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한 공생을 위해, 초록은 생각하지 마?

오늘부터 그린㉛ 일상에서 행동하는 작업

새는 살만한 곳에 산다
<렛츠 버딩!(함께 새 하는 중!)>(2022)은 탐조(birding)로 도심에 거주하고 있는 구체적인 새를 만나고, 의도된 오역/어설픈 ~되기(새 하는 중)의 시도를 통해 자신과 새의 (이미 있는) 연결성을 발견해 내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을 시작하게 된 건, 성북천에서 만난 한 오리(한동안 흰뺨검둥오리로 오해했던, 하지만 청둥오리 암컷이었던)와의 조우였다. 어느 날 약속보다 이른 시간에 도착해 식당 바로 앞에 있는 성북천으로 내려갔는데, 그곳에 흔한 오리가 한 마리 있었다. 도착하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며 별생각 없이 오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질문이 들었다. ‘여긴 인공하천인데, 쟤네 왜 여기 살고 있지?’ 자연 그대로의 천이 아닌 인간이 만든 하천에 오리가 거주한다는 사실이 문득 생경했다. 그래서 오리를 잠깐 쳐다보고, 핸드폰을 오래 들여다봤다. 떠오르는 단어들을 얼기설기 붙여 구글링했고, 약속에 늦은 친구가 오기 전에 ‘철새의 텃새화’에 관련한 기사를 찾을 수 있었다.
이때부터 새와 도시에 관한 정보를 찾아보다 탐조에 대해 알게 되었고, ‘서울의새’라는 시민 탐조 모임에도 기웃거렸다. 탐조 선배님들을 따라 도심 곳곳을 다니며 도심 속에 거주하고 있는 구체적인 새들을 만날 수 있었다. 탐조를 따라다니며 정말 많은 배움을 얻었는데, 그중 가장 몸에 깊이 남은 건 ‘먹이가 있는 곳에 새가 산다’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새는 살만한 곳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곳이 초록이든 아니든, 그건 새들에게 그리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 렛츠 버딩!(함께 새 하는 중!)
둥근 땅에 뿌린 초록 폭탄
<감자전스www.gamjajeons.com>(2022)는 감자를 매개체 삼아 도심이란 표피에 가려진 동그란 땅 지구를 함께 발견해 내는 프로젝트다. 형식은 아주 간단했다. 참여자들(네트워킹 농부)은 씨감자를 받아, 각자 일상의 공간에서 ‘땅’을 발견하여 심는다. 그리고 한 달에 한 번씩 네트워킹 농부들이 모여 각자의 감자에 관해 이야기하며, 공통의 감자를 돌보았다. 공통의 감자는 도심의 유휴지에 무작정 심어보았다. 우리는 이를 감자 폭탄이라 불렀다. 감자 폭탄은 한성대입구역에서 성북동으로 올라가는 거리 곳곳에 참여들과 함께 심었다. 우리는 그 거리를 걸으며 심을 수 있는 땅을 찾았다. 땅에 대한 각자의 정의와 질문을 가지며 감자 폭탄을 곳곳에 다소 무단으로, 하지만 가능한 한 귀엽게 뿌렸다.
구에서 운영하는 작은 화단, 가로수의 작은 틈, 유명 연예인의 사유지라고 소문난 초록 펜스로 가려진 유휴지, 재정비를 앞둔 한 공원의 정리되지 않은 잡초가 무성한 구석, 모 은행 주차장 입구의 화단 등. 심어둔 감자의 위치를 알아채기 위해 표지판을 세워두었다. 그렇게 우리는 감자에 스며드는 약 3개월의 시간을 보냈다. 서로 처음 만난 참여자들이 진지하게 감자 이야기를 나누는 광경은 늘 이상하고, 즐거웠다. 우리는 초록이 하나도 없는 도심 곳곳에서 만나며 둥근 땅에 대해 그리고 감자에 대해 전심을 다 해 골몰했다. 그 골몰의 흔적은 웹 사이트 ‘감자전스’에 다양한 방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 감자 폭탄
검은 극장 안에서 만나는 공생
그나마 초록의 가능성이 존재한 실외에서 진행된 위 두 사례와는 달리 <펄프픽션>(2023)은 말 그대로 초록이 배제된 검은 극장 안에서 진행된 프로젝트다. <펄프픽션>의 배우(행위자)는 ‘나무’였다. 집 앞 은행나무가 인간의 편의에 의해 강전정(강한 가지치기) 되는 광경을 목격하고 화가 났던 감정을 복수의 이야기로 각색한 뒤, 잘린 나무의 부산물(펄프)로 만들어진 종이에 인쇄해, 관객 1인이 극장에서 독서하며, 나무-배우를 마주해보는 공연이었다. 이 공연에선 관객이 여러 모습으로 각색(변형)된 나무를 만나는데 일단 펄프-종이책이 그러하고, 평소 극장에서 시각선을 확보하기 위해 활용된 덧마루(플랫폼)를 나무처럼 혹은 책장처럼 만들어 인공 숲과 같은 무대 풍경으로 활용했다. 무참히 잘린 가로수들을 보며, 어디에든 나무가 존재하고 있고, 실은 그 잘린 나무에 기대어 우리가 살아가고 있음을, 그 관계의 스산함을 읽어보려 했던 작업이었다.
<배트 스테이지 투어>(2024) 역시 극장에서 진행됐는데, 생태 위기 시대의 공공극장이 어떻게 박쥐와 공존할 수 있을지 상상으로 제언했다. ‘자연 없는 생태학’을 주창한 티머시 모턴(Timothy Morton)의 아이디어를 수용하여, 박쥐와의 공생을 모색하기 위해 인간의 인지 여부와는 관계없이 박쥐를 무심히 내버려두기를 선택했다. 공생과 무심함은 서로 쉬이 접점을 가질 수 없는 부류의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번 기획에서는 적극적인 무심함이야말로 일방적인 포용, 낭만화를 넘어설 수 있는 공생의 제스처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작업했다. 박쥐를 무심히 내버려두기 위해선 포용할 것보다, 감수해야 할 것이 많다는 관점에서 오히려 더 적극적인 공생이라 상상했다. 이처럼 ‘생태’에 덧씌워진 ‘초록’이란 낭만과 신화를 주의하려 애쓰며, ‘생태’ ‘공생’과 같은 단어를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을 최근 진행해 왔던 것 같다.
  • <펄프픽션>
초록에 계속 켕겨지기
이렇게 초록을 생각하지 않으려 했던 생태 작업에 관한 글을 쓰기 위해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초록에 파묻힌 곳으로 왔다. 열린 통창으로 북한산의 풍경이 훤히 보이는 우이동의 한 카페로. 왜냐하면 오늘 날씨가 너무나 좋기 때문이다. 이제 거의 없다시피 한(할) 가을을 이대로 보내기 아쉽고, 기왕 마감에 파묻힐 거라면 더 좋은 곳에서 파묻히고 싶어 이곳으로 왔다.
열린 창 바깥으로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초록과 노랑이 뒤섞인. 이제 은행나무를 볼 때면 먼저 그 가지의 부피감을 살피게 된다. 저 나무는 강전정 되었구나, 저 나무는 강전정 되지 않았다는 것을 기계적으로 가늠해 보게 된다. 운 좋게도 강전정 되지 않고 제멋대로 자라나 부피감을 만든 은행나무를 보며 다행이라 생각한다. 뻔하게도 초록을 생각하지 않으려 해왔던 것은 초록을 계속 생각하기 위함이었다. 아니다, 초록에 계속 켕겨지기 위함이었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초록을 생각해 낼 수 있다고 자부 혹은 착각하지 않고, 어디에든, 이미 있는 초록에 언제든 스스로가 켕겨질 수 있는 어떤 상태가 되기 위함이었지 않았을까.(켕기다 : 마음속으로 겁이 나고 탈이 날까 불안해하다)
  • <배트 스테이지 투어>
이성직(감자피아)
이성직(감자피아)
통상 공연으로 명명되는 무언가를 만드는 창작자다. 일상에서 소재를 줍고, 일상에서의 행동을 작업으로 직접 연결하는 편이다. 공연 <배트 스테이지 투어> <가덕도를 아십니까?> <펄프 픽션> <아파야 낫는다 건강백세!> <sf식당> <감자전스www.gamjajeons.com> <렛츠 버딩!> 등을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gamjapia
페이스북 감자피아
사진제공_이성직 공연창작자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비밀번호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