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연을 좋아하는 예술가다. 나의 작품 활동과 교육 활동을 포함한 사회적 활동은 ‘공존’과 ‘자연’이라는 키워드에 집중되어 있다. 나는 자연과의 조화를 탐색하는 활동을 즐겨 하며 환경적 실천을 위한 소소한 노력도 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환경운동가는 아니다. 단지 자연에 애정이 있는 예술가일 뿐이다. 공존과 자연을 주제로 예술 활동을 하다 보니 사람들 눈에는 내가 환경운동가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그런 시선이 부담스럽다. 나의 작업을 알고 있는 누군가가 함께 있으면, 그들이 기대하는 모습으로 행동해야 할 것만 같다. 행여나 깜빡하고 텀블러라도 집에 놓고 오는 날이면, 갈증이 나더라도 종이컵에 물 한 잔 마시는 것도 눈치가 보인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를 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들지 못한다.
환경적 실천은 항상 어렵다
환경을 위한 실천은 대부분 생활이 불편해지기 때문에 언제나 힘들다. 내가 시도하는 환경적 실천은 누구나 해볼 만한 정도의 일들이다. 물 아끼기, 일회용품 자제하기, 웬만하면 대중교통 이용하기, 낭비 줄이기 등 조금만 신경 쓰면 어렵지 않은 일들이다. 그러나 나는 높은 빈도로 자가용을 타고 다니고, 고기반찬을 즐기며, 일회용품도 사용한다. 해외 공연을 위해 비행기도 자주 이용하고, 작품 발표를 할 때는 많은 폐기물도 만들어 낸다. 그렇다. 나는 자연을 좋아하고 그것을 주제로 예술 활동을 하지만 나의 삶은 완전 모순덩어리다.
10년 전 환경에 관심이 생겨 첫 환경적 실천으로 ‘노푸(No shampoo, 샴푸를 사용하지 않고 물로만 머리감기)’를 시도했었다. 샴푸가 수질 오염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기에 별생각 없이 노푸를 시작했고, 샤워 시간도 줄이면서 물도 아꼈다. 처음 며칠은 내가 뭔가 대단한 실천을 하는 것 마냥 자랑스러웠다. 어깨가 으쓱한 마음에 은근히 우쭐대며 ‘노푸’를 티 내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데 노푸가 한 달 이상 지속되니 두피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흰 각질이 어깨에 뚝뚝 떨어졌다. 검정 옷을 입기가 무서워졌다. 두 달이 지날 때 즈음, 머리에 탈모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 탓일 수 있지만 온 집안에 머리카락이 뒹굴었고, 어깨에는 함박눈이 내린 것 마냥 각질이 소복이 쌓여 있었다. 두 달 반쯤 지나서 노푸를 포기했다. 그때 깨달았다. 나는 환경을 위해서 두피 건강과 외모, 그리고 머리숱을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나는 자연을 좋아하지만 자연을 파괴하는 일관성 없는 거짓말쟁이 예술가였다. 이렇게 모순되는 내 모습에 항상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환경적 실천에 관한 관심이 마음속에 자리 잡으면서, 복잡한 생각들이 뒤엉켰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문제들 앞에서, 나의 모순된 행동에 대한 실망과 편리함을 추구하다 환경에 해를 끼치는 결정들에 대한 자책감이 교차했다. 그런 나에게 던진 질문은 ‘자연환경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였다. 이 질문과 함께 현대 무용 작품 <거룩한 태도>를 작업했다.
이 작업은 자연을 향한 인간의 태도에서 출발했지만, 결국 나 자신이 느끼는 모순된 삶과 자책감, 불편한 마음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질문으로 발전했다. 작업 리서치 중에 영장류 학자 김산하의 한 문장을 발견했다. “일관되게 반환경적인 사람보다는 비(非)일관되게 친환경적인 사람이 낫다.”([경향신문], 2013.08.21.) 이 문장을 만나고 조금의 숨통이 트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마치 몇 년간 앓던 비염으로 막힌 코가 한순간에 뻥 뚫린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한 문장이 나의 불편한 마음을 토닥여주고, 앞으로 어떤 태도로 자연환경을 대해야 할지 방향을 제시해 주었다. 그때부터 계속 실패하고 있는 ‘환경적 실천’이라는 지속 불가능한 목표에서 벗어나, 지속 가능한 ‘환경을 의식하는 태도’를 지니기로 결심했다.
온전한 존재로서 마주하는 자연
이 결심은 나를 변화시켰다. 이제 나의 반환경적인 행동보다는 친환경적인 태도에 더 집중하게 되었고, 이를 통해 긍정적인 면을 발견하게 되었다. 반환경적인 행동을 할 때 드는 죄를 짓는 듯한 마음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또한, 자연환경에 대한 태도도 바뀌었다. 이전에는 환경적 실천과 지구의 상태에만 집중했다면, 이제는 나와 자연의 관계, 자연에 대한 내 생각과 감정 그리고 태도에 더 집중하면서 스스로 친환경적으로 성장해 나가기로 한 것이다.
‘환경을 의식하는 태도’는 예술 활동의 근본적인 방향을 다시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나는 예술 활동이 환경적 실천, 환경 운동과는 다른 목적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예술교육 활동’(나는 예술 워크숍이라고 부르고 싶다)의 목적도 바뀌었다. 기존 활동은 기후 위기를 알리기 위한 사회적 소통에 가까웠다면, 환경을 의식하는 태도의 변화 이후로는 나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가 예술로 자연을 마주하고 그 과정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 그리고 태도를 성찰하고 변화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게 되었다. 자연을 온전한 존재로 바라보고, 마주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환경을 의식하는 삶의 태도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연과 나의 ‘관계 맺기’가 중요했다.
호프로 바이브(HOPRO VIBE, 김재현‧김호연‧박남동‧정혜숙)의 예술 워크숍에서는 인간관계에서 느끼는 공감과 유사하게 자연과의 감각적인 교감을 시도한다. 산속에서 마주하는 나무와 흙, 물, 빛과 같은 자연의 모든 요소가 이 과정의 일부가 된다. 우리는 자연에 귀 기울이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나만의 느낌을 탐색하는 활동을 한다. ‘산에 있는 말 못 하는 자연과의 관계 맺기는 어떻게 가능할까?’ 우리는 작품 활동을 할 때 행하는 기본적인 것들에서 시작했다. 나무를 만져보고, 식물을 안아보며, 그들 옆에 누워도 보고,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나눠본다. 나무와 접촉하며 몇 분간 반복적인 행위를 할 때도 있다. 이상해 보일지 모르지만 이러한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때로는 자연이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를 말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기도 한다. 이러한 교감은 우리의 예술 활동의 기반을 이룬다.
우리는 나무를 위한 전시를 열고, 자연을 파트너 삼아서 함께 춤을 춘다. 나무 관객 앞에서 나무와 함께하는 즉흥춤은 우리의 예술적 표현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자연이 싫어할 것 같은 쓰레기를 주우며, 이 행위 역시 무용적인 움직임으로 발전시킨다. 2년 전에 혼자서 취미 삼아 시작한 ‘줍깅’(플로깅)은 서울문화재단 서울무용센터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 구체화 되었다. 이렇게 시작된 ‘그린댄스’(플로깅 댄스) 프로젝트는 쓰레기를 줍는 행위를 예술적으로 변환하는 실험이다. 발견한 쓰레기에서 영감을 얻어 아무런 연출 없이 시도하는 즉흥적인 춤은 마치 자연에 사과하는 행위와 같다.
이 모든 활동은 나와 자연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자연에 대한 반성과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린댄스를 하면서 나는 평화와 기쁨을 느낀다. 일종의 기도나 백팔배를 하는 것과 비슷할지 모를 이러한 반복적인 행위는 산과 함께 내 마음 또한 정화시켜 준다. 이러한 여정 속에서 예술은 우리에게 자연에 대한 감각적인 이해를 가능하게 하고, 영혼을 교환하는 깊은 관계를 형성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언어를 뛰어넘고, 영혼의 교감을 경험하며, 자연과의 연결과 의미 있는 감동을 발견한다.
예술이 필요한 순간
이런 활동들이 어떤 이에게는 터무니없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술은 바로 이러한 ‘터무니없음’에서 자라난다. 터무니없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생각과 감정을 경험하고, 예술적 영감을 얻는다. 이 과정에서 인간적인 공감과 감동을 느낀다. “진정한 감동이란 신체가 변화하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경험”(은유, 『글쓰기의 최전선』)이라고 했다. 우리는 예술을 통해 몸과 태도가 변하고, 그 변화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영원히 바꾼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새로운 자극이 들어오고 세상과 나를 대하는 태도에 변화를 일으킨다. 예술을 통한 변화와 감동은 우리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더욱 풍부하고 의미 있게 만든다.
사실 우리가 당장 환경적 실천을 해야 하는 이유는 자연을 사랑하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기후 위기로부터 인류의 안녕을 위해서이다. 생산성과 효율성이 우선시 되는 현실적인 목표 앞에서, 예술 활동이라는 간접적인 방식은 적절한 해답처럼 보이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술을 경험하는 사람의 관점과 태도는 그렇지 않은 사람과 분명히 다르며 이는 변화를 위한 지속 가능한 방식이라 믿는다. ‘니체’가 말했듯, 예술은 삶의 위대한 자극제다. 심미적 활동을 통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고, 터무니없는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는 과정이 예술의 본질이다. 이러한 예술은 삶을 자극하고 태도를 변화시키며 새로운 길을 창조한다고 믿는다. 복잡하고 어려운 기후 변화 문제에 직면해 있는 지금, 예술이 필요한 순간이다.
- 김호연
- 무용 예술을 통해 인간의 행복과 본질적인 가치에 기여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창작단체 ‘댑댄스프로젝트(DAB DANCE PROJECT)’와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호프로 바이브(HOPRO VIBE)’를 이끌며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주목하며 창작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몸의 감각적 경험이 우리의 정신과 사회적 가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워크숍과 사회적 활동을 실험하고 있다.
인스타그램 @hopro_ - 사진제공_김호연 무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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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되고 터무니없는, 그러나 온전히 교감하는
오늘부터 그린㉕ 자연과 관계 맺는 예술적 시도
공감이 갑니다
모순되고 터무니없는, 그러나 온전히 교감하는
오늘부터 그린㉕ 자연과 관계 맺는 예술적 시도
기대만점입니다
스스로 중요하게 여기던 가치를 반하는 모순된 행동을 하게 되었을 때의 고민과 괴로움… 그리고 그 고민이 해결하게 된 방법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비슷한 고민을 하던 시기가 있었어서 더 공감되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