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환경문제를 그림책으로 계속 이야기하고 있을까? 어느 날 문득 스스로 질문을 던져 보다가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어릴 적 살던 지리산은 울타리 없는 놀이동산이었다. 시간마다 계절마다 풍성한 자연이 만든 놀잇감들로 지루할 틈 없는 시절이었다. 그 자연 속에서 놀면서 관찰하고 형상화하고 감정이입을 하곤 했다. 신기하게도 자연스럽게 자연 안에 패턴이 보였다. 이것과 저것이 닮았고 어떤 것은 전혀 다른 것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자리 곳곳에서 제 할 일을 다 하는 것이 보였다. 극한의 심심함을 느끼다 보면 자연스레 관찰에 깊이를 느끼게 된다. 자연 곳곳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특성을 알게 되니 사회가 돌아가는 그 무엇과 결이 닮았음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깨닫게 되었다. 자연의 그 신기한 광경은 지금 생각해 보니 생명에는 다양성과 변화가 있으면서도 법칙과 규칙적인 리듬이 있다는 것이었다. 그게 삶의 철학이 아닌가 싶다.
다양한 생명체가 공존하던 나의 어릴 적 지구는 건강했다. 그렇게 자연은 곧 나의 선생님이자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아파하는 자연을 보면 누구보다 가슴이 아팠다. 그건 사람, 동물, 식물만이 아닌 오래된, 못 쓰는 물건에도 느낀다. 길거리에 버려진 주인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 특히 인형, 의자 같은 것들이 너무 애잔하게 느껴진다. 그래서 업사이클링 개념이 거의 없었던 2002년에 주인 잃고 먼지 앉은 할머니의 자개장을 활용해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나의 그런 관심과 시선이 자연스럽게 환경이나 업사이클링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못 쓰는 장난감을 활용한 업사이클링 프로그램과 전시를 이어오고 있는 이유다.

  • 폐가전을 이용한 야외 설치 전시

  • 교하아트센터 업사이클링 전시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래서 무서운
나는 한국화를 전공하고 환경을 은유적으로 이야기하는 그림책 작가다. 여건상 한국화가에서 그림책 작가로 전향해 매체가 바뀌었지만, 그림책 안에서 변함없이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여섯 권의 그림책을 지었고 그 중 환경 3부작 시리즈로 『빙산』(지구 온난화), 『검정토끼』(쓰레기문제), 『테트릭스』(생명의 다양성)를 만들었다. 그림책에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아 보일 듯 말 듯 한 애매모호한 이미지와 메타포로 여백이 읽힌다. 곳곳에 색과 형태에도 장치와 복선이 있어서 작가가 심어놓은 미장센 의미를 찾아가는 재미가 있다. 나의 작품에 한국적인 해학과 풍자가 담겨 있어서인지 세 권 모두 국제 도서전에서 수상을 하는 행운도 있었다.
환경문제를 직접 표현하는 방식은 어느 부분에선 필요하기도 하지만 강요하는 것 같은 불편감을 회피하게 된다. 나는 ‘은유’라는 표현방식으로 독자가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그 안에서 마음껏 상상력을 펼쳐 사유하며 나의 것으로 해석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랐다. 그 통찰력은 우리에게 닥친 환경 문제를 더욱 적극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환경은 실천이 가장 중요하기에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느끼고 깨닫고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들 대부분이 쓰레기는 어둡고 지저분하다고 연상한다. 『검정토끼』 작업 초반에는 나 역시 그렇게 표현했다. 그러나 쓰레기를 그렇게 표현한 책은 이미 세상에 너무 많았고, 딜레마에 빠진 나는 몇 달 동안 작업을 접었다. 그러다 한 전시회에서 우연히 바닷새 알바트로스 사체 가운데 알록달록한 플라스틱이 있는 사진을 보게 되었다. 그 화려한 플라스틱의 컬러가 소름 끼치도록 잔인하고 무서웠다. 그렇게 다시 『검정토끼』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가 아는 플라스틱이나 비닐봉지 등은 처음엔 화려하고 알록달록하다. 마치 독성이 있는 생물이 화려한 것처럼. 화려하지만 결코 예쁠 수 없는 그 존재를 자세히 그리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것처럼 쓰레기를 쓰레기처럼 표현하는 것이 오히려 독자의 열린 사고를 제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 역설적인 표현이 독자에게 더 큰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다행히도 『검정토끼』를 본 독자들은 쓰레기의 표현이 낯설기도 하지만 아름다워 더 강렬한 메시지를 받았다고 말한다. 마지막에 귀여운 ‘검정토끼’의 진짜 정체를 알고 나면 더욱 소름이 끼친다고.
  • 작업 초반 그림(왼쪽)과 출간한 『검정토끼』
마음의 변화를 주는 낯선 경험
나는 그림책 작업 외에 문화예술교육사로서 환경과 그림책에 담긴 철학에 관해 전국의 독자들과 이야기 나누는 공감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는 환경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 거창한 힘이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착각이다. 결국 세상을 바꿔 나가는 것은 아주 작은 움직임에서부터 시작한다. ‘나 하나쯤’이라는 생각에서 ‘나로부터’라는 마음이 결국 큰 변화를 줄 수 있다고 인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그 일이 안 벌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듯이.
요즘 제10의 예술이라 불릴 만큼 그림책은 종이책 안에 펼쳐지는 예술이다. 순수 예술에 비해 대중성이 있어 전 연령이 쉽게 더 많이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더 많은 독자가 그림책을 보고 그중 몇 명에게라도 변화를 주고 환경을 이야기하는 나의 역할이 도움이 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내 그림책이 어렵다고 하는 이들도 있지만 어려운 게 아니라 “낯선”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익숙한 것이 쉬워 편하기도 하지만 반면 우리의 사고를 열진 않는다. 낯선 것을 경험할 때 사고는 열린다. 그 낯선 삶의 경험은 자양분이 되어 새로운 미래를 꿈꾸는 데 힘을 보탤 것이다.
  • 그림책 원화 전시 《지금, 지구에서》 (2022~23,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어린이도서관)
오세나
오세나
『로봇친구』 『지우개』 『빙산』 『검정토끼』 『테트릭스』 『문득』 여섯 권의 그림책을 쓰고 그렸으며 꾸준히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전국의 도서관, 기관, 학교 등에서 독자와 만나 이야기 나누고 그림책 속 이미지의 힘에 관한 강연을 이어가고 있다.
art534@hanmail.net
인스타그램 @sena0739

사진제공_오세나 그림책 작가