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가을, 우리 학교는 유난히도 화려했다. 학교 곳곳에서 새로운 문화예술 활동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학교 숲에는 3학년 학생들이 버스킹 무대를 꾸렸고, 새로 생긴 교실에서는 4학년의 신발 전시회가 열렸다. 도서관 앞에는 곱게 빚은 찰흙 인형들이 전시되어 있고 복도에는 2학년의 작품과 3, 4학년의 오일파스텔 작품이 걸려있다. 가을 행복주간 동안 이뤄진 다양한 예술 활동을 지켜보며 ‘우리의 문화예술교육은 어때야 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교실 문턱을 넘어 동료 찾기
양평초등학교는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문화예술 수업이 활발히 이뤄지는 편이다. 그럼에도 수업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예술 수업이라기보다는 기능 훈련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교사는 그저 뒤에 서 있고, 예술강사는 특정 기법, 주법 등을 알려주는 것이다. 교사는 외부 강사가 진행하는 수업에 선뜻 개입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강사는 강사대로 수업의 기획과 실행을 혼자 하다 보니 막막해하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비교적 안전한 ‘기능 훈련’ 위주의 수업이 되어간다. 이렇게 경직되고 획일화된 과정에서 일부 학생은 또 한 번 낙오되고 되레 예술로부터 멀어지는 경우도 만나게 된다. 이렇듯 강사를 통한 예술 수업은 학생과 교사, 학교와 쉽게 섞이지 못하고 교육과정과 물과 기름처럼 분리된 채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 학교의 특색활동인 ‘행복주간’은 어떨까? 계절마다 한 번씩 이뤄지는 행복주간은 다양한 체험 위주의 교육과정이 운영된다. 하지만 주로 학년 부장이 기획하고, 같은 학년이 따라가는 과정에서 점점 간소화, 축소되어 가고 있었다. 업무 담당자(학년부장) 한 명이 학년 전체의 큰 행사를 네 번이나 기획해야 하니 무리는 아니다.
이렇게 의미와 내용이 옅어지는 교내 예술교육을 어떻게 바꿔볼 수 있을까 고민이 되었다. 매개자 협력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로 링크(Link)’와 연계하면 변화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예술로 링크’는 사업을 신청한 학교, 교사를 대상으로 매개자와의 협의를 진행한다. 이 협의를 통해 매개자(이하 PM)는 지역의 어떤 예술가와 연결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후 적절한 전문가와 연결하면 본격적으로 수업의 방향과 진행 방법에 대한 논의가 이뤄진다.
거창하게 무언가를 해보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예술교육에 관심 많은 선생님들과 모여 행복주간을 꾸며보려는 것이었다. 교내 전체 메시지로 수소문한 결과 11명이 모였다. 각자 교실에서 어떤 활동을 하고 싶은지, 어떤 분야에 관심이 많은지 이야기하며 첫 회의가 진행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매주 한 번씩 모이며 각자의 계획을 점점 구체화해 갔다. 사실 함께 모여 수업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일부 학교에서는 당연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학교에서는 다소 생소한 과정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매번의 모임이 특별하게 느껴졌다. 교사 11명이 꾸린 8개의 프로젝트가 점점 방향을 잡고 구체화되어 갈 무렵, 이제는 전체회의보다는 예술로 링크 PM과 개별 협의를 하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함께 진행하는 PM이 전체 협의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권유했고, 그렇게 행복주간 직전까지 다 함께 모여 협의를 진행했다.
전체회의의 의미는 행복주간이 되자 드러났다. 서로의 프로젝트의 의미를 알고 준비 과정을 함께 했기에 행복주간 당일 진행되는 다른 반의 발표회나 전시, 작업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날마다 다른 공간에서 펼쳐지는 예술 활동을 기다리는 재미 역시 빼놓을 수 없었다. 오늘은 전시회가 열리고, 내일은 버스킹이 있고, 그다음 날은 간식 나눔이 있는 등 정말 다양한 예술 활동이 이루어졌다. 사실 그동안 나의 예술교육 활동은 교실 문턱을 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다른 선생님들과 함께 무언가를 이룬 경험은 별로 없었다.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교실 밖으로 확장되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었고, 무엇보다 동료를 찾을 수 있었다. 동료를 찾자 생긴 변화는 절대 작지 않았다.
동료와 함께, 멀리, 넓게 보기
예술로 링크 프로젝트 중 하나로 교내에서 ‘소리연수’가 개최되었다. 당시 3학년 담당교사들은 연수 강사로 온 김은파 작가를 만났다. 원래는 교사 대상 연수만 진행할 예정이었으나, 연수에 감명을 받은 3학년 선생님들은 2학기 교육과정을 변경하여 김은파 작가와 소리 수업 시간을 만들어냈다. 교사 대상 연수가 수업으로 확장된 것이다. 만약 교사 중 한 명만 연수에 참가했다면 학년 내에 지금과 같은 움직임을 만들어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연수에서의 감동과 울림을 같은 학년 선생님들 모두 겪으니 이뤄질 수 있던 것이리라. 이번 행복주간 프로젝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동료성을 경험한 선생님들은 지금도 ‘다음 행복주간, 내년 행복주간에는 무엇을 해볼까’하는 고민을 하고 계신다.
이번 예술로 링크 프로젝트에서 이뤄진 전체회의가 의미 있는 이유는 ‘나의 고민’이 ‘우리의 고민’이 되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교사 각자의 고민이 한 공간에서 다루어질 수 있었고, 그만큼 다양한 관점의 해결 방법과 도움이 더해질 수 있었다. 그리고 각자의 프로그램이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연결되는 계기도 생겼다. 이 과정 자체가 너무 설렜고 ‘이게 되네!’ 감탄도 나왔다. 이런 과정에서 문화예술교육은 어때야 하는지에 대한 관점도 공유할 수 있었다. 며칠 전, 새 학년 교육과정을 준비하면서 음악 강사를 알아볼 일이 있었다. 아직 외부 강사를 통한 문화예술교육을 완전히 끊어내기는 어려웠다. 당시 함께 했던 음악 강사는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수업’을 찾았다는 것이 감동이었다. 그저 교사가 뒤에서 편하게(?) 있을 수 있는 수업이 아닌, 보여주기식 기능 훈련 위주의 수업이 아닌 수업을 보게 되었다. ‘예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예술로’ 배우는 수업은 이렇게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동굴과 광장을 잇는 예술교육
예술로 링크를 통해 나에게 일어난 변화를 꼽으라면 바로 ‘관심’이다. 내가 상상만 했던 것이 현실로 이뤄지는 것을 보며, 내년에는 또 무얼 해볼까 몸이 근질근질해진다. 무엇을 예술로 풀어볼 수 있을까 계속 고민하게 된다. 지금은 학교 앞 군립미술관과 연계하여 무언가를 해볼 수는 없을까, 아이들과의 전시회를 한 번 더 열어볼지 고민 중이다. 이런 행복한 상상을 할 수 있는 이유는 ‘함께 할 동료 교사’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교사들의 교육과정 속 상상력을 자극하는 힘이 있음을 느낀다.
작가 최인훈은 소설 『광장』에서 ‘광장’과 ‘동굴’에 대해 이야기한다. 자기중심적이며 개인적 공간인 동굴, 서로 연결되며 드러나는 공간인 광장. 예술교육은 동굴이자 광장이 되어야 한다.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과정 동안에는 자신과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동굴에 머물러있더라도, 어느 순간에는 광장에 모여 서로 예술로 소통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광장에 교사들부터 모여야 더 깊은 소통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다. 예술로 모두가 연결되어 광장에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학교, 교사, 그리고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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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배우는 것이 아닌 ‘예술로’ 배우는 것에 관심이 많은 초등학교 3년 차 교사. 머릿속은 늘 예술 수업과 관련된 상상들이 넘실대고 있다. 우연한 계기로 영국의 창의예술교육 소셜벤쳐 ‘ARTIS’를 만난 뒤로 해외 문화예술교육 동향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지역의 예술전문가와 학교를 잇는 ‘예술로 링크(Link)’ 사업에 2년째 참여하면서 학교 안에 문화예술교육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rabo5473@naver.com
사진제공_이바로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