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에 대한 희망 –
깨어나기 위한 질문

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예술교육

멈추면 무엇이 보일까?
티베트어로 드렌파(drenpa)는 ‘대상이나 조건, 상황을 자각하다. 또는 깨어있다.’라는 의미이다. 이는 ‘나’라는 고정된 실체를 발견하는 대신 살아있는 모든 존재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상태를 말한다. 자각이나 깨어있음이 가능하려면 기억하고 돌아보기를 위한 자발적 멈춤이 필요하다. 우리는 지금 매우 심각하고 위험한, 그리고 원하지 않는 ‘멈춤’의 상황에 서 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전 지구적 멈춤이 진행되고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역설들이 감지되고 있다. 인간의 행동이 멈추자 도시의 공기는 깨끗해졌고, 감시가 느슨해진 틈으로 아마존의 숲은 망가져 가고 있다. 유럽연합은 흔들리고 있고, 미국은 총기 사재기로 역설적 호황을 맞고 있고, 가난한 이들의 현실은 비참한 절규로 변환되고 있다. roksa
지나온 20여 년 동안 세계 경제 위기, 변종 바이러스, 기후 위기 등과 같은 전 지구적 위기를 만나면서 비상식적인 현실에 대한 자각과 반성이 있었지만, 현실적이고 지속가능한 극복으로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는 당연히 있었던 것들이 만져지지 않고 사라져가는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자발적 멈춤은 아니지만 지금 이 시간을 다시 ‘자각하고 깨어나기’를 위한 기회로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서울시와 동북권역 마을배움터는 봄꽃나눔 행사의 일환으로 코로나 상황으로 힘들어하는 인근 식당, 카페 등과
택배 아저씨, 국화빵 사장님에게 응원의 꽃을 나누었다.
예술은 교육의 틀을 해체할 수 있을까?
학교의 문은 굳게 닫혔지만, 학원의 불빛은 찬란하다. 코로나바이러스의 두려움만큼 학업과 입시에 대한 두려움이 쌓여가고 있다. 온라인 수업은 보통의 상황에서도 부족했던 쌍방향의 수업을 포기하게 만든다. 그리고 청소년 문화예술교육과 연결된 예술가들에게는 생존의 위협이 시작되었고 정부, 지자체, 문화재단 등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책과 지원들이 제시되고 있는 중이다.
지금의 두려움과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현실적 문제에 대한 해결책과 함께 ‘기억과 과거의 현재성’을 고려한 본질적 질문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멈춰있는 지금 교육 그리고 예술에 대한 본질적 질문을 시도해봐야 한다. 2005년 「문화예술교육 지원법」이 제정된 후 지금까지 멈춤이 없이 달려왔고, 나름의 변화와 성장을 이루고 있지만 ‘자기 질문’을 축적할 수 있는 여백은 충분하지 못했다. 예술은 근대적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교육을 해체할 수 있는 본질적 에너지가 있음에도 여전히 교육의 시스템과 환경 속에 갇혀있다. 이렇게 가다가는 자기증식과 생존을 위한 진화만이 남을 듯하다.
‘경험의 내면화’라는 말이 있다. 일시적 또는 자극적 체험이나 사유가 없는 경험의 반복을 넘어서 개인의 언어와 행위로 깊숙하게 연결될 수 있는 과정을 말한다. 한번 해본 기억으로서의 경험 또는 기능적 성취의 경험을 넘어서 삶 속의 인식과 감각을 통합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경험의 내면화를 위해서는 기존의 ‘수업’이라는 틀 또는 ‘교육’이라는 틀을 해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와 타인, 생존과 실존, 수업과 일상과 같은 구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에서 십대들의 실패와 시도를 응원하는 ‘십만원 프로젝트’ 공유회
사라져 가는 질문, 질문하기 위한 질문
3,4년 전만 해도 부모와 사회가 원하는 요구에서 벗어나려는 자발적 청소년, 비현실적 상상과 호기심으로 용감한 모험을 즐기는 청소년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청소년은 이전보다 더 심각하게 느껴질 만큼 ‘생존을 위한 자발적 복종’에 익숙하다. 학원을 땡땡이치고 축제를 기획하고 꽹과리와 장구를 쳤던 아이들은 잘 보이지 않는다. 딴짓을 할 기회는 더 많아졌지만, 아이들 스스로 생존을 위한 길을 선택한다. 틈틈이 시도하는 딴짓에서도 먹고 살 방식을 연결하거나 가망이 없다고 판단되면 서슴없이 포기한다. 가장 비현실적이며 비구상의 일상을 경험하고 시도해봐야 할 시점에 아이들 스스로 시도와 실패의 경험을 내려놓는다.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 사라져가고 있다. 무엇을 원하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이 사라져 가고 있다.
예술 또는 문화예술교육은 어떠한 질문을 가지고 있는가? 질문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자책이 아닌 지금 이 시대, 즉 전환의 시대를 건너는 예술,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질문과 답을 만들어가야 한다. 코로나바이러스는 쉽게 종료되지 않을 것이며 이후에도 개인과 국가를 넘어서는 지구적 문제와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과학, 경제, 정치, 교육, 예술 등에 대한 분과적 구분을 넘어서야 하고 문화와 예술 속에서 잔재하는 획일과 관성을 넘어설 수 있어야 한다.
이제 청소년 문화예술교육은 지속가능한 삶의 기술과 지혜를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영어와 수학 이외에 잉여시간을 채워가는 부분으로서의 교육이 아닌 당당한 삶의 주인으로, 민주시민으로, 지구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과정의 동반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의 삶은 하나의 소우주와도 같으며 우리 각자 대우주에서 일어나는 문제 또는 진화를 함께 수행할 수 있어야 한다.
‘드렌파(drenpa)’ – 깨어있으려면 멈춰봐야 한다.
아이들에게 질문할 수 있으려면, 나에게 먼저 질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진 _ 필자 제공
심한기
심한기
품청소년문화공동체를 설립했고 20년 넘게 청소년 스스로 자신의 삶과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할 수 있는 청소년문화운동을 이어왔다. 일상, 문화(예술), 세대, 지역의 파편적 분리를 경계하며 인문학적 사유와 문화적 상상과 실천을 지향하고 있다. 현재는 총체적이고 지속가능한 삶 속의 배움과 마을에서의 대안적 공유지(커먼즈)를 실현하기 위한 ‘서울시 동북권역 마을배움터’의 센터장으로 일하고 있다.
동북권역 마을배움터 홈페이지 : www.baeum.org
품청소년문화공동체 홈페이지 : www.pumdong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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