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소와 공간에 대해 지금보다 더 예민해진다면, 더 많은 공동공간이 있다면 우리는 더 좋은 사회에 살 수 있다. 이런 생각을 가지며 공간을 간절히 욕망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10여 년 동안 살던 시골을 떠나 다시 도시로 돌아온 8년 전이다. 다시 도시에 살게 된 그때 나를 압도하는 느낌은 불행하게도 답답함과 무력감이었다. 생계를 위해 할 일이나 직장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이내 나를 사로잡는 답답함과 무력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도시는 공간이 부족했고, 관계는 단절되어 있었고 시간은 부서져 있었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자유롭게 할 야외 공간도 실내 공간도 부족했다. 작은 공간을 임대하는 데도 감당하기에 너무 큰 비용이 필요했다. 도시에서 맺기 시작한 관계는 깊은 연결을 느낄 수 없는 업무 관계가 전부였다. 살고 있던 아파트에서도 몇 년간 이웃이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몇몇 이웃들이 생겼다. 그러나 공간 부족은 쉽게 해결될 수 없는 과제였다. 도시에서 내가 하고 싶은 활동을 위해 공간을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공간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사이 공간으로서의 공동공간
공간에 대해 탐구할 때 접하게 된 책들 가운데 내게 적지 않은 영향을 준 한 권은 스타브로스 스타브리데스(Stavros Stavrides)가 지은 『공동공간: 커먼즈로서의 도시』(Common Space: The City as Commons) 이다. 당시는 영문 서적만 구해 읽을 수 있었는데 올해 번역본이 출간되어 다시 읽게 되었다. 책의 저자는 그리스의 건축가, 사회 활동가, 아테네 국립기술대학교 건축학부 준교수로, 사회주택 설계 과정과 대도시 경험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공동공간 : 커먼즈로서의 도시』는 도시 공간을 연구한 다양한 학자와 연구자들의 주장과 세계 곳곳 공동공간의 사례를 소개하며 공동공간이 삶의 질을 높이고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공간을 사적공간, 공적공간, 공동공간으로 구분한다. 사적공간은 말 그대로 개인 또는 사적 기업이 소유한 공간이며 타인의 이용을 배제하는 폐쇄적 영토이다. 공적공간은 정부가 소유하고 관리하며 시민들이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는 공공공간이지만, 이곳에서 시민의 활동은 주권자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만 허용된다. 반면 공동공간(Common space)은 폐쇄적이지 않고 개방적이며 내부 규율과 질서를 유연하게 지속해서 민주적으로 재정립하며, 권력 집중을 방지하고, 끊임없이 창조적인 관계와 활동이 만들어지는 상시적이거나 임시로 조성되는 공간이다. 저자는 이런 관점에서 도시를 공동체의 터전으로 보고, 집합주택, 공원, 광장, 가로에서 시민들이 함께 공동공간을 자율적으로 만들어 갔던 사례들을 소개하며, 공적공간을 시민들이 개입하여 각자 주체적으로 창조적인 활동을 제약받지 않는 공동공간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공간을 저자는 도시 속의 틈새 공간이자 경계가 있지만 개방된 문턱 공간이자 경계에 구멍을 내는 다공성의 공간이자 사이 공간, 즉흥적 열정이 넘치는 공간으로 묘사한다.
이 책은 나의 인식을 확장하고, 새로운 지식과 실천을 소개하는 지도였다. 이 책에서 발견한 공공장소(Public Space)와 공동장소(Common Space)란 키워드를 붙들고 탐색하기 시작했다. 이때 세계 도시 공공장소에서 시민의 사회적 관계와 예술과 문화 활동을 확장하는 활동을 소개하는 PPS(Project for Public Space)를 알게 되었다. 이 사이트는 내가 도시 공공장소를 좀 더 생생하고 의미 있게 이해하고 공공장소 활동에 대해 풍부한 다양한 사례와 아이디어를 알게 한 정보의 보고이다. 한편, 소토노바(ソトノバ)는 일본에서 마을과 지역의 야외공간인 소토노바를 공공장소로 만들기 위한 가이드와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이곳에서 발견한 사례들을 안내자 삼아 서울혁신파크 옥상에 옥상 공유지 실험을 전개했고, 혁신파크가 폐쇄된 이후에는 살고 있던 마을 인근 공공텃밭 일부를 주민들과 함께 살래공동텃밭으로 만들었다. 올해 초 마을 서점 ‘소동’에서 두 달에 걸친 연속 인문학 강좌를 진행하며 마을의 공공장소를 어떻게 공동공간으로 바꿀지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최근에는 마을 앞에 텅 빈 채 남아 있는 1만여 평 LH 소유 부지에 어떻게 주민들이 사회적 관계를 확장하는 공공시설을 유치하고 공동공간으로 만들지 몇몇 이웃과 모여 작당을 하기 시작했다. 말로 끝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고, 잠깐 벌이는 해프닝만 일어날 수 있지만, 도무지 이 답답한 도시에서 사람들이 함께하는 공간에 대한 욕망과 불쑥 일어나는 상상을 멈출 수는 없다.
이 책이 소개하고 있는 사례 중에는 튀르키예서 살다 그리스로 강제 이주한 그리스계 난민들의 정착촌 이야기가 나온다. 이 슬럼가의 난민들을 위해 정부는 10년 만에 아테네 인근에 알렉산드라 주택단지를 지었다. 1934-35년에 지어진 알렉산드라 주택단지의 각 세대는 대부분 방 2개, 주방과 작은 욕실만 있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주민들은 아무것도 없던 야외 공간을 자율적으로 작은 안뜰, 보도, 나무 그늘, 즉흥 놀이터, 회의 장소로 변형했다. 여성들은 공용 세탁실을 사교장처럼 사용했다. 겨울철 외부 계단은 시끄러운 놀이터로 변했다. 이처럼 튀르키예 공동체 문화를 공유하고 있던 그리스계 난민들은 주택단지를 사적 경계와 공적 경계를 흐리게 하는 다공(多孔)의 도시 환경으로 만들었다.
함께 살고 교류하는 집합주택
알렉산드라 주택단지는 손세관의 『집의 시대 : 시대를 빛낸 집합주택』을 떠올리게 했다. 손세관은 중앙대학교 건축과 명예교수이자 건축도시공간연구소 소장을 역임하며 세계의 주거 문화를 탐색한 연구자이다. 이 책은 20세기 등장한 세계의 집합주택, 우리가 부르는 아파트 단지와 연립주택, 주상복합주택들을 소개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30개 주택단지를 소개한다. 그중에는 로테르담의 주택국에서 일하던 야코부스 오우트(J.J.P.Oud)가 설계한 튀센디켄(Tusschendijken) 블럭형 주택단지가 있다. 이 주택단지 중앙에 거대한 중정이 있는데 가장자리는 개인 정원으로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중앙은 주민 공동의 여가 공간으로 사용케 했다. 입주자들의 교류를 위한 기획이었다. 미힐 브링크만(Michiel Brinkman)이 설계한 로테르담 스팡언 지구의 집합주택(Spangen Quarter Housing)역시 블럭형이고 중정을 개인정원과 공용정원으로 구성한 것은 같지만 3층에 골목길 같은 공중 가로를 만들었다. 주민들은 이곳을 통행, 교류 공간, 개인 정원처럼 이용했다.
책 속에는 그 유명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가 설계한 마르세유의 위니테 다비타시옹(Unité d’Habitation)도 있다. 이 집합주택은 17층 높이에 350가구를 수용하는 데 상점 거리와 26종류의 공공시설을 포함하고 있으며, 옥상에는 체육관, 수영장, 유아원, 노천극장까지 두었다. 이런 시설들은 모두 사회적 교류와 관계를 촉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비행기 위에서 보면 온통 삐죽삐죽 솟은 아파트 단지만이 보이는 아파트의 나라 한국에서 주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우리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다양한 아파트의 유형과 혁신적인 시도들, 그리고 주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사회적 교류를 촉진하고자 공공공간을 포함하려 했던 건축가들의 노력을 이 책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국의 아파트는 비록 이웃 소통이 단절된 주거 형태로 여겨지고 있음에도 크고 작은 커뮤니티 시설들을 포함하고 있다. 집합주택을 사회적 관계가 일어나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한 20세기 건축가들의 영향이다. 한국의 커뮤니티 공간은 아파트 거주민 이외 사용을 허락지 않고 일방적 이용규칙이 작동하는 폐쇄적 공간이거나 주민 간의 사회적 교류가 제대로 일어나지 않고 있지만, 이 공간들을 어떻게 보다 개방적이고 민주적인 사회적 교류와 창의적 시도들이 만들어지는 유연한 공동공간으로 바꿀 수 있을까? 문화적으로 공유하고 있는 공통 분모 없이 지나칠 정도로 개별화되고 폐쇄적이고, 아파트 공동의 관리 문제에도 크게 관심이 없는 아파트 주민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인구가 감소하고 고령화가 가속하면서 10년 내 아파트의 상황은 바뀌게 될 것이다. 아파트가 거주지의 위기가 되지 않도록 아파트의 커뮤니티 시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아파트의 조경과 정원을 어떻게 그리스 알렉산드라 주택단지의 주민들처럼 창조적이고 자율적으로 경계를 허물며 야외 공간을 다공의 공공장소로 만들 수 있을까?
교육을 넘어, 공동체를 생각하는 학교
공동공간을 향한 채워지지 않는 갈망은 나를 도시의 공공장소들에 대한 연구와 실천으로 이끌고 있다. 세계의 도서관과 미술관, 문화센터, 놀이터, 체육관, 공공텃밭, 도시공원과 수변 공원의 변화와 시민 참여 사례를 연구하게 되었고, 결국 교육기관 그 이상인 주요 공공공간으로서 학교까지 연구하게 되었다. 여러 학교의 공간기획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 결과 최근 『학교의 발견, 교실의 발명』을 출간했다. 이 책은 세계의 다채로운 교실 모델과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다양한 학교 건축과 미래 교육 방식을 소개한다. 특히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을 우려하는 지역에서 문화, 복지, 평생교육, 스포츠, 위생 건강 시설까지 복합한 공동체학교(community school)에 대해 소개한다. 시설 복합화한 학교는 이제 단지 교육을 위한 섬이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공간으로 바뀌고 있다. 현재 한국 정부도 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공공시설의 효율적 관리와 운영을 위해 학교의 시설 복합화를 추진하고 있다. 비단 학교뿐 아니라 앞서 열거한 도서관, 미술관 등 공공시설들 역시 단지 정부의 재원만으로 운영하던 시대는 지나고 있고, 시민들의 참여와 개입, 지원을 요청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다.
2차 대전 이후 베이비부머의 등장과 함께 급성장했던 세계의 도시들처럼 6.25 전쟁 후 급격히 확대한 한국의 도시들도 변화의 기로에 서 있다. 도시의 어떤 부분은 지나치게 낡아졌다.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던 시대, 사회적 교류를 지향하며 풍요로운 거주 환경을 추구했던 건축가들의 시도를 따르기 보다는 유난히도 개발 논리에 따라 조성되어 온 한국의 도시와 그 도시의 주요 거주 형태인 아파트는 도시민들의 삶과 일상을 파편화하며 답답하게 고착해왔다. 시민들을 일터와 거주 공간에 가두고 직업 활동 외 다양한 사적 창의 활동이나 취미활동, 사회적 활동과 사회적 연결을 촉진할 공동공간은 점점 줄어들었다. 한편, 이제 인구가 감소하면서 공공시설들의 유지와 관리보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걱정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공공시설의 총량을 줄이고 조절하려는 정책을 펴는 나라들이 늘어나고 있고, 시민들의 지원과 개입 없이는 공공공간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이런 위기 상황은 시민들이 다양한 공간과 시설에 개입하고 공간의 용도를 바꾸고 자신들의 공동공간을 만들 기회이기도 하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지금보다 도시의 공간에 대해 예민해지고 공동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상상과 도전을 해야 한다. 경제적, 사회적, 환경적인 복합 위기 상황이 다가온다 해도 자유롭게 이용하고 타인들과 연결할 수 있는 공간의 크기와 다양성은 한 개인은 물론 지역사회가 위축되지 않고 시민 문화와 예술이 성장할 가능성의 척도이자 일상의 풍요로움을 확장할 근거이기 때문이다.
- 김성원
- 파주에서 적정기술, 공예, 다양한 공공장소와 공간에 대해 연구하며 저술과 실천 활동, 그리고 공간기획가로 살고 있다. 저서로는 『이웃과 함께 짓는 흙부대집』 『점화본능을 일깨우는 화덕의 귀환』 『화목난로의 시대』 『시골 돈 보다 기술』 『마을이 함께 만드는 모험 놀이터』 『근질거리는 나의 손』 『자연 미장』 『학교의 발견 교실의 발명』 『독일의 학교 시설 복합화 및 개방 정책 사례와 시사점』이 있다. 공저로 『2019 한국의 논점』 『기술비평들』 『사물에 수작부리기』 『똥의 인문학』 『지구별 생태사상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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