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분 33초>라는 명곡을 작곡한 음악가 존 케이지는 이런 말을 남겼다. “실험적(experimental)이란 낱말은, 성공과 실패의 견지에서 나중에 판단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되지 않고 단순히 그 결과(issue)가 미지인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된다면, 적절하다.” 결과를 모르는 채 자유롭게 행해지는 시도를 ‘실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실험을 통해야만 전에 없는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 ‘새로움’ 또는 ‘독창성’은 ‘창의성’의 첫 번째 특징이다. 새롭지 않다면 창의적이라고 평가되지 못한다. 여기에 그렇게 만들어진 새로운 결과물이 사회적으로 ‘가치’ 있다고 평가되어야 한다는 두 번째 특징이 덧붙어야 한다. 새롭지만 무가치한 것들도 많기 때문이다. ‘창의성’을 ‘엉뚱함’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이처럼 창의성은 실험을 통해 새로움과 가치가 결합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것이 생각이건, 제도건, 물건이건, 예술 작품이건 간에 말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은 실험의 결과다. 문화예술교육의 핵심은 피교육자가 실험을 잘할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데 있다. 즉, 실험하는 인간을 기르는 데 있다. 모든 교육은 인간 교육이다. 이 과정에서 교사의 역할이 두드러진다는 점도 분명하다. 왜냐하면 교사는 이 과정을 이미 걸어왔고 시행착오도 충분히 겪었기 때문이다. 이 작업은 실험과 관련된 몇 가지 오해를 제거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실수 중 하나는 ‘자기가 보기에 정말 새로운 것’이 ‘누가 봐도 새로운 것’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모든 시도가 다 부질없다고 말해서는 안 되겠지만, 다른 한편 자기가 ‘이번에’ 시도한 일이 동서고금을 통해 누군가가 ‘이미’ 했던 일이 아니라고 너무 섣부르게 판단해서도 안 된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넓고도 꼼꼼한 공부다. 남들이 해온 작업을 직접 눈으로 귀로 몸으로 확인하는 작업은 풍부할수록 좋다.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은 우리가 ‘순백의 표면’에서 작업을 시작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우리에겐 이미 수많은 기성 관념과 이미지, 이른바 ‘클리셰’가 있다. 먼저 해야 할 일은 클리셰를 청소하는 일이다. 아무리 그렇게 하더라도 순백의 표면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얼룩과 때가 낀 표면이 출발점이다. 이런 청소 작업 말고도, 기존에 이루어진 위대한 창작 작업들을 충분히 음미해야 한다. 이들 작품에 대한 존중에서 실험은 출발해야 한다. 그렇기에 실험이 시작되기 위해서는 여러 전제조건이 있는 셈이다.
책을 통해 남들이 해온 생각의 작업을 파악하는 일도 중요하다. 특히 실험의 첨단에 있는 인문학, 즉 문학, 역사, 철학, 교양과학의 작업을 최대한 이해해야 한다. 이런 과정을 거칠 때 자기의 새로움이 모두의 새로움임을 보장받게 되며, 생각의 실험의 어려움도 몸소 느끼게 된다. 방금의 이야기에서 드러났지만, 문화예술교육이 일종의 지식 교육, 즉 기존의 실험들에 대한 조사 및 체험과 분리된다고 여기는 것은 큰 실수다. 문화예술교육은 지식 교육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
주제를 놓고 서로 비평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는 것은 안목을 높이는 데 필수다. 상호 평가는 서로의 한계를 명확하게 인식케 한다. 니체는 인간의 특징을 ‘넘어서는 존재’라고 규정했다. 인간은 지금까지의 모든 인간을 넘어서려 하며, 심지어 자기 자신을 넘어서려 한다. 먼저 한계를 알아야 넘어설 수 있다. 넘어서는 일, 이것이 창작의 가장 깊은 의미이다. 문화예술교육이 예술적 소양을 기르거나 기성 작가를 흉내 내는 데서 그쳐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창작된 모든 것을 넘어설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실험하는 인간을 기른다는 말의 다른 의미이다.
따라서 ‘자유로운 실험’은 결코 아무렇게나 하는 실험이 아니다. 문화예술교육은 실험하는 인간을 길러 창의성을 발현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다시 존 케이지의 말로 돌아가면, 결과를 모르는 채 자유롭게 행해지는 시도일지라도, 먼저 예상 가능한 결과가 무엇일지에 대한 촘촘하고 치밀한 검토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 명백하다. 문화예술교육은 위대한 작품에 대한 체험과 음미와 존중, 인문 지식 탐구, 상호 평가, 기성 작업의 청소 등을 구체적으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교육마저 실험이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피교육자가 교육을 마쳤을 때 그 전과 비교해 달라질 수 있는 가능성의 비전이 있어야 한다. 어떻게 토양을 가꾸고 씨를 뿌려야 할지 최대한 설계하고 실천해야 비로소 좋은 결실을 맺을 기대도 가질 법하다.
- 김재인
- 철학자이자 경희대 비교문화연구소 교수로, 미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예술철학과 기술철학 작업을 해왔다. 저서로 『AI 빅뱅: 생성 인공지능과 인문학 르네상스』(문화일보 올해의 책, 세종도서 선정), 『뉴노멀의 철학』(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상 수상), 『인공지능의 시대, 인간을 다시 묻다』(경향신문 올해의 저자, 한국출판문화상 본심 선정) 등이 있다.
armdown.net@gmail.com
홈페이지 amrdow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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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를 걷어내고 한계를 넘어서
창의성과 자유로운 실험은 어떻게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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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셰를 걷어내고 한계를 넘어서
창의성과 자유로운 실험은 어떻게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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