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학기에는 디자인을 주제로 1학년 미술 수업을 계획했다. 첫 번째 주제인 공공디자인 수업에 이어서 두 번째 디자인 수업으로 ‘집 만들기 – 슈필라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공간과 건축에 관한 수업은 일상생활 속에서 매일 접하는 공간에 자신을 담아내는 작업이면서, 공간을 만들며 체험하는 건축에 대한 이해의 과정이기도 하다. 삶을 담는 그릇으로서의 공간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우리의 주변 환경과 공간을 스스로 가꿀 수 있는 능력과 시민의식을 함양하는 것이 수업의 목적이라 하겠다. 아울러 모둠에서 함께 작업하는 과정에서 다른 학생들과 소통하며 서로에게서 배우고, 협력의 가치를 깨닫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슈필라움(Spielraum): 독일어 ‘놀이(슈필·spiel)’와 ‘공간(라움·raum)’의 합성어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을 뜻함. (편집자 주)
*슈필라움(Spielraum): 독일어 ‘놀이(슈필·spiel)’와 ‘공간(라움·raum)’의 합성어로 타인에게 방해받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 여유를 가질 수 있는 나만의 놀이 공간을 뜻함. (편집자 주)
1학기에 광주 북구문화의집에서 추진한 ‘링크트리’(2023 매개자 협력 학교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 ‘예술로 링크(Link)’) 프로그램에 신청하고, 운 좋게 참여 교사로 선정되어 차근차근 만남이 이어지며 우리의 프로젝트는 준비되었다. 링크트리 주제 중에 ‘작은 것, 먼 곳’에 함께하는 인연으로 매개자 희복 님(유휘경)을 만났고, 희복 님의 연결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 양용 대표님, 이지원 선생님과 함께 수업을 준비하게 되었다.
공간과 환경을 이해하기 위한 큰 도전
경력이 20년이 넘은 교사도 새로운 수업을 준비할 때 설렌다. 혼자서는 엄두를 내지 못하던 수업을 학교 밖 선생님들과의 협업을 통해 도전할 수 있어서 좋았다. 내가 희복 님과 양용 선생님에게 제안한 첫 번째 희망 사항은 ‘쓰레기 없는 미술 수업’이었다. 안타깝게도 미술 수업에서 다루는 재료들이 대개는 환경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들이 많다. 내가 해결하고자 했던 것은 학생들의 작품이 고약한 쓰레기가 되는 문제였다. 학생들이 열심히 작업한 결과물이 재활용도 되지 않는 쓰레기가 되는 것이 환경과 지속 가능한 삶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영 마음에 걸렸었다.
두 번째는 학생들이 공간을 만드는 작업에 대해 충분한 경험을 하게 하는 수업을 제안했다. 여러 한계로 인해 미술 시간에 제작하는 작품의 규모를 줄이다 보면 실제 공간을 체험하는 효과를 보기가 어렵다. 그래서 직접 학생들이 몸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게 하고 싶었다. 더불어 실제 건축에 가까운 공간의 크기에서 느낄 수 있는 작업 과정에서의 수고를 경험하게 하고 싶었다. 그러자면 가능한 큰 구조물을 만들어야 하는데, 재료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고, 학생들과 공간을 만드는 작업은 늘 꿈꾸는 것처럼 언젠가 기회가 되면 해보고 싶은 수업이었다.
몇 년 전에도 미술 수업으로 공간을 만드는 체험을 해보고자 나름대로 머리를 써서 각목을 길이에 따라 재단하고 중간중간 구멍을 뚫어 각목끼리 연결할 수 있도록 했는데, 막상 수업을 진행해 보니 건축적인 구조를 만드는 것이 쉬운 작업이 아니었다. 어찌어찌 각목을 케이블타이로 엮어서 구조물이 되기는 했지만 엉성하게 흔들거리기도 하고, 구상하고 계획해서 공간을 만드는 작업의 재미를 느끼기에는 여러 가지로 아쉬움이 많았다. 큰맘 먹고 구입한 각목들도 미술실 한쪽에 쌓여 더 이상 활용되지 못했다.
이번 프로젝트 진행에서 어려움도 있었다. 수업 일정을 정하면서 충분하지 않은 작업 시간을 함께 염려했다. 1주일에 2시간 연속 강의하는 방식으로 3주에 걸쳐 수업을 진행했다. 첫째 주는 쓰레기 없는 집 만들기와 슈필라움에 대한 설명과 설계, 둘째 주는 골조 제작, 셋째 주는 마무리 작업을 진행하기로 했다. 가능한 한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수업 준비를 꼼꼼하게 잘했어야 했다. 학생들이 열의를 갖고 집중해 줘야 완성할 수 있는 작업이었다.
학생들의 집짓기 작업을 자연스럽게 끌어낼 수 있도록 기본적인 공간의 틀인 모듈을 제공했다. 가로×세로×높이가 약 90cm에 이르는 정육면체의 틀을 조립하면서 학생들의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잘 재단된 각목에 정교하게 홈을 파고 나무 도미노 칩으로 연결하는 쐐기를 박았다. 간결한 각목 모듈 조립으로 학생 한두 명이 들어가 앉을 수 있는 정육면체의 구조가 완성되었다. 학생들은 틀을 조립하면서 본격적인 작업의 워밍업을 하고, 이후 작업을 위한 모둠 회의가 활발해졌다. 모듈 개발로 프로젝트를 지원해 주신 기관담당자인 김희승 선생님과 목수이신 고영준 선생님의 도움은 아주 중요했다. 수업의 흐름을 이끄는 교사의 요구를 정확히 잡아내고 시간을 들여 직접 제작까지 해주시니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었다. 나는 다른 미술 선생님들을 만날 때마다 각목 모듈을 자랑했다. 그만큼 공간 만들기 수업을 위한 멋진 작품과 같은 새로운 교구가 탄생한 것이다. 7개 반에 다섯 모둠씩 1학년 학생 전체가 쓸 35개 조나 되는 모듈을 만들어 학교까지 옮겨주시니 고마운 마음에 더욱 수업에 집중하게 되었다.
서로 도우며 완성하는 우리의 공간
수업의 시작은 슈필라움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흐름 설명을 시작으로 각자 좋아하는 공간, 싫어하는 공간, 만들고 싶은 공간을 생각하고 계획하는 과정이었다. 페트병을 활용한 환경을 생각하는 집짓기 사례 영상을 보고 각 반에서 작업에 사용할 재료를 정했다. 그리고 모둠 회의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담아 만들 공간을 계획했다.
두 번째 시간은 모듈을 조립하고, 디자인 계획에 따라 골판지를 재단하고, 골조를 만드는 작업이었다. 무엇보다 강조한 것은 모둠에서의 역할 분담이었다. 함께 만들고자 하는 집의 방향을 분명하게 하고 작업의 과정에서 각자 해야 할 일을 찾도록 했다. 다섯 명의 모둠 구성원이 협력해야 완성할 수 있는 작업량이었다. 집을 만드는 것이 보이는 목표라면 작업에 참여하면서 역할을 부여받고, 서로 돕고, 책임감을 느끼게 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목표였다.
집을 짓는 데는 많은 재료와 용구가 필요하다. 비록 작은 집을 짓는 작업이지만 역시 준비할 것이 많았다. 가위, 칼, 컷팅매트 등 기본적인 준비물 외에 타카건, 글루건, 전기연결선, 각종 테이프, 드라이버, 나사, 줄자, 긴 자, 톱 등 챙길 것이 많았다. 공통 재료인 각목과 골판지 외에 반마다 마감 작업의 재료가 달랐는데 1반은 자연물(볏짚), 2반은 현수막, 3반은 신문지, 4반은 플라스틱 장난, 5반은 책, 6반은 종이, 7반은 헌 옷을 준비했다. 헌 옷, 볏짚, 현수막, 플라스틱 장난감 등 학생들이 구하기 힘든 재료는 양용 선생님과 내가 구해왔다. 학생들은 자기 모둠의 작품을 만들 재료를 모아왔는데 요즘 도시에서 구하기 힘든 돌을 챙기느라 산에 다녀왔다는 학생도 있었다. 마무리 작업은 더욱 집중력이 필요했다. 재료의 특성을 살리면서 미적인 요소를 강조해야 한다. 모둠에서 준비한 재료와 소품들을 잘 활용해야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그렇게 작업에 몰두한 3주가 지나고 완성해 놓은 집들을 보니 학생들이 정성껏 연출한 노력이 느껴졌다. 미술실과 복도에 가득한 35채의 슈필라움에 우리 학생들의 즐거움과 수고가 담겨 있었다. 수업을 마치고 문득 학생들이 모둠끼리 집을 짓는 것처럼 선생님들도 서로 협업해서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기분이 들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한동안 학생들의 작품을 정리하지 못하고 복도에 늘어놓았다. 애써 만든 작품을 바로 분해하는 것이 내키지 않아서이기도 하고, 35채나 되는 집을 어떻게 처리할지 엄두가 나지 않기도 했다. 드디어 날을 잡아 작품을 분해하는데 엄청난 양의 쓰레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정성을 들인 작품일수록 더 쓰레기가 많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프로젝트의 목표였던 ‘쓰레기 없는 미술 수업’은 실패다. 모듈을 다시 쓸 수 있도록 분해하고 각목에 박힌 타카심을 하나하나 뽑아 정리했다. 시간이 드는 작업이었지만 그렇게 하고 싶었다. 차곡차곡 모듈을 정리하면서 이번 수업에 들인 많은 이의 정성과 학생들의 작업 과정이 떠올랐다. 비록 여전히 과제를 남겼지만 새로운 시도의 의미와 성과는 충분했다. ‘링크트리 – 슈필라움 프로젝트’를 마치며 새로운 수업에 도전할 수 있게 함께해 주신 선생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 김병일
- ‘가르치고 배우며 나도 즐겁고, 학생도 신나는’ 의미를 챙기면서 재미도 놓치지 않고자 한다. 미술 수업, 미술동아리, 자전거동아리를 맡아 교사로 학생들과 지내면서 여전히 배우고 있다.
21kbi@hanmail.net - 사진제공_김병일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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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Comm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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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하나씩 협업해서 만들어가는 작품도 의미가 있는거 같아요~
전문가는 아니지만, 작품을 만들어가는 재미도 알고, 협업도 배울 수 있는 기회여서 더욱 뜻깊네요~
멋진 작업입니다.
새로운 도전, 내가 주체가 되어 하는 수업은 늘 가슴을 뛰게 합니다.
공간이 주는 매력이 있지요.
우리는 항상 아지트를 갈망합니다.
작업과정에서 함께하는 결과물이 더욱 더 잊지못할 추억으로 남게되겠네요.
협업으로 가르치고 협력으로 배운다
어쩌다 예술쌤㉖ 매개자와 협력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
공감이 갑니다
협업으로 가르치고 협력으로 배운다
어쩌다 예술쌤㉖ 매개자와 협력하는 학교 문화예술교육
기대만점입니다
멋집니다! 직접 만들고 활동하는 예술수업, 늘 꿈꾸고 있습니다. 저 수업을 저도 해 보고 싶은데 혼자 준비할 엄두는 안 나고, 협력 지원받을 수 있는 방법 아시면 알려주셔요~^^
어쩌다 예술쌤 모두 찾아봐야 되겠어요. 이런 아이디어를 얻고 싶었는데, 자세히 안 보고 넘겼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