만났다.
뜨거운 관객
저희는 ‘비평예술교육’을 연구하고 실행하는 단체예요. 비평예술교육이라고 하면 생소하실 수도 있는데 동시대 예술을 감상하고 그것들을 감각해 가면서 자신의 관점을 형성해 가는 과정 중심의 활동입니다. 넓고 큰 테이블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서 예술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심도 있게 파는 행위를 상상하며 <아트테이블 파고>라고 이름을 지었어요. – 정경미 아트테이블 파고 대표
예술교육에 붙은 ‘비평’이 흥미롭다. 창작 영역에서는 자기 생각을 집어내는 날카로운 언어들이 빛을 발하나, 교육의 영역으로 오면 뭔가 훈훈해진다. 그 훈훈함의 원천은 예술교육가와 참여자가 긴밀해지는 끈끈한 저수지이지만 종종 놀이, 감각, 소통, 공감, 융합, 경험 같은 레토릭(rhetoric) 속에 예술가가 침잠되고 익사하는 곳이기도 하다. 예술교육에서 참여자의 만족도나 효과성이 아닌, 비평이란 어떤 의미일까. 왜 비평이라는 단어에 집중하게 된 걸까.
일상은 납작하잖아요. 근데 예술은 그 납작한 일상을 굉장히 부풀어 오르게 하는 역할을 해요. 예술이 내 삶으로 들어와서 막 흔들고 균열 일으키고, 그래서 거기에 골몰하고 하는 것들을 되게 좋아하거든요. 그러면 일상이 막 풍성해지거든요. 저는 예술 작품을 보면 막 ‘비평하고 싶다, 비평가가 되고 싶다.’ 이랬었어요. 그러다가 ‘내가 만나는 친구들과 비평을 해보면 되잖아!’라고 생각했어요. 학문적이고 유려한 언어가 없다고 해서 비평을 못 하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우리에겐 동등한 몸이 있잖아요.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 갑자기 뜨끔해진다. 참, 그런 뜨거운 관객이 되는 것이 비평의 출발점이었지. 나는 그 납작한 일상의 가성비를 추종해 오진 않았나, 반성해 본다. 누군가의 작품을 보며, 마음속 균열에 설레어 보거나 남몰래 훌쩍여본 게 언제였나, 흰자위까지 굴려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내가 본 것에 대해 한 줄이라도 발설하지 않으면(써야 해서가 아니라) 잠을 못 잘 것 같은 열정이 언제였나 생각해 본다. 그의 말대로 비평의 출발점은 좋은 관객이 되는 것인데 말이다.
비평, 그리고 예술교육
예술교육가는 참여자에게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이고, 참여자가 하는 작업의 최초 목격자이자 관객이고 비평가이나, 문화예술교육과 비평을 현실적으로 연결하기란 쉽지 않다. 납작한 일상이 예술로 팍 터지는 경험을 하고, 각성한 관객으로서 자기의 표현 방식과 채널을 확보하고, 그것이 참여자들과의 과정에서 반영되고 독려 되어야 하니 말이다. ‘비평’이나 ‘비판적 사고’ 역시 문화예술교육뿐 아니라 산업에서도 손꼽히는 중요한 역량이지만, 현실에서 늘 환영받는 언어는 아니다. 파고가 처음 “비평예술교육”을 명명할 때에도 시행착오는 많았다.
비평, 너무 부정적이지 않니? 이런 말을 순화시켜 보면 어때? 감상 교육 어때? 그런 얘기를 진짜 많이 들었어요. 우리 사회가 비평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그때 확실하게 느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비평은 반대한다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예술은 정답이 없다는 게 저한테는 중요해요. 예술이라는 맥락 안에서 넓은 해석을 인정하잖아요. 그 교류의 잠재력을 목격하는 현장에 같이 있다는 것이 행복해요. 이 몸이 갖고 있는 감각이 있고 자기 각자의 경험이 있으니까요.
비평은 예술의 중요한 축이지만, “소비주의 문화의 영향, 소셜 미디어의 우세, 정치적 올바름과 문화적 상대주의에 대한 주의, 빠른 속도와 짧은 글의 요구”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무용 분야도 예외는 아니어서 사실 ‘비평가를 꿈꾸는’ 청년을 만나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저는 발레를 전공했어요. 그 재능의 위계, 서열화된 체계가 너무나도 공고하게 느껴졌고, 스스로 벗어나려고 노력하다 보니, 시선이 좀 더 풍성해졌달까요. 춤 같은 경우는 순간성과 즉흥성이 핵심인데, 막상 그 순간을 잡고 싶은데 잡고 싶지 않은 양가성이 있어요. 왜 나한테 이렇게 훅하고 박히는지 계속 질문하고 싶었고, 그걸 잡는 도구로 글쓰기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던 것 같아요.
보이지 않는 노동,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
정경미 대표는 7~8년간 문화예술교육을 하면서 다른 세 명의 멤버를 만났다. 유아 문화예술교육 현장에서 미술작가 장윤지를, 꿈다락 토요문화학교에서 사진작가 안중필을, 기획자 과정에서 안무가 이희은을 만났다. 장르도 개성도 달라 같이 뭔가를 보아도 제각각 생각하고 표현법도 달라 재밌었다고 한다. 느슨한 연대를 실천하는 파고의 작업 방식은 어떠할까.
코로나 시기에 한 2년 동안 같이 준비하면서 연구를 많이 했어요. 저랑 희은은 무용을 기반으로 하다 보니까 순간적이고 즉흥적인 거에 강한 경향이 있어요. 순발력은 있지만 현실성이 조금 떨어지고 직관을 많이 하는. (웃음) 그래서 ‘우리 이거 하자’하고 구름에 떠 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하거든요. 중필과 윤지 같은 경우는 그 구름에 떠 있는 이야기들을 땅에 앉히는 일을 해요. 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도 물어보고 다양한 레퍼런스를 수집하고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내기도 하면서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는 것 같고요. 희은 같은 경우에는 예컨대 사진이나 그림 작업을 입체적으로 감각하는 퍼포머의 역할이 되기도 하고요. 중필은 이것들을 잘 기록하는 아키비스트가 되고 윤지는 디자이너 역할을 하기도 해요. 각자의 영역에서 자신의 작업 세계를 충분하게 펼치고, 파고로 만나서는 서로의 일에 관해서 관심가지고 질문해 주고. ‘따로 또 같이’ 방식이죠.
파고가 아이들과 처음 한 작업은 ‘공동체성’ 그리고 ‘보이지 않는 노동’에 대한 것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를 해체한 방성욱 작가의 사진 작업을 보면서 부품들을 몸으로 표현하고, 아이들의 손에 오기까지 생산 과정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상상하고 아이들 개별의 경험으로 창작해 내는 과정을 시도해 보았다고 한다. 어떤 작가의 메시지나 아이디어를 보면서 표현 방법, 문제의식들을 충분히 이야기하고 소화하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중요했다. 아이들에게 무언가 따라 하게 하고, 결과를 채근하지 않고, 예술가와 작업을 오롯이 감상하는 시간이 파고가 지향하는 비평예술교육의 과정인 듯하다.
제가 말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이런 거 잘 못해요. (웃음) 근데 듣는 건 진짜 잘해요. 그래서 아이들의 얘기가 저절로 나올 때 ‘아! 이 맛에 하지’ 이런 게 있거든요. 숨어 있는 노동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언뜻언뜻 자기의 언어가 비치고 경험이 녹아있고 하는 것을 보면 아이들이 ‘이렇게 반짝반짝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죠. (어른들은 잘 묻지 않지만) 아이들이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 나름대로 생각하고 있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존재하는 것이 중요했어요.
사실, 아이들의 자발적 이야기를 기다려주기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일대 다수의 교육환경, 효율성과 시간 안배의 지침은 예술교육에서도 날카롭게 작동한다. (실수를 교정하는 방식의 엘리트 교육으로 성장한) 예술교육가에게, 아이들 하나하나의 더듬거림과 우회에 대한 인내심은 생각보다 어려워서 모법 답안으로 직행하고 싶은 유혹이 크다. 아이들에게 도전해 보라고 말하면서, 실패할 만한 질문을 하지 않는다. “자, 여러분 빨간색 하면 무엇이 떠오르나요? 네, 맞아요. 사랑, 열정…” 같은 질문은 사실 질문이 아니다. 제각각 다를 수밖에 없는 질문, 질문 자체에 관한 질문, 어쩌면 내일 잠자리에서나 겨우 답이 떠오를만한 질문이 아니다. 그 사이사이 침묵과 어색함, 샛길로 새는 대화, 그 불편함을 견디기는 힘도 품도 시간도 든다. 하지만, 그래야 끝끝내 안전한 시간이 온다.
제가 생각하는 동시대의 예술교육은 살아있는 교육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 표현, 생각을 가지고 와서 아이들과 같이 나눠보는 것. 그리고 이것이 단순하게 수용이나 감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의 언어로 다시 아웃풋(Output)이 될 수 있게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관점을 표현하고 이야기 나누며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감각을 긍정하는 과정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제환정
제환정
‘모든 인간은 무용수’라는 믿음으로 춤과 춤추는 인간을 독려하고 탐구하며, 세상 구석구석 예술이 있기를 도모하고 있음. 예술교육자, 창작자, 연구자로 활동하며 춤이 필요한 곳에서 활동 중. 한국예술종합학교 객원교수, 대한무용학회 편집위원장.
jaehj07@gmail.com
영상_박영균 미술작가 infebruary14@naver.com
사진제공_아트테이블 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